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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여행 활용법


거창하게 '패키지여행의 활용법'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쓸 말이 없다. 그 방법이 매우 간단하기 때문이다.


패키지여행 상품을 활용법은 다음과 같다.


1) 최대한 싼 상품을 잡는다

2) 현지에 가서 돈을 왕창 쓴다

3) 끝


더 할 말이 없다.


특히 위의 두 번째 항목 '현지에 가서 돈을 왕창 쓴다'만 잘 지키면 패키지로 매우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다. 예외는 없다. 가이드가 미치지 않았다면 무조건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매일 아침 가이드와 만날 때 반가운 얼굴로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하면서 $100씩 줘 보라. 그리고 가이드가 추천하는 옵션 중에 제일 비싼 걸로 세 개만 선택하라. 그럼 당신은 여행지에서 ‘왕’이 될 수 있다. 이보다 쉬운 패키지 활용법이 어디 있나? 이 이상 패키지 여행에 대한 활용법을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혹시 좋은 호텔을 원하거나 좋은 비행기를 원한다면 위의 첫째 항목을 무시하고 조금 가격이 비싼 패키지를 잡으면 된다. 패키지여행의 활용은 참 쉽다.


지금의 패키지여행은 교활한 여행사가 만들어 놓은 링 위에서 손님들의 주머니를 긁어내려는 가이드(랜드사)와 그걸 방어하려는 약삭빠른 손님들의 전쟁이 되어버렸다. 안타깝다. 하지만 아직도 패키지 방식을 이용해서 좋은 여행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패키지여행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패키지가 몸에 맞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패키지는 근본적으로 좋은 방식의 여행법이다.


아래 글은 현장에서 가이드가 바라보는 패키지여행 활용법에 대한 이야기다. 매우 주관적 입장에서 쓴 글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드리며,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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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부(Cebu, Philippines)’에서 일하는 가이드이다. 현장에서 내가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패키지 활용법에 대한 정리를 했다. 그래서 아래의 이야기들이 타 지역의 문제점들과는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의 패키지여행은 대부분 비슷한 구조로 움직인다. 또한 한국의 여행사가 운영하는 전 세계의 패키지여행은 모두 비슷하게 돌아간다. 그러니 이 글을 참고한다면 패키지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더불어 현장에서 일하는 가이드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패키지여행을 선택하는 방법


가끔 “필리핀이 지구의 어디쯤에 있는지 아세요?” 또는 “필리핀 해(海)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중 하나인데 여기가 ‘남태평양일까요?, 북태평양일까요?” 혹은 “필리핀 수도가 어딘지 아세요?”라고 여행객들에게 물어 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몰라요. 그게 중요한가요?” 이렇게 대답 하는 손님들이 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잠깐만요. 지금 검색해 볼게요.” 때로는 이렇게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죠?”, “그걸 아는 게 내 여행에 도움이 될까요?”, “3~4일 있다가 돌아가면 곧 잊을 곳인데 어설프게 공부해서 뭐하게요?” 이렇게 대답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예전에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현지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 안에 컴퓨터가 하나씩 있으니 미리 공부를 할 필요가 없게 됐다. 궁금할 때 자판 몇 번만 두드리면 바로 답이 나오는 세상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여행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바뀌었다.


이렇게 여행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어도 패키지여행을 만드는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패키지여행이 만들어지는 기준을 안다면 패키지여행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의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쯤은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사가 패키지여행을 만드는 기준


첫째, 패키지여행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한국의 패키지여행이 들어가는 곳은 무조건 안전하다.


예를 들면, 올해(2017년) 필리핀에 계엄령이 내렸다고 우리나라의 모든 미디어가 난리를 친 적이 있다. 하루 2000명 이상의 여행객들이 패키지여행을 취소하는 사태가 빚어지며 세부의 랜드사들은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몰렸다.


그런데 한국의 여행사에서 필리핀 패키지를 멈췄나? 아니다 멈추지 않았다. 이 말을 달리하면 필리핀의 관광지들은 계엄령에 관계없이 매우 안전했다는 뜻이다. 한국의 언론이 필리핀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과장해서 떠들어댔던 것이다. 솔직히 이 시기 때 세부로 여행을 온 사람들은 싼 가격으로 마음껏 즐기다 돌아갔다.


우리나라 패키지가 진행되고 있다면 그곳은 안전한 곳이다. 바꿔 말하면 갑자기 여행사 패키지가 빠졌다면 그곳은 위험한 지역이거나 문제가 있는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교민들도 여행사가 발을 뺐다면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한다.


둘째, 패키지여행은 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특별한 볼거리와 재밌는 놀이, 맛있는 음식 등을 엮어서 구성한다.


해외 여행지에는 그곳을 대표하는 자랑거리들이 있다. 이런 것이 많은 곳일수록 관광지로의 수명은 길어진다. 현지의 다양한 놀 거리에 한국인의 특성을 결부시켜 패키지의 일정은 만들어진다. 여기서 핵심은 '한국인의 특성'이다. “호텔에 한국사람 밖에 없어요.”, “왜 이렇게 한국 간판이 많아요? 여기는 한국 사람이 다 먹여 살리나 봐요.” 이런 말을 하는 손님들이 있다.


그런데 이건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자기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중국 여행사는 중국인에 맞게, 일본 여행사는 일본인에 맞게, 한국 여행사는 한국인에 맞게 패키지 일정을 구성한다. 그러니 항공과 방문지가 다른 패키지 방식의 여행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


아마도 중국인들은 “세부에는 중국 사람들 밖에 없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예외는 있다. 어쩔 수 없이 꼭 가야하는 유명 포인트에는 항상 각 나라의 관광객으로 북적거린다.


셋째, 패키지여행은 여행사와 관련업종 종사자(가이드나 랜드사)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다. 사실 이게 패키지여행 구성 요건의 핵심일 것이다. 진짜 좋은 곳이 있어도 여행사가 돈을 벌 수 없는 일정이라면 패키지 구성에서는 제외된다. 솔직히 패키지가 안전을 중시하는 이유도 일정 중에 사고라도 생기면 돈을 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뭐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크게 위의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패키지여행은 만들어진다. 그럼 이 기준을 바닥에 깔고 패키지 여행상품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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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항공, 옵션, 쇼핑 선택법


1. 항공


한국 항공사 중에는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을 제외하면 모두 ‘저가항공’으로 분류된다. 나는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같은 일반항공사와 진에어, 제주항공, 에어부산, 티웨이 같은 저가항공사 그리고 필리핀에어(필리핀에어는 일반 항공이다), 세부퍼시픽, 에어아시아 같은 외국 항공사가 얼마나 서비스의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타 봤지만 솔직히 별로 차이를 못 느끼겠다.


운항거리가 짧은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 항공사에 따른 서비스의 차이는 크지 않다. 쉽게 말해서 비즈니스 클래스 이상을 탈 게 아니라면 일반항공사나 저가항공사나 서비스의 차이는 비슷하다는 뜻이다. 아주 민감함 사람이 아니라면 비행 안정감의 차이도 크게 느끼기 힘들다.


그렇지만 항공에 따라 패키지 상품의 가격 차이는 의외로 크다. 따라서 패키지상품을 선택 할 때 항공사를 고르는 것은 비용에 많은 영향을 준다. 항공 선택에서 가장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한국 출발 시간과 돌아오는 날의 시간이다. 동남아시아 같으면 대부분 밤에 비행기가 출발하고 새벽에 돌아온다. 이건 체력적으로 매우 힘든 일정이다. 그런데 잘 찾아보면 오전 출발이나 낮에 출발하는 항공편도 더러 있다. 이런 항공편이 여행 일정을 짜는 데는 더 유리할 수도 있다.


만약 본인이 항공을 선택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항공에 맞게 일정을 다시 짜야한다. “패키지에 무슨 여행객이 일정을 짜?”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실제 패키지여행도 현지에 도착하면 가이드와 세부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어떨 때는 일정표와 관계없이 완전히 다시 짜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은 항공 시간 때문에 가장 많이 생긴다.


여행객의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는 시간의 배분이다. 일정이 10일이나 20일 정도 되는 긴 여행이라면 상관없지만 3~4일로 진행되는 패키지여행이라면 시간의 배분은 매우 중요하다. 까딱 잘못하면 비행기 출발시간 기다리느라 10시간 이상을 공항에서 멀뚱멀뚱 보내는 경우도 생긴다.


3박 4일의 여행 중에 10시간 이상을 허송세월 한다면 아깝지 않은가? 이건 낭비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쉬는 거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공항 철제 의자나 호텔로비에서 6~7시간씩 기다리는 것은 쉬는 것도 관광을 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단지 시간을 버리는 것이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을 여행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현명한 행동일까? 짧은 여행일수록 항공에 따른 시간 배분은 매우 중요하다. 비싼 항공이라고 꼭 좋은 일정을 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패키지 상품을 선택 할 때 꼭 참고하기 바란다.



2. 호텔


호텔을 선택하는 것은 여행의 컨셉을 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가끔 손님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작년에 왔을 때 60만원에 싸구려 호텔로 왔었거든요. 밥도 맛없고 엄청 불편했어요. 그때 마지막 날 시간이 남아서 좋은 호텔 구경을 했었는데 그 호텔 묶는 손님들이 너무 부러운 거예요. '다음에는 돈이 좀 들어도 여기 꼭 와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주에 홈쇼핑에서 그 호텔 패키지를 ‘호핑’, ‘마사지’까지 포함해서 60만원에 팔고 있는 거예요.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잡았어요. 아마 3분 만에 매진됐다죠? 이렇게 싸게 올 수 있으면 우리는 매년 올 거예요. 너무 좋아요.”


좋은 호텔도 비수기 때는 가끔 싸게 나올 때가 있다. 그러니 눈 부릅뜨고 잘 찾다보면 좋은 호텔을 싸게 잡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게 그런 행운이 올까? 만약 그런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호텔을 선택할지 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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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보겠다.


 22살 청년 두 명이 여행을 왔다. 세부에서는 비교적 고급에 속하는 '모벤픽'이라는 리조트에 대한항공을 타고 패키지여행을 온 것이다. 그들 이야기로는 군대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즐기기 위해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고 다음 달에 둘 다 입대를 앞두고 있단다. 여행사에 상담을 했더니 80만 원대의 ‘대한한공+모벤픽’ 상품을 추천해 줬다고 한다.


도착 다음 날 아침에 일정 미팅을 하면서 몇 가지 옵션을 추천해줬다. 그랬더니 난색을 보이면서 “우리 돈 없어요.” 이러는 거다. 그래서 왜 돈이 없냐고 물었더니, “우리 있는 돈 전부 패키지 비용으로 여행사에 다 냈어요. 여행사에서 좋은 상품으로 가니 돈 안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요.” 이런 대답을 했다. 마침 때는 준 성수기여서 상품가는 올라 있었고 포함된 옵션은 적을 때였다.


이 친구들이 선택한 상품에는 마사지 1시간과 특식 2번이 포함되어 있었고 해양 스포츠는 ‘바나나보트’ 하나만 포함되어 있었다. 인기 옵션은 하나도 포함이 안 되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뭐가 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여기 옵션에 있는 거 다 하고 싶은데 현지에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지 몰랐다고 했다. 한국에서 상담 할 때는 호텔에서만 놀아도 충분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친구들은 군대 가기 전 왔던 마지막 세부 여행에서 시내구경 한 번 못 나가고, 고급 호텔방에서 컵라면 끓여 사흘 동안 소주만 마시다가 돌아갔다.


“하루 종일 호텔에만 있으니 답답해 죽겠어요. 수영장에 노는 것도 질리고 비치도 뭐 그렇고, 낮에는 바다에서 놀고, 밤에는 공연도 보고, 클럽도 가고, 구경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으니 아무것도 못 하겠어요. 남자 둘이서 호텔 방에 틀어박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사흘 째 되는 날 내게 했던 말이다.


나는 위로한답시고 “그래도 방은 좋잖아요. 아침 식사도 좋고, 여기 예쁘니까 사진도 잘 나올 거예요.”라고 했더니, “남자 둘이서 좋은 방에 묵으면 뭐해요. 소주나 먹고 있는데...” 이런 대답을 했다.


만약 이 친구들이 30만 원짜리 싼 호텔을 잡고 50만원을 현지에 와서 썼더라면 훨씬 재밌게 놀고 갔을 것이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난다. 비싼 상품으로 와서 현지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호텔 놀이(?)’만 하다가 가는 것이다. 비싼 호텔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패키지여행은 컨셉에 따라 호텔의 선택을 달리해야 한다. 만약 이 친구들의 컨셉이 문화 체험과 해양스포츠 체험이었다면 최대한 싼 항공과 싼 호텔을 선택해서 오는 게 맞았다. 그랬으면 현지에 와서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좋은 호텔이라고 해도 여행 컨셉에 따라서 만족도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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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2년 차의 부부였는데 '크림슨'이라는 꽤 좋은 리조트에 점심, 저녁식사까지 호텔식사로 포함된 비싼 상품으로 세부로 여행을 왔다. 결혼 당시 임신 중이라 신혼 여행을 못 가서 아이를 낳고 신혼여행겸 해서 왔다는 것이다. 이 젊은 부부는 세 가족과 함께 패키지 행사를 진행했는데 총 인원이 9명이었다. 이 부부를 제외한 다른 팀들은 평범한 패키지의 손님들이었다.


이틀째 저녁이 되자 술을 좋아했던 이 부부는 친해진 다른 가족들과 소주를 마시고 싶어 했다. 특히 그날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그런데 호텔 식사가 잡혀 있으니 점심이고 저녁이고 나갈 수가 없었다. 호텔 식사는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꽤나 비싼 금액이다.


다른 팀들은 식사 후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일정을 많이 소화했는데, 이 팀은 호텔 식사 때문에 외부 행사를 할 수가 없었다. 호텔의 한 끼 식사비는 ‘마사지’나 ‘호핑’ 또는 ‘나이트투어’ 같은 옵션보다도 비싸다. 식사를 뺐으면 그 식사비로 이런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호텔에서 밥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놀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식사비를 포기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감옥이 따로 없어요. 주는 밥 먹으려고 꼼짝도 못하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어요. 좀 넓다 뿐이지 이거 호텔이 감옥이나 마찬가지예요. 호텔 뷔페식당에서 둘이서 소주 먹는 것도 눈치 보여서 방에서 라면 끓여서 마셨어요.” 이러는 거다.


나는 “그래도 편히 푹 쉬셨잖아요. 수영장도 좋고, 식사도 좋았을 거고..” 라고 했더니, “같은 뷔페에서 연속해서 9번 밥 먹어 보세요. 그런 소리 나오나. 수영장도 하루 이틀이죠. 애들도 아니고..” 한국 가는 날 공항에서 신랑이 내게 했던 말이다. 이래서 업그레이드도 할 수 없고 환불도 할 수 없는 옵션(식사)이 포함된 비싼 상품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이드의 팀 배정은 같은 호텔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같은 호텔에 같은 날 도착하는 손님들은 버스 한 대의 인원이 넘지 않는 한 가이드 한 명이 행사를 진행한다. 상품가가 다른 팀(코드가 다른 팀)이 섞여 있어도 같은 호텔이면 같은 등급의 패키지이기 때문에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상품가는 의미 없어지고 패키지의 내용은 비슷해지게 되는 것이다.


같은 호텔일 경우 상품가가 비싼 것을 선택하는 것이 높은 만족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손님 입장에서 더 짜증나는 일은 비싼 상품으로 와도 현지에서 돈을 안 쓰면 찬밥 신세를 못 면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상품가로 입금한 돈은 한국의 본사가 몽땅 먹는 것이고 현지에 경비(지상비)를 보낸다고 해도 그건 랜드사가 다 먹는다.


그러니 가이드는 손님이 지불한 상품가에 관계없이 마이너스를 무조건 안게 되어 있다. 때문에 “나는 비싸게 왔으니 현지에서 돈 안 쓸래.” 또는 “난 비싼 상품으로 왔으니 좋은 대우 해 줘.” 이런 생각을 손님이 한다면 그건 아주 큰 착각이다.


비싸든 싸든 상품가는 가이드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손님이 현지에서 돈을 안 쓰면 가이드는 수입이 0원이 된다. 결국 가이드는 상품가에 관계없이 손님을 쥐어 짤 수밖에 없다. 비싼 돈 내고 와서 가이드와 신경전까지 해야 한다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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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옵션(선택 관광)


옵션은 현지에서 선택하는 ‘현지 선택 관광’을 통칭해서 하는 말이다. 유명 관광지에는 그곳을 대표하는 옵션(선택 관광)이 있게 마련이다. 옵션이 다양하지 않은 여행지는 오랫동안 번성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랜드사들은 관광객들이 좋아할만한 옵션 개발에 온 힘을 다한다.


포함 옵션이 많으면 상품가는 당연히 올라갈 것이다. 만약 같은 호텔에 가격이 다른 상품을 가이드 한 명이 진행한다면 상품가의 변동에 따라 서비스에 차이가 있을까? 없다. 상품가에 관계없이 현지에서 하는 식사나 마사지, 공연, 호핑, 스쿠버 다이빙, 지역투어 같은 옵션의 수준은 똑같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포함 옵션이 많은 비싼 패키지상품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없다.


앞에서 호텔 식사 포함의 예를 든 것처럼 어설프게 포함이 많은 패키지는 시간의 배분에 지장만 준다. 포함된 것을 포기하게 되면 그에 따른 돈의 손실 또한 발생한다. 이래저래 불편하기만 한 것이다. 패키지여행의 경우는 포함을 최대한 줄여서 시간의 배분이 쉽도록 한 후 현지에 와서 현지 사정에 맞도록 일정을 짜는 것이 여행의 질을 높이는데는 훨씬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여행사에서 기본으로 상품에 포함해서 팔고 있는 옵션의 수준은 과연 어떨까? 솔직히 질이 높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당연한 거 아닌가? 여행사에서 비싸고 좋은 옵션을 포함시켰을 리가 없다. 포함되어 있는 옵션은 현지에서 거의 판매 되지 않거나 업그레이드를 위한 밑밥 수준의 저가 옵션들일 가능성이 크다.


가끔 비싼 옵션들이 포함되어 오는 손님들이 있는데 이건 한국의 여행사 대리점에서 미리 손님들에게 돈을 받고 판매한 것이다. 한국 여행사 대리점에서 이렇게 비싼 옵션을 끼워 넣어 팔아버리면 현지의 가이드는 수입 없이 봉사만 해야 한다. 한국 여행사 대리점에서 벼룩의 간을 내 먹듯이 가이드의 수입을 쪽쪽 빨아 먹은 것이다.


포함된 옵션이 많은 팀 행사를 할 때 가이드가 과연 얼마나 친절하게 일정을 진행 할 수 있을까? 미친 서비스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매우 힘들다. 이래서 '노 옵션, 노 쇼핑' 패키지의 경우 여행에 임팩트가 없이 덤덤하게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가이드가 의무감으로 정해진 행사만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잘 생각해 보자. 상품가가 비싼, 포함 옵션이 많은 상품을 잡아서 오는 것이 좋을까? 싸게 포함 옵션 없이 와서 현지에서 가이드에게 옵션을 사는 게 좋을까?


어차피 여행 경비가 비슷하다면 후자가 손님과 가이드 양쪽 모두에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물론 나는 가이드이다. 내 입장에서 하는 소리다. 하지만 상식에 빗대어 잘 생각해 보자. 과연 공짜로 끼워주는 물건(옵션)이나 가격을 후려서 끼워 넣어 준 물건의 질이 좋을 리가 있겠는가? 질이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가끔 보면 손님 일정표에 현지의 옵션리스트에는 아예 이름도 없는 것들이 있다. 그건 현지에서 돈 받고는 팔수도 없는 저급한 수준의 옵션이라는 뜻이다. 그런 것은 10개든 100개든 끼워져 있어봐야 보기만 좋은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패키지로 여행을 할 손님들은 일정표를 유심히 보기 바란다. 과연 유용한 옵션이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현지에 가서 돈 한 푼도 안 써도 돼요. 모든 게 포함되어 있어요.”라고 광고하는 여행사 광고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내게는 그런 광고들이 “현지에 가서 돈과 시간을 버리고 오세요.” 라는 소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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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쇼핑


쇼핑은 가이드로서 말을 꺼내기 가장 힘든 부분이다.


간혹, “요즘 같은 세상에 여행가서 쇼핑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쇼핑은 모자란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아직도 쇼핑은 랜드사의 옵션판매 수입을 뛰어넘는다. 그만큼 여행객들이 쇼핑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가끔 패키지 쇼핑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말을 인터넷에서 볼 때가 있다. “노예처럼 쇼핑샵을 끌고 다닌다.”, “가이드가 쇼핑샵 앞에서 빈손으로 나오면 쇼핑샵 문을 잠그고 안 열어준다.”는 등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해가 된다. 나도 그러고 싶을 때가 있다.


올해(2017년) 10월 추석성수기 때 세부 최고 대박가이드 한 명이 성인 6명 아동 1명을 대상으로 3박 5일 행사에서 옵션 $4000, 쇼핑 $16000을 판매했다. 토탈 $20,000이다. 한국 돈으로 약 2천4백만 원 정도를 판매한 것이다. 이 인원으로 이 정도면 매우 놀라운 금액이다. 단체행사의 경우에도 나오기 힘든 금액을 달랑 성인 6명 아이 1명으로 해낸 것이다.


쇼핑 매출에 관련해서는 철저히 비밀이 지켜지지만 이런 말들은 “~~카더라 통신”을 통해서 다 알려지게 되어 있다. 가이드와 친분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금방 소문이 퍼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쇼핑샵에서 가이드들을 자극하기 위해서 슬쩍 흘리기도 한다.


수익률이 높은 유명한 가이드인 경우 수입의 70%이상을 쇼핑에서 충당한다. 그리고 이런 가이드를 ‘대박 가이드’라고 부르고 최고의 가이드로 친다.


여행지에서는 쇼핑이 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쇼핑을 위해서 여행을 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쇼핑도 일종의 문화체험이다. 물건을 사건말건 그건 여행객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사는 것이 맞다. 당연히 필요 없는 물건은 사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쇼핑을 중심으로 한 패키지여행은 여행 업계의 구조상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패키지의 쇼핑투어에 질린 사람들이 여행 신청 때 미리 “노 쇼핑” 상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쇼핑 날 들어가는 차량비나 인건비등 부대비용이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가격은 놀랄 정도로 올라간다. 쉽게 말하면 20만 원짜리 패키지 상품이 “노 쇼핑”을 선택하면 50만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니 손님은 당연히 “쇼핑샵 가서 안 사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으로 쇼핑이 포함된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쇼핑샵이라는 것이 가 보면 살 것이 생기게 마련이다.


손님들에게 패키지여행에서 가장 싫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쇼핑투어를 꼽는다. 그렇다보니 요즘은 쇼핑샵에서 꽝을 치고 나오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손님들이 예전처럼 쇼핑을 많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쇼핑을 패키지 일정에서 없앨 수는 없다. 여행사나 랜드사는 쇼핑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상품가에서 오는 마이너스를 메꿔야 하고 월급이 없는 가이드는 쇼핑샵에서 주는 커미션으로 수입을 충당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 대안이 없다.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쇼핑만이 랜드사와 가이드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쇼핑샵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가이드의 표정을 한 번 보라. '인간이 저렇게도 바뀌는 구나'라고 생각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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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잠깐 기념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사람들은 쇼핑과 기념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한국 여행객들은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 누군가에 줄 ‘선물’이나 ‘사치품’은 사지만 스스로에게 줄 ‘기념품’은 사지 않는 것이다.


이건 외국 관광객과 한국 관광객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다. 외국 관광객, 특히 서양 사람들은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의 로고가 찍혀 있는 티셔츠나 목걸이, 컵 등 현지에 온 것을 증명 할 수 있는 기념품들을 사는 경우가 많다.


한국 관광객은 아이들이 기념품을 사려고 하면 “야 그거 나중에 다 쓰레기 돼, 쓸모도 없는 거 뭐 하러 사?” 이렇게 말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먹기 힘든 50만 원짜리 한약재가 쓰레기가 되기 쉬울까?, 날짜와 이름을 적어놓은 1달러짜리 조개 목걸이가 쓰레기가 되기 쉬울까? 나는 어린이 손님들에게 세부(Cebu, Philippines)라고 써진 싸구려 조개목걸이나 팔찌를 자주 사준다.


“여기 목걸이 뒤에다 날짜와 같이 온 사람들 이름을 꼭 적어 놓으세요. 나중에 10년 후에 이 목걸이가 책상 서랍에서 발견되면 ‘아! 그때 아빠 엄마하고 세부 갔었지!’ 이런 생각이 날 거예요. 날짜가 적힌 물건은 소중한 거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 알았지?” 그러면 아이들이 “네~~”하고 대답한다. 물론 “나 이런 거 싫어해!” 라고 하는 아이들도 많다.


조개 목걸이는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10년 쯤 지나서 그 목걸이가 서랍에서 발견된다면 그 아이는 어린 시절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목걸이는 쓰레기가 될 수 있지만 추억은 쓰레기가 되지 않는다. 물론 추억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기념품 따위는 가치가 없다.


한 번은 여행을 하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캐나다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핸드폰으로 자기가 방문했던 각 나라의 “I love 0000” 티셔츠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자기는 그 셔츠들을 입고 항상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어 놓는다고 했다.


그 친구의 핸드폰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도시명만 다른 “I love 0000” 티셔츠를 입은 사진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 셔츠들을 가지고 있냐고 내가 물어보자 셔츠들은 낡아서 이미 버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자기 사진 속에 남아있으니 가슴속에도 영원히 남아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흔히 관광지에서 파는 “I love SEOUL, I love CEBU”, “I love Tokyo”, “I love New York” 같은 도시명이 다른 똑같은 티셔츠를 열장 정도를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티셔츠 아래에 “0000년 0월 0일 누구와 함께..” 라든지 “비오는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0000년...” 이런 기록을 남겨놓는다면 이런 것들은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방 청소를 하는 어머니에게는 쓰레기일지 모르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자식에게는 소중한 기억의 덩어리들인 것이다. 물론 돈 안 되는 물건은 다 쓰레기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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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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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times I think I'm fighting for a life I ain't got time to live"
- Dallas Buyers Club, 2013.
가끔은 살려고 애쓰다가 정작 삶을 누릴 시간이 없는 거 같다.
-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