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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 오후 포항을 진원지로 한 규모 5.4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의 규모는 작년 9월에 발생한 경주지진보다 작았다고 하지만, 진원지 깊이가 얕았기에 진원지에 가까운 지역에서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은 더 컸다고 합니다. 많은 분이 다친 데다 경제적 피해도 상당한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측되고 대피소에서 불편한 생활을 보내고 있는 분도 많습니다. 지금은 오로지 피해를 입은 분들이 하루 빨리 일상을 되찾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지진 관련 보도 중 눈에 띄는 뉴스로서 지진을 맞았을 때의 행동 요령을 정리해준 것이 있습니다. 한 보도기관이 가르쳐 주는 바에 의하면, 강한 진동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서둘러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고 방석 등 푹신한 것으로 머리를 보호하고 식탁이나 책상 밑으로 숨은 뒤 가구의 다리를 잡으며 지진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물이 붕괴될 위험성보다 진동으로 무너지거나 떨어지는 물건을 맞아 다칠 위험성이 더 크다는 이유 때문이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가스나 전기를 끊는 것입니다. 2차 재해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화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진이 멈추면 건물 밖으로 대피하게 되는데 서두르면 안 된답니다. 지진이 나면 전기 공급이 끊겨 건물 복도가 어두울 가능성이 높고 또 벽이 무너져 있거나 잔해물들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건물 밖으로 나오면 건물 근처에 있기보다 넓은 공터로 대피하는 것도 기본입니다. 무너진 벽이나 깨진 창문을 맞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 외에도 대피 훈련이나 경보 시스템 등 평소부터 실천 내지 준비할 수 있는 사항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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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초기 대피 요령은 목조 건축이 많은 일본의 경험에 기초해서 도출된 것이라 한국에서는 반드시 적절하지 않다는 소리도 일부 있다는 점, 유의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무엇보다 지진이 발생한 바로 그 순간의 대처 방안은 어디까지나 당장 죽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큰 지진에 대해서는 당장 자기 삶을 지키는 것과 더불어 생존을 유지해야 된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기 마련이죠. 그런 생존 유지에 관한 대비는 언론 보도로는 자세한 정보를 접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뉴스가 대대적으로 알려 주지 않으나 지진 대비를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일본인으로서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정보는 일본에서 대지진을 경험한 분이나 전문기관이 제공해 주는 정보를 참조한 것임을 염두에 두어 주기 바랍니다.



1. 지진 발생 시 가장 중요한 것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서 모든 뉴스 프로그램들이 시청자에게 전해 주는 내용이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고, 그 이유는 오로지 생명을 지키는 것을 지상명제로 삼기 때문이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지진이 언제 날지 모르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 만큼 정작 지진이 발생하면 침착함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거죠.


동일본대지진을 경험한 분의 글을 읽으면서 아주 놀랍고 인상 깊었던 것은 "지진 피해가 심각한 지역일수록 재해 정보를 입수하기 어렵고 지진 피해의 심각성이 와 닿지가 않는다." 라는 부분입니다. 이런 정보 차단으로 인한 낙관(혹은 무감각)은 본인이 모르게 다가오는 생명의 위기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한답니다. 즉 "약간 강한 지진이 난 것 같기도 한데 막상 심각한 상태가 되면 뭘 지킬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이렇게 생각할 것 이고, 지키려는 대상을 대충 열거하면 ①내 가족, ②고가의 물건이나 잃어버리면 다시 갖기 어려운 것, ③돈만 있으면 새로 다시 살 수 있는 것...대략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낙관적인 망상에는 큰 위험성이 숨어 있습니다.


우선 지킬 것 리스트 중 ②나 ③과 같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② 같은 경우에는 비싸거나 소중한 만큼 포기하기 어려운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려다 자기가 죽어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5살 아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리죠. 또 하나 위험한 것은 ‘지킬 것 리스트’에 본인이 포함되지 않은 점입니다. 물론 자신의 삶을 희생하더라도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있겠으나 ‘지킬 것 리스트’를 머리에 떠올릴 때 아예 자신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너무나 낙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진의 압도적인 물리력은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말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지진 때문에 죽는 것을 현실적인 이야기로 삼아 무서워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제 근거 없는 낙관을 버리고 혹시 나라는 경계심을 가질 때입니다. 지진이 발생하는 순간에는 ‘지킬 것 리스트’를 일단 잊어버리고 먼저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할 것. 이것이 제일입니다.


또한 그 전제가 될 것은 침착함입니다. 약간 큰 지진이 나서 들뜨고 서두른 바람에 지갑이나 은행 통장은 집에 둔 채 베개랑 티슈박스를 소중히 들고 밖으로 나갔다는 (특별히 피해가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웃기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습니다.



2. 인프라 차단에 대한 대비


1에서 언급한 내용은 지진이 발생한 그 순간에 중요한 사항이며, 말하자면 ‘1차대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당장 죽을 위험을 회피했다 해서 안심하면 안 됩니다. 지진에 의한 피해가 커서 건물이 붕괴할 우려가 있거나 생필품의 공급이 끊기는 등 일상생활을 유지하지 못하게 될 사태도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큰 지진이 나면 평소 당연한 것처럼 쓰고 있는 것을 쓰지 못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상상해 봅시다. 전화나 전신망이 아예 끊기거나 기존 설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 이용량이 몰려 마비되고, 수도관이나 가스관 파손으로 인해 물이나 가스의 공급이 중단되는 것은 기본. 슈퍼나 마트, 편의점의 음식물 재고가 바닥나고 식품 공급이 늦어질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겨울에는 추위와의 싸움도 기다리고 있겠죠.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은 필자가 생각해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대응하지 못할 상황이 떠오릅니다. 물론 (원래 없는 게 바람직하지만) 피난 생활이 장기화되면 어떻게든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오겠지만 그 때까지 살아남을 준비는 필요하죠.


아예 건물이 붕괴되어 집을 떠나고 대피소 등에서 살아야 될 정도 피해가 심각하면 생활 물자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지원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집은 계속 사용할 수 있으나 통신망이나 전기・가스, 물 등 생활하기에 꼭 필요한 설비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될 경우에는 미리 대비 해 둠으로써 큰 불편이나 치명적 상태를 피할 수 있습니다. 지진 발생 시 당장 취할 대피 행동이 1차대책이라 부른다면 지진 자체가 일단락된 뒤에 최대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은 2차대책이라 부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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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정보 수집 수단으로 지상파 라디오를 비치해 두면 좋겠습니다. 인터넷망 자체에 지장이 없더라도 전기 공급이 끊길 경우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의지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큰데 건전지만 있으면 비교적 오랜 시간 쓸 수 있는 지상파 라디오는 정보 수집의 유력한 수단이 되어 줄 겁니다. 필자 집에는 손전등과 간이식 발전 기능이 붙은 라디오 수신기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발전 기능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건전지도 필요 없어서 좋습니다. 또한 전기 공급이 끊길 상황을 상정해서 손전등을 비치할 거면 스포츠 바이크(자전거)에 장착해서 쓰는 탈착식 안전등도 쓸 만합니다. 다양한 제품이 판매되고 있으나 거의 모든 제품에 예비 배터리가 부속되어 있고 평소에 자전거에 장착해서 사용하고 있으면 특별히 애쓰고 관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진 대비를 게을리 하게 하는 요인은 지진이 언제 올지 모르고 그리 빈번하게 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장 그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데에 있죠. 이것은 아래에 언급하는 모든 대비책에 공통됩니다. 지진 대비의 비결은 평소부터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다음에 물이나 가스, 식품 등 일상생활을 보내기 위해 필요한 물건을 비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단 ‘2주일가량 생활할 수 있을 정도’(물론 2주일이라는 기간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죠. 본인이 놓인 환경을 고려해서 정하면 됩니다)의 생필품을 비치해 두면 심각한 상황은 회피할 수 있겠습니다. 물은 집에 생수를 보관할 만한 빈터가 있으면 비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단독주택은 물론 웬만한 아파트나 빌라의 경우 보관공간이 없어 보여도, 필요 없는 물건을 버리고 집안을 정리하면 어떻게든 비축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집안의 죽은 공간을 없애고 깔끔하게 집을 정리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즐겁게 물의 비축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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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식량 확보입니다. 일본 대표 비상식량으로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역시 ‘건빵’이죠. 건빵은 작은 비스킷 모양의 빵인데 원래 보존・휴대를 전제하는 만큼 수분이 매우 적고 딱딱합니다. 장기간 보존할 수 있어서 관리가 쉬운 장점이 있는데 맛은 전혀 없는 것이 문제죠. 또 하나 장기 보존을 전제로 한 것으로서 각종 통조림이 있습니다(깡통 따개도 꼭 챙겨야 될 점 주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으면서 나름 맛도 있다는 점에서 건빵보다 훌륭한 비상식량이라 할 수 있는데 유통기간이 지나가 버린 뒤의 처리가 문제입니다.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냥 폐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겁니다. 그래서 통조림을 비상식량으로 비축할 때에는 가능한 한 쓸데없이 폐기할 것이 없도록 조절하면 더 좋습니다(보존해 둘 모든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한꺼번에 도래되지 않도록 하거나 통조림의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타이밍으로 반찬이나 후식으로 소비하는 등).


비상식량 하면 많은 독자 분들이 라면이나 햇반을 떠올리겠죠. 그런데 제조 후 유통기한을 알아보니 라면이 대략 6개월, 햇반이 9개월 정도인 것 같습니다. 물론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절대 못 먹을 것도 아니지만 말이죠. 그래서 먹을 수 있는 기간이 긴 식량으로서 주목할 것은 건면(말린 면사리)으로 나온 파스타(스타게티)입니다. 포장지를 안 뜯은 상태로 3년 정도의 유통기한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소스를 뿌리고 먹을 거면 소스는 통조림과 비슷하게 적절히 관리해야 되겠죠. 이 이외에도 비상식량으로 적절한 음식이 없느냐는 시각으로 찾아보면 뭔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상상력을 발휘해서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건빵은 포장지만 뜯으면 먹을 수 있고 통조림도 깡통 따개만 있으면 일단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기타 식량을 먹으려면 다 끓는 물이 필요합니다. 일단 전기・가스의 공급이 차단되었다는 전제에 서면 가장 유력한 수단은 부탄가스를 이용하는 휴대용렌지일 겁니다. 가스레인지 본체는 평소부터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특히 의식적으로 관리할 필요는 없을 텐데 문제는 부탄가스를 얼마나 비축해 놓을지 이죠. 일본의 한 가스레인지 제조사에 의하면 기온 10도, 어른 2인분 기준으로 하루에 카레나 햇반 등 각종 즉석식품을 위해 3번, 따뜻한 음료를 위해 3번, 살균이나 세정 등 기타 용도를 위해 3번 가스레인지를 쓰면 부탄가스를 하루에 1.3개 정도 쓰게 된답니다. 또한 날이 따뜻할 때를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0.9개 정도 소비되겠답니다. 그래서 부탄가스 10개로 1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겠다는 셈이죠.


또 하나, 주된 난방 설비로 온돌을 이용하는 한국에서는 이용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겠지만 등유 난로도 쓸 만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등유난로는 난로 위에 냄비나 주전자를 놓고 데울 수는 구조여서 부탄가스의 소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등유난로는 전화 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똑같이 등유를 연료로 하는 난방기구로 석유팬히터를 선호하는 분도 있는데 전화 시에 전기가 필요해 재해 시에는 거의 소용이 없을 겁니다. 


다만 등유난로에도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환기입니다. 등유난로는 등유를 연소시켜 열기를 발생시키는 구조이기 에 일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수시로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죠. 또 하나는 난로 위에 놓은 주전자가 비지 않도록 수시로 물을 보충하는 것입니다. 난로 위에 놓인 주전자에 들어 있는 물이 가열되어 끓으면 물이 점점 증발되죠. 전기를 쓸 필요 없이 가습기 역할도 해주는 장점이 있는데 빈 주전자가 가열되게 되면 불이 날 위험성이 있습니다. 등유난로를 쓸 때에는 적당한 환기와 물 보충만 잊지 않도록 주의해야 됩니다.



3. 우울증에 조심, 그리고...


동일본대지진이 난 후 많은 사람이 우울감에 빠졌답니다. 주목할 점은 지진과 그에 따른 피해를 직접 입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러지 않은 사람들도 우울감을 호소했다는 것입니다.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지진을 체험하고 지진 후 어지러워지거나 심지어는 붕괴한 집, 무너진 건물이나 뒤집힌 차 등등 금방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상을 갑자기 직면하게 된 거죠. 우울감에 빠지는 것도 쉽게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직접 피해를 안 입은 사람들까지 왜 우울감을 갖게 되었을까요? 


동일본대지진 발생 후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지진 관련 보도가 지진으로 무너지거나 붕괴하고 있는 건물, 쓰나미가 모든 것을 휩쓸고 싹쓸이하고 있는 장면을 계속 반복해서 방송하는 바람에 그런 영상을 자꾸 보게 된 시청자들 중 "지진 피해자들은 그렇게나 비참한 경험을 하고 대피소에서도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지경인데 나는 거실에서 무사태평하게 티비를 보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답니다. 사실 필자 역시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 무렵 티비 화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해 장면을 보다 마음이 침울해지며 웃으면 무언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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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인일보(링크)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자도 아닌 사람은 아예 피해자들한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느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될 것도 아니죠. 이재민들한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더 실질적인 지원, 구체적으로는 대피 생활을 함에 있어서 유용한 생필품이나 옷, 신발, 요이불, 속옷, 귀저기, 여성용 생리대, 음식물 등등 물질적인 것입니다. 다행히도 피해를 입지 않았던 사람들은 티비만 보고 속에 죄책감을 쌓는 것이 아니라 티비를 끄고 더 실속이 있는 지원을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나도 재해지 자원봉사나 할 마음의 준비라도 해놓을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좋습니다. 재해지에서는 여러모로 도와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은 지원물품 못지않게 고마운 것이죠. 단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원봉사가 오히려 재해지에 있어서 부담이 될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동일본대지진 때도 문제가 되었는데 지진 직후 살 곳, 먹을 것이 아주 부족한 상황에서 아무 준비 없이 "도와주겠다."며 몸만 재해지에 간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숙소나 식량 등 원래 이재민들이 누릴 생활 시설이나 물품을 자원봉사자들도 쓰게 되죠. ‘오로지 재해민을 위하여’라는 기본을 잊어버리면 티비를 보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만족’에 빠질 위험성이 큽니다. 지원을 하러 갈 때에는 숙소하고 식량은 현지 재해민들한테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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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링크)



겉보기에는 지원으로 보이지 않으면서 실제로는 큰 지원이 될 것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진 직후의 긴장상태가 일단락된 뒤 피해 지역에서 생산된 농축산물을 사 주거나 관광 삼아 현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데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해 줘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불행히 지진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죠. 물론 따뜻한 지원의 손길도 매우 고맙지만 이재민이 또 다시 힘차게 일어나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당신들이 필요해요"라는 메시지입니다. 피해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님이 되어 주고 고맙게 제품을 사고 서비스를 받는 것도 유효한 지원이라 할 수 있겠죠.



4. 가입한 보험 내용의 재검토


포항지진을 맞아 한국에서도 지진 재해에 특화된 보험이 출시된다는 보도가 나오고 그런 보험의 필요성을 둘러싸고 의견도 분분한 것 같습니다. 지진은 땅 전체가 흔들리는 만큼 그로 인한 피해는 집의 붕괴로 상징되듯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마련입니다. 생활환경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버리는 거죠. 그래서 보험에 가입해 놓으면 지진으로 인한 엄청난 피해에도 (반드시 충분치 않으나) 대비할 수 있고 심리적으로도 안심감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보험회사가 판매하는 보험 상품은 그 계약 내용에 따라 보상되는 범위가 엄격히 정해져 있고 해당 손해가 발생하게 된 모든 원인이 대상이 될 것도 아닙니다. 또한 손해와 그 원인 사이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어야 하죠.


지진보험의 경우 지진으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 주는 보험임은 금방 알 텐데 어떤 손해를, 어떤 범위까지 보상해 줄 건지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진으로 인해 불이 나서 집에 살 수 없게 되었다, 고급 가구가 쓰러져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운 차가 떨어져온 벽돌을 맞아 부서졌다, 초조한 마음에 서둘러 도망가려다 무너져 다쳤다 등등 지진을 원인으로 한 손해는 얼마든지 상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아마 일반인의 언어 감각으로 보면 다 "지진으로 인해 입은 손해" 맞죠. 그런데 보험계약은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죠. 미국이 재채기하면 한국이 독감에 걸리는 듯 인과관계가 지나치게 확산되면 보험회사가 모아 놓은 보험금을 가지고 모든 손해를 보상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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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약관"을 마련해 보험 계약의 내용을 자세히 정합니다. 법적으로는 계약 체결 시 약관 내용에 미비점이 있으면 보험회사하고 협상해서 수정할 수 있는데 사실상 무리입니다. 그 이유는 계약 당사자 간의 입장 차이가 크다(보험회사는 귀찮게 협상하려는 손님을 상대하지 않으면 됨)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보험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아예 보험 약관(즉 계약 내용)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약관은 핸드폰을 살 때나 여행 갈 때 등 일상적으로 많이 이용되는데도 약관이 제시되어 있는 문서를 보면 깨알 같은 글자로 적혀 있는데다 내용 자체도 일부러 알기 어렵게 만든 거 아니냐 의심할 정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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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계파이낸스(링크)



그래도 따져야 됩니다. 지진에 따른 화재도 보상되나? 집이 완전히 무너졌을 경우에만 보상되는 건가, 아니면 일부 손상의 경우에도 보상되는가? 고급 가구의 가격이 고려되는가? 지진 때문에 다친 경우는? 낙하물을 맞아 차가 부서지면? 등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상상하고 어떤 경우에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약관 상 보상 범위 안에 드는 경우에도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인과관계"가 없을 경우죠. 즉 어떤 손해가 발생했는데 그 원인이 지진이 아닐 수 있을 경우에는 보험회사는 보험금 지급을 일단 유보하거나 아예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죠. 만약 장차 한국에서 지진보험관련 소송이 일어나게 되면 그 원인으로 가장 많은 것 중 하나가 인과관계의 입증이 될 겁니다. 이 문제는 국내서 선례가 없는 만큼 법 전문가도 한국 법원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판단할지, 그 기준을 정확히 헤아리기가 어려울 겁니다. 지진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망설여지는 까닭이죠.



5.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놓여있는 환경을 전제로 한 상상력


지진이 왜 무섭냐면 피해 규모가 크고 그만큼 정신적・물리적 피해도 크기 때문이죠. 그리고 지진 대비가 어려운 이유는 지진이 그리 자주 나는 것도 아니고 또 언제 날지도 모르는 데에 있을 겁니다. 그래서 우선 중요한 것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적절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평소부터 내가 평소 어떤 시간대에 어디에 있는지를 관찰하고 큰 지진이 나면 어떻게 될 거고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시뮬레이션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때에는 일단 전기나 가스, 수도, 전화 등 기본적인 생활기반이 쓸 수 없는 전제에 서야 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지진 발생 전의 대비입니다. 일단은 지진 발생 후 정부나 조직적 봉사활동에 의한 지원이 있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대비할 것. 그리고 더 장기적으로는 보험을 중심으로 자산 관리 차원의 대비 방안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경우도 있겠습니다.


정부나 전문기관 등(물론 전문성이 전혀 없는 이 글도 포함해서)이 일반적으로 지진이나 지진 대비에 대해 제공해 주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최대공약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이 입을 재해의 내용이나 정도는 각자각색이고 해당 개인에게 들어맞는 대책 역시 각자각색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정보를 참고하면서 내 방재환경을 점검해서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을 방안을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누레 히요코


편집 : 근육병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