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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서 고혈압을 진단받았다는 글에 흔히 달리는 댓글이 있습니다.


"혈압약은 한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


게시판 뿐만 아니라 고혈압으로 진단되어 혈압약을 복용해야 할 것 같다고 환자에게 설명하면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연 맞는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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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혈압이란 무엇인가?


혈압은 혈관 내부 혈액의 압력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의 압력은 수압, 혈액의 압력은 혈압) 흔히 120/80mmHg과 같이 두 값이 표시되는데 앞의 값은 수축기 혈압, 뒤의 혈압은 이완기 혈압을 의미합니다.


혈압은 1733년 말의 경동맥에 관을 넣어 피가 치솟는 높이를 기록하는 방법으로 최초로 측정되었고, 혈관을 찌르지 않고 안전하고 간편하게 혈압을 잴 수 있게 된 건 1855년 독일 의사 비에로트가 원시적인 압박대와 촉감을 이용하면서부터 였으며, 1905년 러시아 의사 코로트코프가 보다 정밀한 압박대와 청진기를 사용한 것이 오늘날 혈압계의 시초가 됩니다.


즉 혈압이 의학에 도입된 건 100여년 남짓에 불과하다는 얘기죠. (관련기사 - 링크)



2. 고혈압이란 무엇인가?


고혈압은 혈압이 높은 상태를 의미하는데, 혈압이란 것이 측정된 이후에도 의사들은 혈압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혈압이 올라간 것은 몸이 어떤 상황에 대해 적응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 조치고 그걸 일부러 낮추면 오히려 몸에 안 좋을 거라는 인식을 대부분의 의사들조차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중세시대가 아니라 무려 1950년대까지도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졌습니다.


바로 프래밍검 심장 연구, 미국 재향군인연구 같은 연구가 있기 전까지는 말이죠.


1960-70년대 대규모 연구를 통해 혈압의 상승은 병이며 여러 문제들을 일으킨다는 것을 밝혀 냅니다. 지금이야 '고혈압 = 병' 이라는 게 일반인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때는 가히 충격적인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죠. 수압이 높아야 좋은 것처럼 혈압도 높아야 몸에 좋을거라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관련기사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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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혈압은 혈액이 지나가는 혈관과 혈관이 많이 분포하는 장기들에 손상을 끼치는데, 대동맥류, 대동맥 박리, 만성신부전, 심부전, 뇌졸중 (뇌출혈, 뇌경색 모두), 실명 등 심각한 합병증을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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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에 의하면 혈압이 기준치에서 20mmHg가 증가할수록 심혈관계 질환 사망율이 두 배씩 상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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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수축기 혈압을 2mmHg씩 낮출 때마다 허혈성 심장질환과 뇌졸중에 의한 사망율을 각각 7%, 10%씩 낮출 수 있게 됩니다. (위의 두 그림은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어느 제약회사가 만들어서 구글에 돌아 다니는 걸 가져 온 겁니다... 회사 관계자분 있으면 쪽지좀 ㅎㅎ)



3. 고혈압 치료의 역사


고혈압이 몸에 안 좋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50년대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습니다. 고혈압이 몸을 갉아 먹고 있는 걸 보면서도 그냥 지켜 보기만 했어야 했죠. 50년대에 사용된 약물 중에 펜타퀸, 레세르핀, 메틸도파 같은 약들이 있었는데 부작용이 매우 심해 많은 환자들이 그냥 고혈압 약을 안 먹고 살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60년대 베타차단제인 프라프로놀롤이 개발되면서 부작용은 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없을 정도까지 감소했고, 이후 CCB, ACE-i, ARB 계열의 약제들이 속속들이 개발되면서 부작용은 줄이면서 효과가 더 좋은 약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관련기사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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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계열로만 분류해도 저렇게 많은 혈압약이 개발되어 사용중입니다

환자가 원하기만 하면 혈압약으로 혈압을 목표치까지 낮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4. 고혈압 치료 기준과 목표


고혈압이 질병으로 분류된 뒤에도 고혈압의 기준과 치료 목표치는 변해 왔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고혈압 기준이 낮아져 왔고 고혈압 환자 숫자 또한 증가해 왔습니다. 혈압을 많이 낮출수록 고혈압 합병증은 감소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 역시 증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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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사용하고 있는 JNC 7 기준에 의하면, 120/80 이하를 정상, 140/90 이상을 고혈압, 그 중간은 고혈압 전단계로 분류했고 140/90 부터 약물치료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2017년 11월 ACC/AHA 에서는 130 이상을 고혈압으로 분류했고 이 중 고위험군인 10% 정도에서 약물 치료를 하도록 했습니다. 새로운 기준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아직 논란이 좀 있고 우리나라 역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지를 학회 차원에서 의논 중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140/90은 고혈압이 확실히 맞고 이견이 없습니다.



5. 혈압약이 최선인가?


고혈압이 진단되면 의사들은 혈압약을 권하는 경우가 흔한데, 140/90 정도의 경미한 고혈압에서 바로 혈압약을 권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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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감량, 음식 조절, 저염식, 운동, 절주, 금연 등은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으며 대략 생활 습관 개선으로 평균 2-30mmHg 정도의 혈압 강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 역시 혈압약을 처방하면서 저런 생활습관들을 교육하는 게 일반적이고 고혈압이 심하지 않으면 저런 생활습관을 먼저 해보자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런 생활습관 개선은 고혈압 개선 뿐만 아니라 건강 자체에도 도움이 되는 장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저런 비약물적 치료만 의존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면서 고혈압에 의한 표적장기들의 손상이 누적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가급적 약물 치료는 최대한 늦추도록 하는 게 아니라 방법이 뭐든 혈압을 일단 조절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혈압약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은 될 수 있습니다.



6. 소수 의견


현대의학과 제도권 하에서의 주류의학이 있다면, 그걸 인정하지 않는 소수 의견을 가진 부류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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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한의사가 쓴 책의 내용입니다. (물론 한의사 대부분은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이게 다 그 일부들의 문제죠)


혈압은 180mmHg까지 정상이다

고혈압으로 분류되면 약을 빼먹을까봐 신경쓰고 혈압을 체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아무 의심 없이 의사가 시키는 대로 약을 받아 먹다가는 죽는 날까지 제약회사의 호구가 된다

혈압을 강제로 낮추면 중풍, 심장질환, 치매를 부른다


책을 사서 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책 리뷰를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저런 분위기의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참 안타깝죠. 저런 말을 믿고 혈압 측정도 안 하고 혈압약을 먹어야 하는데도 안 먹으면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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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이런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집단의 문제는 약에 대한 합리적인 선택과 비판이 아닌 약에 대한 지나친 혐오, 공포감을 조성해서 결국은 자기들의 치료법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남의 건강을 볼모로 잡게 되는 꼴입니다.



7. 혈압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


자 이제 결론입니다.


저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건 혈압은 나이가 들수록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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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을 결정하는 건 심장에서 뿜어져 나가는 혈류량(cardiac output)과 혈관 자체의 저항(peripheral resistance)입니다. 마치 전류와 저항이 전압을 결정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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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초 혈관의 저항은 혈관의 직경과 신축성에 의해 결정되는데 나이가 들수록 혈관이 동맥경화 같은 것들에 의해 좁아지고 혈관이 뻣뻣해 지면서 (수축기) 혈압이 증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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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수축기 혈압이 증가하게 됩니다.

(혈관이 탄력이 떨어지고 내경이 좁아지니 이완기 혈압은 고령에서는 감소하게 되죠)


혈압약을 복용하는 기준과 목표치는 나이와 기저질환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일반적인 경우인 140/90을 기준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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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 혈압이 정상이더라도 나이가 들면 혈압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서 젋었을 때 혈압이 낮을수록 좋다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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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혈압약 복용 후 혈압이 잘 조절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약을 추가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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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약을 복용하면서 생활습관도 합께 개선하면 혈압약을 복용 하는 갯수나 용량 등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혈압약이 개선시켜 주지 못하는 여러 유익한 효과들까지 누릴 수 있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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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생활습관개선 만으로 혈압이 평생 조절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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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습관개선으로 어느 정도 조절되다가도 결국 혈압약을 복용하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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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약을 한 번 먹으면 대부분은 평생 먹어야 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혈압약은 혈압을 상승시키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서 혈압약을 중단하면 혈압이 다시 상승하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니 복용하면 안 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제시하는 치료법들 역시 근본적인 치료인 건 없고 오히려 혈압을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가격을 보면 없던 혈압도 생기게 됨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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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혈압약을 먹으면서 생활습관 개선까지 열심히 하다가 (약 없이) 생활습관 개선만으로 혈압이 잘 유지되면 약을 끊어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임의로 끊지 말고 담당 주치의 샘과 상의 후에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혈압약을 먹다가 안 먹으면 큰 일 나서 못 끊는 것이 아니라 혈압약을 먹을 정도의 혈압이라면 혈압약을 중단할 정도로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죠.


P.S

7번 항목의 회색 바탕 그림들은 제가 만든 그림입니다. 누가 잘 만들었다고 하면 작성자를 언급해 주시고, 누가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욕하면 그냥 구글링에서 퍼온 거라고 해주세요.




세 줄 요약


1. 고혈압은 심각한 병이다

2. 혈압약은 상당히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저렴한 치료법이다

3. 혈압약을 복용하다가 (혈압약 복용 하지 않고도) 혈압이 정상이 유지되면 혈압약을 끊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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