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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19. 수요일

어린노인






'선행학습 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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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본 필자가 고1에서 고2로 올라오던 당시. 각 학급의 회장들이 교실을 돌면서 학생들에게 서명을 구걸하고 있었다.


" 선행학습금지법에 대한 반대 서명운동입니다. 학생 여러분들 모두 서명해 주세요."


당시 선행학습을 금지한다는 말 자체가 어이 없었던 학생 다수가 서명했고, 후에 중학교 동창을 만난 자리에서 자기들 학교에서도 서명운동이 있었다며, 다수가 반대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 말도 안되는 정책이 흐지부지 되겠구나 하는 안도를 했다. 현재 한국교육 현실상 선행학습이라고 저들이 규정하고 있는 무언가가 정확히 뭔지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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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를 보자. 이 인간들이 대체 어떤 명분으로 이러한 법을 통과시켰으며 또 어떠한 내용이 있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선행학습을 규제하는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8일 전체회의를 열어 선행 학습을 금지하는 내용의 '공교육 정상화 촉진·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교문위는 이날 새누리당 강은희·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각각 제출한 법안을 합쳐 보완한 특별법을 표결 없이 여야 합의로 가결했다.


이 특별법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내놓은 공약이기도 하다. 비정상적으로 사교육이 횡행함에 따라 공교육이 무너지고 서민·중산층의 가계 경제가 악화하는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것.


이에 따라 초·중·고교 중간·기말고사와 입시(고입·대입)에서 학교에서 배운 내용 이외를 출제하는 것이 금지되고, 선행교육과 학습을 유발하는 평가나 시험을 낸 학교 등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교육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사교육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 부담을 대폭 경감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과잉 영어 교육을 요구하는 교육 현실에 대해 근본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선행학습 금지법을 접한 네티즌들은 "선행학습 금지법, 과연 잘 지켜질까?" "선행학습 금지법, 차라리 공교육강화법을 만들지" "선행학습 금지법,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선행학습 금지법, 잘 지켜만 진다면 좋을텐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출처-한국일보 2014. 02. 18 (원문 : 링크)



정리해보자면, 이들의 명분은 공교육 강화다.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고 이제는 필수가 되어 버리니 이를 줄이면 공교육이 강화될 것이라는 거다.


사교육비 과열양상은 진실이다.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학원의 학원비를 모두 합친다면 60만원이 훌쩍 넘는다. 지금은 고등학생이라 학원을 두군데, 수학과 영어를 다니고 있는데 초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 내가 다니던 학원비를 모두 합하면 매달 80만원이 넘는다. 실제로 사교육비 문제는 어느덧 우리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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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따져봐야할 건 두 가지. 


첫 번째는 왜 사교육비가 늘었을까에 대한 의문, 또 하나는 걍 닥치고 규제하면 '사교육비가 줄고, 공교육이 강화 될 것이고, 학부모들이 더이상 사교육비에 목맬 필요 없으니 세금도 더 내겠지(?)' 라는 무대뽀 정신이다. 물론 금지법을 만든 양반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문제를 이렇게 처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법안이 통과된 것을 기념하여 우리도 함 고민 해보자. 


이왕 고딩이 공부하다 말고 키보드를 잡았으니 무대뽀로 접근하긴 싫다. 나름 간지나게 이 문제에 대하여 고민해 보겠다.




어쩌다 사교육이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을까



어제 어머니와 같이 TV를 보는데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어휴~ 대학이 뭐라고~"


학교에 축제가 있어 졸업한 선배들을 만나면 '너도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야지' 혹은 '취직할려면 대학을 잘 가야해' 와 같은 말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어머니와 선배들의 예시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뉴스나 예능 혹은 드라마에서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 바로 학벌사회다.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의 영리 병원편에서 락슈미님께서 하신 말씀 '대학이 수도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점수가 높다'는 말. 우리가 사교육비에 대해 문제를 제기 할때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가장 큰 녀석이 바로 이 학벌사회라는 놈이다.


학벌사회. 


그니까 너님이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 졸라 궁금해하는 사회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원 하나 나오지 않고, 인구도 별로 없고, 영토도 좁은 대한민국에서는 수출할 물건이 사실 사람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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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러시아 무역의 놀라운 성과> 



예전에는 몸 튼튼하고, 무거운 것도 잘 드는 사람들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오게 하였는데, 시간이 흐르니 이제는 반도체나 자동차같은 걸 만들어 외국에다 파니 돈이 좀 되드라, 그래서 우리도 나름 먹고살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좀 즐겨야 되겠는데 누군가 남을 즐겁게 해주었더니 돈이 좀 되더라. 


그래서 그런 일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고 한국에서도 서비스업의 비중이 늘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이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들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네? 무거운 걸 옮길 일도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나라에서는 선진국일 수록 서비스업 비중이 높다면서 이를 장려하는데 그렇다고 나라가 서비스업하는 회사를 차릴 돈은 되지 않으니 회사는 사람 뽑는 기준을 세우게 된다. 방금 사회에 나온 녀석한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뭘까를 고민하다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다 읽기에는 시간이 아까우니 이 사람이 대학을 나왔나 안나왔나를 보자,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취업하기 위해서 당연히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고, 또 이 인식을 확인시켜줄게 라고 말하듯 이러한 양상이 현재까지 계속 되고 있으니, 미래 나의 밥줄, 내 생계에 대한 본능적인 위기의식에 의해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혈투가 시작된 것.... 


이 아닐까하는 게 현직 고딩인 내 생각이다. 


여하튼 회사에도 계급이 생기게 되고 또 그 계급마다 주는 돈도 다르게 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은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선호하게 되었고, 당연히 이는 생존의 '보다 유리함'으로 직결되니 결국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 생존의 성공법으로 체감되고 이는 사교육비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 볼 수 있겠다.


게다가 


'옆집의 누구는 무슨 대학 나와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저만큼 버는데 

니는 대학도 몬나오고 취직도 몬하고 

맨날 쳐 자빠져 놀고만 있으니.....'



라는 말은 거의 공공재 수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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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은 이러한 인식이 전두엽 왼쪽 끄트머리에 아주 크게 박혀 있다. 자신이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모르지만 '대학을 가야 나중에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세뇌된다. 



"내 아이가 공부를 너무 안하는데, 

그래서 억지로라도 시켜야겠는데,

옆집의 누구는 어느 학원을 다녔더니 성적이 얼마나 올랐다더라, 

너도 거기 좀 가봐라."



중학교 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듣던 말이다. 부모는 자기 세대에서 벌어졌던 문제가 얼마나 컸는지 안다. 자신의 자식들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야겠다는 무의식적 대처일 수 있겠다. 다만 따지고 보면 내 자식이 잘 살기를 원하는 것일 뿐.


그러다 그 꼭지점에 있는 수능이라는 시험은 어느덧 국가의 커다란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수능이 끝나고 한강에 몸을 던지는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었고, 학벌사회에 준 커다란 짐의 압박에 못견뎌 토라져 버리는 학생들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누가 이러한 환경에 잘 적응하느냐의 싸움으로, 싸움의 본질은 변했다. 허나 대학을 나온 이들의 수요가 커지다 보니 이 가운데서 또 누구를 뽑아야하는가에 대한 기업의 고민이 시작되었고 여기에 또 다른 기준이 생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자신을 혹사시킨다. 사교육비 증가는 이러한 우리들의 사회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하나의 피해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공교육의 질이 예전보다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능 문제를 막힘없이 풀기에 공교육이 부족한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사교육의 등장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누군가를 밟아 올라서기 위해,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남들보다 더욱 양질의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 사실이다. 남들보다 수능 문제를 더 잘 풀기 위해 그 전의 과정들을 빨리 해치워서 점수를 더 잘받고 싶은 욕망,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욕망들의 집합체가 아마 저들이 말하는 선행학습인 듯하다. 그러니 이를 금지한다는 게 애초부터 말이 되는 건가.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다수의 것들, 고등수학이라든지 고등영어라든지 하는 건 1년 혹은 한 학기를 단번에 공부한다고 해서 수능문제를 술술 풀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뭐부터 해결해야할지를 모르는 게다. 


미천한 고딩의 시선으로 봤을때 이번 법안의 통과는 어긋나있는 톱니바퀴들을 제각기 움직이려하나 정작 본체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가 되겠다. 이 법안이 통과가 되었다 한들 바뀌는 건 없을 거다.


아 시바, 쓰다 보니 씁쓸하다. 


나는 이만 가야겠다. 학원 갈 시간이다. 잘 있어라.




어린노인

트위터 : @suny5958


편집 : 너클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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