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정우성 추천12 비추천0

2014. 02. 20. 목요일

정우성









목돈사회, 결혼비용

 

목돈을 단번에 마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세 가지가 있다. 십 년 일해서 저축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이다. 로또, 도박 그리고 결혼이다. 이중에서 대낮에 떳떳하게 거창하게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거금을 쥐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결혼이다. 사치를 부를 만하다.

 

 

13) 단체전의 백미 : 목돈게임은 개인전이 아니다. 단체전이며, 이 사실이 중요하다. 결혼은 이 단체전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다. 혼인을 맞이하여 서로 다른 두 가족이 돈을 모은다. 혼인은 돈을 부른다. 혼인이 없다면 목돈마련은 연기된다. 단체전으로 목돈 게임에 임하는 것이 가능한 한, 이 실패를 모르는 방법은 워낙 획기적이어서 혼례사치를 부른다. 거금이 모이므로 치장할 만하다. 결혼을 맞이하는 양가의 가족은 장식미를 탐한다. 서로 무엇을 장식할지 역할을 배분하며 요구한다. 이것이 다툼의 불씨가 되지만 가족의 권한은 존중받는다. 권한은 권위와는 다른 것이다. 이 결혼에 재정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며, 당사자들이 도저히 마련할 수 없는 크기의 목돈을 지원한 까닭이다. 결혼이라는 축제를 통해 목돈이 모인다. 단체전의 백미.

 


001.jpg


 



14) 레고통계 : 명징한 현실은 통계에 의지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온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세포 자체가 알아채고 있다면 통계 테이블에 기호를 채워넣는 것은 그저 수고로운 작업일 뿐이다. 통계학의 시대는 이십 세기 이후로 발전했다. 그 이전까지 우리 인류는 통계를 천착하지 않으면서도 문명을 꽃 피웠으며 진리에 닿았다. 통계는 성품이 온화하다. 모난 곳을 둥글게 만들고 현실의 뾰족함과 날카로움을 순화시킨다. 알지 못하거나 모호한 현실에 대해서는 통계가 빛을 낼 때가 있다. 그러나 명징한 현실에 대해서 통계는 흥미로운 장난감 같은 것이다. 통계는 레고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인식선에서 나는 통계를 레고처럼 사용할 것이다.

 

 002.jpg

(단위: 만원, %, 2012년 보건복지부, 전국 결혼 및 출산동향조사)

 

 

위의 ‘레고통계’는 우리나라 결혼동향에 있어 평균 목돈비용을 나타낸다. 이 행사를 통해서 신혼부부는 1억이 넘는 목돈을 마련한다. 결혼할 때 남자는 가족(단체전에 임하는 가족이 없을 경우 은행)으로부터 결혼비용의 53.7%를 지원받는다. 여자의 단체전 재정참가 비율은 49.7%이다. 결혼 전까지 남자가 열심히 일해서 마련한 돈은 4,400만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이중 일부는 빚일 수도 있다). 여자의 여력은 고작 1,450만원을 조금 넘을 뿐이다. 반올림 해서 6,000만원이 결혼하는 두 부부가 마련할 수 있는 단순 목돈의 크기다. 그러나 결혼식을 통해서 1억 2천만원이 넘는 목돈을 마련한다. 백만 원을 걸면 이백만 원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 후덕한 행사, 이것이 곧 혼례라는 축제의 경제적 효과다.

 

 


15) 레고닌자 : 이 레고통계에는 두 ‘닌자’가 있다. 첫 번째 닌자는 이 통계의 표본이다. 주기적으로 조사하는 정부 공식 통계임에도 분석대상 표본은 남성의 경우 99명에 불과하고, 여성의 경우 320명에 불과하다는 사실. 애초 이 통계는 남녀 13,385명을 표본으로 했지만, 결혼비용에 대해서는 419명만 응답했을 뿐이다. 응답율 3%. 감추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다.

 

2013년 한국소비자원의 닌자들은 감추고 싶은 것을 찾아냈다. 최근 2년내 결혼식을 치른 당사자 혹은 혼주 1,0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는 것인데, 약혼식이니 예단이니 예물이니 혼수니 웨딩홀이니 드레스니 신혼여행이니 결혼식을 치르는 데에만 사용된 비용이 1인당 평균 5,198만원이었고, 주택마련(전월세포함)은 또 별도였으며, 신혼가구당 평균 2억 7200만원이었다고 증언한다. 월 300만원 이하의 소득가구의 경우에도 평균 2억 6100만원의 주택마련비용을 지출한다고도 말한다.

 

 

<결혼 전단계 소요 비용, 한국소비자원 실태조사자료 2013, 이하 같다>

 003.jpg

 


<결혼식 진행 관련 비용>

 004.jpg

 


<주택마련 형태별 마련비용>

 005.jpg

 

 

<결혼관련비용 소득계층별 분석>

 006.jpg

 

 

물론 한국소비자원 실태조사를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 것까지는 없다. 몇 가지 조사결과는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평균 2억원에 이르는 결혼비용 정도는 필요하다는 이야기. 이게 어디 결혼 당사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왔겠는가. 결혼은 단체전. 좋은 시기에 태어나서 일찍 결혼한 노땅들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008.jpg

 


두 번째 닌자는 한국 사회의 초혼 연령이다. 2012년 통계에 의하면 남자는 32.1세가 돼서야 초혼을 하며, 29.4세의 여자가 드디어 혼인 서약을 한다(통계청, 2012년 혼인이혼통계, 서울의 경우 각 32.44세, 30.24세). 삼십대가 넘어서도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없으며, 자기들 힘으로는 주거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이 두 번째 닌자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설령 주거보증금을 마련하더라도 그 돈은 금세 남의 것이 된다. 법적으로는 내 것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내 것이 아닌 대한민국 목돈의 묘한 정체성.

 

 

한편,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실시한 2012년도 주택금융 및 보금자리론 수요실태조사(2013-08-27 연합뉴스) 결과라는 또 다른 레고가 있다. 이 통계자료는 표본 5,000가구에 대한 조사분석 자료이다. 이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전세 보증금의 평균 금액은 1억 183만원이며, 반전세의 평균 임차보증금은 4,490만원이라고 한다. 시골을 포함한 전국의 평균값이므로 이 수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족의 도움이 없다면 전세는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준다. 당사자들이 평생 모은 자금으로는 겨우 시골을 고려한 전국 평균 월세보증금만을 충당할 수 있을 뿐이다.

 

 

 

16) 은평구 매물 : 목돈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집안이 워낙 부유해서 걱정이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목돈 게임을 단체전으로 치르더라도 여전히 부족하다. 서울의 사례를 보자. 은평뉴타운의 임대차 아파트 매물 (2014-01-29 현재, 인터넷 다음부동산)은 비정한 현실을 느끼게 한다. 아래는 전세매물이다. 거의 3억에 육박하는 목돈이 있어야 한다. 결혼을 통해서 이만한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면(부모의 노후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혼례사치는 좀 비싼 폭죽일 뿐이다.

 

 

 009.jpg

 


같은 지역의 월세보증금은 아래의 표와 같다. 100만원이 넘는 월세도 부담이지만 당장 최소 5,000만원을 주거보증금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010.jpg

 


보증금 마련이 어렵다거나 남에게 거금을 내맡기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예 방법이 없지는 않다. 욕망의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된다. 아래는 서울 은평구의 연립주택이나 빌라의 월세 매물이다(좀더 한적한 외곽에서 아파트를 찾을 수도 있다). 확실히 저렴해졌다.

 


그렇지만 이것도 말이 쉽지 현실은 어렵다. 젊은 남녀가 결혼할 적에 욕망의 계단은 대개 위를 향한다(목돈사회는 개인의 욕망 풍선에 허풍을 불어넣었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리고 집안이 결혼을 계기로 목돈 마련에 참여한다면, 재정 참여의 권한으로 말미암아 검소한 주거 생활에 반대할지도 모른다. 월세 금액을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경제 수준이며, 집안의 반대도 없고 또한 검소하게 인생을 시작하겠노라는 빛나는 가치관의 부부라면 이것도 괜찮겠다. 하지만 만약 50~60만원의 월세 금액이 부담이 되는 신혼부부라면 보증금 일이천 만원 또한 매우 큰 돈이다(천만 원이 얼마나 큰 돈이지 가난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런 큰 돈을 여전히 부담해야 한다.

 

 

 011.jpg

 


 



17) 단순한 상상, 목돈이 필요하지 않은 결혼 : 만지는 돈의 크기가 커지면 씀씀이도 커지게 마련이다. 억대의 목돈을 만지게 되면 수십 만원의 지출은커녕 수백 만원의 지출에도 대범해진다. 누구나 일생의 결혼을 특별하고 각별하게 기념하고 싶어한다. 결혼비용을 빙자하여 지출이 커진다고 해서 혼례사치라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만, 만일 결혼함에 있어 목돈이 필요하지 않다고, 요컨대 결혼을 하더라도 다른 나라처럼 주거보증금 없이도 신혼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상상해 보자. 또 앞서 통계에서 본 것처럼 결혼 즈음에 당사자들이 5,000만원의 현금을 쥐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집을 사지 않는 이상 추가로 돈이 필요하지 않은 까닭에 부모는 '결혼식' 비용에 보태 쓰라는 정도의 금액, 축하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그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모의 경제적 도움 없이도 결혼을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필경 혼례사치는 소수 명망가 집안의 혼인식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은 이 사회가 신혼부부에게 목돈을 요구한다는 것.

 

 

 012.jpg

 

 

결혼을 통해서 A 가정과 B 가정이 불완전하게나마 통일된다. 통일이 대박이라면 목돈 마련 관점에서 결혼도 대박이다. 그렇지만 축제를 벌여가며 어렵게 마련한 목돈은 주거보증금조로 남의 계좌로 들어간다. 목돈을 사용할 자유는 없다. 그게 싫어서 목돈을 내 계좌로 넣어 소유할라치면 거주의 자유를 잃는다. 그런 돈도 없으면 결혼을 포기하거나 은행을 보이지 않는 주례사로 모시거나 그것도 아니면 연애만 하다가 피차 늙어서 헤어지거나. 그것이 목돈 사회의 함정. 목돈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핍박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결혼은 목돈게임 단체전의 백미. 혼례사치라고 이 단체전을 함부로 비난하지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십 년 일해서 저축한 돈보다 더 많은 거금을 떳떳하고 확실하게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 결혼 말고 어디 있겠니? 몇 천만원을 넣으면 몇 억이 나오는 이 엄청난 모금 행사, 뽕빨 나지 않겠어?

 

 

둘째, 결혼식을 치르는 데에만 1인당 5,198만원이 들었대. 거의 믿기지 않아. 신랑신부 각각 그 정도의 돈이 들었대. 예단, 예물, 혼수, 웨딩홀, 사진, 드레스, 신혼여행 등등. 그게 다가 아니야. 주택마련은 별도야. 신혼가구당 평균 2억 7200만원이 결혼비용에 포함된다는 거야. 어쨌든 2억원, 아니 3억원이 넘는 돈이 결혼비용이야. 가족총동원령. 축의금총동원령. 은행은 웃으며 침을 흘리지. 사실 여럿 인생 꼬이기 시작한 거지. 가랑이가 찢어진 상태로 어떻게 견실하게 걷겠니.

 

 

셋째, 목돈사회에서는 단체전에 참여한 부모든 자식이든 대가를 치러야 한단다.

 

 

넷째, 일찍 결혼해서 이미 늙고 있는 너님들 얼마나 다행이야? 시대를 잘 태어난 하늘의 축복이지. 그땐 목돈의 크기가 작았지 아마? 반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친구들, 이런 경우 내가 뭐라고 말해야 돼? 하, 그것참. 결혼하지 말고 원룸에 살면서 그냥 연애질이나 하며 살라고 말하면 속이야 편하겠지만...

 

 

다섯째, 이게 다 목돈사회라는 괴물이 만들었지. 그 괴물은 우리 자신이, 어른들이 만든 거라네. 아이들이 결혼할 때 목돈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어주세요. 눈치 빠른 분은 주거보증금 문화가 사라져야 한다는 삘을 느끼겠지.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면 아직 더 뜸을 들여야 해. 저항이 엄청나거든. 포위를 하고 공성전을 벌이세.



 

 




 

 정우성


편집 : 꾸물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