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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21 금요일

너클볼러






1. 연아. 연아. 연아. 연아.


2014. 02. 21 오전 6시 30분. 필자는 여지없이 지랄맞게 울려대는 스마트폰 알람을 끈다는 게 그만 트위터를 열어보고야 말았다. 트위터를 시작한지 1년 정도 된 듯 한데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타임라인이 후끈 달아오른 걸 본적이 없다. 필자를 놀라게 한 타임라인을 정리하믄 이렇다.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러시아 씨발.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푸틴 씨발.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러시아 씨발.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연아. 푸틴씨발. 연아. 연아.




어, 이거 머지. 김연아가 트리플 러츠 뛸 때 푸틴이 얼음판 위에 코니(라브라도종 검정사냥개)라도 풀어 논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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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개에게 물려 개공포증이 있는 메르켈 독일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코니를 풀어놓은 푸틴

 


알고 보니 김연아가, 우리(?)의 김연아가, 대한민국(?)의 김연아가,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거다. 이거 충격이고, 스캔들이란다. 쇼트 2위였던 러시아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안기기 위한 억지 판정이었다는 거다. 이런 식이면 다음 평창동계올림픽에 '윤창중'이 나가 금메달을 딴다고 해도 괜찮을 판이라는 거다.


게다가 여자 피겨 스케이팅의 심판진 중 기술요소 평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알렉산더 라케르니크가 러시아피겨스케이팅협회 부회장이고, 같은 협회 회장의 부인인 알라 셰코브세라도 심판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성'에 대한 논란의 불을 지폈다. 


양태영의 이름이 등장하고, 오노와 김동성의 이름도 등장했다. 이번 판정에 대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된다는 논평이 이어졌다. 2002년 솔크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부정판정(프랑스 심판이 판정에 대한 압력을 받은 사실)에 의해 은메달을 획득한 제이미 살레, 데이비드 펠티(캐나다)팀이 ISU와 IOC의 내부조사로 금메달을 되찾았던 기억까지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타임라인을 훑는 필자는 '스포츠정신 되새기자'라 쓰여진 거대한 만장대열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환각에 빠졌다. 이토록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고 공통된 열광과 분노를 경험한 적이 있었나. 이쯤 되면 흥분이고, 흥분의 펜스를 넘어서면 자칫 광기 비스무리한 것이 된다.




2. 확인되지 않은 드라마


김연아의 은메달은 뉴욕 타임즈의 보도처럼 정당한 결과였을 수도, 혹은 ESPN의 기사처럼 홈 어드벤티지가 강력히 적용된 결과였을 수도, 2004년 아테네 하계올림픽 기계체조 양태영 경기처럼 심판진의 오심이었을지도(물론 국제체조연맹이 승부조작, 심판매수설로 확대되지 않도록 오심으로 끝냈다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남아있긴 하다), 혹은 솔크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페어스케이팅처럼 심판에 대한 강요나 매수에 의한 부정일 수도 있다.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것은 없다.


포털의 소치 페이지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라거나, '러시아 빼고 모두 김연아'등등의 기사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어드밴티지에 따른 결과라는 ESPN의 메인 화면은 시시각각 빼놓지 않고 등장하지만 기술점수에서 7번의 점프(김연아 6회)를 구성한 소트니코바의 기술점수는 정당하다는 뉴욕타임즈의 보도는 왠만해선 등장하지 않는다. 소트니코바가 김연아 인터뷰 중 갑자기 퇴장했다거나, '내가 심판들에게 강요한 것은 없다. 그런 질문을 그만 받았으면 한다'는 가쉽들이 차고 넘친다. 그렇게 흥분과 분노가 결합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경기직후, 세계적인 인권 회복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chainge.org)에서는 피겨스케이팅 결과에 정식항의하는 운동이 전개되었고, 순식간에 100만명이 넘는 이들이 동의했다. 그렇게 아직 확인되지 않은 드라마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피겨스케이팅 결과를 놓고 '스포츠정신'이란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다. 스포츠 정신이라는 건 딱히 규정된 사전적 의미, 이런 거, 없다. 주로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뜻하며, 승부에 대한 집착이 아닌 공정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일컫는다. 일체의 부정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정한 승부가 그대로 결과로 이어진다는 순도 백쁘로의 공정함. 머 그런 것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정함'에 왜 그토록 열광하고, 흥분하는가. 발기부전 중증환자의 거시기도 벌떡 세울 만큼 얼티밋흥분이 가능한 이유는 대췌 먼가. 답은 뻔해진다.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세상이 대체로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동원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과도 반성도 없을 뿐더러 전국민의 진상이 되어버린 푸틴은 골때리는 방식(4년 중임제로 두번 해먹고, 메드베데프를 앞세워 개헌, 임기연장을 통해 졸라 해먹는 방식)으로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10년이 넘게 태연히 앉아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3. 스포츠만큼은 좀 공정해라


그러니 '스포츠만큼은 좀 공정해라' 이게 우리의 주문일 게다. 국가기관이 선거에 동원되고, 승리를 위해 여론이 조작되는 사회는 그렇다쳐도 니덜만은, 스포츠 니덜만은 좀 깨끗하고 공정해라. 머 이런 대체심리가 작동하는 것일 수 있겠다. 그래서 첫째도 페어Fair, 둘째도 페어Fair, 셋째도 페어Fair를 부르짖는다.


하지만 한 선수의 준비에서 승부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관심있게 들여다보지 않는 한 순도 백쁘로 공정함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아마추어 스포츠도 결과로 대변되는 체계를 갖춘지 오래다. 대개의 스포츠는 올림픽이란 이름으로 국가간의 경쟁이 되고, 경쟁은 메달수로 서열화 된다. 은메달 100개를 따봐야 금메달 1개에 미치지 못하고, 메달의 색깔에 따라 상금액수도, 연금액수도 달라진다. 결국 과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혹은 메달의 색깔이 만족스럽지 못하게 되면 '국민들께 죄송하다'는 멘트가 자연스레 동반된다. 과정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페어Fair는 승부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의미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겨야 한다고, 메달 색깔이 노리끼리 해야 한다고, 순위가 높아야 스포츠 강국이 된다고 똥꼬가 헤지도록 쑤셔지고 있으니 그게 쉽지가 않은 거다.


그 옛날 오랜 메이져리그 팬이라 자처하던 조갑제옹께서 2001년 월드시리즈 당시 아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마무리로 뛰고 있던 김병현이 2경기 연속 9회말에 홈런을 때려 맞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 아마추어는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으로써 모든 것이 덮어지지만 

프로는 이겨야 하는 것이다.'



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논평을 써재끼긴 했으나 아마추어 역시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까지의 과정만으로는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이다. 때문에 우리가 요구하는 공정한 스포츠는 여전히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과정보다 결과가 주목 받을 수 밖에 없는, 온갖 반칙과 불공정이 난무하는 시대의 필연적 결과일 수 있겠다.




4.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금메달이 당연시되던 김연아의 은메달 소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김연아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다. 그녀의 19년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고, 그녀의 역사를 복기하고 있다. 다행이다. 선수로서 자신의 모든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는 거 행운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운과 행복의 몫은 아쉽게도 모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포털의 모든 기사는 김연아의 차지고, 작게나마 자리를 채운 얼굴들은 모두 메달리스트일 뿐이다. 몇년을 기다리며 땀흘린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은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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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메달리스트... 그리고 아무도 없다.



'공정한 과정'을 입모아 이야기하는데, 공정한 과정을 만들어낸 많은 선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메달로 대변되는 결과는 주목받고, 공정했을 선수들의 과정은 소외된다. 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규정에 어긋나는 장비를 사용하거나, 승부조작에 연류되거나, 반칙을 하지도 않은, 그러한 정직하고 공정한 과정을 수년간 피땀 흘려 되풀이 했을 선수에 대한 환호와 찬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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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리스트에게만 찬사를 보내는 청대트윗.

('내가 국가기관을 동원한 것 때문에 흔들려서 선거를 망쳤다면

그것이야 말로 나 스스로에게 지는 결과가 아니었을까'로 읽힌다)



필자 역시 김연아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은메달이 정당한 결과 였든, 그렇지 않든, 선수로서 불모지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피겨라는 낯설은 종목에서 써내려간 기적의 역사였다.


소치에서 땀흘린 71명, 모든 선수의 공정했던 과정과 땀에 박수를 보낸다. 동시에 다음 올림픽까지 주목받지 못한 채 외롭고 힘들게 흘릴 그들의 땀이 안스럽다. 


그래서, 더욱, 박수를 보낸다. 


진심으로.


수고들 많으셨다.






뽀나스 : 


앞서 조갑제옹의 열폭 관전기를 살짝 소개했으나 한대목 더 소개한다.


"(월드시리즈 9회말에 2게임 연속으로 홈런을 때려 맞은) 이런 김병현에 대한 일부 언론의 동정론은 프로 스포츠의 승부와 프로의 윤리에 대한 미숙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최악의 실투를 한 선수를 영웅시하는 자세는 빈 라덴을 영웅시하는것 만큼이나 변태적이고 병적인 것이다"


당췌 먼말인지 모르겠으나 교훈을 하나 정도는 얻을 수 있다. '흥분하면 조땐다'는 교훈이 바로 그것. 김연아는 충분히 모든 것을 해냈다. 은메달로도 충분하고, 메달을 걸지 못했더라도 충분하다. 결과에 어떤 그 무엇이 작용했을지는 차분히 지켜보자. 


적어도 지금은 흥분 대신 소치로 향한 모든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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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동계스포츠연맹 커미셔너 너클볼러

트위터 : @kncukleballer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