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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26. 수요일

펜더







 

 






수행기사님들과 만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택시 기사님들과 다르지 않구나.

 


이는 폄하의 의미가 아니다. 택시를 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일종의 시사평론을 들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하루종일 택시 안에서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들리는 건 라디오 토론프로에서 나오는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이말저말 얼마나 많은 말을 들었겠는가? 물론, 이런 ‘시사평론’이 불편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나 조차도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다.)


수행기사님들도 기본적으로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으시다. 단, 이를 ‘훈련’과 ‘경험’으로 잘 제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성향이나 컨디션, 그리고 ‘당일의 욕망’ 그러니까 ‘말동무’를 필요로 한다는 걸 확인하게 되면, 그때까지 걸어놨던 핸드브레이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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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기사님이 대표적인 분이시다.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Y기사님에 대한 잔상은, 잘나가는 전국구 조직의 중간보스와 같은 이미지였다. 이건 순전히 외모만을 놓고 본 인상평이다. 그럼, 대화를 나누고 난 뒤의 인상평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좋은 아저씨”

 

“수행기사란 직업에 대한 끝없는 자부심”

 

“<의전儀典>에 대한 한없는 신뢰와 믿음”

 


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모든 인물평과 인상평을 총합해 보면,

 


“내가 만나본 수행기사 분들 중 가장 독특하고, 젊게 사시는 분”

 


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물리적인 나이’도 이제껏 만나 본 수행기사 분들 중에서도 ‘젊은 축’에 들어가는 분이셨다.(당시 45세, 현재 46세 되셨다.) 그 ‘나이’만큼 ‘경력’도 짧았지만, 그 자부심만은 이제껏 만난 그 어떤 수행기사 분들과 견줘도 모자름이 없었다. 글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재미있으신 분이고(재미없다면, 내 글재주의 비루함일 것이다.), 정말 건강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분이시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이야기의 시작은 ‘미안함’이었다. 작년 12월이었을 것이다. C그룹의 신임 임원교육을 위한 <인문학> 강연요청을 받았다. 문제는 일정이 겹쳤다는 것이다. 당시 난 남양주 종합촬영소, 시나리오 작가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에 끌려가 있었다.

 

춘.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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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담’의 진원지다. “김혜수가 귀신을 본 방, 김인권이 기절 한 방”이라는 괴담이 넘쳐나는 곳이다.(원래 이곳 터가 공동묘지였다. 여기를 밀고 세트장이 들어선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를 쓰러 종종 끌려 다니기에 그러려니 하고 있지만, 처음 온 외지인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부담’은 괴담 때문이 아니라 ‘물리적 거리’ 때문이다. C그룹의 인재개발원은 서울 한가운데 있는데, 남양주까지의 왕복 거리는 못 잡아도 4시간은 너끈히 잡아야 한다. 만약 퇴근 시간에라도 걸리면, 5시간은 더 걸릴 수 있다.

 

당시 난 영화사와 감독에게 양해를 구해서 작업 일정 중 이틀 정도를 빼 잠깐 강연을 하러 가겠다고 미리 말한 상황이었다. 이 당시 반응은?

 


“O 작가, 가서 실수하지 말고... 예쁘게 잘 보여야 해. 알았지? C그룹이라면, 갑중의 갑! 슈퍼 갑 아냐! 투자 받으려면 이쁘 게 하고 가~ 알았지?”

 


농담이지만, 제법 ‘현실’이 투영된 뼈있는 농담이었다. 한국 영화계를 쥐락펴락 하는 것이(문화를 파는 기업이라는 광고를 요즘 한참 하던데...) C그룹이 아닌가? 더구나 당시 신임 임원들을 보아하니, 낯익은 이름이 한명 들어가 있었다. L팀장... ‘아, 언제 이사가 된 거지?’ L팀장이 이사가 됐다. 대단한 건 ‘국내 영화투자 총괄이라는 무시무시한 직함이 붙어있었다는 거다.

 

농담 삼아 강연 중에 “예쁘게 봐주십시오!”를 외쳤는데, 나도 알고, 감독도 알고, PD도 알고... 내 강연을 들은 이사들도 다 알고 있다.

 


“누굴 예쁘게 봐주고, 봐주지 않고 할 정도의 정신 상태로는 그 자리까지 못 올라간다.”

 


2시간의 강연은 그렇게 정신없이 끝났다. 그 정신없음 속에서 건진 한 가지가 있다면, Y기사님과의 대화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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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뭐라도 하나 배울 수 있잖아요?

 

Y기사님의 미소는 한 없이 따뜻했다. 그러나 룸미러도 힐끔힐끔 봐라보는 그 시선은 더없이 부담스러웠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저,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게, 어떻게 모실까요? 지금 중구 쪽으로 가려면”

 

“(웃음) 기사님 편하신 길로 가세요. 저는 길치라서.”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계속 쳐다보시는 게...”

 

“아, 그게...”

 

 

Y기사님은 고1때 집안사정 때문에 자퇴를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서 서울에 올라와 일을 하면서도 검정고시 학원을 다녔다고 한다. 어렵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핸들밥’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군대도 운전병으로 갔었고, 그곳에서 무려 ‘쓰리스타’의 운전병으로 활약했다고 한다.

 

이 분이 수행기사 일을 하면서 가장 기쁜 것 중 하나가 ‘배운다는 것이었다.

 

배운다? 알고 보니 Y기사님은 배차를 받을 때 ‘강사’일 경우에는 알음알음 강사들이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듣는다고 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배운 분들 아닙니까? 그렇게 배웠으니, 대기업이나 공무원들이 이렇게 모셔 와 이야기를 들으려는 게 아닙니까? 그런 분들이 오며가며 한마디씩 해주는 걸 듣는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남들은 돈 내고 듣는 걸 전 공짜로 일대일로 듣는 건데...”

 

 

아...

 

 

“그건 기사님이 오해하시는 겁니다. 다른 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전 아직 나이도 어리고,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습니다.”

 

“(웃음) 무슨 소리세요. C가 부를 정도인데...그리고 인터넷 검색 다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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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수행기사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이렇게 당황스러웠을 때가 있었을까? 나중에 말하겠지만, 수행기사 분들도 당일 함께 타게 될 분들에 대한 기초적인 신상을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을 하신다고 한다. 그냥 차를 몰고 가 목적지에 태워주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Y 기사님의 ‘지식’에 대한 욕망(!?)을 확인한 나는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결국 생각해 낸 게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이었다. 소유가 아닌 접속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중언부언하다가, 자본주의란 존재가 공포를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사실과 우리는 실제로 ‘소비의 자유’만을 가졌다는... 그저 그렇고 그런 ‘헛소리’를 20분 간 떠들었다. 놀라운 사실은 Y기사님은 <소유의 종말>을 메모하고, 꼭 사서 읽겠다고 말했다.(저자인 ‘제레미 리프킨’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보는 통에 <엔트로피>까지 이야기해야 했다.)

 

그렇게 30분 간 ‘지식인’인 척 흉내를 내고 난 다음 내 ‘공격 이닝’이 됐다.

 

 

“이제 기사님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저도 말했으니까요. 예?”

 

“(쑥스러운 듯) 저 같은 놈이 무슨 할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의례적인 겸사(謙辭)였다.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면, Y기사님은 나를 태워다 주고 나서 분명 ‘화’를 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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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말했지만, Y기사님은 집안사정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야 한다는 생각에 일하는 틈틈이 검정고시를 준비했고(고려학원에서 준비했다는 걸 몇 번이나 강조하셨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다음 바로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핸들 두드리며) 팔자였나 봅니다. 운전병으로 갈 줄은 알았는데, 장군차, 그것도 쓰리스타 차를 몰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렇게 군생활을 끝마친 뒤 Y기사님은 도자기 수출입을 하는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긴 한숨) 17년을 일했어요. 17년...”

 

“(조심스레)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

 

“안 좋은 일이라. 가방 끈 짧고, 가진 거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몸 쓰는 일이잖아요? 제가 그 회사에서 운전을 했거든요. 처음에 들어갔을 때는 배달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웃음) 도자기 무게를 생각 못했어요.”

 

“도자기가 무게가 좀 나가죠.”

 

“그것도 수출입이니까. 하긴, 수출보다는 수입이죠. 중국산 도자기를 받아오는 거죠. 그 무게가, 그게 상하차를 하다보면, 아무리 요령이 붙어도 몸이 상하게 돼 있어요.”

 

“그렇겠죠.”

 

“결국 허리를 다쳤어요.”

 

“아, 괜찮으세요?”

 

“(웃음)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사이) 그때 병원을 갔는데, 수술을 하자는 거예요.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수술하면 허리병신 된다. 수술하면 당장 뭐 먹고 살래? 그런 소리를 들은 겁니다. 결국 수술 대신 주사 맞아가며 근근이 버텼어요.”

 

“힘드셨겠어요.”

 

“(웃음) 그때 참 서럽더라구요. 제가 일찌감치 조실부모하고, 주변에 친인척이 없어요. 그 흔한 형제 한 명이 없더라구요. 배운 거도 짧으니, 어디 움직일 수도 없구요. 수중엔 돈 도 없고...”

 

“월급이 적었나 보네요.”

 

“(웃음) 제가 회사 그만 둘 때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이 210만 원이었어요. 갑근세니 뭐니 해서 세금 떼고, 이것저것 떼니 남는 것도 없었어요. 17년을 일했다 하는데, 처음 6년은 회사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서 말 그대로 입에 풀칠 할 정도로만 받았어요.”


“생활하기 힘드셨겠어요.”

 

“그랬죠. 월급만으론 생활 못해요. 게다가 몸도 안 좋고... 그래서 부업을 뛰었죠.”

 

“부업요?”

 

“대리운전이요.”

 

“아”

 

“낮에는 상하차 일을 하고, 저녁이 되면 대리를 뛰었어요. 다행인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전 자식이 없어요. 입 하나 늘면 요즘 세상은 정말 막막하잖아요? 정신없이 뛰었죠.”

 

“돈 많이 버셨겠어요.”

 

“(웃음) 글쎄요. 대리로 돈 벌 순 없어요. 그것도 떼어 가는 게 많아요. 콜비 내야죠. 보험 들어야죠. 여차해서 차 놓치면 택시비 나가죠. 겨우겨우 용돈 벌이죠.”

 

“아 그런데 어떻게 수행기사 업계에 뛰어드신 거예요?”

 

“(웃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대리일을 하면서 형님들을 알게 됐고, 알음알음 지금 제가 근무하는 곳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들어가게 됐나 봐요?”

 

“(웃음) 웬걸요. 한 1년? 1년 더 기다렸나? 여기에 들어오려고 사람들이 줄을 섰거든요. 제가 일하는 곳이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괜찮은, 아니 좋은 곳이에요. 다른 곳은 차를 사서 들어가는 지입(편집부 주 : 운수 회사의 명의로 등록된 개인 소유의 차량)인 곳도 많고, 기사들 대우가 형편없는 곳도 있는데, 여기는 정말 저 같은 사람에게는 천국이죠.”

 


Y기사님이 근무하는 곳은 <뉴 OO 렌트카>란 곳이다. 원래는 OO 렌트카란 상호를 썼는데, 어찌어찌 분사가 됐다고 한다. 업계에서 나름 알아주는 곳이고, 공공기관(그 중에는 청와대와 외교부도 포함돼 있다.)에서 의뢰가 들어와 국빈수행 행사에 동원 돼 수행을 하는 곳이란다.

 

(‘VIP 수행 행사관련 에피소드를 듣다 보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 VIP가 누굴까? 궁금한가? 기다리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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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다려라 



Y기사님의 말로는 이곳은 다 4대 보험을 들어주고,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란다. 이 가족 같은 분위기란 거의 대부분 ‘아는 사람’과 ‘친인척’으로 구성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처음엔 ‘족벌체제’를 생각했는데, Y기사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수긍이 갔다.

 

이 업종 자체가 ‘신용’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특히나 공공기관 쪽 일을 많이 맡다 보니) 일정수준 이상의 ‘신용조회’를 원하는 것 같았다. 즉, 믿을 만한 사람인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다. 또, 그만큼 ‘수익’도 된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웃음)저희 회사 실장님은 형제 3명이 다 여기서 근무합니다. 밑에 동생은 3사관학교 나와서 대위 달고 있었는데, 실장님이 설득해서 데려왔죠. 3사 나와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겠냐고, 잘해봐야 소령인데 그럴 바에야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사회 나와서 기반 닦으라고. 처음엔 나와서 운전이나 하냐는 거냐고 화를 냈다는데, 막상 나와 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지금은 진작 나올 걸 하며 후회하고 있습니다.”

 

“수익이 괜찮은가 봐요?”

 

“(웃음) 예전 회사 다닐 때랑은 비교가 안 되죠. 여기선 제가 일한 만큼 나오니까요. (사이)제가 이 회사 들어오고 나서 쉬어 본 적이 없어요. 작년에 제가 쉰 날이 딱 이틀입니다. 설날하고 추석이에요.”

 

“에? 그럼 풀로 계속 뛴 거예요? 일이 그렇게 많아요?”

 

“아, 휴일 날은 다른 기사들이 배차를 안 받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무조건 받아요. 여긴 일한 만큼 수익으로 연결돼서. 전 당분간, 제 계획으론 한 2년 간은 죽었다 생각하고, 거절하지 않고 다 받으려구요. 제 철칙이 뭔지 아세요? ‘회사원처럼 일하면 회사원처럼만 번다’ 거든요.”

 

“야~ 그거 명언인데요?”

 

“그렇죠? (웃음) 전 정말 이 일이 좋아요. 제 주변의 선배들 보면, 다 핸들로 아들, 딸 다 대학 보내고, 집사고 다 했어요. 그분들 말씀 들어보면 ‘엑셀 밟을 힘 있을 때까지 이 일 하겠다’라고 말하세요. 처음엔 저도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어요. 저도 엑셀 밟을 힘 있을 때까지 이 일 할 생각입니다.”

 

“(웃음) 그러니까 수익이 얼마 정도 되시는 거예요?”

 

“(웃음) 강사님 참 끈질기시네. 어디보자, 제가 한 달에 많이 찍을 땐 500정도 벌어요. 평균 4~5백 생각하시면 됩니다.”

 

“야~ 대단하신데요?”



Y기사님의 경우는 ‘휴일’을 반납하고, 1년 365일 중 363일을 출근해 핸들을 잡는 경우였다. 내가 놀란 건 그 수입이 아니라(이 정도 일을 한다면, 당연히 이 정도는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그 정도로 많은 ‘행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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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강에도 급이 있다. 배차를 해 줄 정도의 명사를 모셔가서 강연을 하는 곳이 이렇게 많다니.(하긴 나 같은 놈도 배차 받아서 움직이니. 한 가지 확실한 건 배차를 해 주는 강연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배차정도가 나올 정도는 대기업 강연 아니면, 어느 정도의 을 생각해야 한다. 강연료 내는 것도 허덕이는 곳이 꽤 많다. 심지어는 강연료가 연체되거나 분할지급 등의 방법으로 이뤄지는 곳도 있다. 심지어 ‘먹튀’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저희 팀장님이 절 참 귀여워라 하시죠. 군소리 없이 휴일 배차도 다 하니까요. 실은 오늘 강사님 아니었으면 저도 좀 곤란했을 겁니다.”

 

“아닙니다.”

 

 

(이 날 실은 춘사관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그렇게 할 경우 기사님이 ‘한탕’을 더 뛸 수 있는 시간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거리에 따라 비용이 다르지만, 기사님 말로는 2번을 뛰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해서 귀가지 장소를 바꾸고, 오후 배차를 받도록 해 드린 것이다. 나야, 어차피 영화사에 잠깐 들러 그쪽 PD의 차를 타고 움직여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Y기사님은 그 작은 ‘배려’에 대해 연신 감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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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그렇게 웃으시니, 복이 계속 찾아오는 거 같아요.”

 

“(너털웃음) 그렇게 보이세요? 정말 그렇네요. 웃으니 복이 오는 거 같네요. 그런데 이렇게 웃은 지 얼마 안 됐어요.”

 

“예?”

 

“저도 참 죽상이었어요. 예전 회사 다닐 때 허리 다치고, 살아보겠다고 밤에 대리 뛰면서 아등바등 하다보니 인생이란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러다가 배한성씨라고 혹시 아세요? 그 왜 성우 하시는...”

 

“알죠! 맥가이버!!”

 

“(웃음) 제가 이 일 처음 시작할 무렵에 그 분을 모시고 운행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 분 말씀 듣고는 ‘아’하고 깨달았죠.”

 

 

흥미진진!! 도대체 어떤 깨달음이었을까?

 

 

“그때 아마 경상남도 어디에 있는 대학교에 강연을 가시는 거예요. 저희가 배차를 받으면, 아시다시피 모시는 분들에게 전화를 드리잖아요? 그때 제가 네비를 찍어보고 연락을 드리니까, 2시간정도 앞당겨서 출발하자는 거예요. 저희야 지방이면, 하루 배차니까 선선히 그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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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성 씨 얘기는 다음에...

 


...미안하다 이렇게 자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밌어 질 거 같은 대목에서 톡톡 잘라야지. Y기사님 이야기는 다음 회차부터 본게임에 올라간다. 배한성 씨와의 만남에 이은 청와대 행사, 외교부에서의 의전, 그리고 대망의 VIP 참석 행사를 수습하기 위한 사투! Y기사님 표현으론 대구촌놈들 때문에 고생한 사연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피식, 앞으로 악마의 편집이란 걸 보여주겠다.








 펜더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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