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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2. 27. 목요일

정우성













목돈사회, 모르핀중독




모르핀:

 

아편의 한 종류로써 마약으로도 분류될 수 있으나, 아편에서 떨어져 나온 또다른 형제인 헤로인과 달리 엄연히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취급되는 진통제의 한 종류이다. 1806년 독일의 F.W.A. 제르튀르너가 아편에서 분리했다. 천연 물질 중에서는 엔돌핀을 제외하면 가장 진통 능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름의 유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잠의 신 모르페우스. 모르핀은 중독성과 부작용을 안겨주는 가장 최후의 진통제이다. 과량 투여하면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동공을 극단적으로 수축시킨다. 가끔 이 모르핀을 처방해 달라며 계속 병원에 찾아오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대개 모르핀 중독자로 그런류의 환자들은 십중팔구로 죽는다. 만약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면 절대로 별일 아닌 일에 모르핀을 투여해서는 안된다.(출처 : 엔하위키 미러)


 

 




18) 스펙스펙 열매 : 역사상 가장 고학력의 시대. 고등학생 10명 중 7명은 대학에 들어가는 인재의 나라. Studying Machine Country. 기계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역학적으로 바쁘지. 애들처럼 블록 쌓기에 열중이다. 스펙쌓기라 불린다. 기계적 단순미. 학점을 쌓고, TOEIC 점수를 쌓고, 여행지수와 연수지수와 봉사지수 따위의 경험스펙도 쌓아 올린다. 대학진학에 몰입하고 또 중독된 것처럼 자기를 뽐낼 수 있는 스펙이라면 무엇이든지 쌓는다. 이 땅의 청년들은 조선의 역사상 가장 빼어난 스펙을 자랑한다. 선생이 지금 학생이라면 그들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스펙쌓기에 중독된 대학생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만일 지금 대학생이라면 저와 같았을 것이다. 채용담당자가 스펙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여러 채널로 말해 봤자 학생들은 여전히 스펙쌓기에 열중한다. 중독은 말린다고 멈춰지는 게 아니다. 집단 심리현상만큼 강한 중독성 사회학적 모르핀도 드물 것이다. 왜 그들은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을까? 사람들은 아주 쉽게 취직과 급여 때문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런 답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 취직이 이유라면 실업률이 우리보다 높은 나라에서는 스펙쌓기가 더욱 불타야 할 터인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채용 문제는 어느 나라에나 있으나 우리처럼 스펙쌓기에 열중인 나라는 드물다. 주위를 둘러 보면 일자리는 여전히 많고 구인광고는 빽빽하다. 그렇다면 감각적으로 두 가지 이유를 느낄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우리에게는 그리 좋지 못하다거나, 다른 나라에서는 살 만한 급여가 우리에게는 살기 힘든 급여라는 점. 요컨대 ‘우리 실정’에 맞는 좋은 일자리는 너무 드물고, 그래서 스펙이라도 쌓아서 그 드문 일자리를 선점하려는 것. 그런 욕망과 몸부림. 그러나 목돈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는 없다. 급여를 모아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목돈 마련은 어렵다. 이 사실을 다 알면서도 어른들은 침묵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야말로 가장 좋은 직장이다.


이 사회가 젊은이를 닦달하는 것은 장차 받을 대가의 액수가 아니다. 그들이 사회에 ‘지불해야 할 돈의 크기라는 점을 생각날 때마다 강조하고 싶다. 목돈사회에서의 경쟁은 마치 군비 경쟁과 같은 것이다. 더 큰 목돈을 벌기 위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과다하게 자원을 동원하여 투자한다. 지금 당장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30, 40이 돼서도 스펙쌓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멈추면 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랑이 찢는 놈, 그러다가 가랑이 찢어진 년, 자식 돕다가 가랑이 찢어질 안타까운 부모. 이것이 스펙스펙열매라는 모르핀 사회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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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하여 일자리를 구하고 독립(?)을 한다. 결혼도 할 것이다. 지난 <목돈사회 3>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목돈게임은 단체전이어서 결혼은 목돈을 마련하는 매우 중요한 행사이다. 어떤 직업인지는 장차 이 중요한 행사에서 마련할 목돈 규모를 가늠한다. 그러므로 스펙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대출은 인생의 필수 절차다. 대출의 양을 늘리는 것은 중대한 과업이다. 또한 빚을 갚는 장기 플랜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스펙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보험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자아실현은 곧 안정성을 의미할 따름이다. 이와 다른 가치를 강조하는 선지자들의 온갖 잠언은 텍스트 안에서나 그럴싸할 뿐이며 현실에서는 예외적이다. 예외는 빛나겠지만 위험하다. 중소기업의 일자리는 우선 회피한다. 소득도 문제이지만 안정적이지 못하다. 청년 창업은 소중한 미래가치를 위협한다. 용기는 고위험성 투기다. 함부로 모험하지 말 것. 공무원, 대기업, 전문직이야말로 제대로 된 일자리다. 입구가 매우 좁다는 게 문제. 그러니까 다시 스펙쌓기.



19) 출신성분이라는 스펙 : 목돈사회에서 청년들의 실존적 고통은 날 것이며 날 서 있다. 스펙쌓기는 청년들 스스로 행하는 모르핀 주사다. 스스로 모르핀을 주사함으로써 진통을 억제한다. 이 사회에서 스펙쌓기는 어쩔 수 없다. 목돈게임이라는 단체전에서 부자 부모를 둔 자식만이 스펙쌓기를 멈추고 자유롭게 새로운 도전을 모색할 환경을 누린다. 출신성분은 가장 좋은 스펙이다. 더욱 빼어난 스펙을 쌓을 수 있다. 가난한 학생은 목돈게임을 단체전으로 임하는 게 아니라 개인전으로 임하고 만다. 이 엄청난 핸디캡을 안고 스스로 대학등록금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까닭에 스펙쌓기는 언감생심이다.

 

심각한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건 의학적 자비심이다. 스펙쌓기를 중단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가난한 부모를 둔 학생들이 좀 더 수월하게 스펙을 쌓을 수 있는 틈을 열어 주는 것도 괜찮겠지. 인간적 자비심이다. 고통이 커서 그렇지 치료는 어렵지 않다. 굳이 강자에게 핸디캡을 주지 않아도 좋다. 약자에게 핸디캡을 주는 우리 사회의 비정함을 먼저 없앨 일이다.



20) 힐링 : 청춘 힐링은 근래 들어 상업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집단 모르핀이다. 청년 세대가 스스로 행하는 모르핀 주사가 스펙쌓기라면 힐링은 어른들이 청년세대에게 주사하는 모르핀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놓여 있다는 사실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힐러들도 안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마음상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이 사회에 존재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때문에 힐러들이 치유해 줄 수는 없다. 마음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때문에 비롯된 고통이라면 병리적인 문제다. 좋은 힐러의 처방이 필요하다. 세상이 개인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말미암아 생긴 고통이라면 사회 문제다. 사회를 디자인해야 한다. 디자인은 연구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실감나게 도드라지게 태평스럽게.

 

그렇지만 후자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고통이 심하면 힐러가 놓아주는 모르핀 주사도 유용하다. 어떤 힐러는 고통을 찬미하면서 위로하고 또 어떤 이는 고통을 비난하며 위로한다. 어떤 힐러는 과잉 긍정성이 도포된 페르소나를 권유하지만 그와 반대로 천 개의 페르소나를 모두 버리라는 악착같은 힐러도 존재한다. 어쨌든 이들은 청년들로 하여금 생각의 변화로 인생에 맞서라고 조언한다. 그러는 동안에 잠시 인생의 고통을 잊을 수는 있겠다. 잊는다는 것, 잠시 떠난다는 것. 이따금 연약함조차 빛날 때가 있다.

 

꿈, 도전, 진정한 나, 노력, 긍정적인 태도, 자기 위로와 같은 따뜻한 덕목은 개인에게 환상을 준다. 환상은 참과 거짓의 경계가 무너진 곳. 복잡하게 따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인간은 환상 영역에서 잠시 편안해진다. 환상은 정신 세계의 진통제이다. 육체적으로도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으로도 인간은 쉬어야 한다. 힐러가 제공하는 환상은 그런 점에서 괜찮다.



21) 인간은 아프면 잠을 잔다 : 힐링에 취했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청년을 함부로 폄훼하지는 말자. 좋은 일자리 찾기가 수월하지 않으며 또한 임금이 적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생이 알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모르지 않는다.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대가를 참지 못할 바도 아니다. 성인이 됐다고 해서 곧 왕후장상처럼 사는 건 아니지. 초짜라면 현실의 어려움과 불편함을 납득하고 감내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하는 게 무엇이 어렵겠는가? 그런 정도의 어려움은 자연치유력의 안쪽에 있다. 그 때문에 힐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안녕할 까닭이 없다는 것 쯤은 적어도 노땅만큼은 안다. 그러나 목돈사회가 주는 고통은 자연치유력의 한계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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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인간의 존재 자체에 목돈을 요구하는 까닭에 이 땅의 청년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을 만한 게 없다. 자기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대체 무엇이 있을까? 인간 욕망의 가장 아랫층으로 내려가야만 겨우 마련할 수 있는 목돈. 가족이든 은행이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비로소 뭔가를 할 수 있는 사회. 목돈이 될 만하면 온갖 사람들이 물밀듯이 규칙없이 몰려든다. 사회는 빈틈이 없다. 스스로를 자유인으로 알고 법적으로도 그렇고 그것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목돈자본주의의 노예. 이 땅의 청년은 안녕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르핀 주사가 필요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래, 그거여도 괜찮다. 치료제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급한 것은 진통제일 뿐이다. 그러면서 중독된다. 인간은 원래 심하게 아프면 잠을 잔다.

 

모르핀 중독을 비난하면서 정신 차리라고 환자를 다그치려는 처방은 의사가 할 일이 아니다. 제정신의 사람이 할 일도 아니다. 모르핀의 약효가 다했을 때 다시 엄습하는 고통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치료를 포기한 의사가 모르핀 중독을 부른다. 청년들의 고통, 치료제는 과연 없는 것일까?

 

 

22) 모르핀 인문학 : 쓰러지지 않고 서 있으려면 맷집을 키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신력을 강화함으로써 견디는 것이다. 정신승리는 가장 빼어난 모르핀이다. 이 나라에서의 인문학의 유행은 학문적인 호황도 상업적인 성황도 인간다움에 대한 존경도 아니다. 뽕삘의 권장. 모르핀 인문학은 현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몽롱하게 만든다. 인문학에 취해 있는 동안에는 누구나 정신승리가 가능하다. 스스로 비평가가 되고 철학자 노릇을 하면 자기가 약자라는 사실을 은폐할 수 있다. 학자연하고 작가연한 사람들은 기껏해야 훈고학적 해설이나 상업적 잡론 혹은 몽롱한 잠언을 늘어놓는다. 한국에서의 인문학은 치료제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모르핀으로 작용한다. 간단한 의문보다 복잡한 해답이 권좌에 오른다. 모르핀 중독은 ‘정신승리’라는 부작용을 부른다.


정신승리론. 오늘날 한국에서 창궐하고 유행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는 이 모르핀 이론은 서구 유럽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인간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비전을 증거할 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과 과학과 종교를 숙연케 하였다.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전선은 비로소 붕괴되었다. 그것은 좌우를 초월하여 애국적이며 모든 데이터를 적분한 다음에 발화자가 원하는 곳으로 수렴하도록 하는 깔대기 구조주의를 제안할 뿐더러, 갈라파고스 파라다이스 프랜차이즈 전복적인 철학에다가, 전문가의 입술과 정의로운 검열을 거친 통계를 머슴 삼는다. 모르핀은 인간으로 실체화하여 걸어다니며 강론을 펼친다. 정치든 언론이든 학자든, 기업인이든 모든 종류의 목소리 큰 전문가이든. 정신승리론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지배담론이며 모르핀 인문학의 정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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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교사들은 의문을 품지 않는다 : 인문학은 인간다움을 묻는 학문이다. 그 본질과 실천적 의미는 질문에 있다. 질문하는 태도, 의심하는 것, 의문을 풍기는 일, 그것이 곧 인문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은 이 시대의 교사들이지. 교사로서의 인문학. 이는 곧 학생으로서의 인문학과 대쌍을 이룬다. 그들은 질문이 아니라 해답을 제시한다. 검색엔진은 데이터베이스에서 키워드에 대응하는 정보를 추출한다. 교사로서의 인문학은 교사가 아닌 개인에게는 쓸모 없는 일이다. 앞선 사상가의 해답은 그가 품은 의문의 자식이다. 의문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해답을 배운들 소용이 없다. 쿼리가 있어야만 데이터베이스가 반응하지 않겠는가.

 

이 사회의 악취와 사악함은 해답을 몰라서가 아니다. 의문을 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힘이 약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목돈을 요구하는가? 어떤 이는 마치 인문학이 창의성의 보고인 것처럼 말한다. 그렇다면 창의적인 질문이랄까. 어느 먼 시공간을 넘나들며 남이 했던 해설을 점잖게 다시 해설하기보다는, 어째서 우리는 맨몸의 젊은이들에게 지참금을 요구하는가?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통증이 너무 심하면 진통제가 필요하지 않겠어? 맞고 죽더라도 모르핀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거야. 내 사랑 모르핀, 아픈 사람은 잠을 자지. 스펙쌓기, 힐링, 인문학 등이 뭐 그런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

 

둘째, 오늘날 유행하는 스펙쌓기와 청춘 힐링에 대해서 꼰대처럼 점잖게 비꼬지 마세.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너님이 뭘 아팠는데? 라고 까칠하게 참견할 수는 있겠소. 그치만 선생, ‘아프니까청춘뽕’을 맞고 잠시라도 쉬는 청춘이라네.

 

셋째, 청년 세대가 스스로 행하는 모르핀 주사가 스펙쌓기라면 힐링은 어른들이 청년세대에게 주사하는 모르핀. 상업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집단 모르핀.

 

넷째,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어떻게 인문학을 비난하겠니. 인문학을 읽으면 더 돈을 벌 수 있다고 떠벌리는 세상에 말이지. 어라, 인문학이 대학을 졸업하여 시장에 나왔네. 모르핀 주사를 들고 시장에 나오신 인문학을 향해 경배. OTL 그러나 인문학의 본질은 질문에 있잖니. 세상에는 참 잘나고 똑똑한 선생들이 많은데 말이야. 어째서 이 목돈사회의 비정함과 사악함에 대해서는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거지? 난 그게 참 의문이야. 왜 젊고 약한 사람에게 그이의 능력을 초월하고도 남을 목돈을 요구하냐고, Why? 인간에게 존재의 대가를 요구하냐고 말이지.

 

다섯째, 우리 한번 상상해 보자. 이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존재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상상,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목돈을 요구하지 않는 상상을 말이지. 너님을 위한 상상.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목돈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는 상상. 저마다 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싸돌아다니는 상상. 스펙은 의무가 아니라 재미가 되고,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진취성을 보며 힐링을 하고, 정신승리론이 비로소 권력을 내려놓는 세상에 대해 말이지. 이상사회에 대한 Imagine이 아니야. 그저 제발 보통 사회가 되잔 말이지.

 

 

목돈사회 5와 목돈사회 6에서는 드디어 첫 번째 목돈 진지에 대해 공성전을 벌이려고 해. 한편으로는 스펙을 쌓고 다른 한편으로는 힐링을 하며 시간을 오물처럼 투척하고 있는 우리 슬픈 대학생을 위하여, 대학등록금에 대해서 말이지.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돼. 이제 꼰대같은 생각과는 이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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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주




본지에 육아칼럼과 특허에 관한 통찰력있는 기사를 꾸준히 써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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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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