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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추천20 비추천0

2014. 02. 28. 금요일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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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상한 시사 프로그램 연출 노릇을 하던 무렵, 아주 가끔씩 죽음을 맞닥뜨리곤 했다. 직접 송장을 치운 건 아니면서도 실제로 손끝에서 싸늘한 한기와 시커먼 절망이 느껴지던 순간이있었다. 만나 본 이 없는 이들의 유서를 읽을 때였다. 방송을 하건 하지 못하건 유서 같은 게 있다면 당연히 읽어봐야 했으니까.

 

 

그 유서 서너 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살을 미화할 수야 없지만 그들이 결코 나약해서 죽어간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그걸 갚으려 했다는 것.

 

 

그 중에 기억나는 한 구절은 이것이다. “00 선생님 (아이들의 학원 선생님) 께 00 학원비만큼은 드리고 가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학원 갈 시간만 되면 신나서 가는 걸 보고 정말 감사했고 그때마다 학원비만큼은 꼭 드리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렇지 못하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이의 학원비를 내지 못했지만 학원 선생님이 내색하지 않고 아이를 받아 줬고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어느 아버지의 유서였다. 아마도 학원 선생님이 이 유서를 읽었더라면 세상에 그게 뭐 세상 떠나면서까지 미안할 일이냐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행여 학원비가 그 갸날픈 목숨줄에 돌이 되었을까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죽어가는 사람은 크건 작건 자신의 뒤에 남게 될, 갚지 못한 빚에 마음 아파하고, 또 남은 사람은 행여 그 빚이 마음의 짐이 되었을까 애달파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아마도 두 딸과 함께 예순 평생을 마감한 어느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먼저 남편을 보내고 젊은 나이에 고혈압과 당뇨로 시달리던 두 딸들을 수발하던 어머니가 마지막 흔적을 남긴 사람은 집주인이었다.

 

 

그녀는 집주인에게 현금 70만원과 유서를 남겼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짧은 글에서 나는 느낀다. 집주인이 모질고 성마른 사람이었다면, 그 돈 70만원 안낸다고 눈치 주고 타박 주고 네 사정 알 바 아닌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이런 마지막 인사가 나오지 못한다. 오히려 주인 아주머니는 그 돈이 아쉬워도 차마 질러 말하지 못하고 가끔은 굳게 맘 먹고 문 두드렸다가도 딸들 얼굴 보고는 에휴 날이 왜 이리 추워 불 좀 때고 살어 하면서 딴소리하며 돌아서는 분이었을 것이고 돌아간 어머니는 주인의 뒤를 바라보며 어떻게든 공과금만이라도 마련해 보리라 어금니 깨물던 세입자였을 것이다. 그 돈이라도 갚고 세상을 떠야 홀가분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주인 아주머니 죄송하다는 문구 나오지 못한다. 두 번 죽어도 나오지 못한다. 그게 사람의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가고 그 죽음 앞에서 아파한다. 행여 그 죽음에 책임이 있을까 마음을 졸인다. 혹시 내가 모진 말 한 마디 한 것 없을까, 내가 실수라도 한 것은 없을까, 이미 부러져 나간 의지의 등뼈에 혹시 내가 망치질을 한 건 없을까 돌아보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에게 명복을 빌고 그 앞에서 넋을 잃을 착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러나 그 이름과 얼굴 모를 영정에 마음으로 두 번 절하고 돌아서는 마음은 착잡하다. 우리 세상에 그런 사람의 마음들은 과연 어느 정도로 보존되고 남아나고 있는가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헌법에 보장된 단체 행동권을 행사한 이유로, 그것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징역살이도 모자라 수십억 수백억의 ‘손배가압류’라는 올가미를 건 사람들이 눈앞에 도처에 존재한다. 아들에게 약속한 운동화 하나를 사 주지 못한 채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도, "동료들이 내 곁에 오지도 않는다"며 손배가압류 없애 달라고 몸에 불을 당긴 사람도 있다. 나오는 수입 족족 압수되고 온 세간에 붉은 딱지를 붙인 사람들이 있고, 어떻게 할 줄 모르는 좌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미안해하는 사람들은 왜 이리 적은가.

 

 

그러게 왜 불법을 저지르냐는 윤똑똑이들이 판을 치고 네가 목을 매달든 새끼들을 굶기든 따박따박 통장에서 빼내가면서도 누릴 것 다 누리고 할 것 다 하고 그러면서도 죄책감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왜 이리 즐비한가.

 

 

돈 70만원에 고마워하며 미안해하며 목숨을 끊은 이들이 있고 행여 그 돈 때문에 그들이 앞서 간 것이 아닌가 가책을 받아 가슴을 움켜쥘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그럼 저 돈의 수백 배를 태연하게 사람의 목에 칼처럼 씌우고 죽으려면 ,죽어라 살려면, 갚아라, 배를 악착같이 쥐어짜내는 이들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람다운 사람들은 스러져가고 상처받는데 사람같지 않은 사람들은 배불러 가고 그 배를 북삼아 두들기는 세상이라면 과연 우리 사는 세상은 사람의 세상이라 할 만할까. 참담하고 슬프다........ 세상에 태어나 모진 꿈만 꾸다가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 뿐 아니라 목숨까지 잘라버린 세 모녀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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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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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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