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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04. 화요일

편집부 홀짝







 











파인만의 탈권위 관습


관습: 어떤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 그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나 풍습



(上)편에 이어서 파인만의 탈권위를 이야기해보자. 리처드 파인만은 관습의 권위에서도 자유로웠다. 필자는 상편에서 권위를 어떤 것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합의라 정의한 바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라 생각해보면 사회 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질서나 풍습을 뜻하는 관습에도 당연히권위가 실려있다. 오랜 시간 지켜져 온 행동규약이나 질서는 관습이 되고 이러한 관습이 권위를 얻으면서 그 일부가 제도로 고착되거나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리로 학습된다. 역시나 파인만은 관습의 권위에도 순순히 굴복하지 않는다.


파인만이 고민 끝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로 결정했을 때의 일이다. 이번에는 수상 기념 리셉션이 그를 귀찮게 했다. 리셉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웨덴 영사는 파인만에게 리셉션에 초대할 주빈의 명단을 전달했는데, 명단에 기록된 이름의 면면이 파인만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온갖 사회 각계의 거물들이 빼곡하게 나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습게도 그들 중 파인만과 실질적인 친분이 있는 인사는 거의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초대된 인사들이 리셉션에 참석할 가능성이 큰 것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그저 격식에 의한 초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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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허울뿐인 관습이야말로 파인만이 가장 몸서리치게 싫어하는 것이었다. 화가 난 파인만은 스웨덴 영사가 내민 그대로 주빈을 초대하기로 하는 대신 한 가지를 조건을 덧붙였다. 파인만 자신도 리셉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셉션은 결국 주빈도 없고 주인공도 없는 자리가 되었다.


나는 이 기간 동안 심리적인 고통을 받고 있었다. 알다시피, 나는 아버지에게 권위와 겉치레에 반대하도록 배웠다.(아버지는 제복 장사를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는 제복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잘 알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나는 평생 동안 권위를 조롱하며 살아왔고, 이러한 생각은 너무나 뿌리가 깊어서 어떤 긴장을 가지고 스웨덴 국왕을 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도 이것이 유치하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렇게 자랐고, 그것이 문제였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리차드 파인만, 김희봉 옮김


파인만이 직접 말하기도 한 권위에 대한 조롱은 때로는 지극히 의도적이었고, 때로는 파인만이 도저히 그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립대학의 강의을 맡기로 했을 때, 파인만이 담당자에게 정확이 열세 번까지만 서명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은 정부 기관 특유의 복잡한 일처리 방식에 대한 조롱이자 반항이었다. –흔쾌히 약속 해준 담당 직원은 이후 서명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당황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강의비를 지급하기 전에 약속한 서명 횟수를 넘기게 되자 진땀을 뺐다. 파인만이 애초에 약속한 서명 횟수 이상을 절대 해주지 않겠다고 버틴 것이다. 이미 강의를 마친 파인만에게 돈을 주지 않을 수도, 그렇다고 서명 없이 예산을 집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밖에도 파인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옳다고 믿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반항으로 많은 사건과 일화를 남겼다. 소련이 스푸트니크 호를 쏘아 올리자 우주 경쟁에서 뒤쳐진 데 대한 다급함을 느낀 미국은 자국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교육 수준을 신장시키기 위해 새로운 교과서를 선정하기로 한다. 파인만은 캘리포니아 주의 교재 선정 위원회에서 자문 역할을 맡았는데, 파인만의 집에 배달된 평가 대상 교재의 무게만 무려 130kg이었다. 파인만은 지하실에 처박혀 그 책들을 모두 검토했고 대부분의 책들이 모두 쓸모 없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러나 파인만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자문 위원들이 모여 평가를 하는 자리에서 파인만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자신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자문 위원들이 교재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사실과 대부분 기껏 책의 표지만 훑어 보고는 대충 점수를 매겼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 그다지 세심한 관찰이나 분석이 필요하지도 않았던 것이, 평가 리스트에는 기록되어 있는 일부 교재가 평가 위원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파인만은 오지 않은 책을 평가할 수 없었기에 그 부분을 공란으로 해놓고 책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모임에서 말했다. 그러나 나머지 평가 위원들은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책에 대한 평가를 버젓이 기록해놓았던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과 그에 따르는 결과는 자명하다. 온갖 좋지 않은 관습-이쯤이면 폐습이라 불러도 좋을-과 권위에 매몰된 행동들이 빚어낸 결과. 국가 기관의 관료들은 그저 시일 내에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졸속으로 후보 교재를 선정하여 평가 위원들에게 돌렸고, 평가 위원들은 짧은 시간 내에 그 많은 교재를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저 자신들이 교과서를 선정하는 것에 역할을 했다는 권위를 얻기 위해 제대로 항의를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대충 교재 평가를 때웠으며, 아마도 그 결과로 선정된 교과서는 나름 전문가들의 평가를 받아 검증된 것이라는 허울 뿐인 권위를 얻고서 학생들에게 배포되었을 것이다. 파인만은 이 모든 빈 껍데기 권위들, 시작부터 끝까지 서로의 이해 관계를 위해 본질적 가치 따위는 싸그리 무시한 채 진행하는 거짓놀음에 구역질이 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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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혹은 별난 사람


지금까지 소개한, 그리고 미처 소개하지 못한 파인만의 일화들은 그를 괴짜, 유별난 사람, 기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별나다고 생각했던 파인만의 행동들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예상에서 번번히 빗나가고 그들을 당황스럽게까지 만들었던 파인만의 생각과 행동이 과연 잘못된 것이었을까? 오히려 파인만이 보여준 이러한 모습들은 대부분 합리적이었고 멀리 내다보았을 때 보다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몹시 낯설고 의아한 것이었을 뿐이다. 권위를 가진 것들의 속성이 다수의 인정과 합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반응이겠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역설적으로 권위를 획득한 것들이 항상 옳지만은 않으며, 그것이 항상 진실에 가깝지는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한 때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이 학문적 진리였고 권위였다. 그것에 반하는 주장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왕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며 귀족과 천민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로 받아 들여졌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비근한 사례들은 많다.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아주 사소한 것들조차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은가.


파인만과 양자역학


파인만이 학문적으로 가장 많은 기여를 한 분야는 양자역학이다. 흥미로운 점은 파인만의 성격과 양자역학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양자역학은 비전문가가 이해하기에는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이다. 오죽하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파인만에게 취재진이 자신의 업적을 소개 해달라고 하자 그가 제가 한 일이 여기서 잠깐 동안에 알려드릴 정도라면, 노벨상을 받을 가친 없었겠죠.”라고 답했을까. 필자의 이해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고 자문을 구하는 등 나름의 노력으로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한 바를 소개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은 이전까지 과학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뒤엎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우주와 자연 현상의 원리를 규격화하려고 노력해왔다. 때문에 어떤 현상이든지 그것을 규격화하려는 시도가 성공하려면 어떤 상황과 조건에서라도 그것을 설명하는 법칙에 의거한 예측 가능한 결과가 도출되어야 했다. 예측 가능함이야말로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의하면 그것은 애초에 성공할 수 없는 시도였다. 같은 상황과 조건에서도 반드시같은 결과가 도출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심지어 실험에서 전자의 움직임은 그것을 관찰하는 행위에도 영향을 받아 결과를 달리하며, 관찰이라는 행위를 배제하더라도 늘 같은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일이 반드시 발생하지 않게 되는 확률을 0이라 하고, 반드시 발생하는 확률을 1이라 표현한다면 이전까지의 과학은 1이 되게 하는 법칙을 찾아야 하는 학문이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 의하면 100%의 확률은 없다. 학문의 근원적 목적이 진리 탐구에 있다면, 양자역학은 이들에게 진리의 정의 자체를 다시 설정하도록 강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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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설명해놓았지만 역시나 어렵다.


많은 학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천재 물리학자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아인슈타인조차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양자역학을 거부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양자역학으로 인하여 물리학(혹은 그 이상)의 세계가 가진 지평은 훨씬 넓어졌다. 100% 확률의 가능성은 없어졌지만 0 1사이에 존재하는 확률, 1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1에 가장 가까운 확률을 계산해내기 위한 시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인만의 천재성은 이러한 시도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다.

필자가 감히 양자역학과 파인만이 잘 어울린다고 밝힌 이유는 양자역학이 그 자체로 기존 과학의 패러다임을 뒤엎었다는 것과 그 개념이 절대적(반드시 100%의 확률로 일어나는) 진리의 허구성을 일깨웠다는 점 때문이다. 양자역학의 이러한 면은 파인만이 가진 전복적 사고와 이를 바탕으로 추구한 남들과는 다른 독창적인 접근 방법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파인만이 학문 연구 이외의 생활에서도 권위를 조롱하고 관습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는 점은 모든 현상에 100%의 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양자역학의 개념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겠다. 파인만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가치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으니까.


알린, 파인만의 절대자


파인만에게 절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듯이 절대자또한 파인만과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파인만은 유대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파인만은 비종교적인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신적 존재 즉, 절대자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인만의 삶에는 단 한 명의 절대자가 실재했다. 알린 그린바움(Arline Greenbaum). 리처드 파인만의 첫사랑이자 첫 번째 아내다.


파인만이 알린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알린은 파인만과 가까웠을 뿐 아니라 파인만이 MIT에 다니게 되어 기숙 생활을 했을 때에도 파인만의 집에 가서 파인만의 동생 존에게 피아노를 가르쳤을 정도로 가족들과도 친숙했다. 파인만은 알린을 거의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했으며-파인만이 운명을 운운하다니!- 알린과 파인만은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각자 재능을 갖춘 분야에 있어서는 완전히 상극이었다.


알린은 문학과 미술, 음악 등의 분야에 다재다능한 면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러한 분야는 당시 파인만이 모두 질색하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파인만은 알린이 싫지 않았다. 이후 알린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도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미술과 음악에 흥미도 없고 재주도 없었던 파인만은 봉고(몸통 한쪽에 가죽을 씌운 북과 비슷한 형태의 타악기) 연주를 즐기고, 미술에도 재미를 붙여 개인 전시회-화가로서의 예명을 따로 썼다-를 여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변화의 근원에 알린의 영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다. 파인만에게 알린은 반려자 이상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알린은 파인만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였다. 수줍음 많고 사교성이 별로 없었던 파인만이 대학에서 자신있게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던 것도 알린의 도움이었으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심 밖의 분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파인만의 사고를 확장시켜준 것도 알린의 영향이 컸다. 음악과 미술 이외에도 파인만은 철학을 거의 경멸하다시피 무시하는 태도를 줄곧 보였는데 철학에 대한 논쟁마저도 그 상대가 알린이라면 파인만에게는 즐거움이었다.


알린이 파인만에게 지적 자극만 되었던 것은 아니다. 파인만은 좀처럼 남에게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알린 만은 예외였다.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연구에 대한 것까지 파인만은 알린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다. 지적으로나 내면적으로 파인만은 알린을 대할 때 만큼은 주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그 파인만이 아니었다. 서로가 함께할 때 비로소 완전해지는 관계. 파이만에게 알린은 절대자, 만약 파인만과 관계된 사람들 중 단 한 사람만 제외하고 모두 그의 곁을 떠나야만 한다면 파인만 곁에 남아야 하는 한 사람은 반드시 알린이어야 했다.


알린의 죽음


알린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파인만이 프린스턴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무렵부터였다. 그때만해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학의 수준이 낮았던 터라 알린의 병명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해 의사들은 갈팡질팡을 거듭했다. 파인만은 의학 또한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분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못미더운 의사들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과 그것을 연구하는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무기력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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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의 알린과 파인만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한 알린의 병세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다. 그리고 점점 악화되는 정도가 심해졌다. 어쩌면 알린이 이대로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파인만은 알린과 약혼을 하고, 결혼도 한다. 알린의 건강 때문에 파인만의 어머니는 이러한 파인만의 결정을 모질게 반대하기도 했지만 그의 확고한 결심을 꺾지는 못했다. 파인만은 차라리 어머니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병세가 악화되고 있던 알린의 병명이 폐결핵으로 밝혀졌지만, 뚜렷한 치료 방법은 없었다. 그러한 알린에게 그녀가 회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직접 알려준 것은 파인만이었다. 알린의 가족들은 파인만을 말렸지만 이미 한 번 알린의 병세를 놓고 거짓을 말했다가 알린에게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후에야 겨우 용서를 받은 파인만으로서는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파인만은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로스앨러모스로 떠난다.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오펜하이머의 도움으로 알린은 로스앨러모스 근방의 앨버커키 요양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근방이라고 해봐야 160km가 넘는 거리였지만 파인만은 평일 동안 연구소에서 연구에 몰두하다가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동료의 차를 빌려 타거나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알린의 병실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서로 꼬박꼬박 편지를 주고 받았다. 전쟁이 서서히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파인만 부부의 안타까운 시간도 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파인만과 알린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결혼 생활을 즐겼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만큼 이들이 주고 받는 편지 또한 반드시 검열을 거쳐야만 했는데, 알린과 파인만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에 둘만 알아볼 수 있는 암호를 섞거나 때로는 상대방도 알지 못하는 암호를 섞어가면서 검열관을 골려 먹었다. 파인만이야 워낙 그런 방면으로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겠다. 하지만 알린 또한 파인만에게 뒤지지 않는 기지를 가지고 있었다. 때로는 알린이 파인만보다도 기가 막힌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기력을 잃어가는 알린을 바라보는 파인만은 괴로웠다. 그러나 로스앨러모스의 동료들 앞에서는 언제나 태평한 모습이었다. 파인만을 자신의 괴로움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파인만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역시나 알린 뿐이었다.


1941년에 결혼한 파인만 부부가 처음으로 육체적 관계를 가진 것은 1945년이 되어서였다. 감염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기 때문에 결혼식 당일에도 키스조차 나누지 못했던 파인만 부부였다.


이 잔인한 해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같이 자게 되었다. 서로 아주 신중하게 문제들을 논해도 결론은 없었다. 리처드는 자기만 좋을까봐 두려웠고, 아니더라도 알린에게 해가 될까봐 두려웠고, 아니면 그냥 두려웠다. 알린은 낭만적으로 사랑하는 느낌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히 붙들었다.

 -『천재』 제임스 글릭, 황혁기 옮김


그리고 그 해, 알린 파인만은 세상을 떠난다. 6 16.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원폭 실험이 진행되기 정확히 한 달 전의 일이었다. 파인만은 알린을 떠나보냈고, 다시 로스앨러모스의 연구소로 돌아왔다.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파인만은 이렇게 말한다.


아내는 죽었어. , 이제 일을 시작하지.”


알린이 세상을 떠난 뒤, 파인만이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것은 넉 달 후 길가의 어느 가게에서 예쁜 드레스를 보았을 때였다고 한다.


바람둥이 파인만


로스앨러모스를 떠나기 전에도 아미 다른 여자들을, 특히 멋진 여자를 골라서 사귀기 시작했는데, 가까운 동료들 몇에게는 이런 행동이 면도날로 비통함을 베어내려는 듯한 광적인 몸부림으로 보였다.

-『천재』 제임스 글릭, 황혁기 옮김


내가 그때 말했잖아. 이렇게도 저렇게도 당신을 진짜 많이 사랑하니까 정말이지 필요한 거 없다고. 이제는 확실히 더욱더 그런데, 당신이 지금 나한테 아무것도 못해주더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에 다른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당신이 그렇게 있어주었으면 해. 당신은 죽었지만, 살아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더 나으니까. … 하지만 자기야, 당신도 나도 이 상황에서는 방법이 없어. 난 아주 괜찮은 여자들까지 많은 여자를 만났고 계속 혼자 지내기도 싫으니, 이해가 안 가는 노릇이야. 하기야 두세 번 만나면 다들 거기서 거기 같아. 나한테는 당신만 남지. 당신은 죽지 않았어.

-알린이 세상을 떠난 지 일 년 반쯤 지난 후에 파인만이 알린에게 쓴 편지


알린이 죽고 난 후의 파인만은, 이전까지 알린과의 생활에서 보여주었던 지고지순한 면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로 온갖 여성과의 스캔들을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파인만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서 이성을 꼬시는 방법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했는지를 스스로 가감 없이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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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이 펼친 여성 편력의 스토리는 화려하기 그지 없다. 라스베이거스의 쇼걸에서부터 흔한 바(Bar)의 여자 손님과의 하룻밤, 남편이 있는 여자와의 불륜-심지어 대학원생 제자의 아내와도- 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염문을 뿌렸다. 학부생, 대학원생, 윤락가의 여자들까지. 그를 망설이게 하는 대상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한 여자를 사귀고 있다가도 다른 여자를 쫓아다니기 위해 급작스럽게 이별을 선언하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파인만의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실망하는 일도 많았다. 파인만이 동료들에게 말한 것은 '성도덕 앞에서는 모든 것이 공평하다는 한 가지 주의를 따르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파인만은 숱하게 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 상대에게 '사랑'을 말하기도 했다. 비록 4년 만에 끝을 보았지만 두 번째 결혼을 하기도 했고, 1960년에 결혼한 세 번째 부인 궤네스 하워스와는 슬하에 자녀를 두고 죽는 날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파인만이 그렇게나 많은 여자들과 교제하면서,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 상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파인만이 그 어떤 여자에게도 알린을 대하듯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파인만의 평전을 쓴 제임스 글릭은 이렇게 말한다.


"파인만은 알린에게서 받았던 느낌을 손이 닿지 않는 선반 위로 이미 치워둔 듯했다."


파인만의 찌질함. 혹은 찌질함의 가능성은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알린, 대체 불가능한 존재


파인만이 단순히 여자를 밝히고 바람기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찌질한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남편이 있는 여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두고, 그를 사회적 윤리관 아래 성적으로 부도덕했다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파인만 다운 행동일지 모른다. 파인만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가 가진 권위보다 남녀가 서로를 원하는 마음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필자가 파인만에게 갖는 의문은 다른 곳에 있다.


파인만에게 있어 알린은 정녕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었을까? 그렇기에 파인만은 알린이 떠난 후 그 누구에게도 알린에게처럼 마음을 주지 않았던 것일까? 만약 이 의문의 대답이 'Yes'라면 그 근거는 여러 측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제임스 글릭의 말도 그러한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파인만은 자신의 자서전이라 할 수 있는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에서 이성을 꼬셨던 경험을 말할 정도로 자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대중에게 터 놓았지만 유독 알린에 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다. 클럽에서 처음 만난 여자에게 대뜸 '나랑 잘래요' 했다는 이야기는 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그렇게나 중요한 사람이었던 알린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린이 죽은 직후 로스앨러모스로 돌아와 동료들에게 '아내는 죽었어. 자, 이제 일을 시작하지'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던 때의 파인만이 시간이 꽤나 흘러서도 알린에 대한 여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러한 추정이 만약 사실이라면, 파인만은 알린에게만 보여주었던 자신의 모습을 평생 동안 상당 부분 접어 놓은 채로 살았다는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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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이 아닐 수 없다. 권위에 속박 당하지 않고, 남들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늘 찾아내고자 했던 파인만의 모습과 알린을 자신의 인생에 절대적 위치에 올려 놓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든 파인만의 모습은 그다지 어울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눈에는 파인만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가 '알린의 대체자를 찾기 위한 여정'으로 보이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는 알린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에게 내어 놓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야말로 파인만에게는 일종의 금기가 아니었던가.


물론 이러한 파인만의 모습이 이 글을 읽는 일부 독자의 눈에는 오히려 훨씬 인간적으로 비춰졌을 수 있겠다. 다른 모든 면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한 남자가 일생 동안 단 한 번 만났던 완전한 사랑 앞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 순애보가 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파인만에게 남아있는 찌질함의 가능성은 하나다.


바람둥이의 자기 합리화


필자는 알린에 대한 파인만의 순정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죽은 알린에게 그가 쓴 편지의 진정성 또한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파인만이 알린이 죽은 후 보였던 바람기 또한 '진짜' 파인만이다. 파인만이 애초에 여자를 무척이나 밝히는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린에 대한 사랑이나 때이른 그녀의 죽음과는 상관 없이 파인만의 바람기는 언제든 표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뒤따르는 의문. 


'알린이 병세를 회복하고 파인만과 오래도록 함께 살았다면, 파인만은 바람둥이가 되지 않았을까?'


의문 자체가 실재하지 않았던,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니만큼 어떤 대답도 무의미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사실 만을 놓고 판단한다면 '파인만이 자신의 바람기를 알린에 대한 순정으로 합리화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추론은 충분히 의미있는 것이 된다. 그러한 합리화가 죽은 알린에 대한 죄책감에 기인한 것이든 -'미안해 알린! 하지만 나에게는 당신 만이 진짜야!'- 그저 단순히 자신의 여성 편력 자체를 합리화 하기 위한 것이든 -'내가 온갖 여자들을 꼬시고, 이 여자 저 여자 안 가리고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건 모두 알린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이야!'- 결론은 하나다. 파인만의 바람기는 그 자체로는 찌질한 것이 아니지만, 만약 자신의 여성 편력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합리화하려 했다면 그것은 충분히 찌질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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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합리화, 찌질함의 기폭제


파인만은 과연 그렇게 찌질한 인물이었을까? 앞서 말한 것은 어디까지나 추론이었을 뿐, 실제 파인만의 속내가 어떠했을 지는 알기 어렵다. 만약 겉으로 드러난 파인만의 찌질함을 기대했던 분들이 있다면 양해를 구한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비록 추론일 뿐이지만 이러한 류의 찌질함 또한 우리가 살면서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대게 명분이 그럴듯 할수록, 우리는 그것을 기반으로 더욱 가열찬 찌질함을 전개하게 된다. 행위 자체는 별로 찌질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굳이 명분으로 합리화 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기 합리화, 그럴듯한 명분은 망설임을 지우기도 한다. 망설임은 때로는 우리 행동을 적절하게 제어한다. 그러나 명분이 망설임을 지웠을 때, 우리가 스스로 '나는 지금 충분히 그럴만 한 상황이야'라고 합리화하며 끈을 놓아버렸을 때, 그 때야말로 모든 찌질한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때가 아닐까. 


매력덩어리 파인만 씨


리처드 파인만은 확실히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외모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와 그의 성격, 말투 등을 종합해봤을 때, 파인만은 이성 앞에 선 남자로서도, 인간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었다. 그가 숱한 염문을 뿌릴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고, 그의 문란한 사생활과 튀는 행동에도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그의 인간적 매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파인만이 대중 앞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6년에 일어난 챌린저호 공중 폭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에 참여한 때였다. 당시 파인만은 이미 말기 암 환자였고, 그에게 남은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음을 스스로 느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리고 파인만은 위원회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친다. 내부 관계자로부터 힌트를 얻은 파인만은 챌린저 호의 폭발 원인을 TV 카메라 앞에서 낱낱이 밝혀내고, 사고 이면에 NASA와 정부 기관 사이에 뿌리 깊은 폐습이 존재했음을 드러냈다. 조직 내부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는 것까지는 파인만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니었음에도 파인만은 열정적으로 각 기관의 관련자들을 조사하면서 실상을 파헤쳤다. 생명은 다해가고 있었지만 그는 죽기 직전까지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1988년 2월 15일, 파인만은 70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두 번 죽긴 정말 싫을 거야. 아주 지겹거든." 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찌질한 위인전, 리처드 파인만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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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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