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3. 05. 수요일
독투불패 주관적지향
궁극의 국물, 닭 발 육수
아무도 안 볼 때 슬쩍 신입 신고 한 번 할게.
쫄리는 걸...
2년 좀 더 됐지 아마.
먹고 살기가 형아들처럼 빡빡해서 딱히 시간 내고 돈 내서 운동하기는 어려운데, 자꾸 허벅지 살이 배때기로 올라가 붙으니까 슬슬 화딱지가 나더라고.
우리 집 근처에 지역구끼리 경계를 만드느라고 차 다닐 일이 없는 데다가 500미터 쯤 딱 뛰기 좋게 도로를 깔아 놓은 데가 있어서, 조깅 한번 해보겠다고 시간 나는 대로 아스팔트 위를 뛰었지. 내가 고딩 때는 산 넘고 물 건너 50분 거리를 깽깽발로 등하교 했으니까 다리 두 개는 자신 있었거든. 나머지 다리는 어떠냐고? 그딴 거 물어보는 흉악한 짓들 말어. 신경 끊은 지 한참 됐어. 안 쓰는 건 안 보는 게 편해. 그럼!
조깅. 뭐 열심히 한 것도 아냐. 일주일에 너댓 번 3~5km씩 한 달쯤 뛰었을까. 무릎이 좀 아픈 거야. 바로 그만뒀지. 동네 정형외과 건성으로 들락날락 물리치료도 받고 했는데 영 나아지질 않더라고. 그러더니 작년 여름에는 출퇴근 지하철에서 꼴랑 6정거장 서있기도 거시기하길래 청담동 어디 있는 관절전문병원까지 갔었어. 들어 갈 때는 뭘 좀 건지겠거니 하는 맘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반 기어 나왔다. 쌍욕을 하믄서. 카드도 90정도 긁었지 아마.
MRI 찍고, 피 잔뜩 뽑아서 그걸로 뭘 또 만들더라고. 한참 기다리니까 무릎에다 대고 망치질을 해대는데 죽을 맛이더만. 간호사 처자 웃기는 왜 웃는지 확 그냥 막 그냥 때려 주고 싶은데, 의사 양반 입장하시더니 특대 어마무시한 주사기를 무릎에 그냥 쑤욱! 흐미~ 뭐 양말이라도 물고 있었어야 했나 봐. 엄청 아프더라고. 한참 혼을 다 빼 놓고 “다 됐어요. 가셔도 돼요.” 하는데 이건 뭐 걸을 수가 있어야 가지. 하여간 가지고 간 장우산 없었으면 병원에서 나오지도 못 할 뻔했어. 회사 동료 불러서 겨우 지하철 타고, 내려서는 마눌님 차 갖고 나오라고 해서 집엘 왔었지. 담 날 결근했고. 원 상태로 돌아 오는데 한 3주는 걸렸을 걸. 몇 번 더 와서 그 짓을 또 해야 한다고는 했는데 안 갔어. 갔으면 지금 쯤 나 장애수첩 받았을지도 몰라.
암튼 그 이후로 무릎에 좋다는 거는 이것 저것 해보고는 있는데 그냥 그러네. 아파 죽겠단 정도는 아니니까 대충 지내고는 있는데 좀 무리를 했다 싶으면 여지 없이 뻐근하고 뜨끔뜨끔 하고 벌겋게 달아 오르고 붓고 그러네. 근데 신기한 건 2시간 걸을 때는 아프지 않은데 5분만 한 군데 서 있으면 힘들어. 이거 아는 형들 있으면 정보 좀 줘바바.
성난 무릎
아픈 사연은 여기까지 할게.
엄마한테 전화가 왔어. 엄나무 달여 놨으니까 가져 가래. 지난 번 설 때 차례 지내고 산소 갈 때 무리에서 슬쩍 빠져서 안 갔었는데 그걸 아시고 얘가 무릎이 많이 아픈갑다 생각이 드셨다는거지. 사실 세 집 돌면서 차례 지내고 동네 야산으로 한 시간 정도 돌아야 하니까 좀 부담이 되기도 했던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성묘 면제권 가진 최고 연장자 울 아부지랑 다이다이 먹고 성묘를 빠진 건 지금 생각하면 참 잘못한 거 같아. 반성할게.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40대 때 거의 걷지도 못할 만큼 무릎이 안 좋았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산에 가서 엄나무를 한 지게씩 해다가 끓여 주시곤 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엄나무 달인 물이랑 그 물로 끓인 식혜를 내주시는데, 나는 지게 작대기 같았던 외할아버지가 지게를 한 짐 하시고 산을 내려오는 시츄에이션이 좀 안습이었을 거란 생각 하느라고 감사 뽀뽀도 제대로 못해드리고 바리바리 집으로 실어 왔어. 어쨋든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보다 20여 년은 더 사셨고, 엄나무 큰지게가 무거우셨던 건지 다른 무거운 게 있었던 건지 외할아버지는 꽤 일찍 돌아 가셨어. 월롱다리 밑에서 통발에 된장 풀어서 고기 잡아 주시던 때는 아직도 기억이 나네.
엄나무가 무릎에 좋은 줄은 집에 와서 네이년한테 물어보고 알았어. 엄마를 못 믿어서 그런 건 절대 절대 아냐. 형아들도 엄마 많이 믿어 주고 뽀뽀도 자주 해드리고 그래야 이런 거 해 주시고 그러는 거야. 엄나무 순이 개두릅인 건 형들 다 알어? 참두릅보다 맛있다고 다들 그래.
엄나무 개두릅
뒷맛만 약간 쓴 식혜는 3일 만에 아들 넘하고 열심히 해치웠는데 그냥 달인 물은 잘 안 먹게 되길래 궁리 끝에 닭발을 사다가 엄나무 달인 물로 삶아 먹기로 생각을 했지. 음하핫! 월매나 좋겄어. 무릎에 좋은 두 가지가 합쳐지니 말야. 거기다가 나를 비롯해 우리집 여자들은 아주 닭발이라믄 좋아 죽거덩.
내가 막 아프다
시장에서 냉장 닭발 1KG 사다가 밀가루 왕소금 넣고 박박 문질러서 깨끗이 씻어냈어. 몇 년 전에는 손질 안 된 것 사다가 누런 껍질도 벗겨내고 발톱도 다 잘라내고 그랬는데 이 정도면 날로 먹는 거지. 저 상태로 한 30분 뒀다가 씻어내면 더 좋다는데 그냥 참고만 해. 난 무릎이 아파서 언능 진도 나갔어.
더러운 것들은 가라
애벌 삶는 거야. 냉장고에 마눌님도 모르는 곰팡이 난 된장이 있길래 풀어 넣었어. 커피를 넣기도 하지 아마. 거기다가 마늘, 후추, 이슬이 빨간 거 좀 넣었을 걸. 우리집에 히키코모리 여자개 말티즈가 있는데 이름이 ‘이슬이’야. 그걸 넣은 건 아니니까 오해들 말어. 얘가 세 달 전에 여자개를 한 마리 낳았는데 그 개는 거의 미친개야. 거꾸로 나오다가 걸려서 다 죽어가는 걸 내가 하얀거탑 명민엉아로 빙의해서 겨우 뽑아내고 마눌이 박박 문질러서 숨을 살려 냈는데, 그래서 그런가 24시간이 축제야 얘는. 애교-지랄-애교-지랄의 연속! ‘이슬이’ 이름 지을 때처럼 얘도 연장선상에서 ‘처럼이’라고 이름을 지었었는데 주류도매상은 못 차리겠다는 가족들의 반대에 못이겨 하루 만에 ‘설이’로 이름이 바뀌었네. 걔가 세상에 나올 때 첫 눈이 오고 있었거든. 히키코모리 엄마하고 미친 딸래미 사이가 진짜 볼 만해. 잘 감시하지 않으면 곧 고려장 나갈지도 몰라.
Before 무자식이 상팔자 After 눈 깔어라. 니 에미 다 죽어 간다 이눔아~
한 10분쯤 끓여서 찬물에 씻어냈어. 기본적으로 잡스러운 것들하고 기름기가 좀 정리되는 것 같네.
깨끗해요
이제 진짜로 끓일 거야.
생강을 생강생강 까주고 대파를 파파파 썰어. 후추는 훗훗훗 쳐야지~ 어디서 이 따위 개두릅을 치냐고? 어떤 아줌니 블로그에서 봤는데 나도 정말 미칠 뻔 했지만 어쩌겠어, 나만 기분 상하면 좀 그렇잖아. 자 자~ 오그라든 손발 원위치 했으면 마늘은 마눌마눌 베껴 주고, 흡--; 미안. 너무 궁해서 그런 거니까 이해들 해. 양파는 끔찍하니까 반만 넣을께. 켁! 이슬이 좀 넣어주고. 끓이기 전인데도 국물이 누런 때깔이 나는 건 바로 엄나무 달인 물을 넣어서 그런거야. 쌉싸름하지.
끓는다 끓어
국물이 쫄면 엄나무 달인 물 더 넣어 가면서 한 1시간 반 쯤 끓였나? 이렇게 더 끓이다간 닭발이 다 흐믈 흐믈 사라지겠더라고. 물론 육수를 내는 게 최종 목표이긴 했지만 그래도 닭발을 맛보지 않고 그냥 남은 이슬이 반 병을 냉장고에 박아 놓을 수는 없지 않겠어? 얼른 10개 정도 건져냈지.
로타리 석쇠그릴
석쇠가 드러워서 미안해. 닭발 다 굽고 찍어서 그래. 밑에 소금 떨어진 거 보이지? 건진 닭발에 소금만 뿌려서 구웠어. 이거 아톰형아꺼 보고 사 둔 건데 배송료까지 해도 만 원도 안 된 것 같아. 생선 구웠더니 연기가 좀... 그래도 맛은 있더라. 생 김 구울 때도 유용해. 양념간장만 있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어. 식빵에 버터 발라서 굽다가 버터가 밑으로 떨어져서 난감했었지. 토요일 11시부터 새벽 5시 반까지 분데스리가 EPL 에레디비지에 3게임은 달려야 하니까 이 때 참 잘 써먹고 있어. 쥐포나 냉동실에 짱 박아 둔 부산어묵이 딱이지. 생라면 두 쪽으로 잘 갈라서 구워도 굿이야.
반갑다. 좀비랑 악수 안 해 봤지?
보기엔 좀 그렇지? 맛이 궁금하면 해 잡숴 봐. 매운 닭발만 고집하는 건 창조경제가 아냐. 그네누나한테 혼난다. 이슬이는 컵에 따르기 귀찮아서 나발을 불었어. 폼 날 줄 알았는데 역시 나발은 더 쓰더라. 너네들은 잔에 먹도록 해라. 본진은 1시간 반 쯤 더 끓여서 육수를 받아 냈어.
보다시피 닭발에는 기름이 거의 없어. 색깔이 노란 거는 엄나무 달인 물이라 그런 거고 너네들이 그냥 닭발 육수 내면 뽀얗게 나올 테니까 걱정 말어. 맛은 생각보다 괜찮아. 엄나무 달인 물이라 뒷맛이 좀 쓰긴 했지만 약으로 먹을 거니까 그 정도는 노프라블럼. 사실 유명 삼계탕 집들도 대부분 육수는 닭발 육수를 쓴다고 하더라고. 건져낸 닭발은 사실 별 맛도 없을 거고 상당 풀어진 상태인데, 육수만 내고 그냥 버리긴 넘 아깝지 않겠어? 뭐 좀 얻어 먹을 게 있나 기웃거리다 그냥 잠이 든 세 여자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흉내는 내 줘야 마무리가 깔끔하지.
그까이꺼 뭐 대충 그냥 뻘겋게만 만들면 되는 거지 뭐. 볶으면 다 풀어질 것 같아서 육수 나온 거 좀 넣고 국물 닭발을 시도한 거야. 우유통에 든 거는 복분자야. 아마 냉장고보다 연식이 오래 됐을 걸. 난 닭발 할 때 설탕은 거의 안 넣고 이걸 넣거나, 받아도 감사한 맘이 안 생겼던 선물용 포도주를 넣어. 그것 땜에 맛있어지는진 알 수 없지만 암튼 다들 잘 먹으니까. 식불 식구라면 뭐 이런 레시피쯤은 있어줘야 되는 거 아냐? 담 날 먹었는데 맛은 그닥... 아무래도 닭발 자체가 좀 밍숭맹숭 했지. 그래도 딸래미하고 싹싹 비우긴 했고.
실리콘 아냐 흥분들 말어
아침에 나와 보니까 어제 그 육수가 젤리가 돼 있네. 설마 했는데 완전 찰랑찰랑 쁘띠첼 상태인 거야. 콜라겐 덩어리 아니겠어? 작은 비닐팩에 나눠 담아 냉동실로 보내고 좀 남겨서 오후에 라면을 끓였어.
닭발육수라면
육수를 좀 넉넉히 넣고 스프는 1/3만 넣었지. 맛있드라. 콜라겐이 면발에 들러 붙어서 얼레리 꼴레리여. 국물 맛은 찰지고 말야. 밥 말아서 싹싹 긁어 먹었네. 난 원래 아침을 안 먹는데 요즘은 생각 날 때마다 마눌한테 부탁해서 육수 한 봉지씩 꺼내 사골국물 먹듯 파 좀 올려서 끓여 먹고 있어. 이제 곧 무릎 좋아져서 나가 뛰어 놀고 그럴 거야. 기대들 해. 아니 니들이 기대할 일은 아니구나...
대기 타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기둘려 봐. 맛있는 거 있음 다음에 또 같이 나눌게.
독투불패 주관적지향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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