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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06. 목요일

정우성













24) 집 나간 아빠 : 이몽룡과 성춘향이 드디어 결혼해서 아이를 쌍으로 뒀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이몽룡은 행정전문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곳저곳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이러쿵저러쿵 컨설팅을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천리 방방곡곡이 곧 그의 집이었고 덕분에 수확이 늘었다. 저녁 있는 삶? 저녁은 언제든 어디든 있지. 밤 늦게까지 바깥에서 술을 마시며 입냄새를 풍겼다. 이몽룡은 여전히 성춘향을 사랑하고 아이들도 사랑한다고 치자. 하지만 어느덧 성장한 아이들과 성춘향에게 이몽룡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고독을 견디다 못해 성춘향이 법원에 이혼소송을 냈다. 깜짝 놀란 이몽룡이 가정문제 전문가인 홍길동을 찾아갔다. 난 우리 가족을 위해 동분서주했단 말이죠. 밤낮으로 일한 건 모두 우리 가족을 위한 거였어요. 홍길동이 말했다. 바깥에서 공전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서 남편 역할을 하세. 바깥에서 잘난 척하며 싸돌아다니지만 말고 집에서 아이를 안아주세. 가장이 가출했으니 집안꼴이 말이 아니네.



25) 대학등록금과 대학진학률 : 대학등록금은 청년에게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첫 보편적 목돈이다. 고등학교 졸업생 10명 중 8명이 대학에 간다. 대학생 수는 300만 명을 넘었다. 2013년 기준 연간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736만 원이고, 국립대 평균 등록금은 417만 원이다.(대학교육연구소 통계, 이 글의 통계는 대개 대교연 자료를 이용하였다.) 모두 부모의 부담이다. 등록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거주에 따른 주거보증금, 월세, 교재 비용, 생활비까지 포함하면 부모의 부담은 대학생 1인당 얼마나 될까? 만일 아이가 두세 명이라면?


대학진학률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걸 당장 문제 삼기는 어렵다. 왜 대학에 가느냐고 바로 취직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따질 수는 있겠다. 그러고는 기어코 트리플 예외(예외의 예외의 예외)의 성공담을 찾아낼 수도 있다. 앞뒤 맥락은 안중에 없는 조폭같은 생각이다. 대학에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가야만 하니까 가는 것이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욕망을 함부로 깔아뭉갤 수는 없다. 우리 사회는 대학에 가지 않고도 좋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을만큼 만만하지 않다. 목돈사회에서는 결혼을 통해서 목돈을 마련해야 한다. 굳이 학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진학은 목돈의 크기를 결정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꼰대들은 대학진학률이 높다고 한가하게 지적질하지만 그런 사회를 만든 공동정범이 당신들, 그리고 우리 자신이다.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자기 꿈이 무엇인지도,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남들은 다 대학 가는데 혼자만 놀라고, 어서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목소리 깔며 조언하는 건 염치 없는 노릇이다. 그런 미안한 명령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 대학진학률을 낮추려면 지금 당장 대학에 가지 않아도 좋다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는 실상 어디에도 없다. 높은 대학진학률을 비판하는 것은 문명비판으로는 좋겠으나, 딱 그 정도에 그친다.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고 스케치하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나, 그런 의지는 목돈사회가 허물어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대학진학은 목돈의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목돈(등록금)을 내야 한다. 이 또한 목돈의 딜레마.

 

우리 사회의 4대 목돈 중 대학등록금 목돈은 가장 해결하기 쉽다. 심지어 박통 2세께서도 결심만 하면 내일모레 선언할 수 있다. 주거보증금, 권리금, 연대보증금에 비해서 목돈 규모가 크지 않기 매우 작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목돈은 이해관계가 첨예하지만 대학등록금은 그렇지 않다. 사학 재단의 이해관계 외에는 당장의 이익 충돌이 없다. 복잡하게만 생각하지 않으면 목돈사회의 진지 하나를 허물 수 있다. 대학등록금 문제에 대한 자세한 논란에 대해서는 여기 위키피디아의 링크가 소상하다.

 

 

26) 사학의 팽창과 국공립의 축소 : 물가가 오르는만큼 대학등록금이 오를 수는 있겠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대학등록금은 물가인상율보다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까지 올랐다. 1989년 정부는 수익자부담의 원칙에 따라 등록금 자율화를 선언했다. 그 결과 20년간 매년 평균 8.8%의 등록금이 인상되었다. 그사이 소위 대학교육의 “수익자”인 가계의 형편은 매우 어려워졌다. 저축율은 땅에 떨어졌으며 부채율은 솟구쳤다. 가계에서 느끼는 등록금 부담은 통계 수치보다 더 강한 무게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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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현재 사학의 전체 운영수입의 2/3가 등록금이다. 65~75% 사이의 등록금 의존율(2012년 현재 운영수입대비 66.6%, 총수입대비로 57.7%이다.)은 지난 20년간 유지돼 왔다. 그런데 그사이 매년 2~4배씩 등록금을 올릴 수 있었다. 이는 곧 장사가 된다는 말. 시장은 호황기였으며 상점은 늘 수밖에 없었다. 1990년에 187개였던 사립대학은 2005년에 300개를 넘었고, 2012년에 310개에 이르렀다. 반면 국공립대학의 숫자는 1990년에 55개였고, 2012년에는 53개로 더 줄었다. 세월이 흘러 사립은 크게 늘었고, 국공립은 오히려 줄었다.

 

사립대학의 수가 증가한 만큼 대학생 수도 함께 늘었다. 2012년 현재 256만 1천여 명이 사립대학에 다닌다. 국공립대학 학생 수는 2000년 87만 2천여 명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해서 2012년 현재 79만 2천여 명 정도이다.(이중 방송통신대학 학생이 25만 명을 넘는다.) 보기 좋게 아래의 표처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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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사립대학은 대략 159개. 4년제 국공립은 42개 정도


 

인간이 설령 역사를 잘 참조하지 않는다 하여도, 역사는 묵묵히 인간에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준다. 위와 같이 대학등록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민의 주머니 사정을 외면한 채 독야청청 등록금이 폭주하게 된 까닭은 국가의 책임이 크다. 국가는 1989년 등록금 자율화를 선언했다. 그것이 사학이 팽창한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국가는 국공립대학의 역할과 기능을 스스로 눌러버렸다. 사학이 팽창한 두 번째 이유다. 아까이 소라가 자랑하는 프랑스 국공립대학의 비중은 86%이며, 타데우스가 뽐내는 독일의 경우에는 국공립의 비중이 95%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2012년 기준 18%를 넘지 못한다.(방통대를 포함하면 23%를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등록금 자율화 선언을 폐기하기는 어렵다. 사학의 등록금을 국가가 다시 직접 규제하는 것은 쌍팔년도라면 모를까 지금은 불가능하다. 이해관계가 극심하고 대결과 대립 끝에 위원회만 남발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은 의무교육이 아니며 개인이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결의 실마리는 멀리 있지 않다. 국가가 오랫동안 한사코 방치했던 국공립대학의 역할과 기능에 시선을 돌리는 일이다.


타데우스 + 아까이 소라프랑스와 독일 실제 유학비를 알려주마 <1>, <2>, <3>




27) 반값등록금 정책 : 2007년 MB의 대선공약으로 처음 제기된 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좌우합작하여 동의한 정책이 바로 반값등록금이다. 8살 먹은 정책이다. 나는 ‘반값등록금은 표현만 간단하지 실상은 지극히 복잡한 정책이고 그러므로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80살 먹도록 실행되지 않을 정책이다. 대학등록금 문제는 수많은 유권자의 표심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정책은 내야겠고, 그렇다고 해서 대학교육이 의무가 아닌 상황에서 무상등록금을 주장할 수 없으니 적절하게 타협한 레토릭이 바로 반값등록금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값등록금 정책을 반대한다.(여기서 말하는 반값등록금 정책은 행정규제와 사학에 대한 재정투입을 전제로 하는 정책을 뜻한다.)


첫째, 교육은 행정에 의해 질식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무슨 명목으로든지 공식적으로 돈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현장은 보고 문서 안으로 추방된다. 신청, 평가, 중간보고, 최종평가를 이유로 행정작업이 본업을 대체한다. 우리나라의 행정은 인간은 악하다는 전제로 건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악질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명목으로 온갖 종류의 행정작업을 요구한다.(그런데 처벌은 부드럽다는 게 함정) 돈줄을 쥐면 쥘수록 행정 간섭은 심해진다. 반값등록금 명목으로 국가의 재정지원이 커지면 국가의 간섭과 규제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를 선하게 여기고 사학을 악하게 생각하는 단순한 논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국가의 간섭과 규제를 좋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교육부 관료의 놀이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가가 학사행정에 간섭하고 정원을 통제하며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 대학은 정부에 포복하며 무한 눈치를 볼 우려가 크다. 학문연구는커녕 교육부 입맛에 맞는 행정작업에 총력을 기울여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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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지원했으니까 당연히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목적이야 어쨌든 지나치게 자본의 논리다. 우리 그러지 말자. 국가가 대학에 국고보조금 형식으로 공적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주식 투자가 아니다. 대학의 경영을 간섭하고 규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고등교육에 대한 공적 책임을 사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행사한다는 의미이다.(심정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수 있겠으나 사학도 엄정한 법규에 의해 설립되어 교육이라는 공적 소임을 하는 교육기관이다.)

 

둘째, 시장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방해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사립대학이 300개가 넘은 까닭은 1989년 정부의 등록금자율화 선언 이후로 장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만한 시장이었다. 장사가 되지 않으면 부실해지고 망할 것이다. 국가는 해산명령을 하고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할 수도 있다. 등록금의존율이 사학 운영예산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입학정원의 미달은 사학 운영을 위협한다. 사학은 그러므로 생존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때때로 문을 닫을 것이다. 이것이 곧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다. 시장의 자율성에 의해서 사학대학의 수는 어딘가로 적절히 수렴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립대학에 재정지원을 더 크게 하면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을 방해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하는 셈이며, 이 물을 받기 위해서 지저분한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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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예산대비 미온적인 해결책이다. 2012년 정부는 사학에 3,891,382,278,000원(3조 9천억 원)을 정부보조금조로 지원했다. 사학 총수입의 16.7%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사립대학의 총수입의 57.7%가 등록금인 까닭에, 이중 28.8%정도를 국가에서 보조해줘야만 얼추 반값등록금이 가능해질 것 같다. 그러면 매년 10조 원의 국고보조금을 사학에 지원해야 한다.(어떤 이는 6조 원 정도 소요될 거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해서 등록금이 반값이 된다는 이야기지만, 여전히 목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게다가 등록금이 해마다 인상되면 반값 목돈 또한 다시 커지게 마련이어서 사회적 논란은 지속될 것이다. 어째서 막대한 국가 재정으로 모든 사학을 살려주어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은 답하기 꽤 어렵다.

 

마지막으로 반값등록금 정책은 상상력을 침해하는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값만 달성하면 마치 끝인 듯한 느낌을 준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해결할 동력을 상실해 버린다. 박통 2세께서 사실상의 반값등록금 달성’을 선언해 버리면 늙은 진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28) 초국가주의 좌우합작 : 앞서 말한 것처럼 반값등록금 레토릭은 MB가 시작했다. 그걸 진보가 입술에 침을 바르며 자기 정책인양 목소리를 높였다. 무한신경질을 특색으로 하는 한국의 좌우가 웬일인지 같은 말을 한다. 흥미로운 합작. 국가주의를 선호하는 오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여러 주체가 있다. 국가, 시장, 시민사회, 개인이다. 국가권력, 시장의 자율성, 시민사회 운동, 그리고 개인의 성찰이 저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문제 해결에 있어 보수와 진보는 생각이 다르다. 보수는 시민사회와 개인의 역할을 과소평가한다. 반면 진보는 시장의 기능을 외면한다. 보수는 한편으로는 시장의 간섭을 줄이고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고 ‘원론적인’ 의견을 피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통치행위를 선호하면서 누구든지 집권자의 의지에 반듯하게 복종할 것을 원한다. 보수주의자들에게 국가권력은 완장을 찬 경찰 기관이다. 진보는 개인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우리나라 진보주의자들은 마치 국가를 어벤저스처럼 여기는 경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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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보수나 진보나 모든 문제를 국가권력이 해결할 것을,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하며 정책을 짜고 집행한다. 초국가주의 아래의 좌우합작. 누가 집권하든, 법률은 남용되고 정책은 범람하며 예산은 남발된다. 시장과 시민사회와 개인은 국가의 신민일 뿐이다.

 

초경쟁에 빠진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채 시장에 권력을 넘기며 국가가 애써 자기 할 일을 축소하는 풍토를 두고 신자유주의라고 사람들은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를 너무 과용하지 마세. 대한민국 정부는 한 번도 시장에 권력을 넘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과업은 국가의 것이었으므로 자기 할 일을 축소하지도 않았다. 단지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권력자 노릇을 했을 뿐이다. 기실 대한민국 정부에게 자기 할 일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국가의 할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어벤저스 국가주의 대연정 아래에서는 국가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환상을 풍긴다. 반값등록금도 그런 맥락이다.

 

한편, 정부와 새누리당은 반값등록금 공약을 정책적으로 폐기했다.(레토릭으로는 폐기하지 않았으며 선거 국면에 다시 부활할 것이다. 거의 반값등록금을 달성했노라고 말이다.) 나는 반값등록금 정책의 폐기를 결과론적으로 찬성한다. 2012년 이명박 가카 정부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만들어냈다. 2012년 국가장학금 정부예산은 1조 7000억 원이었으며, 2013년에는 2조 원을 넘었고, 2014년에는 3조 4,575억 원 규모의 국가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몇 년 사이에 3조원이 생긴 것이다. 요컨대 보수정부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통해서 반값등록금 정책을 우회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결국 그 장학금은 등록금으로 납부될 것이기 때문에 사학의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다. 기껏해야 목돈의 짐을 일부 낮춰줄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통받는 개인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재정을 직접 지원한다는 맥락에서는 무턱대고 반값등록금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반값등록금 운운은 그만 하자. 더 좋은 생각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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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문제해결의 일반원칙 : 목돈사회는 개인을 핍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개인이 속한 단체를 짓누른다. 가족이 멍든다. 대학등록금, 주거보증금, 권리금, 연대보증제도는 목돈사회의 네 가지 악의 진지다. 목돈사회는 약자를 토벌하여 노예로 삼는다. 이 비정한 평화로움을 깨기 위한 공성전이 필요하다. 우리는 제대로 공략할 수 있다.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의지만으로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며 기발한 상상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이것이 이 연재에서 보이지 않는 가장 진한 밑줄이다.


다짜고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인식하고 단순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주로 어린이들이 사용하거나 아니면 조폭이나 독재자가 사용한다. 목돈이 문제라고? 그럼 목돈 요구를 법률로 금지시키면 되잖아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전문가들이 권력을 얻게 되면 조폭처럼 구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게임중독법처럼 목돈금지법을 만들면 되잖니? 아이들과 조폭과 독재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머뭇거림도 없이, 판단과 행동이 신속하다는 것. 그들은 변수가 하나인 일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며 짜릿해 한다. x-3=0, x=3. Oh!

 

두 번째 방법은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다. 주로 잘난 사람이 습관적으로 이 방법을 선택한다. 먹물과 가방끈의 결투. 초이성주의자들은 저마다 논리를 대고 통계를 동원하며 르뽀를 인용한다. 갑론을박에 그치지 않는다. 갑론을박병안정부무투. 세상은 꼰대로 가득하다. 저마다 자기 원칙을 주장하며 예외를 몹시 싫어한다. 힘의 대결 끝에 타협을 해 봤자 고작 위원회 행정에 그친다. 복잡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으므로 해결까지 첩첩산중이다. 현장은커녕 문서를 만들고 읽느라 에너지를 소모한다. 보고서 행정. 문제 해결은 현실이 아니라 보고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정치인은 관료를 이길 수 없다. 그들은 때때로 오차방정식의 근의 일반 공식을 찾느라 논쟁하며 동분서주하곤 한다.(오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은 없다.) 반값등록금이니 국공립대학네트워크니 등록금후불제니 모두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해결하는 방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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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방법은 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지만 그 해결책은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방법이다. Less Is More. 이 방법은 모든 문제를 한번에 다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어떤 해결책을 미루거나 내려 놓을 수 있다. 서두르지 않으며 논쟁 중에 양보할 수도 있다. 충분히 생각하여 쟁점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조폭론의 단순성과는 다르다. 해결책을 분류하여 지금 당장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구별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눈다. 때때로 논쟁을 가장 짧은 거리로 통과하고 또 때때로 논란을 우회한다. 해결책은 벡터이며 시간의 함수다. 취사선별에 의해서 적이 생기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선택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결책을 단순화를 할 것인지에 대한 궁리가 어렵다는 게 덫. 이 덫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돈사회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단순하게 디자인 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돛이다. 우리는 국가주의를 경계하고 다원주의를 채택함으로써 단순화의 어려움을 상당수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 ComeBackHome: 목돈사회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나는 시장의 자율성을 중시할 작정이다. 대학등록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국가를 집으로 불러들일 것이다. 시장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편견의 병리적 현상이다. 시장은 폭주하므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범위로 국가권력의 규제가 필요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장의 자율성은 언제나 문제 해결의 중요한 솔루션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해서 국가가 작은 정부로 축소되는 것도 아니다. 한편 시민사회는 시장과 정부를 함께 견제하기 위해서 노력할 터이며, 개인은 자기 성찰을 통해서 시민으로서의 문화성을 회복하기를 기대한다.(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시민사회조차 초국가주의에 물들어 있으며 개인은 뭉개져 있다는 게 문제이지만)

 

목돈 사회에서 국가는 마치 집안 일은 나몰라라 하며 가출한 잘난 가장과 같다. 바깥에서는 이러쿵저러쿵 목소리를 높이며 방방곡곡 설치고 참견하고 다니면서 남편 노릇은, 아빠 노릇은 하지 않는다.(가출한 엄마라고 해도 좋다. 아내 노릇, 엄마 노릇을 해다오.) 국가는 몹시 많은 일을 하지만 정작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는다. 철수 아빠, 용서해 줄 테니 집으로 돌아오세요. 집으로 돌아와 얼른 제 역할을 해다오. 그러면 목돈 사회의 대부분의 진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대학등록금 문제도 그러하다. 이제 나는 그 해결책을 태연히 이야기하려고 한다. 제발 복잡하게 만들지 마세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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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고딩 10명 중 8명은 대학에 가. 대학진학률 세계 최고 수준이잖니. 그래 학력 인플레가 몹시 심한 건 맞아. 등록금 높다고 지랄하면서 왜 대학에 들어가려고 발광하냐고? 이렇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꼰대처럼 구는 것도 재수없지만 깡패처럼 구는 것도 밥맛이야.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살아 있는 메시지”를 너님이 사회에 쏟아낼 수 있냐 이거에요. 대학진학률 운운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말아먹겠다는 말씀. 그건 그저 문명비판으로나 하세요.


 

둘째, 대학등록금이 겁나게 오르는 무대 커튼을 치켜 올려봤어. 어라, 국가가 쪼그리고 앉아 똥을 싸네. 사학이 팽창하도록 국가가 도와줬지. 각종 규제를 풀고 등록금이 폭등하도록 방관했다는 거야. 1989년에 정부는 등록금자율화를 선언했고, 1995년에는 사학설립의 규제를 대폭 풀었어. 이때다 싶어서 기존사학은 등록금을 팍팍 올리고 우후죽순으로 신생 대학이 생겨났지. 어디 그 뿐이니. 사학이 팽창하는 동안 국공립은 오히려 축소됐거든. 근데 말이야. 좌우를 막론하고 논점은 죄다 사학을 향해 있어. 아주 심플한 논리야. 사립대학이 80%나 차지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는 거지. 사학개혁이니 반값등록금이니 좌우간 사학이 나쁜놈 된 거지. 그런데 국가는 왜 국공립을 외면하는 거였지? 왜 자기 집에서 자기 할 일을 안하니?

 

 

셋째, 난 반값등록금 반댈세. 행정규제와 사학에 대한 재정투입으로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건, 뻥이야. 독이기도 해. 교육부 관료들 대학 통제하느라 살맛 나겠네. 대학이 교육부 관료 놀이터니. 망할 대학은 전속력으로 망하게 놔두었으면 싶어. 그건 시장의 역할이지. 게다가 그런 반값등록금 정책은 예산대비 미온적인 해결책이야. 그런데 너님은 반값이면 만족하는 거니? 또 오를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하겠니.

 

 

넷째, 그런데 말이야. 2012년부터 가카와 박통 2세께서 3조 원의 교육재정을 새롭게 편성했어. 국가장학금 제도를 만들었거든. 그게 벌써 3조가 넘어. 그 돈이면 국공립대학 전체를 무상으로 하고도 많이 남아. 국가장학금 제도는 개인에게 직접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거야. 그런데 그 개인이 그 돈으로 대학에 등록금을 납부하는 거야. 사학은 아무런 손해가 없어요. 짝짝꿍하는 거지. 그래도 좋은 제도야. 3조 원이 어디니. 그거 조만간 5조 원을 넘는다는 데 2500원을 건다. 그러고 어느 순간 박통 2세가카께서 반값등록금 달성을 선언할지도 몰라. 진보연하는 너님들 두려워하세요. 이세가까께서 대학생을 선점하실 테니.

 

 

다섯째, 우리 차분해지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면서 어린이처럼 조폭처럼 꼰대처럼 굴지 말자. 진보와 보수보다 더 강력한 이념이 우리에겐 있지. 엘리트주의라고. 오, 맨날 상연되는 먹물과 가방끈의 결투. 대통령 산하로 <무엇이든토론만하는위원회>를 뒀으면 좋겠어. 갑론을박병안정부무투하는 교수나 전문가들의 놀이터로 말이야. 우리 복잡한 것을 복잡한 것으로 인정하자. 그리고 단순한 매듭을 찾자. Less Is More. 쉬운 것부터. 첫술에 배부를 수 없잖니.

 

 

여섯째, 우리 사회가 아주 흥미로운 건, 보수든 진보든 초국가주의’ 입장이라는 거야. 초국가주의 좌우합작. 리버럴은 드물지. 진보든 시민사회든 모두 국가해결주의야. 국가가 무슨 어벤저스니. 어떻게 죄다 해결해. 우리 그러지 말자. 할 일을 하자. 국가가 공공영역에서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완장을 차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모든 문제를 다 독차지하려니 나라꼴이 말이 아냐. 목돈사회를 허물기 위해서 국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해. 그치만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해 달라고는 요구하지 말자. 그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 분란만 낳을 뿐 아무것도 못해. 나랏님께서 분란 없이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일을 요구하자. 발상만을 바꾸면 돼.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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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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