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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7. 08. 수요일

벨테브레








새누리당의 사퇴권고, 반사!


참으로 힘든 시기다. 그렇잖아도 민생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메르스 사태까지 터지며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날씨마저 이 나라를 돕지 않는지, 오랜 가뭄으로 목마른 농촌에 태풍조차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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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여한 의원들

(출처- 한겨레)


이런 엄중한 시국에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긴급 의원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면, 그 안건은 마땅히 경제 살리기와 관련된 것이 되어야 할 터. 되도 않는 법안에 '민생'이라든지 '경제 살리기'같은 레떼르(Letter. 라벨, 평가)를 붙인 다음 야당을 압박하곤 했던 여당의 행태를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어, 그런데 잠시만요. 16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이 부랴부랴 모여 결의한 것은 누군가에 대한 사퇴권고였다. 누구인진 모르겠으나,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원흉이요, 장본인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사퇴로 이 모든 국가적 어려움이 해결된다면 새누리당의 긴급의원총회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집권여당의 국회의원들을 빡치게 만든 그는 누구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힌트를 주셨다.


그녀는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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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와대)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을 내야 한다."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증세 없는 복지 같은 달콤한 슬로건을 '정치적으로, 선거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긴' 어떤 분이 생각난다. 아울러 우리는, 어느 당에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상황도 실시간으로 감상 중이다. 그 결과 한 번 재신임을 의결(6월 25일)한지 불과 2주도 지나지 않아 같은 당 의원총회에서 똑같은 사람에 대해, 똑같은 사유로 사퇴를 권고하는 '배신의 정치'가 판을 치게 되었다. 이 모든 사태는 결국 친박계의 '패권주의'와 청와대의 '줄 세우기 정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결국 새누리당 의원총회의 사퇴권고는 통렬한 자기반성 내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퇴권고로 해석해야 마땅할 것이다. 비록 대상이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아무려면 어떠한가. 박근혜 대통령 또한 '우리 국민의 정치수준도 높아져서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씀했으니, 이제 그 분의 뜻을 받들어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 그들의 사퇴권고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수 있도록, '반사!'를 외치며 투표장에 들어갈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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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 기자회견 중인 유승민 원내대표

(출처- 한겨레)



국회의 결정(?)은 헌법의 가치를 확인... 했을까?


한편 지난 7월 6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퇴장에 따른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자,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국회의 결정은 헌법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


이라고 논평했다.


틀렸다. 국회는 그날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았다. 헌법 제53조 제4항에 따라, 대통령의 재의요구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2/3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하는데, 만일 출석의원이 과반수에 미치지 않는다면 부결되는 게 아니라 표결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투표함도 까보지 못했는데 결정된 게 있을 리가(따라서 한번 부결된 안건은 동일 회기 내에 다시 제출하지 못한다는 일사부재의 원칙의 적용도 받지 않는다).


결국 청와대의 입장에서 국회는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을 때 비로소 헌법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과연 청와대가 생각하는 헌법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헌법학계에서 권위 있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견해에 따르더라도 이번 국회법 개정안을 위헌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은 이미 지난 기사에서도 자세히 언급한 바 있으나, 청와대의 눈높이에 맞추어 고등학교 '법과 정치' 수준으로 다시 설명해 주도록 하겠다.


권력분립의 원칙은 민주공화정을 표방한 헌법의 기본 가치다. 따라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하며, 행정입법 또한 기본적으로 국회의 위임을 통해서 제정되는 것이기에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행정부는 직접 법률안을 제출하거나 의결된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입법권이 막나가는 걸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국회에서도 행정입법을 통제할 수단이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헌법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이번 국회법 개정안의 취지인 것이다.


청와대의 입장은 이러한 사정에 대한 근본적인 고려 없이 '행정부의 권한인 행정입법을 건드린다면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므로 위헌!'이라는 단순무식한 논리로 보인다. 이건 결국 국회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행정입법을 만들겠다는 취지요, 궁극적으로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결국 민경욱 대변인이 확인한 건, 권력분립의 원칙을 명확히 현행 헌법이 아니라 입법·사법· 행정의 3권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시켰던 '유신헌법'의 가치가 아니었을까?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은 국회가 '헌법 가치를 다시 확인했다'는 걸 보니 더욱 의심이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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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세계관, 그리고 다음 타깃은?


박근혜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 '드물게 보는 사심 없는 분'이라 치켜 세웠다.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는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배신의 정치''라며 비판했다.


7월 7일 국무회의에서는 국무위원들에게 '개인적 행로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야인시절 박영선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즐겨보는 TV 프로는 동물의 왕국이다. 동물은 배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박근혜의 어록을 종합해 보면, 그의 세계관은 철저한 이분법 내지 흑백논리가 바탕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국가이며 국민을 대표하므로 자신을 따르는 것은 사심 없이 공공에 봉사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것은 사심을 가지고 개인적 행로를 걸으며 배신을 때리는 짐승만도 못한 행태라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는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그게 꼭 사심이요, 배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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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아닌 것 같다. 그녀의 정치에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오로지 내가 결심한 것은 전적으로 옳기 때문에 국회는 내 뜻을 받들어 신속하게 통과시켜야 할 뿐이고, 이에 반대하는 야당은 발목잡기, 그에 타협하는 여당은 배신의 정치로 몰아붙이고 만다. 그녀에게 반대 당 의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일일이 전화를 돌리는 오바마의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한 기대일 뿐. 아니, 설득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건 청와대 정무수석이 두 달 가까이 공석인 상황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정부에서 정치권은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정무 기능의 초토화로 인한 소통의 부재가 ‘유승민의 난’을 불러온 것이며, 대통령의 왜곡된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 남은 2년 반의 정치 역시 볼썽사나운 장면을 숱하게 연출할 것이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강제로 자진사퇴 당하는 엽기적인 광경을 지켜보며 다음 번 타깃은 누가 될지 예측해 본다. 소기의 성과(?)를 올린 청와대와 친박계의 관심사는 결국 내년 총선의 공천권으로 귀결될 터. 이번 사태를 통해 대부분의 최고위원들을 친박계로 줄 세우는데 성공한 만큼 마지막 남은 걸림돌은 역시 김무성 대표가 아닐까? 친박계에서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본격적인 공천 작업에 앞서 사소한 트집을 잡아 김무성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더 나아가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할 것이다. 이 경우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이 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눈에 거슬리는 유승민을 쳐낸 게 아닐까 하는 소설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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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이미 두 번의 공천탈락을 겪었던 김무성 대표가 그때도 '선당후사의 정신'을 내세워 물러날 것인지, 아니면 미래권력이 되기 위해 '김무성의 난'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확실한 건 유승민 파동에서 보여준 김무성의 어정쩡한 자세는, 조만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친박계와의 충돌에 있어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유승민은 물론 김무성까지 겨냥한 친박계의 다목적 카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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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