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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10. 월요일

raksumi


 





세상 어떤 나라에서, 정보 기관이 자기 나라 신문의 1면 톱으로 연일 다루어질까요?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런 특별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이 미지근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설국열차의 뜨게질하던 여인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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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야 뒤지든 말든. 평안은 내 안에 있다...



지지율은 역시 변화가 없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그대로 가는 분위기입니다.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귀족 노조라고 알려진 철도 노조가 파업을 하였을 때, 그것이 어떤 변화의 단초가 되기를 희망했던 것 같습니다.


업무의 전문성과 비대체성 그리고 파업시 발생되게 될 국민들의 엄청난 불편을 고려할 때, 이건 무리한 기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언론의 파상 공세와 정부의 강경 진압에 그만 파업을 접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파업을 하여 어떤 분위기 쇄신을 기대할 수 있는 집단은 적어도 철도 노조보다는 더 전문적이고 더 국민들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집단이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위의 조건을 충족 시켜 줄 집단이 나타났으니 그게 의료계를 대표하는 의사들입니다. (아마도 의사 집단도 실패한다면 이제 정부의 정책에 대항할 집단은 없을 것 같습니다)


평소 의사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즉, 의사들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어쩐 일인지 이번 파업에 찬성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이유도 한 부분일 것입니다.


가뜩이나 저 수가와 환자 감소(인구 증가율보다 의사 수는 많아지니까)로 신음하던 의사들에게 이번 정부의 원격 진료 허용이나 영리 법인 자회사 설립’은 정말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 준 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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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났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18일 10시에 보건복지부에서는 의협이 원격 진료와 투자 활성화 대책 등 정부의 의료 영리화 대책에 합의한 것처럼 발표를 하였습니다.


이건 정부가 써먹는 전형적인 물타기식 언론 플레이입니다(이렇게 함으로써 내부의 힘을 빼 놓는 거죠). 이때 의협은 정부와의 입장 차이를 전혀 좁히지 못하는 상태였고, 많은 의협 지도부가 분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이미 온라인에서는 의사들 그런 줄 알았다”, “너네 하는 일이 항상 그렇지 뭐”라는 식의 욕설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의협은 그날 2시에 별도의 다른 내용으로 기자 회견을 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총파업 여부를 투표에 붙이게 되고 의사 등록 회원 기준 69,923명 중 48,861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투표율 약 70%에, 개표 결과 77%가 파업에 찬성함으로써 14년 만에 의료계 파업을 하게 됩니다.


먼저 3월 10일 전일 파업 후, 준법 진료, 준법 근무를 전개하다가 24일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고 결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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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파업 결정으로 정부도 좀 긴장이 됐는지 채찍을 들고 나왔습니다. 연일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의사들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죠. 제일 웃긴 것은 개인 병원을 하루 문 닫으면 더 이상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15일 간 영업 정지를 하겠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건 정말 역사에 길이 남을 협박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국민과 환자를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병원을 15일간 영업 정지를 시킨다는 발상을 하는지. 정부가 늘 이런 식이지만 이런 발언은 들을 때마다 답답합니다. 전염병이 창궐한 것도 아니고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도 아니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당국이 개인 의사들에게 영업을 하라마라 할 수 있는지요.


또 황당한 것이 이 사건의 검사가 대검 공안 기획관으로 이 사건을 공안 사건으로 규정 짓는 것 같습니다. 실제 검찰은 3월 7일 의료 영리화 저지를 위한 대한 의사 협회의 총파업 투쟁을 앞두고 공안 대책 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결국 진료 거부 의사는 종북 빨갱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사실 그 이전까지 큰 병원들의 파업 분위기는 별로 달아오르지 않았지만 이번 일로 전공의들을 자극한 것 같습니다. 결국, 3월 8일 전공의 회의에서 오늘 파업에 전공의들도 참여하기로 결정이 났습니다.


오늘은 응급실과 산부인과 분만실, 중환자실은 그대로 돌아갔지만 외래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이미 계획된 수술 중 어제와 그제 전화를 해서 취소한 것 외에는 비상 상태로 진행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환자와 산모들을 해결해야 했던 저로서는 전공의들이 저를 볼모로 파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의협을 주도하고 있고, 가장 불만이 많은 개인 병원 의사들만 파업한다면 그 파괴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조직화되어 있고 큰 병원에서 가장 궂은일을 하면서 환자 진료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전공의들의 가세로 2000년 때 파업 만큼의 파장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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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잘못된 의약분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결의대회'.

전국에서 4만5000면의 의사들이 참석했다.



여담인데 가끔씩 후배 학생들을 만나면, 저희 때보다 훨씬 높은 성적으로 들어오는 의대생임에도 불구하고 그네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큰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가진 사람들이며 나름 능력자로 인정받는 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새로 생기는 병원의 좋은 스태프나 교수 자리는 없고 기존의 의사들은 나갈 생각을 안하는 현실에서 전공의들의 불안감도 상상을 초월하지요. 결국 개업하거나 봉직의(월급 받고 일하는 의사)로 취직하여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의사들 끝났다, 끝났다 해도 사실 그냥 앓는 소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개원의들의 폐업률을 보면 장난이 아니거든요. 참고로 최근 개인병원의 폐업률은 20-30%씩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작년, 대전에 개업한 51개 개인 병원은 모두 폐업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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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안감과 또 정부의 의사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이 이번 전공의의 파업 결정을 이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레지던트가 있는 병원 입장에서도 당장은 괜찮지만, 결국 밖의 의사들의 대우가 나빠지면 그 병원 내에서도 대우가 좋아질 리 만무하기 때문에 이번 파업에 대해 어느 정도 우호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언론과 정부에서는 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의사들 파업 어쩌구 저쩌구 할 것입니다. 아니, 이미 하고 있더군요. 철도 노조가 파업을 하면 국민의 발을 담보로’, 또 다른 곳에서 파업을 하면 뭐를 담보로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식으로 계속 담보를 양보하다간 정말 우리 국민 전부가 정부의 볼모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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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출처-<뉴스1>



부디 파업에는 찬성하지 않으시더라도 의사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의사 파업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사안이 충돌할 때 양 진영간에 어떤 충돌이 있었고, 그 갈등을 어떻게 하면 사회적인 관점에서 창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생각했으면 합니다. 단지 표면적으로 사람들이 겪게 될 불편함에만 집중하지 마시고요. 그렇게 공론화 시키면서 그 안의 갈등을 표면화 시키는 것이 사회 발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의사 협회도 단지 수가 인상만이 아닌 그 동안 의료 일선에서 안타깝게 생각했던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서도 공론화시켜 국민들과도 의견을 나누고 정부에게 요구했으면 좋겠습니다.


파업에 대한 여러 상황들은 현재 진행형이고 변수가 많아서 짧게 짧게 지속적으로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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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ksumi


편집 : 홀짝,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