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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13. 목요일

한은주








“새벽 3시부터 8시까지요?”




 

한 가지 일만 해서는 도저히 생활이 되지 않아 빚만 쌓여 가고 있을 때, 새벽에 할 일이 있다는 것은 날 솔깃하게 만들었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하면 재벌 부럽지 않게 생활할 수 있겠지. 그렇게 얼굴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이 생긴 나는 새벽이슬 밟는 여자가 되었다. 월 80만 원 남짓에 나의 새벽을 바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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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일부터 새벽 3시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세 사람이 근무하는 것처럼 해야하니 나 이외에 두 사람 통장과 주민등록등본, 도장을 갖고 오란다. 월급도 세 사람 통장으로 나눠 넣어 준다고 했다. 노동법 때문이란다. 이 거지 같은 노동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노동법일까.

 

남에게 등본과 통장 만들어 달라는 말하기가 참 어렵다. 그것도 두 명에게나. 주민등록번호가 노출되어 자기도 모르는 새 엄청난 빚을 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누가 호락호락 자기 통장과 등본을 팍팍 떼어 주겠나. 시작부터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재벌 되기를 열망했던 나는 갖은 회유와 협박으로 두 명의 희생양을 찾아 통장과 도장을 마련했다. 한 달 계약이기 때문에 도장을 맡겨 놓으면 한 달 단위로 계약서를 쓰고 도장을 찍는단다. 새벽 2시부터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 놓고, 학교 갈 아이를 마음에 걸려 하며, 천 원짜리 한 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죽으나 사나 출근을 시작했다. 아침잠이 많은 나였지만 돈이 입금되니 벌떡벌떡 일어나졌다.

 

캄캄한 식당 안을 들어선다. 손님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제 근무자가 만들어 놓은 국을 데우고 반찬을 데운 다음 건조기를 연다. 면장갑을 끼고 식판을 조심스레 꺼낸다. 한 번은 식판 사이에 손가락이 끼어 ‘억!’ 소리가 나게 아팠다. “아이고 아이고.” 끝내 손톱이 빠졌다. 손톱이 그렇게 중요한 부분인지 몰랐다. 다시 손톱이 날 때까지 꽤 불편하게 지냈던 터라 행여 또 다칠까 조심 조심 식판을 꺼낸다. 아침 식사 때 나갈 누룽지를 눌린다. 누룽지를 뒤집어야 하는 내 팔뚝은 온통 덴 자국이다.


식당일, 만만치 않다. 손이 망가진다고 설거지도 못 하게 하던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찔끔 나온다. 썰렁한 식당 안에서 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다람쥐처럼 일한다. 한가해진 틈을 타 어릴 때 읽었던 소공녀의 주인공이 되어 본다. 부자가 된 아빠의 동업자가 날 다정하게 부르며 “드디어 광산에서 다이아 몬드가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열병에 걸려서 너를 이렇게 늦게 찾아 왔다.”라고 하며 손을 잡고 이곳에서 데리고 나갈 걸 상상하며 피식 웃는다. 57세의, 맨손으로 호랑이라도 때려잡게 생긴 소공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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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손님이 왔다. “요즘 반찬이 왜 이래? 요즘은 짬밥도 이렇게는 안 나와.” 멋쩍게 웃으며 ‘주는 대로 먹어.’ 하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켜버린다. 머릿속에는 ‘너 왜 나한테 반말 하느냐. 내가 아무리 귀엽고 어려 보여도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맴돈다. 진지한 구석이라곤 약에 쓰려고 찾아봐도 없는 나의 상상력이란!

 

나의 두 번째 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다. 이렇게 일하고 60만 원 받는다. 두 번째 일도 만만치 않다. 150인분의 밥을 둘이서 한다. 일하는 것에 비해 월급이 적지만 배식하고 남은 반찬도 갖다 먹으니 반찬값도 절약된다며 위안으로 삼아본다. 하지만 이 반찬을 아이들에게 먹일 때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 엄마 생각이 났다. 유비네 엄마는 유비가 추접스럽게 차 얻어왔다고 차를 강물에 확 쏟아버리던데?

 

이러고 다니다가 병이 왔다. 당이 높다는 말에 나 자신에게 신경 쓰지 못해서 병이 나버린 내 몸이 불쌍하다. 두 번째 일하는 곳도 고용보험이고 퇴직금이고 없다. 여기나 저기나 노동자를 부리는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나에게는 대책이 없다. 외할머니는 평생 예수를 믿었지만 어려운 일 생기면 “전생에 쌓은 네 업보려니 해라.”라고 말해 우리를 웃겨주셨다. 새벽일이 끝나고 바로 또 출근해서 점심 준비를 하면서 전생이 있다면 과연 나는 전생에 뭔 짓을 해서 하루 내내 남의 밥을 해주나 생각을 한다. 가마솥에 불을 때고 국솥에, 밥솥에 온갖 불판에서 날 덮치는 그 열기가 벌써 무섭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곧 올 여름 걱정에 한숨이 쉬어진다.

 

쉬는 날은 한 달에 한 번. 다른 직원들이 연차가 어쩌느니 복지카드가 저쩌느니 성과급이 많으니, 적으니 불평할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밀려왔다. 맘씨 좋아 보이는 직원이 물어온다.

 


“아주머니 여름휴가 안 가세요?”

 

“휴가 없어요. 힘 좀 써주시던지.”

 

“제가 무슨 힘이 있어요.”

 


정색한다. 우리는 추석과 구정 당일 이틀 쉬는데 그것도 일당에서 제한다. 작년에는 자기의 한 끼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직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추석과 구정에도 나와서 밥을 팔았다. 불의는 용서해도 불이익은 절대 용서 못한다더니 그려, 내 염병이 네 고뿔만 하겠냐. 자기들의 작은 불편함도 절대 참아주지 않는 야속한 나의 상전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스스로 일어나 밥을 차려 먹고 다니던 꼬마가 이제 중2가 되었다. ‘아이가 자립심을 키워서 좋지 않을까?’ 따위의 위로는 하지 마시라.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 뱃속에서부터 세상 빛 보는 날까지, 아이 낳으러 병원 가는 차 안에서까지, 징그럽게 싸워 댄 부모의 영향일까. 아이는 우울과 퉁명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이젠 중학생이 되어서 엄마 손이 별로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엄마 새벽에 안 나가면 안 돼요?” 라며 은근하게 물어온다. 그리고 아이가 하는 말.

 


“엄마 나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거야. 나 엄마처럼 살까봐 결혼하기 싫어. ”

 


애써 아이에게 최대한 교양 있게 “너희 아빠 같은 사람 흔하지 않아. 일부러 만나려 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분이란다. 너는 평범한 사람 만나서 행복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지만 사실 나도 결혼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흥사단에서 남편 검은 두루마기 입혀 남들이 죽어라 말려 댔던 결혼식 할 때까지만 해도 허영심이 하늘을 찔렀다. ‘난 너희와 달라. 세상 기준에 따라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결혼할 거야. 정말 아무것도 없는 노동자랑 결혼할 거라고.’

 

세상을 한 번 확 바꿔 보고 싶었다. 이런 썩은 세상을 고쳐주고 싶었다. 열심히 땀 흘린 만큼 잘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거의 변한 것이 없다. 내 생활만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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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고 눌려 사는 사람들이 다 힘을 합쳐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다. 고생을 하면 뭔가 나아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똑같다. 일 년에 100만 원 모으기도 벅차다. 빚이나 더 안 지면 고마울 뿐. 그러나 내 귀에 들리는 것은 ‘누구는 몇십 억을 먹었네, 몇백 억을 먹었네.’ 따위의 말들이다. 오히려 수억밖에 못 먹은 놈은 쪼잔해 보이기까지 한다. 제도권 안에 들어가 망가지는 수많은 사람을 보며 욕하기에 앞서 그들이 부럽기만 한 나는 참 형이하학적 인간이다.

 

몸으로 부딪히는 일을 하면 몸도 힘들지만, 마음에도 시퍼런 멍이 든다. 누군가 아들 장학금 신청한다고 서류 하나 떼어 달라니까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며 내가 아줌마만 위해서 일하느냐고 잡아먹을 기세로 달려든다. 근로계약서 달라니까 떨떠름해하며 주지도 않는다. 은행에 가도 월급이 분산돼서 입금되는 통에 융자도 안 된다. 연금도 처음부터 냈으면 탈 수 있었을 텐데 일당만 딱 받기에 고용보험도 국민연금도 없다.

 

올 정월에 사무실에서 불러서 나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참 잘됐네요. 아주머니들께 너무 못해 드리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는데 올해부터 퇴직금, 고용보험, 연금 다 적용되고 연차도 발생합니다. 연차 안 쓰면 연말에 돈으로 드릴게요. 휴가 쓰시려면 미리 얘기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퇴직금도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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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다.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갑자기 아플 때도 있을 텐데 어떻게 미리 얘기해야 하는지 걱정도 들지만 어쨌든 휴가가 생겼다. 이제까지는 아프면 기어서라도 나갔는데 이젠 정 아프면 하루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올 7월에 미국에서 조카들이 왔다. 난 여행이라도 한번 가려고 사무실에 전화했다.


 

“과장님, 새벽 아줌마에요. 휴가 좀 쓰려고요.” 수화기 너머로 기분 나쁜 고요가 흐른다.

 

“난 잘 모르니까 부장님과 통화하세요.” 얼마나 쌀쌀맞은지 감기 걸릴 뻔했다.

 

“부장님 저 휴가 좀 쓰려고요.” 더 긴 고요가 흐른다.

 

“아주머니 휴가 쓰면 연말에 돈 안 나옵니다.”

 

“알아요. 휴가로 쓸 거에요.”

 


딴에는 힘주어 단호하게 말한다. 많이 당황한 듯한 부장님이 말씀하신다.

 


“누굴 대신 세워놓고 가야 하는데 야근 아주머니께 부탁해 보세요.”


 

아니, 새벽 1시에 퇴근한 사람한테 새벽 3시에 또 나오라고 하라고? 숫제 안 된다고 하시지. 그러나 잘릴까봐 벌벌 떠는 나는 힘없이 알겠다고 대답한다.

 

나의 퇴직금과 연금은 퇴직한 용감하고 씩씩한 언니야 덕분이었다. 난 아무 짓도 않고 손 놓고 투덜대고만 있었는데 그 분이 소송을 해서 이런 감격의 날이 오게 됐다. 올해부터 우리도 세금을 떼고 퇴직금도 준단다. 받을 것을 감히 기억도 못한 그동안의 퇴직금 530만 원이 입금됐다. 결혼 후 20년 만에 내가 만져 본 가장 큰 돈이다. 이게 웬 떡이냐. 당연한 일인데도 좋아 죽겠다. 그런데 퇴직금이 내 계산과 달라서 사무실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간단히 대답한다. “맞게 계산했어요.”


금액 산정의 근거도 없고 명세서도 없다. 맞게 계산했다는 금액만 입금됐을 뿐이다. 출근부에 사인 안 했다고 하루치를 빼고 준 적도 있었다. 하루치 안 들어왔다고 하니 “아줌마가 싸인 안 했잖아요!”라며 앙칼지게 몰아세운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한심하다. 결근하면 저들에게 당장 보고될 텐데 잊어버리고 다음 날 사인했다고 하루치를 빼다니???

 

대체 내 일당은 얼마일까? 이것저것 떼고 85만 원 정도 입금되고 2월에는 74만 원 입금됐다. 이런저런 것 안 떼고 줄 때는 총액 나누기 근무일 하면 일당이 딱 나왔는데 이젠 도대체 어떻게 된 계산인지 모르겠다. 뭘 얼마나 떼고 퇴직금은 어떻게 적립되고 있는지 진짜 궁금하다.

 

어쨌든 나는 일 년짜리 무기계약 직원이 되었다, 아직 부러워하지 마시라. 또 있다. 한 달에 두 번이나 쉬게 해준다. 너무 부러워들 마시라. 주 5일 근무란 도대체 어느 나라 얘긴가. 난 한 달에 두 번이나 쉰다.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오직 살기 위해 조용히 살고 있다. 따지기도 싫다. 종만 치면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오직 월급날을 기다리며 침을 질질 흘린다. 썩은 침 냄새가 코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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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내 소원은 비정규직이다. 꿈에도 소원은 비정규직이다. 내 사전에서 통일은 둘째로 밀려버린 소원이다. 비정규직을 없애야 한다고 시끌시끌할 때에도 누가 뭐래도 내 소원은 비정규직이다. 노조비도 내보고 노조활동 겁나게 하다 잘려서 노조에서 모아주는 생활비 한 번 받아 써 보는 게 내 소원이 되었다.






 


편집부 주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비정규노동 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집 <쉼표하나>에서 

본지 편집부가 발췌한 글입니다.



좋은 글을 널리 알리고자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기사 제휴하였기에 

추후 좋은 글을 선정해 

본지에 틈틈히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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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길 기원합니다.




 







한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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