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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18. 화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지난 글에 달린 리플을 훑어 보다가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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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리플에 세심히 신경 쓰는 여린 성격이다



이 글을 달아준 횽한테 졸라 감사하며 저 문장을 곱씹어 봤다. 제대로 된 미술사 없냐? 제대로 된 미술사, 제대로 된... 


그렇다고 갑자기 내가 똭 하고 제대로 된 미술사를 쓸 수 있을 리 없잖아. 게다가 그렇게 ‘제대로 된’이라는 단어가 역사 속에서 얼마나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수많은 이야기를 읽어보고 모으고 취합해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지 글을 쓰는 필자들이 일방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이야기는 미술 이야기도 역사 이야기도 아닌,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다.




어떤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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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말 이탈리아에 한 화가가 있었다. 아니 화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보는 편이 그를 평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 그닥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닌 이 녀석은 이상하게 성격이 배배 꼬였다. 밀라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당시의 도제 시스템 내에서 교육을 받은 다른 이들처럼 평범한 미술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분노 조절 장애가 있으셨는지 종종 사고를 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밀라노에서 자취를 감추고 로마로 이동한다. 소문에는 그가 밀라노에서 사람을 죽이고 징역형을 선고 받자 이를 피해 달아난 것이라는 설이 난무한다.


로마로 간 후 이름을 바꾼 그는 종교화와 모작을 그리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로마에서도 그는 크게 인정받지 못하고 예술가로서의 창작욕에 의한 작업이 아닌 먹고사니즘에 매달린 그는 예술적 재능을 그다지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그리다 보니 그에게도 후원자가 나타난다. 당시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혹은 재능이 없어도 수많은 화가들이 그런 것처럼, 그 역시 후원자 덕에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쪽방이나마 하나 얻게 되자 그는 자신의 예술 혼을 하얗게 불태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쉽게 진행되겠는가. 추기경의 후원을 받으면서도 그는 엄청난 출세 가도를 달리기는커녕 자신의 방 천정에 구멍까지 뚫어가며 밤마다 달빛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세상은 그의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몇 년 동안 방세도 내기 힘들 정도의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다.


원래 더러운 성격에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자 그는 술과 도박, 여자에 빠지게 되고 결국 도박 빚 때문에 동료 예술가를 살해하게 된다. 그는 평소에도 항상 칼을 차고 다닐 정도로 예술가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호전성과 전투성에 더불어 더럽고 불같은 성격을 고루 지니고 있었다.(물론 당시엔 개나 소나 칼 정도는 들고 다녔겠지만 말이다.)


그는 로마에서 사람을 죽인 후 자신도 큰 부상을 입고 또다시 도피길에 오른다.


그가 죽인 예술가는 추기경들에게 매춘부를 알선해 주는 역할도 하는 소중한 ‘포주였는데, 그가 죽었다는 것에 추기경들이 얼마나 불같이 화를 냈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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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로마를 떠난 그는 나폴리를 거쳐 몰타섬으로 가게 된다. 그 곳에서 몰타 기사단 수도회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그리게 된다. 수도회 대표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 그의 그림을 맘에 들어한 수도사들은 그를 기사로 임명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이제 정착을 해서 조용 조용 지내나 싶었는데 또 그림 주문자와 싸우게 된다. 주문자에게 스트레스 한번 제대로 풀어버린 그는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된다. 당시 그 곳의 감옥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그는 감옥을 탈출해 또다시 시칠리아와 나폴리를 돌아다닌다.


그러던 중 로마에서 그가 사면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는 서둘러 로마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에 그의 그림은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로마 교황의 조카에게 가져다 줄 그림도 한 장 그렸다.


로마로 출발하기 직전 이 아저씨 또 성질을 못 이기고 쌈박질을 한다. 이게 단순히 우리 주먹다짐 수준이 아니고 칼을 들고 싸우는 그런 싸움이기에 그는 또 부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배를 타고 떠난다.


심한 부상 때문이었을까? 배의 중간 기착지에서 취조를 당하던 그를 놔두고 배는 홀연히 떠나버리게 되고, 그 곳에서 그는 홀로 남아 최후를 맞는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에게 원한을 품은 자가 보낸 자객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설이 더 신빙성을 얻고 있다.


짧은 삶 동안 수많은 범죄와 살인에 연루되었던 그의 삶이 끝났을 때, 그의 나이 마흔이 채 안되었다.




그의 예술 세계


앞의 내용을 읽고 누구인지 알고 있는 님들도 있을 것이고 그냥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횽들도 있을 것으로 안다.

 

그는 이탈리아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줬으며 당대 가장 천재적 화가 중 하나로 꼽히는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이다.


한강르네상스 후기르네상스(혹은 매너리즘)시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의 작품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매너리즘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후기르네상스는 국내 전문 용어로 소위 ‘자뻑 스타일 이라고 부를 만하다.


궁극의 이상적인 미를 위해 그림에 그려진 사람들의 팔다리는 길어지고 인체의 비율은 적정인 6등신(이게 적정이다. 8등신이 아니라고!!)을 넘어선 10등신 이상의 인체 비율들이 마구 그려지고 현실감 없이 넘쳐나는 옷 주름 등을 보다 보면 “오바다 오바”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눈으로 보이는 오바스러움 뿐 아니라 그림의 내용에서도 수많은 혹은 과도한 상징성과 난해한 도상학 등을 사용해, 그림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화가 자신들을 뽐내는 데에 더욱 열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매너리즘을 이렇게만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일단 좀 까야 바로크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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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너리즘의 대표적 작품

파르미자니노

긴 목의 마돈나 1534-40



그러한 시대적 경향에 대해서 카라바조는 동조하지 않았고 조금 더 솔직하고 그림의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 만으로 명확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흔히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부른다.


게다가 그는 강한 빛을 이용하여 화면에 관람자가 집중해야 할 부분과 아닌 부분을 확실하게 나누는 그런 연극적인 방식을 적극 사용한다. 마치 현실에서 보았을 법한 한 장면을 빛의 대비를 통하여 강하게 부각하고 그 곳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방식이다.


이러한 기법은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화 등에서 곧잘 사용되곤 한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소금을 묻히고 그 위에 그림이 나타나는 현대 사진의 인화와 같은 기술을 가장 처음 시도한 화가라고 최근의 연구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


내용적으로도 카라바조는 그림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동안 신성시 여겨지던 많은 부분을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영역에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길거리 거렁뱅이, 술집의 매춘부 등 일상 생활에서 보이는 사람들을 모델로 성경에 나오는 혹은 신화에 나오는 성인들의 그림을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의 인물들을 조금 더 사실적이고 친근한 느낌을 주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당시 교회에서도 교회에 걸려있는 그림이 일반인들에게 잘 먹힌다면 그들이 내세우는 신앙심 혹은 신성함과 크게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하였지만 카라바조의 경우에는 당시의 관점으로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실제로 그는 예수의 엄마 마리아의 모델로 로마의 유명한 매춘부를 데려다 그리고 난 후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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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테오와 천사(1602)

 

 

위 그림은 2차대전 당시 베를린에서 유실된 카라바조의 그림이다.


글을 모르던 마테오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쓴다는 그런 내용인데 그림 속의 마테오는 정말 무식하고 글을 모르는 돌쇠처럼 생겼다. 굵디 굵은 손마디와 책을 보며 동그랗게 뜬 큰 눈, 많이 못 배운 사람이나 입을 법한 헐벗은 옷차림... 게다가 천사의 포즈는 뭔가 이상야릇하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둘의 관계도 뭔지 모르게 에로틱하게 보인다.


당연히 그림의 주문자는 그림을 보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조금 더 위엄있고 학자적 풍모가 풍기는 마테오와 에로틱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천사의 배치를 조정하여 그림의 분위기를 완전 바꿔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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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테오와 천사 2(1602)



다음 그림은 예수가 3일만에 부활했을 때 그를 믿지 못하는 제자가 예수의 상처를 확인하며 예수가 예수가 맞는지 확인하는 장면이다.


그림의 사실적 묘사도 충분히 놀랍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아니 예수가 살아났으면 살아난 거지 뭘 불경스럽게 의심을하고 그래!!라는 명목으로 이 그림 역시 주문자와 마찰을 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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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도마> 1602-1603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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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맞는지 어디 함 보자!



즉, 카라바조는 자신의 삶이 보여주듯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 방식을 그림에 그대로 녹여냈고 당시에는 종교계로부터 큰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 이후 수많은 예술가와 그림의 감상자들로부터 끊임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의 일생의 궤적을 떠나 그의 ‘자연주의’는 우리가 추하다고 생각하든 아름답다고 생각하든 그 안에서 자연이 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그의 치열한 실험이자 예술작업이었다. 따라서 그 이전의 화가들과 달리 그의 종교화에는 당시 그가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낸 바로 그 아름다움이 녹아있다.


그의 영향은 너무 막대하여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저 멀리 네덜란드에서도 그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화가들이 네덜란드 바로크의 중심이 되어 그 흐름을 이어가게 된다. 실제 네덜란드의 화가 페터 파울 루벤스는 카라바조의 문제작을 만토바 공작에게 구입하라고 권유했고 그가 그림을 구입하자 로마의 수많은 화가들이 요청하여 그림이 도시를 떠나기 전 1주일 간의 특별전을 열어줄 정도였다.


카라바조에 대한 평가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의 업적(그림들)과 한 사람으로서의 카라바조에 대한 평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죽은 지 이미 400여 년이 지났고 그가 남긴 피해자에 비해 그의 작품이 현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더 크므로 그는 위대한 예술가로 기록되어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만약 그가 현재 살아있는 예술가였다면 그가 저지른 일로 인해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감옥에서 푹~ 썩고 있을 테지만 그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가 저지른 수많은 살인도 보헤미안적인 카라바조의 스타일로 포장되는 논지도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고 읽는 역사나 혹은 미술에 대한 글은 대부분 어느 한 부분을 떼어내 다시 각색하고 편집한 문학적 작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글들은 일반적으로 독자의 흥미를 위해 조금 더 드라마틱한 내용이 첨부되고 평이한 내용은 삭제되기 마련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실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평가가 변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일들을 통해 독자들은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면 충분히 잘 아는 사람들이 나타나 수정을 해준다.


마치 최근의 명성황후 뮤지컬에 대해서 걸신 강헌 샘이 불같이 승질을 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정확한 정보만 전달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들은 수없이 많다. 다만 이런 책들은 그 재미없음의 정도가 심하므로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읽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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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의 신 바커스 강헌 샘의 어린 시절

귀도 레니 (1623)



우리 모두는 스스로는 합리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카라바조의 이야기를 읽고 어떻게 판단하였든 중립적 시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란 쉽지 않으며 인간이 절대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모두 내가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 아니겠나.


판단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글을 쓰다가 우연히 뉴스에서 전두환이 쓴 붓글씨들이 경매에서 전부 팔려나갔다는 것을 들었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씁쓸하다.


카라바조를 필자도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그의 삶이 어떠했든 그가 몇 건의 살인을 저질렀든 결국 필자가 보았고 알고 있는 카라바조는 위대한 화가임에 틀림없다.


물론 전두환이 예술가는 아니다. 그 반짝반짝한 머리가 예술적으로 빛나는 것은 인정한다만...


그의 붓글씨가 비싼 가격에 경매에서 팔려 나갔다는 것은 그의 삶을 알고 있는 나에게 아니 저런 갖다 태워버려도 시원찮을 것들은 왜 비싼 돈을 주고 사는가라는 의문과 답답함을 동시에 전해주지만, 결국 나도 논리적으로 편파적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한다.


ㅆㅍ. 내가 지금 전두환 이야기를 하면서 논리를 따지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미안해진다. 아 이 찝찝함이란.

 

그럼 다음에 보자~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트위터 : @tadeusinde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