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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19.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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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에 있었던 <대구에너지회의>에서 맹활약(!?)을 하신 Y기사님!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외국 손님들에게 한국인의 ‘의전’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 우리의 Y기사님!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것 같던 Y기사님 입에서 난생 처음 들어본 ‘단어’가 튀어나오면서 이야기는 ‘블록버스터’로 방향이 선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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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모차”

 

 

상모차? 도대체 상모차가 뭐지?

 

 

“저도 상모차를 보고 듣기만 했지, 실제로 출동해서 제압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아, 그 뿌듯한 표정이란. 마치 기갑보병들이 전차는 많이 봤지만, 실제로 ‘전차전’은 처음 봤다는 무용담을 말하는 것 같았다.

 


 

1. 상모차 출격

 

그때 룸미러로 보인 Y기사님의 표정을 봤어야 한다. 이건, 역전의 용사가 손자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자신의 무용담을 전해주는 그런 느낌? 2차 세계 대전 때 척탄병으로 참전한 노병이 미하일 비트만의 전투를 설명해 주는 느낌이랄까?

 

 

“괜히 전차킬러가 아니었어. 에이스 중의 에이스였지, 스탈린 중전차란 게 말이다. T-34랑은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어요. 판저파우스트도 튕겨낼 기세였지. 아, 우리는 이렇게 죽는구나하고, 네 할머니 사진을 꺼내는데,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스탈린의 포탑이 하늘 높이 날아 오르는거야. 뒤이어서 소련 땅크들이 펑펑 터져. 아, 슈투카가 날아왔구나 싶었는데, 웬걸 사이렌 소리가 안 들렸거든. 아, 세상에 반대쪽 능선에서 불이 번쩍이며, 티이거가 달려오는 거야. 그 기다란 88미리 포가 불을 뿜는데, 티이거가 괜히 티이거가 아니었어.”

 

 

이런 느낌이랄까? 도대체 상모차가 뭘까? 한참 뜸을 들이던 Y기사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들한테 무전기를 하나씩 주거든요?”

 

“무전기요?”

 

“예, 보통 이런 수행을 할 때보면, 자동차 수십대가 우르르 몰려가거든요? 장관이죠. 근데, 이 차가 멈춰서면 큰일나죠. 경호상의 문제도 있지만, 행렬이 끊기면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고...여튼 그래서 저희들은 칸보이 받으면, 무조건 밟아요. 시속 100킬로는 껌이죠. 시내에서도 무조건 밟아요. 전부 신호 받아주고, 앞에선 사이드카가 길 막아주는데 그냥 씽씽 달리는 거죠. 경찰 칸보이팀이 길을 막아주고 열어주고를 다 해주거든요.”

 

“아, 그렇군요. 근데 무전기는 왜요?”

 

“(회심의 미소) 칸보이를 받을 때는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기본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죠. 선도차가 가는 대로 그대로 밟으면 되거든요. 무전기는 브레이크를 위해 있는 거죠. 전방에서 ‘감속’을 할 상황이 벌어지면, 무전기로 연락이 오죠. <감속준비>, <감속대기>, <감속>, <완전감속> 등등 사인이 와요. 감속준비라는 무전이 오면, 엑셀레이터에서 발을 떼죠.”

 

 

완전 ‘프로’의 느낌이었다. 야,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기사님 정말 멋진데요?”

 

“(자부심) 그게 우리 일 아니겠습니까? 대구 도심을 백 놓고 달린다는 거.”

 

“근데 상모차는 도대체 뭐죠?”

 

“아, 상모차요. VIP가 뜨는 행사가 되면, 아는 사람들은 아는데, 그때 지휘차가 GMC예요. 서브밴. 이게 지휘차로 행렬을 진두지휘하죠. 그리고 후미에 상모차가 붙죠.”

 

“상모차. 그게 상호명인가요?”

 

“아, 그건 저희들이 붙인 별명입니다. ‘그쪽’에선 방패차라고도 부르고, 우리는 상모차라고도 부르죠.”

 

“상모면...”

 

“그 왜 사물놀이 같은 거 하면, 상모 쓴 애들이 팽팽 고개 돌리잖아요?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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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막 도나요?”

 

“(웃음) 그게 아니라, 다른 차들은 경광등을 길게 한 줄 짜리를 위에 붙이잖아요? 상모차는 경광등 하나를 지붕 위에 단다고 상모차예요.”

 

“아.”

 

“이게 구형 에쿠스거든요? (차 핸들 두드리며) 제가 여러 차를 몰아봤는데, 튼튼하기론 구형 에쿠스가 최고예요. 이게 무겁고, 튼튼하죠.”

 

“상모차가 구형 에쿠스인가요?”

 

“그렇죠. 일반 에쿠스를 개조했다고 하더라구요. 차 안에 레일을 깔아놔서 어지간한 장갑차 수준이라더군요. 이게 맨 후미에 2대 따라붙어요.”

 

“그 상모차가 하는 일이 뭐죠?”

 

“(웃음) 몸빵이죠.”

 

“...몸빵이요?”

 

“VIP를 노리는 게 꼭 ‘총’이란 법은 없잖아요? 대형 트럭이나 그런 걸로 밀어버릴 수 있잖아요? 그런 수상한 차가 행렬에 붙는다 싶으면, 이 상모차들이 달려들어 몸빵을 하는 겁니다.”


“아, 그래서 방패차라고 하는군요?”

 

“(글쵸) 방패차 모는 사람들도 다 청와대 경호실 소속인데, 같이 운전하다 보면 다 안면 트게 되죠. 아저씨들 보니까 몸이 아유, 저랑 연배도 비슷한데, 전부 특공대 출신이고. 다들 생명수당 받고, 여튼 이야기 들어보면 재미있어요.”

 

“근데 그게 출동했다면서요? 뭔 사고가 생긴 거에요?”

 

“(인상 )그게 또 대구촌놈들이 사고를 쳐서요.”

 

“(웃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을 데려온 겁니까?”

 

“(짜증) 그러게 말입니다. (사이) 하긴 그 사람들 탓할 게 아니죠. 평생 칸보이를 해 본 경험이 없으니까. 무전기 주고, 계속 내리 밟으라고 해도. 난생 처음 이런 거 해 본 사람은 겁이 나거든요? 저희들이야 차량 간격 50센치 벌어진다 해도 1미터에 맞춰서 쭉 달리거든요. 안 그러면 행렬이 한정없이 길어지거든요.”

 

“그렇죠.”

 

“(웃음) 지휘차가 알아서 어련히 속도 줄여라, 커브 돈다. 루트 따주고 다 해주니까 우리는 시키는 대로 밟고, 돌리면 되는데. 대구 촌놈들이 쫀 거예요. 시내에서 그렇게 밟은 경험이 없는 거죠. 시속 100~120 놓고 달리는데, 차량 간격은 1미터 안쪽이라면 쫄죠. 처음 경험하면 쫄 수밖에 없어요.”

 

“(웃음) 쫄겠죠.”

 

“그러니까 자기 딴에는 안전거리 확보한다고 슬슬 거리를 벌린 거죠. 그게 순식간에 2~30미터가 확 벌어진 겁니다. 무전기에서는 지랄지랄을 하는데, 이때 사단이 터진 겁니다.”

 

“(긴장) 무슨 일이요?”

 

“벌어진 그 틈 사이로 렉스턴이죠. 일반인이 끼어든 겁니다. 하여튼, 개념들이 없어서.”

 

“(웃음) 그래서요?”

 

“그 렉스턴 운전자도 행렬 사이가 벌어지니 그런 갑다 하고 들어온 것일 수도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쪽이 빨리 지나가니까 묻어가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바로 상모차가 출동했죠. 갑자기 제 앞을 뭐가 휙 하니 지나가요! 빨간 경광등 밝히면서. 그리곤 렉스턴 앞을 그대로 들이받는 거예요.”

 

“우와!! 들이받은 건가요?”


“(웃음) 거의 들이받을 기세로 들이밀죠. 들이받아도 문제는 안된다고 했어요. 경호수칙상. 바로 코앞에서 한 10센치? 그것도 아닌 거리로 딱 막아버린 거예요. 렉스턴 운전수 놀라서 브레이크 밟고, 운전수 놀라서 튀어나오려는데, 이쪽에선 검은 양복 입은 경호원 둘이 노려보면서 튀어나가고. 상모차 대단하더라구요. 완전 가미카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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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턴 운전수 식겁했겠네요?”

 

“(웃음) 깨갱해야죠. 상모차는 말 그대로 장갑차예요. 장갑차. 경호수행 중에는 들이받아도 괜찮대요. 렉스턴 아저씨는 뭔 일인가 싶어 끼어들다가 황천갈 뻔 했구요.(웃음) 하여튼 의전이랑 경호에 기본이 안 돼 있어서 그런 일이 터진 겁니다.”

 

 

웃었다. 이제는 익숙해 진 거 같은데도, ‘의전’과 ‘경호’란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렇게 Y기사님의 ‘대구에너지 회의’는 끝이 났다. 의전 상에, 경호 상에 문제가 없는 것이 기사님에게 좋은 일이니까, Y기사님에게 대구에너지 회의는 성공한 국제회의였을 것이다.

 


 

2. 진상에 관해

 

Y기사님의 차를 타면서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게, 배차를 받으면 모실 분의 이력을 ‘인터넷’으로 검색한다는 것이었다. 좀 더 잘 모시기 위해서 였을까? 아니면, 그들만의 어떤 수칙이 있는 걸까?

 

 

“(웃음) 이 직업도 서비스업이니까요. 우리가 어떤 분을 모시느냐 정도는 알아야죠. 그리고 진상 손님들이 계시니 그걸 피하는 이유도 있고.”

 

“...진상이요?”

 

“예, 진상이요. 운 좋으면, 강사님처럼 말 통하는 분 모시고 즐겁게 운행하기도 하지만 재수 없으면 진상으로 찍힌 분을 모실 때도 있죠. 그런 경우에는 아예 운행을 미루거나 넘기거나, 아예 모범택시를 하루 대절해서 넘기기도 해요. 우리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진상이 한 명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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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떤 사람인데요?”

 

“(분개) 유명하죠. 그게 사람들한테 유명한 게 아니라 저희들한테 유명하죠. 수원에 있는 사람인데,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은데 알음알음 강연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인 거 같아요. 인터넷 검색해도 안 나오는 거 보면 유명하지 않은 건 분명해요.”

 

 

아, 인터넷에 신상 프로필을 올려야 하는 걸까?

 

 

“그 사람이 기사님들 세계에서 진상으로 찍힌 이유가 뭐에요?”

 

“인간으로서 기본 개념이 안됐죠.”

 

“어떤 면에서요? 입이 험해요?”

 

“음. 뭐 그런 거도 있겠지만, 그건 뭐 그냥 넘어가도 되죠. 이게 기본적으로 서비스업이니까요. 근데 정말 개념이 없어요. 차에 타면, 신발을 벗어요. 신발 벗는 거도 괜찮죠. 그런데 그걸 앞자리에 턱하고 올리는 겁니다. 조수석에 다리 올리는 건 저희들도 다 이해하는데, 다리를 콘솔박스에 올리는 겁니다. 그건 안전운전에도 방해되고, 저희한테는, 저희 얼굴에 발 올려놓는 거랑 똑같은 거거든요. 냄새나는 건 둘째치고 모욕이죠.”

 

 

아, 정말 개념이 없는 사람이구나. 실제로 배차를 받아서 차를 타면, 조수석을 바짝 끌어당기고, 심지어는 앞으로 눕힌 경우가 많다. 어떤 차의 경우에는 운행하는 도중 신발을 벗으라고 슬리퍼를 따로 준비해 둔 차도 있다. 최대한 뒤에 탄 사람의 편의를 봐주기 위한 노력들이다. 그런데, 발을 앞으로 뻗어 콘솔박스에 얹는다는 건 내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 간다.

 

 

“그 사람이 정말 유명해요. 수원지역의 기사들은 그 사람 배차나면, 일부러 운행을 안 해요. 저희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요. 피하다 피하다 안 되면, 자기가 돈 내겠다고 모범택시 하루 대절해 대신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모범 대절해서 10만 원 나오면, 내가 운행해서 버는 돈이 8만 원이래도 2만 원 얹어서 줄 테니 데려가라고...”

 

“그 정도에요?”

 

“(부르르) 진상 중에 개진상이죠. 한번은 다른 회사의 기사 선배가 그 사람 태우고 운행 갔다가 너무 화가 나서 싸웠어요. 아예 핸들을 안 잡으면 안 잡았지 이 사람 못태우겠다고, 나중에 이 진상이 회사에 전화하고 난리쳐서 선배가 잘린 거예요. 선배도 미련없이 접고 다른 회사 갔는데, 거기서 또 이 진상을 만난 거죠. 배차가 나왔는데, 배째라고 못 태운다고 난리난리... 별로 실력도 없고, 가는 곳도 대기업 같은 데가 아니라 이상한 데 많이 가는데. 저희들 사이에선 이 사람이 실력은 없는데, 인맥으로 어찌어찌 입에 풀칠하고 산다고 소문이 났어요.”

 

 

아, 조심해야겠다. 난 그래도 기사님들하고 대화할 때는 꼭 존칭을 쓰고,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해드리는데... 결정적으로 신발도 안 벗고, 콘솔박스에 발도 안 올리는데. 그래도 조심해야겠다. 듣다 보니 기사 세계도 한 다리 건너면 다 알고, 한 번 소문이 잘못 나면 워낙 좁은 판이라 이야기가 다 퍼지는 거 같았다.

 

(그 ‘진상 강사’가 누군진 모르겠는데, 혹여 이 기사를 보게 되면 반성하고, 앞으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 좋은데, 수행기사들에게 있어서 ‘콘솔박스’에 발 올리는 건 아주아주아주 커다란 ‘모욕’이란 것만 기억해 두길 바란다.)




3. 꿈이 없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문득 기사님의 앞으로가 궁금해졌다. 얼마전 작은 빌라 한 채를 사게 됐다며, 뿌듯해 하시던 Y기사님...

 

Y기사님은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고 한다. 회사 다닐 때도 월급이 210만 원, 밤에 뛰는 대리기사로 한달에 7~80만 원을 벌었는데, 이걸 모아서 목돈을 모았다고 한다.

 

 

- 전 2,000만 원이 모이면 무조건 전세를 옮겼어요. 전세로 목돈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다 보니 집을 사게 됐어요.

 

 

힘들던 시절 이 수입으로도 한 달에 100만 원씩 악착같이 적금을 들었고, 지금도 1년에 딱 이틀만 쉬고, 무조건 운행을 뛴다고 했다.

 

 

“일자리가 없다고요? 제 눈에는 전부 일자린데요? 저는 70살까지 돈 벌 수 있어요.”

 

“그럼 70살까지 핸들 잡으실 거예요?”

 

“음, 지금 생각으론 한 10년 간 더 빡세게 벌고 그 다음은 귀농을 하려구요.”

 

“귀농이요?”

 

“예, 저 10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어요.”

 

 

아... 놀랐다. 벌써 인생계획을 이렇게 짜놓고 계시다니,

 

 

“다음 카페에 가 보면, ‘귀농사모’란 데가 있어요. 몇 년 전부터 선배들이랑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영월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거기 가 보면, 1만 원짜리 땅이 널렸어요. 농협에서도 지원 많이 해주고, 널린 게 노는 땅이니 말이죠. 2층 조립식 주택이면 4천만 원 내외면 어찌어찌 집을 지을 수 있거든요. 시골에서 차 한 대, 오토바이 한 대면 교통 걱정은 없고, 까놓고 보험도 들었고, 연금도 다 들어놨거든요. 계산해 보니 한 달에 3~40만 원은 연금 나오고, 이것저것 하니 국가에서 나오는 것도 있고. 제가 버는 것도 있으니, 저랑 아내, 장인장모님 모시고 사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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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장인장모님도 모시고 사시는구나.”

 

“(웃음) 저야 조실부모했으니... 도시에서 이렇게 번잡하게 사는 것보다, 그냥 한가하게 가서 버섯이나 키우려구요. 소일거리죠. 용돈 정도만 벌면 될 거 같아서요. 우리가 거기 돈 벌러 가는 거 아니잖아요? 돈 벌려고 닭 키우고, 돼지 키우면 차라리 도시가 낫죠. 저는 그렇게 계획을 짰어요. 그래서 앞으로 3년간은 지금처럼 휴일 없이 계속 운행하려구요.”

 

“...너무 힘들지 않을까요? 그래도 가끔 쉬어야죠.”

 

“(웃음) 그러게요. 가끔 힘에 부칠 때도 있지만, 한 3년 뒤에는 쉬엄쉬엄 낚시도 다니고 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는 빡세게 벌어야죠. 배한성 씨가 말했잖아요. 웃으면서, 일이 아니고 여행 가는 걸로 생각하고...”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넌지시 물어봤다.

 

 

“기사님, 기사님에게도 꿈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귀농은 제가 보기엔 꿈이 아니고, 노후계획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이 질문을 왜 던졌는지 후회스럽다. 그때 되돌아온 Y기사님의 말은 내게 적잖이 많은 생각들을 던져줬다.

 

내 질문을 받은 Y기사님은 꽤 오랜시간 눈을 껌벅였다.

 

 

“글쎄요. 생각해 보니, 전 꿈이 없네요. 아니, 분명 어린 시절엔 꿈이 있었던 거 같은데, 생각이 나지 않네요.”

 

 

‘생각이 나지 않네요.’란 말을 들었을 때 난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당황했다. 우리가 일상으로 말하는 ‘꿈’, ‘희망’이란 말을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사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그 왜 철학이란 거 있잖아요? 요즘 그런 거 말하는 사람 많잖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뒤에 타신 분들 중에서 진지하게 이것저것 고민하고, 생각하고, 말하시는 분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져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고맙죠. 그렇지만 제가 못 알아듣는, 아니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들도 많거든요. 인생의 철학이라... 이게 철학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좌우명 같이 생각하는 게 하나 있어요.”

 

“뭔데요?”

 

“하루살이 인생은 되지 말자.”

 

“아, 멋진데요?”

 

“(웃음) 멋진 건 모르겠구요. 제 주변에서 수행기사 하시는 분들 많이 뵙는데, 아닌 분들도 많지만, 몇몇 분들이 돈을 버는 이유가 술을 사먹기 위해서란 분들이 있어요. 그 심정 이해 못하는 건 아니거든요. 한 때 잘나갔다가, 사업 망해서 흘러흘러 여기까지 오신 분들, 자기가 탔던 차인데, 이제는 뒷자리가 아니라 앞자리에 앉아서 핸들 잡으면 얼마나 기분이 안 좋겠어요?”

 

 

이해한다. 실제로 그런 기사님의 차를 탔던 적도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는가?

 

 

“그분들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잖아요. 술을 마시든, 마시지 않든 간에 어쨌든 삶은 살아지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삶이 아니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잖아요. 전 그분들을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그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말해요. 그리고 그렇게 살지 말자고 스스로한테 다짐하죠. 기분 좋아 마시는 술 한 잔이면, 좋죠. 그런데 그게 아닌 술은 독이에요. 인생의 독.”

 

 

이렇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얻어갔다. 가끔... 아니, 수행기사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말들을 배운다. 이건 강의실에서,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이다. 삶에서 배어나오는 사골국물과도 같은 이야기다.

 

Y기사님의 ‘꿈’이 뭔지에 대해 꼭 듣고 싶었다. 삶에 치여 어린 시절 자신이 가졌던 꿈이 뭔지에 대해서도 잊어버린 삶.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 Y기사님의 앞날에 빛이 함께 하길 빌며 이만 줄일까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하루살이 인생은 되지 말자.

 

 




첨언 : 길었다. 어쨌든 Y기사님도 끝이 났다. 지친다. 그래도 생각난 김에 몰아 쓰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 같아서 몰아서 썼다. 다음 번에는 이 연재를 잠시 접고, 피눈물 흘리며 쓰고 있는 다른 글을 올릴지, 아니면 Y기사님이 말한 그 ‘하루살이’ 인생에서 ‘반딧불’ 인생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계신 P기사님 이야기를 쓸지 고민 중이다. 뭐 그것도 상황 봐가면서 천천히 써보겠다. 그럼 그때까지 수고들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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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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