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2014. 03. 20.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파토의 쿡찍어 푸욱>은 


시급한 현안에서부터 해묵은 숙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 사회 관련 문제를 다루는 코너임다.


과학 잡설 <호모 사이언티피쿠스>와 교대하면서 격주로 연재되니


 많은 사랑 주시던가.

.

.

.

지난 기사


<파토의 쿡찍어 푸욱> 1. 공포의 마스터플랜

<파토의 쿡찍어 푸욱> 2. 그들은 왜 변절했을까

<파토의 쿡찍어 푸욱> 3. 지금 우리에게 놓인 투쟁의 현실

<파토의 쿡찍어 푸욱> 4. 시대와 진보에 대한 단상

<파토의 쿡찍어 푸욱> 5. 사회의 품격(1)

<파토의 쿡찍어 푸욱> 6.박정희, 이승만, 일제 그리고 개드립

<파토의 쿡찍어 푸욱> 7. 사회의 품격(2)



 

 

 

 

 

…기왕 하던 김에 교통 이야기 함 더 하자 머.

 

소위 선진국에서 어느 정도 생활해 본 분덜은 교통 질서의 준수나 양보 같은 것이 실용적인 면에서 생활을 얼마나 쉽게 해 주는지, 감성적인 부분에서 삶의 무게를 얼마나 덜어 주는지, 그리고 이른바 ‘품격’을 얼마나 높여 주는지 대략 느끼고들 온다. 무엇보다 울나라에서 단순히 몰라서 못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교통 관련 포함해서 한국 사회에 그런 면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이 교통 문제들은 이 사회에 산재한 온갖 문제들과 각박한 현실, 스트레스풀한 삶을 비추는 거울 역할도 하는 거다.

 

그러니 우원이 시시껍절 교통 잔소리나 늘어놓는다고 생각지들 마시고, 울나라 사회 전반에 대한 일종의 메타포로 여기고 받아들이면 적용될 부분이 많지 않을까 싶다.

 


1.jpg

미국도 한때는 이랬다. 단, 100년 전 이야기다.

 


울나라 교통 관련 문제들은 다양하고도 심각하지만, 그 배경을 바탕으로 유형을 나누면 대략 다음 몇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1. 무지형

2. 불신형

3. 경쟁형

4. 습관/둔감형

 

 

이제 요것들을 하나씩 디벼 주마.



무지형


일단 첫 번째, 무지형의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케이스는 ‘로터리 신드롬’이라고 하겠다. 이런 용어는 실은 없고 우원이 지금 지었는데 그럴싸한 거 같으니 그냥 쓴다. 울나라에는 시골이나 한적한 곳 아니면 로터리, 영국식 이름으로는 ‘라운드 어바웃’이 거의 없는데 며칠 전에 정부가 사고 감소 효과를 봤다면서 많이 만들려고 한다는 뉴스가 떴다. 그러니 이넘에 대해 짚어 보기에는 지금이 적기라 하겠다. 관련 뉴스 클릭. 


우원은 어릴 때 부산 살았는데 시내 한가운데 서면 로리라는 게 있었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곳이다. 아 추억 돋고.


 2.jpg



이게 볼 거 참 없는 부산에서 나름 명물이었는데, 이미 옛날 고리짝인 1981년에 헐려 버리고 이후로는 심심한 그냥 신호등 교차로로 바뀌고 말았다. 가운데의 탑은 부산탑이라고 불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촌스러운 철근 콘크리트 조형물일 뿐이지만 그때는 꽤 포스가 있었다.


근데 나름 랜드마크였던 이넘은 대채 왜 헐렸을까.

 

70년대로 추정되는 위 북한같은 사진을 잘 보면, 대낮인데도 교통량이 거의 없다는 점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사회가 전반전으로 이런 상태라면 로리를 도심 한가운데던 어디던 어디다 갖다 놔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인구가 많아지고 차량이 증가하면서 교통량이 늘어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칫 로리에 들어가려는 차, 나가려는 차, 나가지 못한 차 등이 서로 길을 막고 뺑뺑 늘어서 아수라장이 되기 때문이다.

 

우원 기억으로 서면 로리는 그 지경이 되기 직전에, 늘어난 부산의 자가용 수효와 교통량 증가를 감당하지 못해 사라지고 말았다.



3.jpg

그 결과인 현재의 서면 교차로. 사진을 예쁘게 찍긴 했다만.



그럼 로리란건 이렇게 특정 시점이 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걸까? 아직도 로리 많기로 유명한 영국은 교통량이 적어서 가능한 거냐. 당근 아니다. 로리를 사용하는 원칙이 서 있지 않고, 공유되지 않고 또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쓰질 못하는 거다.


세계 어디를 가나 로리에 통용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로터리 안에서 회전 중인 차가 무조건 우선

- 따라서 로터리에 새로 들어오는 차는 회전 중인 차가 없거나 충분히 멀리 있을 때만 들어가야 함

 

2) 로터리에서 나가는 차는 가장 바깥 차선을 이용

- 평소 우회전, 좌회전 할때 처럼 차선을 철저히 맞게 사용해야 함

 

3) 로터리에 들고 나는 차는 앞뒤에서 들고 나는 차들을 위해 반드시 깜빡이 사용

- 지난 편에서 지적한 일반적인 교차로에서보다 더 중요함

 


요렇게만 이야기하면 잘 안 와 닿을지 모르니 동영상도 보자.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다른 건 신경 쓸 필요 없이 왼쪽 아래 길에서 들어오는 빨간 차와 녹색 차만 생각하면 된다.(실제 로리는 이것보다 더 동그란 경우가 많으니 참고)

 

1) 빨간 차 : 회전하는 차가 없는 바깥 차선에 들어가 직진하듯 첫 번째 출구(오른쪽 아래)에서 빠져 나간다.

 

2) 녹색 차 : 안쪽 차선의 회전하는 검은 트럭이 먼저 지나가기를 기다려서 들어가 회전해서 세 번째 출구(왼쪽 위)로 돌아 나간다.

 


이때 빨간 차가 들어가 있는 바깥 차선에서는 첫 번째 출구를 지나쳐 회전을 하면 절대 안된다. 그 경우 뒤에서 온 흰 차가 측면을 바로 들이받게 될 거라는 거, 영상을 다시 플레이해 보시면 알 수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녹색 차는 회전할 것이기 때문에 로리에 들어갈 때부터 안쪽 차선을 타야 된다. 만약 무슨 이유론가 그게 안 됐다면 들어가자마자 첫 번째 출구가 나오기 전에 빨리 안쪽 차선으로 옮겨야 된다.

 

이해가 가시냐덜.

 

자, 이렇기 땜에 모든 운전자가 한 명도 빠짐없이 이 룰을 지킬 수 없다면 그 사회는 로리를 가질 자격이 없는 거다. 원형으로 된 로리를 직선으로 된 길처럼 쭉 펴서 생각해 보면 이 도로로 들어오는 길이 4개, 나가는 길이 4개인 셈이다. 길어야 일이백 미터쯤 되는 길에 이만큼 많은 출입구가 있는 거니 룰이 지켜지지 않으면 수많은 차들이 들어오기 위해서, 또 빠져 나가기 위해서 서로 낑겨들고 차선 경쟁을 벌이면서 얽히고 섥혀 아비규환을 이룰 수 밖에 없다. 크고 작은 사고의 가능성은 말할 것도 없다.

 


4.jpg

요로코롬 되고 만다는 거다.

사진 속의 상황을 잘 보면 로터리를 들어오거나 회전하는 차들이

잔뜩 몰려들어 바깥쪽 차선에 차벽을 형성했고

그 결과 차들이 못 빠져나가서 출구 쪽 길은 텅 비어 있다.

 


사실 로리는 구조상 교통량이 너무 많아지면 감당이 어렵기 때문에 영국에도 큰 곳에는 차량 흐름을 끊어주는 신호등이 있다. 그럼 우리도 그러면 되지, 싶지만 일반 신호등 교차로에서도 꼬리물기가 기본인 이 사회에서 로리라고 그게 가능할지는 열라 의문인 거다.

 

그럼에도 앞에 링크한 뉴스에서는 교차로를 로리로 바꿔서 교통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했는데, 아마도 차들이 신호등을 무시하고 막 달리던 교외나 시골의 한적한 교차로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경우라면 교통량도 적고, 일단 로리로 감속 효과가 있으니 사고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안전행정부는 ‘회전교차로에 진입할 때는 속도를 줄이고, 회전하고 있는 차량이 있으면 반드시 양보해 줄 것을 당부’한다는데, 걍 당부만 해서는 안 된다. 로리에서 회전하고 있는 차량에의 우선권 부여는 양보 차원이 아니라 신호등에 준하는 철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그렘린>에 등장하는 모과이는 엄청 귀엽고 착한 생물이다. 하지만 얘를 키울 준비가 안된 고삐리 주인공은 원칙들을 지키지 않아 모과이를 그만 괴물로 만들어 버려 재앙을 자초한다. 주무부처가 이런 수준의 인식을 갖고 로리에 대한 아무런 원칙도 지식도 없는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 로리를 퍼트려 놨다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본 우원은 쩜 걱정이 드는 바이다.



불신형


두 번째, 불신형의 대표적인 예는 ‘끼어들기’와 ‘못 끼어들게 하기’다. 요 두 문제는 동전의 앞뒷면을 구성하고 있는, 사실은 하나의 문제라고 보면 된다.

 

5.jpg

 


우원이 캐나다나 영국 살 때는 대부분의 차들이 우원을 끼어들게 해 줬고, 우원도 다른 차들을 끼어들게 해 줬다. 그래서 외국 경험이 좀 있는 분들은 아 선진국에서는 다 양보들 해 주는데 우린 왜 매정하게 이러냐는 불평을 하곤 한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게 실은 그것보다는 좀 복잡한 문제다.

 

그 나라 운전자들이 끼어들기를 허용해 주는 이유는, 누군가가 체면 불고하고 끼어들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원의 경우도 부득이하게 끼어들어야 할 때는 초행길이거나 실수로 제 차선에 못들어간 등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 뭔가 실수를 했을 테고,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한 시민이 왜 줄 안서고 굳이 끼어들려고 하겠냐는 사회적인 신뢰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물론 내가 끼워주는 입장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다.

 

근데 우린 어떠냐.

 

우원이 영국 살다 온 후에 거기서 생긴 버릇대로 웬만한 차들은 다 끼워줬었다. 그러면서 관찰을 했더니 얌체족이 너무 많은 거다. 예컨대 절라 막힌 고속도로에서 맨 바깥 차선으로 가는데 왼쪽 차선에 있던 차가 내 앞으로 들어올라고 한다. 좀 이따 나오는 진출 램프로 우회전해 나가야 하나보다, 하고 넣어줬더니 텅빈 진출 예비 차선으로 나가서는 몇백 미터 쓍- 달리다가 도로 비집고 들어오는 거다.

 

아래 코란도 짓거리를 보면 대충 이해가 가실 거다. 몇백 미터 빨리 가겠다고 주변에 민폐끼치며 이 찌질이짓을 하니 좋은 마음으로 넣어줬던 입장에서는 배신감까지 들게 마련이다.

 

6.jpg

 


2006년에 귀국한 이래로 정말 수많은 차들을 앞에 넣어 줘 봤지만, 적어도 태반은 이유 없이 한발 일찍 갈려고 들어 오는 넘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바보되는 느낌 때문에 점점 양보를 안 해 주게 된다. 인심은 전반적으로 나빠져서 진짜 나가야 하는 차들도 못 나가게 되고.

 

한마디로 총체적, 전방위적 불신의 악순환이고 이게 지금 이 나라 수준이다.



경쟁형 

 

그 다음, 경쟁형은 대략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위 불신형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어리버리하게 운전하다가는 뭔가 당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멀쩡하던 사람들이 괜히 길에서 경쟁적이 되는 거다. 다른 운전자들은 내 앞길을 막고 기회만 있으면 나를 속이려는 넘들이다, 그러니 나는 정신 바짝 차리고 내 권리와 이익을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원래는 별 생각이 없다가 이렇게 ‘조련’된 경우고 그래서 항상 뭔가 억울한 느낌을 갖고 운전을 한다.

 

두 번째는 이런 사람들을 양성한, 원래부터 얌체적이고 이기적인 자들로 이들이 진정 도로의 암덩어리다. 이 넘들은 위의 코란도처럼 기회만 있으면 남들보다 한발이라도 앞서 갈려고 하고, 그걸 위해 편법과 탈법, 민폐, 철판깔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허나 그들 중 그렇게 해서라도 빨리 가야만하는 진짜 이유가 있는 경우는 1/10도 안된다고 우원은 확신한다.

 

이건 그냥 몽매하고 못된 것일 뿐이다.

 


7.jpg

이러고들 있는데, 와중에 뒷자리에 가족을 태운 경우도 많다.

이러면서 자식들한테는 나름 가르치려 들 테니.

 

 

이런 자들은 사실 퍼센트로 따지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이 짓거리를 통해 나머지 운전자들에게 불신과 불쾌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단지 길에서만이 아니라 편법, 새치기 등의 이런 짓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공정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직접 당하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보고 있는 입장에서도 환멸감과 수치심이 들게 한다.


이래서는 우리가 속한 대한민국이라는 커뮤니티에 자부심이 생길 수가 없는 거다.



습관/둔감형

 

마지막으로 습관/둔감형. 이 경우는 운전을 하면서 아무런 주체적인 생각이나 관점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게 사람/차 없는 교차로에서 신호등 무시하기, 정지선 안 지키기, 신호대기 중 앞으로 슬금슬금 가기 같은 거다.

 

신호등 무시하는 차들은 우원의 관찰에 따르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이 나아졌다가 가카 정권부터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탈법을 자행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이 흘러내려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

 

신호등에 서야 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무지도 아니요, 주변하고 신경전을 벌이는 게 아니니 경쟁도 아니다. 단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룰을 지켜지 않아도 된다는 관념이 형성되고 이후 그게 습관화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면 빨간 불이 켜져 있지만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냥 가도 된다는 자의적 판단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할수록 이런 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확대 재생산된다.

 

…지금 울 나라 이 상태에 거의 다 왔다.

 

한편, 정지선 안 지키기나 슬금슬금 나가기 같은 건 또 좀 다른 경우다.

 


8.jpg



위 사진에서 저 차가 앞에 툭 튀어나와 있는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첫 번째 가능성은 좌회전 꼬리물기를 하려다가 어정쩡하게 서 버린 경우고, 이때는 처음 이야기한 무지형에 해당한다. 앞에서 한참 나온 로터리 건은 사실 꼬리물기와 근본적으로 같은 문제다. 지금 당장 내가 먼저 가기 위해서, 나도 분명히 나중에 피해를 입을 문화를 양산, 조장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몽매함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그냥’ 저러는 거다. 준법이나 질서에 대한 개념도 없고 운전에 대한 원칙도 없다 보니 앞에 ‘공간’이 보이면 걍 좀 더 간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아무 이득도 없는데 저런다. 신호 대기중 슬금슬금도 마찬가진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와중에 자기 성질을 못 이기는, 마치 애들 다리 떠는 것 같은 행위다.


이런 것들은 나쁜 의도는 없지만 그 결과 전반적인 교통 질서를 흔들어 놓거나 주변을 불편하게 하거나 초조함을 유발하는, 전혀 불필요한 행동이다. 품격 떨어지는 짓인 거다.



…머, 써 놓고 보니 운전 좀 이상하게 하는 걸 마치 중범죄처럼 취급한 것 같다만 그런 건 아니다. 우원이 잘 아는 진보 지식인 중에도 운전대만 잡으면 총알택시급이 되는 분이 있다. 좀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그를 쓰레기로 여기지는 않는다.

 

우원은 다만, 이제 선진국 문턱입네 뭐네 하면서도 이런 간단한 것조차 해소하지 못하고 되려 나빠지고 있는 이 사회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차가 늘어나는 거나 그래서 길이 좁아지는 건 인프라 문제니 좀 다른 이야기지만, 그 위에서 움직이는 차는 사람이 조종하는 거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다.

 

지난 번에나 여기서 이야기한 것들은 개인 한사람 한사람의 차원에서는 실현하기 쉬운, 별것 아닌 것들이지만 사회라는 전체에서 고루 실현되기에는 어려운 무엇이다. 그리고 이런 모순적 상태는 우리 사회의 전근대성, 낮은 계몽 수준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계몽이라는 말은 철지난 권위주의 같이 받아들여지곤 하지만, 며칠 전 어떤 분이 우원 페북에 남긴 말처럼 이 나라는 모더니즘 시기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 외국의 사조를 좇아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넘어가 버렸다. 모더니즘의 중심축 중 하나가 바로 계몽이고, 우리는 대충 건너뛴 이 숙제들을 다시 붙잡고 처음부터 다시 밟아나가야 될 처지다. 이건 우원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열라 떠들던 소린데 그때는 물론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9.jpg

특정기사와 관련 없음

웹에서 퍼온 아무 내비 사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우원은 강변북로를 자주 타는데 길이 막혔을 때 가끔씩 정체 불명의 이상한 우회로로 가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따라 가 봤더니, 한강 시민공원 쪽으로 내려가서 공원 옆의 길을 지나 다시 강변북로로 올라가는 코스였다. 그렇게 가면 지역에 따라 한 1,2 킬로미터 정도 빨리 갈 수 있다.

 

근데 이거, 새치기다.

 

길이 막혔을 때 아예 다른 길로 가는 건 새치기가 아닌 정보에 의한 선택이다. 하지만 진짜 도로도 아닌 곳으로 슬쩍 빠져 나가서 좀 이따 다시 그 줄로 끼어 돌아가는 건 앞에서 끼어들기 이야기할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짓이다. 미묘한 차이지만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원칙이라는 건 분명히 존재한다.

 

글타. 우리가 지금 사는 이 곳은 내비가 아무렇지도 않게 새치기 방법을 안내하는 사회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찝찝함을 내비의 안내에 전가하고 그걸 따라 하면서 합리화한다. 자존심도 명예심도 체면도 없이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만 따라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게 똑똑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내비를 만든 사람의 생각도 그런 거였지 싶다.

 

그들이 조금씩일망정 이 사회를 갉아 먹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