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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20. 목요일

정우성











[39] 주거보증금 : 주거보증금은 대한민국 특유의 경제 제도이다. 그리고 문화이다. 주거보증금은 주택 가격이 아니다. 주택 가격은 부동산을 시장에서 구입한 가격이다. 반면 주거보증금은 주택을 임차하면서 살되 그 대가로 목돈을 맡겨 놓는 사적 금융 제도이다. 주택 소유자는 그 돈으로 금융이자를 얻고, 세입자는 월세 부담을 덜겠다는 제도였다. 이 제도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이 있었다. 주택 소유자 입장에서는 금융이자 수익을 보장하는 은행 이율이 높아야 한다.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월 소득이 낮아야 한다. 그리고 주거보증금은 은행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다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개인을 핍박하고 사회를 좀먹는 거대한 지하경제 이야기일 뿐이다. 그 돈은 본디 은행에 있어야 하는데 정말로 은행에 있기는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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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lake (1757-1827)의 “The Inscription over the Gate”>



[40] 한국식 지하경제의 위력 : 목돈사회는 지하경제 사회이다. 지하경제는 누구도 그 분명한 통계를 모른다. 추정만으로 그 위력을 셈할 따름이다. 거기는 과세를 모르며 정부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범죄, 마약, 도박, 매춘, 분식 회계 이야기가 아니다. 불법과 음지의 지하경제가 아니다. 목 좋은 곳에서 세세토록 광합성을 하는 양지의 지하경제 이야기다. 생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며 사회적 가치를 지워버리는 경제 이야기다. 한국에서 고전경제학은 고립무원에 빠지며, 모든 사상은 길을 잃는다. 지식인의 지식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해석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들의 지식은 유감스럽게도 단지 다른 나라에 관한 것이다. 지식이 이 땅을 외면하거나 이 땅이 지식을 거부한다. 주거보증금 제도가 어떻게 얼마나 큰 괴물이 되었는지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한국의 주택전세 보증금 총액은 물경 1,300조 원에 이른다.(2013. 7. KB금융지주 통계) 여기에 반전세, 즉 보증금 부 월세의 주거보증금을 더해야 한다. 전국 주택매매가격 시가총액이 2,200조 원이라고 볼 때, 목돈사회의 주거보증금 규모는 1,300조 원과 2,200조 원 사이 어딘가로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 규모의 정확함을 모른다. 대한민국 정부의 2014년도 1년 예산은 357조 7000억 원이다. 주거보증금 규모는 대한민국 정부의 1년 예산의 5배를 넘을 것이다. 2012년 국내총생산 명목 GDP는 1,272조 원이다. 주거보증금 규모는 국내총생산보다 더 크다. 1,000조를 넘는 국가부채를 모두 해결하고도 많이 남는 돈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복지도 이룰 수 있는 돈이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돈을 주거보증금으로 쌓아둔 나라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주택을 구입하려고 쓴 돈이 아니라 단순히 주택에 거주하기 위해 “어딘가에 맡긴” 돈이다. 그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어딘가에 맡긴 돈이다. 그 어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런 천문학적인 목돈을 쌓아두지 않는다.


주택가격은 사회의 생산성 지수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주택을 담보로 대출하여 사업자금으로 투자할 수도 있고, 집을 팔아서 생산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까닭에 주택가격은 어느 정도 생산성을 띤다. 주거보증금은 다르다. 이건 그저 묶인 돈이다. 사회의 활력과 생산성에 아무런 기여를 못한다. 개인은 사회적 존재의 대가로 주거보증금이라는 목돈을 지불해야 할 뿐이다. 주거보증금은 마약이다. 집주인으로 하여금 투기할 것을 유혹하는 양귀비다. 임차인에게는 월세 부담이 적어지지 않느냐며 계산기 하나를 툭 던진다. 임차인이 계산기를 두드리며 월세 부담 경감 비율을 계산하는 동안, 주거보증금은 개인의 자유, 용기, 활력을 빨아들인다. 그렇게 한 집 한 집 이 나라를 배회하고 휩쓸어서 목돈사회의 지하경제가 완성되었다. 정부의 예산보다 국가의 총생산보다 훨씬 큰 규모의 지하경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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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lake (1757-1827)의 “Visions of the Daughters of Albion”>



[41] 후유증 : 목돈사회의 지하경제는 국가가 합리적인 기획 하에서 만들고 통제하는 경제가 아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선동하였으며 동원되었다. 목돈게임에서는 돈놀이 외에는 어떤 합리성도 없다. 강요하거나 강요되면서 목돈사회를 완성하였다. 이것이 곧 한국식 자본주의다. 사람들은 배운대로 본다. 좌파든 우파든 전통적인 경제학을 배운 식자들은 지상의 경제에 대해서 말하며 논쟁한다. 하지만 목돈사회 지하경제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목돈사회의 지하경제는 목돈을 가지지 못한 연약한 사람들의 비명을 먹고 자란다. 하지만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는 자들도 어인 일인지 이 비명에 침묵한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주거보증금 제도를 당연시 한다. 기껏해야 전세 보증금의 등락에 대해 논평할 뿐이다. 전세제도에서 월세제도로의 전이가 보증금부 월세(편집부 주 : 임차보증금 외에 매월 월세를 추가로 내는 임대차 계약, 반전세 월세)라는 가장 악랄한 방식으로 바뀌고 있어도 누구도 비평하지 않는다. 사회가 합리성을 버리고 다른 나라에서는 하지 않을 비합리성을 옹호할 때, 그리고 우리식 문화로 받아들일 때 후유증은 반드시 생긴다.


자살률 세계 1위, 이혼율 세계 1위, 저출산율 1위, 노동시간 1위, 사교육비 1위, 사회불평등/빈부격차 1위, 낙태율 1위, 빈곤율 OECD 1위, 생활만족도 OECD 꼴찌, 독서 안하기 OECD 1위.




[42] 거꾸로 생각하기 : 천문학적인 돈을 생산활동에 사용하지 않고도, 국가 산업은 그럭저럭 이 정도까지 발전해 왔다. 거꾸로 생각하면 기적적이고 엄청난 일이다. 국가예산의 5년치 비축분에 이르는 주거보증금이 생산과 소비 시장으로 되돌아오고, 개인에게 더 이상 목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떠하겠는가? 이론적으로는 드디어 한국에서도 합리성에 기초한 학문이 가능해짐을 뜻한다. 학문은 정상 사회에서 작동하기 마련. 실천적으로는 시장과 인생에 엄청난 크기의 활력이 찾아올 것이다. 1,000조 원이 넘는 돈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상상력을 가져온다. 물론 마중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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