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onesixth 추천1 비추천-1






저주받고 재평가되고 저주받고 재평가되고.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교활함으로 유명하신 마키아벨리 선생에 대한 평가는 거의 마르크스만큼이나 극단적이다. 마르크스가 왼쪽의 나쁜놈이라면, 마키아벨리는 오른쪽의 나쁜놈이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으로 졸라 까인다면, 마키아벨리는 독재자에 대한 환상으로 졸라 까인다. 

극과 극은 통하는 법인지, 당대에는 별로 평가받지 못하고 불우하게 일생을 마쳤다는 점에서나, 지금도 교과서에서보다는 오히려 각종 게임이나 문학, 영화 등을 통해 흔히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나, 그럼에도 서구사상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플라톤 다음으로 거의 언제나 이름을 올리게 된다는 점에서나, 이 두 분의 마 선생들은 유사한 면들이 많다. 왠지 야설로 유명하신 또 다른 마 선생도 떠오르고…

1.jpg


그리고 재밌는 건, 20세기 중후반 내내 까이시다가 현재에 이르러, 한 분은 점차 심각해지는 자본주의의 부작용 때문에, 또 다른 한 분은 국제역학 관계의 변화에 따른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요구로, 이유는 다르지만 어쨌든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까이다가 비슷하게 재평가의 바람을 솔솔 맞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위기의 사나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에는 그냥 그런 넘들이 있기는 했었지 정도로만 기억하다, 상황이 몰리게 되면 찾게 된다고나 할까. 분야를 막론하고 교과서에서 지겹게 듣게 되는 이름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그래도 뭔가 해보려던 사람들이 아니었는지,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의도와 결과는 별개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설은 이쯤하고, 아무튼 <군주론>은 그 어마어마한 이름값과는 달리 무지하게 짧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앉아서 한 방에 읽을 만한 분량이다. 뭔가 심오한 학술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조언에 가깝고, 꽉 짜여진 형태라기보다는 그냥 좀 긴 편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실제로 맨 앞장의 헌사에서, 당시 그가 살던 피렌체를 다스리던 메디치가의 주인에게 이 글을 바치겠다는 의도를 밝히기도 한다. 그리고 <군주론>은 ‘세상인심이 졸라 험하다는 걸 알아야 함. 착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는 거임.’이라는 한 마디 충고로부터 시작된다.


현명한 군주가 공적을 세우고 이름을 떨치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하늘의 때(天時)이고, 둘째는 백성의 마음(人心)이며, 셋째는 기술과 능력(技能)이고, 넷째는 권세와 지위(勢位)이다.

- 한비 지음, 김원중 옮김, <한비자>, '공적과 명성', p.258




응? <군주론>이라더니 왜 <한비자>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지 의아하시리라. 거의 2000여 년에 가까운 시간적 터울, 이탈리아와 중국이라는 멀고도 먼 공간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한비자>가 실크로드를 타고 마키아벨리의 손에 들어갔던 건 아닐까라는 호기심이 들 정도로 <군주론>을 이보다 더 잘 요약할 수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능력이 딸려서 한비가 살았던 전국시대를 자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만 BC 770년부터 403년까지 거의 200년 간 전란기였다는 점만 간략하게 언급한다. 시대명에 전쟁이 꽉 박힌 무질서의 대명사나 다름없다는 것도 잘 아실 듯 싶고.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당시의 이탈리아도 이와 비슷했다. 그럼 그가 어떠한 시절을 살았는지 살짝만 들여다 보자.


2.jpg

<마키아벨리, 1469~1527>



흔히 중세 천 년으로 불리는 유럽의 봉건적 질서는 피라미드 구조의 SNS를 떠올려보시면 좋겠다. 아래에서 위로 이어지는 충성맹세의 연속이었으나, 그렇다고 단선적이지는 않았다. 윗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충성맹세(신종전서)를 받아내느냐로 세를 과시했기에 하나라도 더 많은 맹세를 얻어내기 위해 경쟁을 벌였으며, 따라서 기사 한 명이 여러 명의 영주를, 또 영주들 역시 여러 명의 군주를 섬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신종전서를 바친 윗사람들끼리 서로 싸움을 벌일 때 아랫사람들이 누구 편을 드느냐는 그때 그때의 사정과 입맛에 따라 결정되었고, 충성에 죽고 사는 기사의 로망, 이런 건 그냥 소설에 불과할 뿐 실제적으로는 불평등한 맞팔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일반적인 농민들이야 그냥 바로 윗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는 없었지만. 아무튼 느슨하면서도 방만한 사회구조 덕에 매일처럼 쌈박질에 배신을 때려대는 와중에서도 어느 하나가 힘만 믿고 깽판을 치기에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고, 또 상징적으로나마 교황님하께서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충성맹세의 최종보스로 짱먹고 계셨던 덕에 그럭저럭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다.

3.jpg
교황님하가 짱짱맨


하지만 너님은 '우선' 나부터 챙겨줘야 한다는 최우선 신종전서로 충성을 거의 구걸해야 하는 농담같은 상황에다, 그렇게 충성을 얻어봤자 봉토는 세습화되는 반면 그 자식들의 충성까지는 보장받을 수 없었을뿐더러, 십자군과 흑사병, 동방무역 등으로 교권마저 의심받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토지는 점차 매매의 대상으로 바뀌어갔고, 봉토 대신 사법권을 통해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군주들의 야심은 카노사의 굴욕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마키아벨리가 태어나는 15세기에는 결정적인 변화들이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는데, 잉글랜드에서는 내전으로, 프랑스에서는 합병으로, 스페인에서는 결혼으로, 신성로마제국에서는 개혁으로, 방법과 정도는 다르지만, 지방제후들의 힘이 약화되고 각 지역마다의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며 오늘날까지도 큰틀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근대국가가 탄생한다.

이사벨 1세가 그냥 콜럼버스의 야심을 밀어줄 수 있었던 게 아니고, <튜더스>로도 친숙한 헨리 8세가 그냥 '교황님 즐'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교황의 권위와 봉건제는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그 폐허에 발을 딛고 선 군주들은 이제 로마나 지방영주들의 눈치를 살피기는커녕 이제 어디를 한 번 털어볼까를 고민하는 존재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곧 이탈리아의 불행이 된다. 아비뇽 유수로 이미 교권을 한 번 농락한 프랑스의 야욕은 물론, 카노사의 굴욕을 잊지 않은 신성로마제국과 오랫동안 기독교 세계와 대립해온 오스만 제국 등도 로마를 탈탈 털 기회만 엿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작 르네상스의 본고장으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에서는, 한때 전유럽의 대장노릇을 했던 교황령은 그저 이탈리아의 소국 중의 하나로 전락해 있었고, '베니스의 상인'들이 지중해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베네치아 공화국이 상대적인 우위에 있기는 했으나 이탈리아 전체를 결정지을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운명의 1494년, 프랑스의 침공을 시작으로, 앞서 언급한 모든 국가들의 랠리(이탈리아 전쟁; ~1559)가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아메리카와 희망봉의 등장은 메디치 가문과 베니스의 상인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패권에도 불길한 징조를 띄우고 있었으니…….

단숨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잠시만 쉬었다가.

Italy_1494.svg.png
대략 1494년의 이탈리아 / 플로렌스가 피렌체 되겠다.
출처 : 위키피디아


국가를 획득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은 주로 그 나라의 건설과 보전을 위하여 강제적으로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법률과 제도에서 생겨난다. 지도자로서 새로운 통치 방법을 시행하려고 시도하는 것보다 실행에 있어서 위험하고 어려우며 성공이 의심스러운 것은 없다. 왜냐하면 개혁을 단행하는 이는 낡은 질서하에서 혜택을 입어온 모든 사람들을 그의 적으로 삼아야 하고, 또한 새로운 제도하에서 혜택을 입게 될 사람들도 다만 소극적인 지지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극적인 기질은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유리한 법률을 갖고 있는 반대자들의 공포심과 한편으로는 체험의 결과에 의하여 확인될 때까지 새로운 것의 가치를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심에서 생겨난다.

어쨌든 변화에 적의를 가진 자들은 공격을 가할 때는 언제나 당파적 열정을 갖고 달려들지만, 반면에 상대방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주장이 위험에 빠질 만큼 미약한 방어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 개혁자들이 자신의 힘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아니면 제3자의 지원에 의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남에게 간원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힘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항상 실패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기략에 의지하여 힘을 사용할 때는 거의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무장한 모든 예언자는 승리하고, 무장하지 않은 모든 예언자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 마키아벨리 지음, 이상두 옮김, <군주론>, '제6장 무력과 역량으로 획득한 새 군주국', 범우사, p.38-39




이 때 20대 후반으로 막 공직에 나서려던 마키아벨리의 고향, 피렌체에도 전운이 감돌게 된다. 황금기를 이끌었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받은 피에로 데 메디치는 어떻게든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했으나, 피렌체 공화국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강대국과 협상테이블에 앉을 수 있을 만한 실력이 없었다는 게 문제. 거의 무조건 항복에 가까운 조약을 맺고 돌아온 피에로는 공화제 혁명과 메디치 가문의 추방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새로이 들어선 공화제 정부에 들어간 마키아벨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녹록하지가 않았다. 외교관으로 일하는 동안 실력이 없으면 당하게 되는 냉혹한 현실을 접한 그는 기성의 가치관에 심각한 의문을 품는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기독교든, 새로운 유행의 그리스 철학이든, 도덕이라는 해답은 그저 윗동네만의 탁상공론에 불과할 뿐 현실에서는 통용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어차피 메디치 가문이 복귀한 피렌체에서 미움받는 처지에 딱히 할 일도 없고, '도덕? 씨바, 그래 다 좋은데, 그게 누굴 위한 도덕인데? 힘있는 놈들이 지꼴리는 대로 하면서, 자기보다 힘센 놈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는 거 아님? 그렇게도 도덕이 좋다면서 왜 힘 없는 민중들은 제멋대로 짓밟는 거임?'이라며 서슴없이 돌직구를 던지기로 결심한다.

5.jpg


귀족의 지지를 받고 군주가 된 자는 민중의 지지로 군주가 된 자보다 자신을 보전하는 데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왜냐하면 귀족의 지지로 군주가 된 자는 그 주위에 군주와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동료가 많으며, 이 때문에 그는 자기 뜻대로 지배하거나 통치할 수 없다. 그러나 민중의 지지를 받고 군주가 된 사람은 자유로우며, 그 주위에 복종하려 하지 않는 이는 전혀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매우 적다. 더욱이 귀족들의 요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 없이 군주의 명예만을 가지고 귀족들을 만족시킬 수 없지만, 똑같은 방법으로 민중들은 만족시킬 수 있다. 민중의 목적은 귀족의 그것보다 훨씬 소박한 것이며, 귀족은 억압을 추구하는 반면에 민중은 억압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 '제9장 시민형 군주국', p.59




이제 슬슬 왜 한비의 인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감이 오시리라 믿겠다. 한비나 마키아벨리나, 어떻게 권위를 얻고 사용할 수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권위란 입고 있는 옷만으로는 얻거나 유지할 수 없으며, 그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또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만 한비의 경우 해답을 법에서 찾았던 반면, 마키아벨리의 경우에는 민중에 주목했다는 데에서 차이를 보인다.



민중은 그들의 지지로 군주가 된 이보다도 그들을 보호해주는 군주에게 더 많은 호감을 갖게 된다.

- '제9장 시민형 군주국', p.60


(즉) 용병에 대한 가장 큰 위험은 그들의 우둔함과 비겁함이며, 원병(외국군)의 경우는 그 용감성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항상 이러한 군대를 피하고 자기 나라 군대를 신뢰하며, 그리고 외국 원병에 의한 승리보다 자국 군대에 의한 패배를 택한다. 외국의 지원에 의한 승리는 참다운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제13장 원병과 혼성군과 국민군', p.81


(그러므로) 군주가 그의 민중을 착취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으며, 재정의 빈곤과 멸시를 피하고 또 약탈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비난에 대해 개의치 말하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인색은 그의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그가 취할 수 있는 악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제16장 관대함과 인색함', p.92


(그러므로)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성채는 민중들의 증오를 사지 않는 것이다. 만일 군주가 성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민중들로부터 증오를 받게 되면 성채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 '제20장 군주가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성채', p.123




마지막 인용은 왠지 모르게 벙커에 들어가셨던 어떤 분이 떠오르기도 하고, 좀 설명이 필요하겠다. 우선 마키아벨리는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세습이든, 힘이나 음모로든, 정복으로든, 민중의 지지로든, 과정보다는 결과에서 더욱 정당성을 찾았다. 저 위의 인용에서처럼 필요하다면 강압적으로 밀어부쳐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이런 이유들로 인해 마키아벨리에게는 독재자 예찬이라는 비판과 과연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물론 온당한 비판이고 이에 대해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당면한 현재라는 관점에 집중하고자 했으며, 어떤 사회에서든 권위는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 역시 민중에게 아무런 발언권도 허용하지 않았을뿐더러, 절차적 민주주의 같은 개념도 없었다는 정도만 덧붙여둘 수 있겠다. 


중요한 건, 마키아벨리는 전제군주조차 민중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서는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냉혹한 현실에서 때로는 냉혹한 결단이 요구된다는 주장도 당시의 도덕과 충돌하는 부분이었지만, 피지배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민중에 시종일관 주목했다는 것 역시, 어쩌면 이 부분이 더욱,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시각이었다. 가령 최신(!)유행이었던 왕권신수설이나 예정설만 하더라도 '나님이 잘난 이유는 그냥 그러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요지였으니, 민중을 무시하고 적대시하는 순간 권위의 정당성이 사라져버린다는 주장이 인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마키아벨리 개인으로서는 사후에라도 책이 출판되어 그나마 다행. 금서조치는 기본이요, 악마의 책으로 저주받고 불태워지는 코스를 밟을 예정이었으니까. <에밀>도 그렇고, 지금은 그냥 교과서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 중에 은근히 이런 거 많다. 성경도 한때는 그랬고, <자본론>은 지금도 그렇고. 불온함이야말로 인류의 역사.

또 이야기가 새버렸다. 미안타. 위선적인 도덕을 비판하고, 민중에 근거한 권위를 이야기했다는 것까지는 알겠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라고 물으실 수 있겠다. 이미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그 유명한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교활함이 등장한다. 무언가 천재적인 발상으로 전무후무한 개혁이나 혁신, 혹은 킹왕짱 엄청난 대사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사가 만사, 즉 어떤 사람을 발탁해서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통제하느냐가 결국 군주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한비의 경우, 통치란 백성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신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바라보는데, 마키아벨리도 이렇게 이해될 수 있다.

8.jpg


측근 대신을 선택하는 일은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들은 군주의 사려분별에 따라 좋게 되고 나쁘게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의 품성과 현명함을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군주의 측근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된다. 측근들이 유능하고 성실하면 우리는 항상 그 군주는 현명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측근들의 능력을 인식할 줄 알고 그들의 충성을 유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반대라고 하면 우리는 그 군주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군주의 첫 번째 실수는 잘못된 인선에 있기 때문이다.

- '제22장 군주의 측근대신', p.130


(그러므로) 진실을 고할지라도 군주가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외에는 아첨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없다.

- '제23장 아첨배들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p.132


그(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1459~1519)는 은밀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어느 누구에게도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의견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계획이 실행 단계가 되어서야 노출되고 알려지게 되며 동시에 측근들은 그 계획을 반대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군주는 계획을 간단히 철회하고 만다. 그리하여 오늘 행한 것을 다음날에는 취소하기 때문에 그의 희망과 계획을 완전히 확인할 수는 결코 없다. 따라서 그의 결정을 신뢰하는 일은 불가능하게 된다.

- '제23장 아첨배들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p.133


(그러므로) 군주가 어떤 일을 싫어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작은 일이라도 군주가 싫어하는 일이라면 감추고, 군주가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보이면 신하들은 가능한 것처럼 꾸미며, 군주가 하고자 하는 일이 드러나면 신하들은 이것에 맞추려고 한다.

- <한비자>, '두 개의 칼자루', 홍익출판사, p.61


신하는 자주 세금을 걷고 국고의 재물을 전부 사용해 자신의 나라를 텅텅 비게 하면서까지 큰 나라를 섬기고, 그 큰 나라의 위세를 이용해 자신의 군주를 협박한다. 심하게는 큰 나라의 군대를 변방에 모이게 해 민심을 공포 속에 몰아 넣기도 하고, 약하게는 큰 나라의 사신을 자주 맞아들여 군주의 마음을 혼란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신하들이 외세를 등에 업고 나라 안의 실권을 좌우하면 군주는 나라를 잃은 것이다. 군주가 큰 나라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멸망을 피하기 위해서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거절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 되기도 하므로 들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 '여덟 가지 간사한 행동', p.66-67


군주의 통치수단은 신하들이 반드시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게 하며, 또 의견을 말하지 않은 책임도 묻는 것이다. 의견을 내면서 말의 시작과 끝이 없고 사실에 대한 확증도 없다면, 이 발언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한편 책임을 두려워해 진언도 않고 중요한 직위를 차지하고 있다면, 발언하지 않은 데에 대한 책임도 지게 해야 한다.

- '군주', p.147




한번 비교해 보시라고 함께 인용 쏘아드렸다. 두 사람 모두 관대해지기보다는 인색해지고, 인자하기보다는 잔인해지기를 권한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사람들을 들들 볶으라는 말은 아니고, 평판이나 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적인 친분에 휘둘리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되겠다. 간단히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보라는 것. 실제로 '너님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음'이라는 경고가 계속해서 나오기도 한다. 


6.jpg  7.jpg

한비와 마키아벨리



씨바, 별 이야기도 아닌데 왠지 충격적이다. 다만 한비가 법을 통해 상벌을 엄격하게, 그러니까 더 주지도 말고 봐주지도 말고에 초점을 둔다면, 마키아벨리의 경우에는 이를 관철시킬 수 있을 만한 힘, 오늘날로 말하자면 공권력에 더욱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시민군의 필요성에 대해 논한 것이기도 하고. 비록 대포가 막 전장에 등장한 당시의 군사적·경제적 여건으로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했지만, 기사와 용병이 통용되던 세상에서 혁신적인 발상이기는 했다.


전례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그때그때의 상황과 사정에 맞춰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 한비에게는 봉건제야말로 거의 600여 년에 가까운 춘추전국시대를 낳은 원흉과도 같았고, 마키아벨리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유럽의 판세가 변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얻은 판단이었다. 이들의 생각처럼 어떤 것이 무조건 옳다 혹은 틀리다라고 결정지어 놓는 건 위험하다고 하겠다. 어제의 현실과 오늘의 현실은 다르고, 또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현실도 분명히 모양이 다를 테니까. 모쪼록 판단은 너님들의 몫.

결론은 마키아벨리는 권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반권위주의자였다는 것이다. 단순히 타이틀이나 지위만으로 존경을 받을 수 없으며, 그에 걸맞는 실제적인 행동과 판단을 통해서만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공적권위의 옹호자였다고나 할까. 결국엔 결과가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는 주장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으나, 과연 권위란 게 무엇일까를 한 번쯤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권위는 사라졌던 적이 없었다. 믿음이나 신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그냥 짧은 생각을 끄적여본다.

본문의 인용은 책장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대략 18mm쯤 먼지와 책벌레들이 잔뜩 쌓여있던 판본을 참조하였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보다 최신의 판본을 찾아보시기를 바라며, 부실한 부분들은 언제나 Sorry. 그냥 끝내기에는 아쉬우니까 이번에도 인용으로.


이탈리아인에게 되돌아갑시다. 이탈리아인은 현명한 군주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좋은 제도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스페인인이 느꼈던 필요성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어떤 것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머지 세계의 나라들로부터 비웃음을 샀습니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로 인하여 자신의 국가를 불명예스럽게 잃은 데 대한 적당한 처벌을 받았고 단 하나의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보이지 못한 군주들입니다. (But let us turn to the Italians, who, because they have not wise Princes, have not produced any good army; and because they did not have the necessity that the Spaniards had, have not undertaken it by themselves, so that they remain the shame of the world. And the people are not to blame, but their Princes are, who have been castigated, and by their ignorance have received a just punishment, ignominously losing the State, (and) without any show of virtu. : 이번에도 문맥이 이상해서 아쉬우나마 영역을 첨부.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로 인하여 응당한 처분을 받은, 나라를 불명예스럽게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단 하나의 존경받을 만한 행동도 보이지 못한 군주들입니다.”로 번역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 <군주론>, '전술론 초', p.188 / The Seven Books on the Art of War, by Niccolo Machiavelli, Citizen and Secretary of Florence, trans. Henry Neville (1675).








onesixth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