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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26. 수요일

펜더











 

어제 새벽에 김창규와 문자를 나눴다. 이후 밤바다로 달려갔다. 창규는 내게 글 인생을 정리하며 이 불편한 마음을 같이 정리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 ‘불편한 마음’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아봤다. 별 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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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쓰고 싶은 게 있지만, 쓸 수 없는 자괴감
② 내 ‘욕망’이 사라진 것

③ 조급증에 쫓겨 내 스스로를 갉아 먹는 것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쓰고 싶은 게 있었다. 아니, 있는 거 같다. 그걸 위해 모든 걸 접고 이 곳에 들어와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또다시 어떤 ‘사건’이 터졌고,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다시 알바를 뛰어야 했다. 이 자괴감은 생각외로 컸다. 모든 걸 정리하고 심기일전 해 미친 듯이 작업을 하고, 취재를 하고, 프레임을 짜 가던 와중 갑자기 돈 문제가 터졌다. 별 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최후의 희망이 무너졌을 때의 상실감, 절망?

 

 

'난 뭘 해도 안 되는 패배자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욕망’이 사라진 건 더 위험했다.

 

 

“정말 갈망하고 원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쟁취하는 게 사람이야. 

오빠가 글을 못 쓰는 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야.”

 

 

동생이 내게 한 말이다. 돌이켜 보니 맞는 말이다. 어느 순간 현실에 쫓겨 욕망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조급증은 더 심해졌다. 15년 간 빚과 이자, 생활비에 쫓기다 보니 뭘 더 생각하고 정리할 심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건 습관이 됐다.


(가만히 돌아보건대, 24살에 데뷔한 이래로 정말 쓰고 싶어 쓴 글은 2~3편이 되지 않았다. 2000년, 유로 2000을 보다가 뭐에 홀린 듯 5일 만에 쓴 옴니버스 실험극을 썼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고백하건대 난 철저히 ‘푼돈’을 벌기 위해 시장을 조사했고, 거기에 맞춘 ‘안정적이지만 큰돈이 안 되는 글’들의 포맷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걸로 돈을 벌었다. ‘중진국 함정’이라고 해야 할까? 저가로 티셔츠를 찍어낼 순 있지만, 자동차나 컴퓨터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앞으로 설명하겠지만, 부양가족이 있다는 건 ‘모험’을 할 수 없다는 소리다.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어다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커다란 하나의 모험 대신 열 개의 작은 언덕들을 타고 넘어가 하나의 돈을 만드는 게 안정적이다. 내 삶은 그러했다. 그리고 이건 실패한 실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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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란 족속이 기본적으로 생활력이 딸리고, 돈을 못 버는 직업이란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 베스트셀러가 터지지 않고, 대박 드라마를 뽑아내지 않더라도 작가란 직업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증거가 바로 나다. 지난 15년의 내 인생이 그 증거이다. 그리고...

 

 


지금 내 소원은 ‘글’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생활비와 빚과의 싸움. 이제 진저리가 날 정도이다.


고백하건대, 내게 청탁을 했던 많은 영화사, 잡지사, 매체, 개인 의뢰인, 기업체 등등에게 미안하다. 그들은 내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의뢰한 ‘글’에 전심전력을 다 해줄 거라 믿고 청탁을 했겠지만, 이제껏 살아오면서 오로지 ‘하나의 글’에만 집중해 글을 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책을 한 권 의뢰 받으면, 기본적으로 3개월 후 마감으로 계약을 하지만, 실제로 책 원고를 쓰는 기간은 2주, 길어도 3주를 넘기지 않는다. 그 사이에 최소한 2~3개의 다른 글을 같이 쓴다.


요컨대 이런 식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난 개인의뢰자가 청탁한 ‘A4 70페이지 상당의’ 굉장히 난해한 ‘학문적 성취를 증명하는 글’을 써야 한다. 그 뒤로 강연원고와 얼마 전 청탁이 들어온 월간 연재 글을 써야 하며, 4월 중에는 다시 한 번 춘사관(편집부 주 : 남양주종합촬영소를 이용하는 영화인들의 휴식 및 편의시설, 또는 펜더의 새로운 글감옥)으로 끌려 갈 것 같다.


(이 기사를 쓰면서 이 모든 일정이 모두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술이 채웠다)


...이렇게 돌려야지만, 겨우 ‘생계’가 유지된다. 내 살인적(!?) 스케줄을 본 모 소설가가,

 

 

“짐승처럼 쓰는구나. 짐승처럼...”

 

 

이라며 한탄을 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말한 작가가 밥벌이를 위해 짐승처럼 글을 쓰는 날 보며 몸서리를 치는 묘한 광경이 내 작업실에서는 매일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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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긍정적인 밥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 <긍정적인 밥>

 




 

함주리 선배가 함민복 시인의 말을 하며, 날 타박하던 때가 있었다.

 

 

“야, 펜더! 이 자판기 같은 놈아 이상한 군사 책만 사지 말고 시집도 좀 사라니까!”

 

 

내 사수였던 함주리 선배는 그녀의 선배였던 바자의 김경 선배 인터뷰 책을 꺼내들며 날 타박했다. 감수성 제로의 메마른 내 감성, 돈만 밝히는(?) 날 놀린 거였다(그러면서 땜방 원고는 전부 내게 몰아넣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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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온 결과물 중 극히 일부 / 편집부 주>



얼마 전까지는 함민복 시인을 보며 애달파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분의 아내 되시는 분이 생계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얼마를 버는지를 모르겠다. 중요한 건 아내가 생계활동을 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젠장, 좋겠다.”

 

 

문화예술인의 63%가 월 평균 100만원 이하를 벌고, 수입이 전혀 없는 예술인도 37%에 이른다는 사실은 ‘딴세상’이야기였다(글을 쓰는 ‘작가’에 한정한다면, 우리나라의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드라마작가 등등의 ‘평균연봉’은 500만 원이다. 통계청 발표이니 믿어보자. 그러나 이 5백만 원에는 허수가 존재한다. 상위 1%의 수십억 대 인세를 자랑하는 이들을 제외한다면, 평균적인 작가는 연봉 3백만 원을 달린다는 것이 기본적인 인식이다. 월수익이 아니라 ‘연봉’이다).


얼마 전 시나리오를 쓰러 ‘끌려갔다가’ 12일 만에 시나리오 초고 한 편을 뽑아내고 복귀했다. 내 작업실로 큰 딸이 들어와 날 보더니,

 

 

“아빠, 건강 생각해서 느슨하게 일하면 안 돼?”

 

 

라고 말했다. 딴에는 내 걱정을 하는 거 같았는데, 그래서 작가들의 평균적인 ‘벌이’를 말해줬다. 그리고 네 아빠는 이 시스템에서 극히 예외적인 존재임을 말해줬다. 결론은? 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16년 간 집에 돈 한 푼 가져다주지 못하다 결국 이혼을 당한 ‘작가’를 본 적이 있다. 아내의 ‘능력’에 기대 글을 쓰다가 그 ‘능력자’가 기다리다 지쳐 작가를 포기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살을 선택한 이도 있다. 다 이해한다. 현실적으로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건 ‘상당히’ 어렵다.


덕분에 어딘가에 ‘적(籍)’을 두고 글을 쓰지 않는 이상 작가란 직업으로 대한민국에서 생존하는 건 ‘정글의 법칙’보다도 더 어려운 미션이다. 물론, ‘뜨면’ 이 모든 게 보상 받을 수도 있다(못 받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그러나 그 ‘뜨기’까지의 과정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 것일까? 이게 수학능력시험처럼 어떤 커트라인이 존재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 시스템에서... '극히 예외적인' 변종이었다... 과거형이다.


(내가 남을 부러워 한 적은 거의 없다.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는 주의다. 그런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신림동 고시촌의 유명 영어강사의 남편이다. 젊고 예쁜 그 강사의 남편은 소설가이다. 소설가라지만, 등단을 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책을 내 본 적도 없다. 자칭 소설가, 타칭 ‘백수’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그 남편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강의 중간중간에 자신의 남편 자랑을 하며, 강의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자신이 쓴 소설을 출력해 아내에게 읽어주는 게 너무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생활능력이 전무한 이 남편의 유일한 ‘생계활동’이 바로 아내에게 자신의 소설을 읽어주는 것이다. 부러웠다. 재벌 아들이 부럽지 않을 호사가 아닌가? 거의 대부분의 작가가 이런 식이거나 그 비슷한 유형일 것이다. 전업으로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건...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2. 플랜 A와 플랜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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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작가 교육원>이나 각 방송사가 운영하는 <방송작가 교육원>에서 원생들에게 강조하는 한마디가 있다.

 

 


“가장 빠른 길은 글에 미쳐 모든 걸 올인하는 것이다.”

 


 

라는 내용의 말이다. 거짓말 같지만, 이 말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지난하기 그지없다. 2000년대 중반에 뜨기 시작한 몇몇 방송작가 선배(남성들)들을 보면... 그 과정을 보다보면 지난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삶은 말 그대로 '막장'이다. 뜨기 전까지 그들의 삶이란 것은 점심으로 사발면+삼각김밥을 먹을지 사발면+꼬마김치를 먹을지를 고민하는 시간들이다. 사발면+꼬마김치+삼각김밥을 먹는다면 저녁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어엿한 중견작가가 된 A형의 삶이 그러했고, 최근에 뜬 남자 선배들을 보면 다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 와중에도 꿋꿋이 버텨 회당 500만원에 100고 계약을 한 A형은 정말 펑펑 울었다. 남들이 보면, 한 번에 5억을 땡겼으니 로또가 터졌다고 생각하지만, 지난 10년 세월 삼각김밥과 사발면, 꼬마김치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과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5억을 10년으로 나누면, 연봉 5천이다. 그 10년 동안 형은 남들 장가가고, 자식 낳고 알콩달콩(?) 사는 동안에 라꾸라꾸 침대 위에서 사발면을 씹으며 글을 썼다. 나이 마흔이 다 돼 가던(만으로 39살에) 그 때 5년을 붙잡고 있던 아이템이 편성을 받고 스타트에 들어간 것이다(사극은 기본적으로 최소 2년의 준비과정을 거친다). 지옥이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민을 하게 된다.

 

 

“저 형들처럼 저렇게...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

 

 

라는 것이다. 만약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라면 객관적으로 수치화 된 점수가 있겠지만, 이건 아닌 것이다. 정말 '운'이다. 정말 재주가 있어 괜찮은 글을 뽑아내도, 시대가 받쳐주고, 트렌드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 글은 사장된다. 거기에 드라마라면 ‘편성’까지 생각해야 하고, 영화인 경우에는 ‘투자’를 생각해야 한다(요즘은 ‘캐스팅’을 위해 올인을 하지만 말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지만, 죽을힘을 다하면 된다고 믿어도... 그 과정 중에 탈락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이 경우에는 어떤 ‘보장’이 없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는 시험을 보면 객관적인 ‘점수’가 나오지만 이건 아니다. 되고 나서도 문제인 게, 그 다음에 터진다는 보장이 없고, 계속 피고름을 짜내가며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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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시 가장 빠른 길은 모든 생계활동을 포기하고, 글에 매진하는 것이다. 이게 플랜 A다. 그러나 여기에 반기를 든 사람도 적지 않다.

 

 

“작가라고 언제까지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나? 커리어 망치고, 인생 망치고, 폐인이 된다고 글이 나오는 게 아니다. 부귀영화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꼴’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나?”

 

 

라는 것이다. 바로 플랜 B다. 이 플랜 B를 고민한 인물. 그것도 '딴지일보' 출신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라이프펜과 펜더다(은근슬쩍 나도 여기에 끼워 넣어봤다).


잠깐 라이프펜 형님을 소개하자면... 이 분과의 인연은 딴지일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분은 이미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셨고(지금은 사라진 ‘베스트 극장’에서 단막으로 데뷔, 장편도 했다. 요즘 다시 단막극이 부활되는 거 같은데, 올바른 현상이다), 나와도 막역한 사이다. PC통신 시절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고, 막 서로 싸우고... 지랄 같이 살았는데, 어찌어찌 사람 인연이 될라치니 딴지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그 다음부터는 죽이 맞아서 오늘까지 인연을 이어오게 된 것이다.


내가 글쟁이 인생으로 장기적인 플랜을 짰던 게 2003년이었다.

 


'결혼도 했고, 자식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담할 수 없는 ‘작품’에 올인했다가는 내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까지도 위험해 질 수 있다. 그렇다면, 3~4년 바짝 돈을 벌어서 2년 정도 작품에 투자할 시간과 돈을 확보한 뒤 한 작품으로 승부를 보자.'


 

란 계획을 짰다. 비슷한 시기 라이프펜 형은 비슷하지만 다른 플랜을 짰다. 그 플랜은 나보다 훨씬 더 디테일했다(형의 성격이 좀 꼼꼼하다).

 


'3년 반을 버틸 자금과 거처를 준비한다. 내 인생은 오로지 글에 바친다(그래서 필명이 라이프펜 lifepen이다. pc통신 시절부터 라이프펜, 생필이란 필명으로 그 이름을 떨쳤다). 그러기 위해서 글 쓰는데 방해가 될 만한 모든 걸 버리고 올인한다.'



(라이프펜 형은 ‘여자’를 포기했다. 글과 여자를 같이 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미래’를 말할 수 없는 남자와 만날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몇 번 소개팅을 주선하려다가 형의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고 접었다. 얼마간 형의 성적취향을 고민했을 정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형은 글 쓰는데 방해될까봐 운전면허도 따지 않았다. 운전면허를 따게 되면 차를 사게 될지도 모르고, 차를 사게 되면 자신이 생각한 ‘최저생계비’가 올라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독한 형이다)


라이프펜 형은 2004년부터 ‘돈’에 모든 걸 올인했다. 물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써야 했지만,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다. SK나 엠넷과 같이 큰 기업을 돌면서 8년간 돈을 모았다. 솔직히 난 그때 형이 글을 포기한 줄 알았다. 그런데 2012년 생뚱맞게 내게 연락이 왔다.

 

 

“이제 돈 다 모았다. 펜더야 시간되면 우리 스터디나 짤까?”

 

 

형은 8년간 돈을 모았다. 3년 반을 버틸 자금을 마련한 것이다. 6개월은 8년 동안 쌓인 몸의 독을 빼는 기간이고, 나머지 3년 동안 도전을 해보겠다는 계산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8년 동안 단순히 돈만 번 게 아니었다. 꾸준히 습작을 했고, 그 와중에 배울 수 있는 모든 걸 배웠다(그림부터 시작해서 글에 도움이 될 만한 경험들을 다 쌓은 것이다).


형은 생계를 위한 최저비용을 다 계산해 3년 반을 버틸 자금을 마련했고, 2012년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3년 반 계산은 틀렸다.


형은 1년 반 만에 콘텐츠 진흥원에서 공모한 스토리 공모에 당선됐다. 장관상을 받은 형은 깔끔히 머리를 삭발하고 장관에게 1억을 받았다(역시 캐릭터 쎈 형이다). 형의 플랜 B는 성공했다.


그럼 나의 플랜 B는 어떻게 됐을까?

 

내게는 가족이 있었다. 딸이 두 명이고, 아내는 ‘마이너스의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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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 계산은 ‘책’이었다. 라이프펜 형은 혼자 몸이었기에 혼자 벌어서 최대한 저축을 하고, 거주공간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난 부양가족만 3명이다. 이들을 데리고 있으려면 최소한의 “집”과 얼마간의 “생활비”가 필요했다. 거기에 “마이너스의 손”을 메꿀 뭔가가 필요했다.

 

직장인 월급으로는 돈을 모을 수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오로지 ‘글’을 봤다.

 

결국 4년이라는 시간을 상정해 놓고, 죽을힘을 다해 글로 돈을 벌겠다는 계획을 짰다. 그러기 위해 생각했던 게 ‘신문연재’와 ‘책’, 최대한 많은 ‘알바’였다. 이종룡씨가 하루 2시간을 자고 알바 4~5개를 돌리던 그때 난 하루 4~5시간을 자며, 미친 듯이 글만 썼다. 가장 피크였던 2006년의 경우 한 달 평균 ‘마감’ 숫자가 60~70개였다. 당시 스케줄을 잠깐 보면,

 

(신문연재 2개가 있었다. 한 군데는 주 5회 연재였고, 한 군데는 주 6회였다. 20회와 24회를 기준으로 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사보 청탁이 4~5개, 외주제작 사보업체의 취재와 기행기사가 4꼭지, 드라마 외주사에 전속으로 들어간 상태였기에 ‘기획꼭지’를 주1회씩 제출해야 했으며, 3개월에 한 권 꼴로 ‘자서전’ 비슷한 책을 고스트라이팅 해야 했다. 덤으로 내 이름을 박은 책도 1~2권 써야했다. “일당작가”의 개념으로 급한 영화 시나리오 각색이나 윤색등등을 했던 적도 있다. 무슨 정신으로 이 많은 글들을 썼는지 모르겠다)

 

(각각의 시장상황과 한국적 현실에 대해서는 분야별로 차차 설명하겠다)

 

어쨌든 당시의 난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미친 듯이 글을 썼고, 성과도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시스템적인 문제를 개인의 ‘비상한’ 노력으로 극복해 냈던 ‘고난의 행군’과도 같은 과정이란 점이다.

 

 


3. 2003년 9월 올드보이...그리고 포기

 

 2003년 9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개봉되던 날 “영화 시나리오”를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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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최고의 영화사였던 싸이더스에서 날 찾았다. 같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자는 것이다. 현업감독이 있었고, 이미 어느정도 아이템이 진척된 상황에서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계약을 차일피일 미뤘다는 것이다(당시 싸이더스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는 걸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됐다). 나 썩어도 준치였고, 안 좋아도 싸이더스였다. 싸이더스가 돈을 안 준다면, 영화판 어디를 가도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작가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였다.

 

...솔직히 말하겠다. 영화판은 양아치들의 천국이다.

 

작가들 몇몇이 모이면, 무용담 삼아 이제까지 떼먹힌 돈을 말하며, 욕을 한다. 누구는 집 한 채 값을, 누구는 아파트 전세금 정도를, 누구는 빌딩 한 채 값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관례적으로 우리는 시나리오 잔금은 ‘포기한 돈’으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 잔금이란, 영화가 개봉되고, 정산이 끝나고 나서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러하고 말이다.

 

시나리오란 장르적 특성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아무리 잘 쓴 시나리오라도 투자를 받고, 개봉을 하지 않는 이상...그냥 “쓰레기”다.

 

1백 개를 쓰면 그 중 1개, 1천개를 쓰면 그 중 1개가 영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찌어찌 “관심”을 끌만한 시나리오를 쓴다 해도 그 다음은 험난한 ‘수정’과의 싸움이다.

 

최근의 트렌드를 설명하자면, 어느 정도 ‘글빨’이 올라온 기성작가의 경우 외부에 돌릴만한 시나리오를 뽑아내는데, 평균 3번 정도의 수정을 보는 게 기본이다(나 역시도 3고 수정까지는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어디에 보일 수 있는 정도의, “글꼴”을 한 시나리오가 나온다.

 

이렇게 3~4번의 수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초고”를 업계에 돌린다. 여기서 돌린다는 건 “배우”들과 “투자사”에 돌린다는 것이다. 요즘 영화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갑중의 갑인 “배우님”들의 눈에 들어야 한다. 아니면 영화를 시작할 수 없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 가상 캐스팅을 하는데, 거기서 1, 2, 3순위를 정한 다음 각각의 매니지먼트에 돌린다. 그 결과에 따라 투자사에 돌린다. 만약 ‘티켓파워’가 없는 배우가 이걸 물면? 영화는 못 들어간다. 설사 들어간다 해도, 망한다. 아니, 아예 못 들어간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렇게 업계에 한 번 돌린 다음에 “입질”이 온다. 업계용어로 “배우고”와 “투자고”가 나오는 것이다. 일단 배우고부터 보자면, 한 번 시나리오의 ‘선’을 본 경우 배우님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데(거의 대부분 배우가 아니라 매니저와 기획사 실장들의 의견이겠지만), 그런 다음 전교(傳敎)가 내려진다.

 

 

“이러이러한 씬은 과인의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으므로 빼는 게 좋을 것이다.”

 

“과인은 <광해>의 OO장면을 인상 깊이 보았다. 그런 장면은 없는 것이냐?”

 

 

이런 경우에는 그나마 “양반”이다. 어떤 배우의 경우에는(업계에서 유명하다),

 


“과인이 눈이 침침하고, 공사가 다망하여 시나리오를 읽어도 제대로 분위기를 파악할 수 없으니, 레퍼런스 체크를 위한 동영상을 준비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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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말도 나온다. 아, 레퍼런스 체크. 영어로 써서 어렵지만, 간단히 말해서 이 시나리오와 비슷한 유형의 다른 작품들(이미 개봉했던)을 편집해 어떤 ‘역할’인지를 동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걸 보고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비위 맞추기 참 힘들다.

 

이렇게 배우들의 입맛에 맞게 수정을 하는 것을 “배우고”라고 한다. 그 다음은? 돈을 대는 투자사들에서 나오는 ‘조건’과 ‘입맛’들을 수정해 줘야 한다.

 


“그 왜 <살인의 추억>같은 삘 없어?”

 


이해하겠는가? 어쨌든 투자사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을 클리어 해주는 게 “투자고”이다.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시나리오가 “고” 사인을 받아도 수정은 계속 이어진다. 음...“제작고”라는 것도 있다. 이를테면...불필요한 “나이트씬” 같은 경우에는 제작비의 압박 때문이라도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O 작가 71씬의 나이트 장면 있잖아. 이거 꼭 넣어야 해? 주인공들 감정변화는 그 전에 진행 다 됐잖아? 에이, 선수끼리 왜 이래? 산 한 번 태우는데 돈이 얼만데...이 작가 산 말고 풍광 좋은 해변가 어때? 야야, 제작비도 생각해야지!”


 

이런 건 이해해 줘야 한다. 업계의 구체적인 상황을 다 말해줄 순 없고, 2000년대 초반까지의 기준으로 설명해 주겠다. 하루 촬영을 하는데 있어서 장비값(카메라 랜탈비용 같은 것들)만 3천~4천만원 정도 깨진다(일반적인 로맨틱 코메디의 경우). 보통의 경우 영화 한편은 30~40회차 정도의 로케를 통해 완성되는데, 말 그대로 제작비와의 싸움이다.

 

이건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인데, 할리우드 방식의 대표적인 게 삼진 아웃제도이다. 하루에 촬영 분량이 얼마이고, 예전의 영화와 비교해 보니 하루에 3컷 정도 찍으면 된다라는 계산이 나오면, 이런 조건들이 붙는다. 촬영 장소에 도착해서 첫 촬영이 언제 들어갔느냐, 만약 하루 분량을 못 찍었을 경우 누구 잘못이냐? 예정된 촬영 시간을 어겼다면 누구 때문이냐? 등등을 감시(?)하고, 만약 일정을 어겼다면, 철저히 수사(?)해 귀책사유를 확인하고 그 사람이 3번 이상 잘못하면, 해고당한다. 그래서 그런지 할리우드에서는 첫 촬영은 언제나 제일 쉬운 씬들이다(당연하겠지만).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든 촬영일정을 지키려 한다(예술? 그 딴 거 없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것이다. 영화는 대단위 자본이 투입되는 “산업”이 됐다. 독립영화 찍는 게 아니라면, 감독이 자기 돈 들여 찍는 게 아니라면 타협을 하고, 조율을 해야 한다.

 

 

한국 영화도 마찬가지다 “쉬리”의 순제작비가 26억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 흔하디 흔한 로맨틱 코미디 제작비가 45억 수준에 육박하는 시절이 됐다. 여기에 마케팅 비용 들어가면, 얼마가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가 됐다. 2차 판권 시장이 붕괴되고, IPTV에서는 너나할 거 없이 BP(바스트 포인트. 한마디로 젖꼭지다. BP가 들어간 경우에 5억을 더 주겠다란 말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최근 IPTV의 “힘”이 만만치 않게 됐다)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제작사 입장에서는 어쨌든 15금을 받아야 하기에 고심에 고심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이번 작업에서 ‘얼마나 벗기냐’를 두고 고민했다. 그렇게 중요한 장면이 아니었기에 15금에 맞춰서 싹 수정을 했다. 그런데 만약 IPTV쪽에서 ‘콜’이 온다면, 그리고 19금으로 가겠단 사인이 나오면, 다시 싹 수정 들어가야 한다)

 

 

어쨌든 나이트씬 들어가면 좋아할 사람은 ‘조명팀’밖에 없다. 만약 산을 태우는 경우(라이트의 전구가 탄다! 때문에 ‘태운다’란 말을 한다) 제작부는 ‘하루’를 날린다. 산에서의 장면인 경우에는 배우들 스케줄 조정부터 시작해, 나이트 작업이기 때문에 스태프들도 전날 쉬게 만들어야 하고(요즘 대기업이 들어오고 나서 이런 일정은 “깔끔”해졌다), 밥차 일정도 잡아야 한다. 돈 까먹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물론, 조명기사는 좋아한다.

 

 

“O작가, OO감독님이 예술을 안다니까! 여기서 텅라이트 쫙 태워주고, 주인공이 싹 움직이면, 이거 그림 나온다. 여기에 살짝 갓등 하나 올려주면... 와우~ 죽여! 그림 나와!”

 

 

(낮씬에서 ‘물’장면 있을 때 배우들의 체온유지를 위해 텅라이트 태울 때도 참 좋아한다)

 

 

은근슬쩍 갓등 하나 추가시켜 견적 올리려 하는 경우도 봤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제작부에서 제작비 문제로 걸고넘어지면, 100% 고치자는 주의다. 그건 당연한 의무다.

 

 

이렇게 아주 “순탄하게” 시나리오를 고치면 25~30고 정도 나오게 된다. 30번 정도 고치고 영화가 들어간다면 아주 순탄하게 진행된 경우다(이건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다).

 

 

까놓고 말해서 여기에 대해 “불만”을 가져 본 적은 없다(물론, ‘짜증’이 좀 나긴 했지만). 시나리오는 영화가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냥 쓰레기다. 아울러 나 혼자 “예술”을 하는 게 아니다. 수십억 대의 ‘남의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감이 안 오겠지만, 어지간한 중소기업의 1년 매출 보다 더 많은 돈을 때려 박는 ‘모험’이다. 무미건조하게 말하자면,

 

 

“70페이지짜리 종이뭉치 하나를 내밀고, 45억을 끌어내는 사기”

 

 

라고 말할 수 있다. 자, 문제는 이때부터다 이 “사기”를 치려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시나리오다. 이걸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그 싸움에서 가장 큰 약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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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작가”들이다.

 

 

다음 회에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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