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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26. 수요일

범우








전화를 받고 저녁 약속을 했다. 수제비를 먹을까 하다가 저녁은 밀가루보다 쌀을 먹어야 한다는 내 의견대로 두루치기를 먹었다. 영화를 보기로 했다. <탐욕의 제국>, 제목이 귀에 익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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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약속을 상영했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표값은 4000원 저녁을 얻어먹은 대신 표값을 내기로 했다. 팜플렛도 없고 포스터도 없다. 다만 제목이 오래전에 들은 듯 귀에 익어서 글로벌자본의 자본증식에 연료가 되고, 원료가 되는 제3세계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70여명정도가 들어선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는 삼성전자에서 산재인정을 받기위해 싸우는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님과 전직 직원들과 가족들의 처절함이 버거운 싸움과 또 한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었다. 죽음의 책임을 묻은 운구차를 둘러싼 차벽과 직원들의 물리적 저지과정에서 막아서는 자들의 표정 면면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화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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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제국 한 장면



명령을 받은 사냥개처럼 맹렬한 증오심을 표현하며 난폭함을 드러내는 사람과 당신들의 처지는 딱하지만, 나도 먹고 살기위해 어쩔 수 없다는 듯 찡그린 얼굴로 몸으로 막아서는 사람들과 곤혹스런 얼굴로 자리만 차지하고 선 사람들의 모습들은 약자들이 사회적 강자들의 횡포에 울분을 토로하는 자리 어디서건 익숙한 풍경들이다. 항상 그러는 것처럼 싸움이 벌어지면 처음의 이유와 고민들 따위는 잊어버리고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순수한 증오만 남는다.


너무 처절할 것 같은 장면에서는 음향을 완전히 죽이고 화면만이 나왔다. 그래도 분노와 절절함이 뭉뚱그려진 악에 바친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다.  <또 하나의 가족>이란 영화는 처절함이 날것으로 버무려진 다큐멘터리에 비하면 감성에 메시지를 담은 오락영화다. 둘 다 거대자본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상영관잡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다.

 

반올림과 황유미씨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이 공유정옥님의 강연을 통해서였으므로 <또 하나의 약속>이란 영화에서 분노하고 싸우던 노무사의 모델이 공유정옥님인줄만 알았다. 이종란 노무사님이 있었다. 아마도 영화의 캐릭터는 두 사람을 녹여낸 모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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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황상기(좌,박철민분)씨와 이종란노무사(우, 김규리분)



국회 특위장면에서 증인석에 앉은 부사장님의 증언에 분노한 황상기님의 분노에 눈을 맞추지 못하고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고 상황이 그래서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짜증과 분노로 일그러지는 표정에서 자신을 국회 특위로 끌어낸 산재 피해자들과 피해자 가족들에게 증오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보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문제가 되는 아직은 문제가 있는 사회의 단면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선택은 때로는 갈망하는 것을 쟁취하기도 하지만 보다 덜 소중한 것을 포기하기도 한다. 군중을 이끄는 리더의 선택이 아닌 삶을 이어가기 급급한 소시민의 순간순간의 선택들도 흐름을 타고 나아가는 방향성이 있는 것 같다. 조용하던 흐름이 모이고 쌓이면 격렬한 급류로 변해 권력자들의 의지와 권위로 막혀있던 제방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흐름을 분산시키고 방향성을 조정하기위한 언론의 움직임도 보인다.


황상기씨의 따님 황유미씨가 다니던 회사 회장님의 따님이야기가 뉴스에 올랐다. 형편이 어려운 노령의 택시운전사가 회장님 따님이 사장님이신 호텔 회전문을 들이받아 5억 상당의 재산피해를 냈는데 5천만원 한도의 책임보험만 가입되어있는 상태라 개인이 부담해야할 4억이 넘는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치료비도 부담 해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걸 실천했다고 칭송이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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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칭송



미모와 패션 감각, 남자 신데렐라를 만들어낸 진정한 사랑을 찾은 감동적인 러브스토리, 숨겨진 선행 , 그녀를 가르친 아버지의 명언까지 언론흉내 내는 곳마다 경쟁적으로 칭송의 나팔을 분다. 샘물은 퍼낼수록 맑은 물이 올라온다. 아낌없이 베풀라. 장사꾼이 되지 마라. 작은 것 탐내다가 큰 것을 잃는다. 참 주옥같은 명언들이다.


달보고 운다고 다 늑대는 아니다. 때로는 흥에 겨운 개들이 내는 하울링도 선명한 야성의 울림처럼 들리기도 한다.


공성전에서 항복한 성의 모든 시민의 목숨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대표자 6명의 목숨을 요구하는 점령자에게 스스로 처형을 자청한 성의 최고 부자와 시장 법률가등의 귀족다웠던 귀족이야기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어원이고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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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로댕의 '깔레의 시민'



호텔 출입구를 박살냈던 택시운전사는 급발진을 주장했고 목격자의 진술도 있었지만 경찰은 운전부주의로 결론 내렸다. 노령의 모범 택시운전자에게 부상당한 투숙객과 호텔 시설물에 대한 수 억원의 배상책임이 생겼다.


뇌경색을 앓는 부인을 돌보며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받을 가망도 없고 죽으라고 떠미는 사단이 일어날 뻔 한 배상금청구를 통 큰 결단으로 면제해주신 사장님의 아량에 택시기사님은 감격하고 고마워 하셨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나락으로 내몰렸다가 살아난 마음이면 복근이 생길 때까지 허리를 접었다 폈다 하며 인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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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시운전기사는 다행히 해결되었지만...



잘못한 일은 질타하고 잘한 일은 칭찬해서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 일이다. 이것 따지고 저것 제해도 잘했다고 말해줄 수밖에 없다. 기왕 잘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 하는 김에 또 한명의 택시운전사 황상기님도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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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시운전기사(황상기씨)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먹고 살기 급급해서 잠간 세상 이야기를 짧은 뉴스로만 접하고 마는 사람들이 태반인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봐도 기레기는 비속어나 욕이 아니라 고유명사가 맞는 것 같다.








범우


편집 :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