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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27. 목요일

해외불패 으라랏차








편집부 주



이 글은 해외불패에서 납치되었습니다.


으라랏차 님의 글은 이미 마빡에 2번 납치된 바,

1번 더 납치될 시, 삼진 아웃의 원칙에 따라 

딴지 필진으로 임명 되어 강제 노역에 동원됩니다.   








아주 예전 얘기야. 벌써 근 10년 지난 일인 거 같아. 그러니깐 내가 20대 후반, 직장생활한 지 얼마 안됐을 때야.

 

오사카 출장을 갈일이 있었어. 아마 업체 미팅이었던거 같아. 꼬박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래처에 붙들려 있다시피 하고, 다음 날 오후에는 시간이 비어 혼자 시내를 구경할 겸 돌아다녔어.

 

남바 근처 텐텐타운 돌면서 온갖 야시꾸리한 거 구경하고(왜 그거 있잖아, 1층엔 게임 음악씨디, 2층엔 그라비아잡지 및 DVD, 한 층 더 올라가면 온갖 성인용품 및 야설, 한 층 더 올라가면 완전 AV 파는 매장) 어찌 어찌 돌다보니 도톤보리까지 걸어가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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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광고판이 있고 밑에는 강인지 운하인지 있고 사람 엄청 많고 바글바글 거리는 동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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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요 동네



아무튼 여기까지 오고 보니 심각하게 담배가 피고 싶어지더군. 걸어오는 동안 담배피는 사람 한 명 없으니 괜히 함부로 잘못 피면 당장 벌금딱지라도 날라올 꺼 같았단 말야. 근 2시간 가까이 담배를 안 피우니 슬슬 금단현상이 오고 아주 미치겠더군.

 

그런데 도톤보리 저 광고판 있는 다리 위에 가니깐 글쎄, 이렇게 생긴 애들 서너 명이 침까지 뱉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야. 일본만화에 나오는 이런 머리스탈이 진짜 있구나 하며 깜놀랬지 뭐야.

 

 

 

요렇게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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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밀고 리젠트머리한 일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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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살았다.

 

‘저기서는 담배펴도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담배를 꺼내들고 그쪽으로 갔는데  담배는 있는데 라이터가 없는게 아니겠어. 


그때 나는 일본어를 거의 하지 못했어.아주 기초적인 회화도 못했을 때거든. 


담배를 꼬나 물고 걔들한테 가서 손으로 라이터 불붙이는 시늉을 하니깐 한번 쓱 쳐다보다가 담뱃불을 친절하게 붙여주더군.


뭐야, 얘네들. 생긴 건 저래봬도 꽤나 친절하잖아. 혹시라도 시비걸면, 진짜 내가 오죽 급하면 니들처럼 무서버 보이는 애들한테 담뱃불 빌리겠니. ‘이해해 줘라’를 일본어 아니, 영어로 뭐라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쩝.

 

담배 생각에 정신이 없었는데 한 모금 빨아 내뿜고 나서 보니깐 좀 이상한 거야. 담배 피는 게 얘네 일행 밖에 없고 사람이 억수로 많아 바글바글 거리는데 이쪽 담배피는 애들과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

 

그때 내가 입고 있었던 게 삼선 츄리닝에, 걸레가 된 집에서 안 신는 운동화, 출장와서 잊어버려도 되는 거 챙겨가지고 와서 맨발에 꺾어 신고 있었걸랑. 더구나 내 인상이 사실 이런 얘기 하기 뭐하지만 좋은 편은 아냐. 어떤 놈한테는 유오성 닮았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딱 요런 꼴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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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꺾어 신은 운동화에 너무 오래 걸어 다리가 아프더라고. 그래서 요 위 사진처럼 쭈구려 앉아서 담배를 폈어. 물론 한국사람인 거 들통나면 웬 한국거지가 왔냐 하는 소리 나오고 나라망신 시킬 꺼 같아 한마디도 안했지. 

 

근데 담배피는 녀석들이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말하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난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막 일본어 공부를 한번 해보려던 참이었어. 그래서 현지인이 말하는 생활 일본어를 잘 들어봐야지 하면서 저런 똥싸는 자세로 걔네들 쪽을 바라보며 열심히 말하는 걸 들어봤지. 

 

근데 그 순간 그 녀석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어.

 

‘씨발 왜 노려봐 쫄게시리. 그런 불량스런 옷과 헤어스타일을 해가지고 사람 쳐다보면 나 같은 사람은 겁먹는단 말야.’


언능 눈깔아야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 녀석이 순간 흠칫 놀라는 거 같더니 고개를 돌리더군.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거리더니 담배 끄고 우르르 자리를 뜨는 게 아니겠어.

 

아니, 니들이 가버리믄 어떻게 해. 니들이 피우니깐 나도 피웠는데 니들 없으니 나 혼자 담배 피우면 안되는 곳에서 피우는 사람 같이 되어 버렸잖아.

 

결국 나 혼자 남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받으며 끝까지 피고는 자리에 일어나 타코야키 하나 사먹으며 한바퀴 더 돌아다녔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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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볼 일 보고, 뒤를 안 닦은 느낌이라면...





편집부 주 : 일분 일초라도 먼저 눈을 깔려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 사건은 오사카 한인 집단 다구리, 또는 17:1 민족혼 등의 허무맹랑한 웃빵으로 와전돼 한일갈등을 유발, 필시 한일전쟁의 시발점이 됐을 것임이 자명합니다.  


근 10년만에 공개되는 한일양국의 비사 속, 보이지않는 곳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고귀한 생명을 지켜낸 양국의 배려심 넘치는 흡연자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해외불패 으라랏차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