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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3. 31. 월요일

해외불패 요제프K








요즘 팟빵에서 신선한 팟캐스트를 뒤지고 있는데 국민 TV <진보정치의 미래를 말하다> 라는 팟캐스트가 있길래 들어가서 무슨 팟캐스트인가 해서 봤더니 “NL- PD계보” 라는 이름을 단 에피소드가 있었다. 사실 다운 받고 아직 듣지는 않았지만(팟캐스트 진행자들이 좋아하는 다운만 하고 안 듣는 청취자임.) ‘참 저런 것도 팟캐스트로 만드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


쥐며느리.gif

뒹굴 뒹굴...



침대에서 배 깔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참 야권이건 여권이건 우리나라 정치에는 계파도 많고, 우리나라 어딜 가든 이쪽 저쪽 갈라서 여러 패거리가 많다는 것을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 맞다. ‘내가 속한 이 그룹도 계파가 있지!’ 하고 깨달았다. 내가 속한 이 그룹의 계파도 졸라 재미나고 갈등이 깊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내가 속한 이 그룹은 한국사회에서 여러가지 용어로 묘사되고 있다. 



내 군대 선임의 말에 따르면 "미국물 먹은 혀굴리는 새끼들" 

내 친구 말로는 "고삼지옥을 겪지 않은 행복한 놈들"

국대 축구에서는 "결국 해답은 해외파"

케이팝 스타 용어로는 "미국의 소울을 가진 참가자"

심심찮게 여자 연예인과 결혼을 하는 존재 "재미교포 사업가"

미드에 출연한 "한국계 미국인" 배우



등등 졸라 다양하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긍정적 시선도 있지만 부정적 시선 또한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위에 나열된 문장들은 어찌어찌 해외에 살게 된 교포들을 일컫는 것들이다. 그 중 나는 우리 세대의 이야기, 즉 지금 20대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난 북미 대륙에만 거주했으므로 북미, 그중 특히 미국 20대 이야기를 한다고 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United-States.jpg

2011년 미국 해외유학생 숫자이다. 우리나라는 3위를 차지했다. 

인구 비례로 따지면 아마 세계에서 가장 높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 많은지 수치가 아닌 알아듣기 쉬운 말로 설명하자면,

한국인이 없는 동네는 미국에서 찾기 힘들다. 정말로.



미국에 처음 유학을 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인구 10만도 안되는 작은 동네에 위치한 사립학교에 다니게 된 나는 영어를 거의 못해서 잔뜩 쫄아 있던 상태로 수업 첫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 학년에 30명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라 전체 학생들을 대충 파악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 있는, 건축물로 보자면 주상복합상가 같은 곳이었다.


일본에 황실의 자녀들이 다니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붙어 있는 에스컬레이터인가 뭔가로 불리는 학교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 학교도 그와 비슷했다.


물론 차이점이 있다면 이 아이들은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그냥 잠재적 먼 미래의 공화당 골수 지지자들이라는 것 빼곤. 이런 성향을 가진 학교라 이 학교는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을 시행하여 유학생을 받지 않고 있었다.(민주당원과 외국인 출입 금지!)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고로 내가 학교 설립 근 30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간 유학생이었다. 그 학교에서의 1년은 졸라 미국 보수의 뜨거운 맛을 본 진귀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내가 유일한 유색인종은 아니었다. 내가 속한 학년에는 한국계 미국인, 즉 재미교포 2세 한 명이 재학 중이었다. 이름은 제이슨.(개새끼야, 잘 지내냐?)


수업 첫 주가 무사히 지나가고 슬슬 학교 학생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일상의 지루함을 떨치려는 시도를 할 때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제이슨이라는 새끼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날 이용한 장난을 하는 것이었다. 어떤 장난이었는지는 너무 유치해서 떠올리기도 싫다. 주로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고 이상한 단어들로 날 놀리는 뭐 그런 내용의 장난이었다.


전면에 자기가 나서는 것도 아니고 자기 백인 친구들을 시켜서 나를 놀리고 자기는 위에서 조종을 하는 뭐 그런 상황이었다. 애를 때리면 당장 미국에서 쫓겨난다고 나를 도와주시던 유학원 직원 누나의 말이 기억이 나서 어느 정도 참고 있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제이슨을 불러냈다.



"야 이 씨발새끼야. 너 왜 자꾸 나한테 시비질이야? 디지고 싶냐?"



어깨를 툭 치며 다짜고짜 한국말로 욕을 했다. 그러자 제이슨이


what.jpg



존나 이런 모션을 취하며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투로 



"What?" 



하고 대답 했다. 완전 빡이 가서 어깨를 툭 치며(화나면 부산사투리가 나온다.) 



"니 엄마랑 한국말로 통화하는 거 다 들었다 새끼야."



라고 했더니 제이슨이 어버버거리다가 나에게 되물었다.



"어... 근데... 시비가 뭐야?"



그렇다. 이새끼 내가 앞에 말한 욕은 다 알아 들었는데 '시비'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도 '시비'가 영어로 뭔지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욕과 모션으로 겁을 잔뜩 주고는 화장실을 나왔다.(팔로 어깨를 밀쳐서 화장실 벽으로 밀어붙이는 등의 모션, 피는 안났다.) 그 후 제이슨은 나를 슬슬 피하게 되었고, 학교 내에서 이상하게 소문이 퍼졌는지 나를 함부로 대하는 애는 없었다. 아마도 제이슨이 쪽팔리지 않으려고 알아서 잘 포장을 했겠지.


그런데 이러한 갈등이 개인 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큰 스케일로, 계파를 이루어서 전 미국에서 일어난다.


미국 학교(주로 대학)를 다니는 ‘한국 혈통’의 학생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fob 와 twinkies파아브 와 트윙키.(한쿸 발음임)


물론 한국에 있는 내 친구들은 도찐개찐 둘 다 코쟁이 양키놈으로 보지만 엄연히 두 그룹은 다르다. 우선 단어의 뜻을 알아보면 fob는 fresh off the boat의 준말로 "방금 배에서 내린 놈"이라는 뜻이다. 즉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되는 유학생을 일컫는 말이다.


트윙키


twinkies.jpg



미국에서 절찬리에 판매되다가 사라진, it업계로 치자면 블랙베리 같은 졸라 상징성있는 미국 간식이었지만 열량이 엄청 높아서 아무도 안사먹는 과자이다. 결국 제조사가 파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보다시피 겉은 노란색이고 안은 흰색이다. 한국에서는 재미교포를 흔히 바나나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미국에선 트윙키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린다.


fob와 트윙키의 구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확실한 것은 언어다. 한국말을 제일 잘하느냐 아니면 영어를 제일 잘하느냐, 이것이 그들을 나누는 가장 큰 잣대일 거다.


여기서 왜 출생지가 더 중요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실제로 한국에서 출생한 이민 1.5세대(부모와 함께 이민 온 친구들)는 초등학교를 한국에서 마치고 이민을 갔어도 영어를 한국말보다 더 잘하고 fob보다는 트윙키에 분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미국 출생이지만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한국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한국 문화에 더 익숙하게 된 경우도 있다. 고로 제1 언어가 무엇인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들의 갈등의 골은 은근히 깊다. 내가 다니던 미국 모 대학은 한인 학생회가 2개가 있다. 하나는 fob가 주축이 된 학생회였고, 나머지는 트윙키가 주축이 된 학생회였다. 실제로 모임에 가 보면 fob가 주축이 된 학생회에서는 힌국말로 이야기를 하며, 한국 가요를 틀어 놓은 채 둘러 앉아 소주를 마신다. 반면 트윙키 그룹은 모든 행사를 영어로 진행하며 팝송을 틀어 놓고 미국식 스탠딩 파티를 즐긴다.


fob학생회에선 축구 동아리가 있지만 트윙키 학생회에는 미식축구 동아리가 있다. 그리고 트윙키 학생회에는 범아시아적 개방성이 있어서 베트남이나 중국 이민자 출신 학생들도 자유롭게 들어오는 반면 fob학생회에는 순혈주의를 지향한다.


두 학생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를 열어 단합을 다지는 척하지만 서로 간의 자존심(목숨)을 건 체육대회는 마치 한일전 분위기와 비슷해서 싸움 구경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나로선 그것만큼 설레고 즐거운 것이 없었다.


트윙키는 fob를 "미국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subculture 집단"으로 묘사하며 무시하고 fob는 트윙키를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는 뿌리를 모르는 근본없는 집단"으로 묘사하며 무시한다.


사실 둘다 졸라 외로워서 이런다는 것이 내 결론이긴 한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우우우.jpg





2편에선 각 집단 하위집단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 fob의 경우 교환학생, 어학연수, 조기유학, 외고출신 등 하위집단들이 졸라 많다. 외국생활 짬순으로 나뉜다고 보면 된다. 트윙키는 백인파, 흑형파, 범아시아파 등 문화적 갈래로 나뉜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는지, 그들이 대체적으로 두려워 하는 한국으로 귀환 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취업한 친구들도 있고 그러하니 그들의 수기가 들어갈 수도??ㅋㅋ


그럼 2편에서!





해외불패 요제프K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