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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01. 화요일

아외로워









편집부 주


<아외로워>의 “탐험! 축빠의 세계”, 

월드컵까지 매주 화요일 칼같이 연재됩니다.

(라고 본인이 말했습니다.)










프롤로그

 

세상엔 많은 취미가 존재한다. 어느 헬스장에서나 볼 수 있는 Gym박령들처럼 건강한 취미를 가진 분들도 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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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음악과 더불어 코카인도 취미삼아 흡입하는 분들도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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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지 돈 쓰면서 남들이 백안시하는 짓을 골라 하면서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는 기인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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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축빠라는 사람들이다. 이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해보자.




축빠의 기원

 

축구가 있은 이후 축빠는 어디에나 존재했다. 범지구적 축빠의 역사를 언급하려는 생각은 없고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나라만 살펴보자. 우리나라 축빠의 근원은 대한 축구협회에 소속된 남자 국가대표 축구팀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IOC회원국 수보다 피파에 등록된 국가대표팀의 수가 훨씬 많다. 올림픽이 국가단위 조직으로 정돈돼 있는 것과 달리 국가단위의 축구협회는 좀 느슨하게 관리되는 것 같다. 영국만 해도 나라 안에 4개의 축구협회가 있고 얘네가 모두 따로따로 월드컵에 나온다. 이럴 수 있는 이유는 올림픽이 명목상으로나마 모든 인류의 평화와 사랑을 내걸고 있는 반면 축구는 상대적으로 노골적인 전쟁의 대용품이기 때문이다.


축구는 국가간 갈등은 물론이고 각종 분리주의나 지역갈등을 반영한다. 축구 국가대표팀, 특히 성인 남자 대표팀은 곧 그 나라 자체로 치환되어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말한 영국 축구의 네 집 살림은 앵글로 섹슨과 켈트족의 오랜 갈등을 반영한다. 영국 뿐만이 아니다. 한일전에서의 패배는 곧 일본에 대한 한국의 패배로 인식되며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가 월드컵에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개처럼 물어뜯는 것은 메시가 루니랑 현피를 뜨거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처럼 현피가 축구에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축구싸움이 현피가 되어 전쟁을 치른 경우다. 사이가 안 좋은 나라끼리의 축구경기일수록 격해진다. 전쟁을 ‘또다른 수단을 통한 정치의 연장’ 이라면 축구는 전쟁이 맞다.


그래서 국가 자체로 쉽게 치환되는 이른바 '국가대표'의 존재는 축구를 더욱 특별한 스포츠로 만들어준다. 이도저도 아닌 불안한 처지에 있는 나라들에게 대표팀의 존재는 더욱 특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티벳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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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대의 밀접성에 관련되서는 홍대선-손영래 공저의 '축구는 문화다'라는 책이 아주 잘 다루고 있다. 축구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간의 쓰레기같은 역사더미도 그대로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그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한국 축구도 마찬가지다.


설령 축구에 관심이 없거나 태어나서 축구공을 단 한번도 차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축구경기에서 자국 팀을 응원하는 데는 큰 문제도 없다. 룰을 모르고 보면 도대체 저들이 뭐 하는 것일까 싶은 크리켓이나 미식축구와는 달리 축구는 양쪽에서 서로를 향해 공을 뻥뻥 차대는 직관적인 룰을 가진 것도 초보들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리고 적당한 계기가 있다면 전 국민이 한 순간에 축구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2002년의 대한민국을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 이렇게 축빠라는 생명체의 원시형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국대빠는 새로 치면 시조새이고, 인간으로 치면 호모 에렉투스다.




국축과 해축

 

월드컵을 보며 우리나라가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강한 한국축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크게 두 가지의 방법론이 있다.


일단 대표팀 선수를 축구 잘 하는 외국에 내보내서 선수들의 견문을 넓히자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즉, 한국 축구의 발전이란 유럽에 있는 유명한 클럽에 많은 선수를 보내는 것이며, 한국 내에서의 축구는 유럽에 보낼 선수들을 길러내는 데 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외국의 좋은 팀에서 뛰는 좋은 선수들이 많아지면 국가대표팀의 성적도 올라갈 테고 따라서 한국 축구의 수준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해외파 선봉장은 누가 뭐래도 박지성이다. 비록 언론사 스포츠면이 ‘영국에 있는 무슨 좋같은 신문이 박지성에 대한 한두 줄 정도 입에 발린 칭찬을 했다’ 따위의 헛소리로 도배되며, 명색이 기자라는 인간들이 영국인만 만나면 ‘두유노박지성’ 이라는 숙어를 남발하는 참사가 일어나긴 했지만, 박지성의 등장은 한국선수 유럽 진출론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다른 주장은 국내리그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해외에 진출한 뛰어난 선수중에 국내 프로리그에서 뛴 경험이 없었던 선수는 사실 그리 많지 않으며, 프로 커리어를 외국에서 시작한 선수들도 유소년시절 한국에서 잘했던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영국 축구를 강하다고 하는 것이 영국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많이 해서가 아니고, 잉글랜드가 최고수준의 리그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내리그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나라 축구의 수준을 올린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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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국축빠라고 해서 ‘두유 노 박지성’류의 헛소리를 뱉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위의 사진은 한 그리스인이 자발적으로 고백한 ‘아이 노 포항’이지만, 이쪽에서 먼저 ‘두유 노 포항’ 이라던가 ‘두유 노 성남’ 하는 경우도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주장을 보면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바보인 것도 아니며, 또 어느 한쪽만 더 말이 되거나 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모두가 일리 있다.


마치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을 식물과 동물로 나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 국대의 경쟁력 강화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도 대부분 해외진출파와 국내리그강화파로 나눌 수 있다. 전자가 진화해서 축빠가 되면 ‘해축빠’가 되며, 후자가 진화해서 축빠가 되면 ‘국축빠’가 된다.




국대. 뭐지?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축구협회가 있다. 이른바 대한축구협회(Korea Football Association)가 있다. 아까도 말했던 것과 같이 축구는 클라우제비츠가 정의한 전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은 군대라는 이미지가 있다. 일본에 ‘원정’을 가기도 하고 미드필드에는 ‘사령관’도 있다. 다른 대표팀을 ‘격침’시키기도 하는 태극’전사’들은 국가를 위해 싸운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축구 국가대표팀은 군대가 아니다. 국민들이 이입하고 있다는 점만 빼면 한창때의 창창한 젊은이들을 무상으로 데려다 쓰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다. 월드컵에서 진다고 우리나라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고 이긴다고 다른 나라를 식민지배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가대표팀이 대한민국 축구의 저력을 응축해놓은 존재도 아니다. 여러 가지 정치적, 현실적 이유로 각각의 포지션에 최고의 선수들이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최고의 선수라 할지라도 다른 선수들과 잘 어울릴 거라는 보장도 없다.


축구협회 자체도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팟캐스트에서 이미 말한 일이 있지만, 나의 편협한 소견에 따르면 이렇게 국가단위의 사단법인을 운영하는 사람들을 다 도둑놈들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다. 걸핏하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걸리는 흉흉한 세상이니 확실히 이야기 하건데, 실제로 그들이 도둑놈일 거라는 단정적인 발언은 아니며 좀 강한 비유일 뿐이다.


어쨌든 이런 비영리 사단법인이 의례 그렇듯 대한축구협회가 진짜로 영리활동을 하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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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지만 위 사진에 나온 조동건과 김동섭의 가슴에 KT라고 쓰여진 글자는 공짜가 아니다. 유니폼 이외에도 대한축구협회는 여러 기업으로부터 스폰서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가대표 및 여타 대표팀 경기 입장권도 공짜가 아니다.


국내파든 해외파든 국가대표에 소집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명성과 스타성을 가진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을 그냥 공짜로 소집해다가 쓴다. 땅 짚고 헤엄치기도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가 없다. 게다가 대표선수로 뽑히면 선수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며, 선수 선발 권한을 가진 감독은 엄청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 그런데 또 감독이 권한을 가지면 그것도 다행이다. 축협의 더 높은 분들이 감독 데려다 감놔라 대추놔라만 안해도 한국 축구에서는 혁명이다.


대표팀이 특별히 거지같다는 말을 하려는 말은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반 대항 축구경기를 한다고 해도 자식 기 살려보려는 부모들이 선수 선발 비리를 저지르는 세상이다. 어른들의 일에서 (그것도 한국에서) 순수성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순진한 것이다. 한국 국대가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이 정도도 치열하지 않게 사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축구협회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국가대표 축구팀은 공무원도 아니고, 군대도 아니며 신성한 무언가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국가대표팀은 대표팀이 가진 주목성을 활용해서 각종 수익을 내고, 또 유권자로서의 축구팬을 보고 정치인이 모여드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 축구 클럽과 국가대표팀은 같다.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및 기타 컵대회에 출전하고, 피파랭킹이라는 끝을 기약 할 수 없는 순위를 가지는 특수한 축구팀이다.




해외파 만능론의 약한 고리

 

해외파를 키워 국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그것이 곧 우리나라 축구 수준을 올린다는 주장은 국가대표팀을 그저 하나의 축구팀으로 가정하면 힘을 잃는다. 국가대표팀의 수준이 곧 우리나라 축구 수준이려면 국가대표가 우리나라의 축구 역량을 모두 반영해야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대표의 상징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가대표가 중요하지 않다면 월드컵이 그렇게 장사가 잘 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축구팀이 남자 성인 국가대표 팀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3공 시절 양지 축구단 처럼 상설된 팀도 아니고 팀의 분배구조가 공정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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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리그를 포기하고 해외파로 국가대표를 구성하는 것이 임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한국에서 실력을 검증하지 않으면 외국에서도 오라고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유럽파 축구선수 중에 한국의 프로팀이나 유소년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선수가 몇 명이나 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외국에서 유소년까지 거쳐서 외국에서 뛰는 선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자라서 외국에서 프로 커리어를 쌓는 선수를 굳이 대한민국 국가대표에 들어오라고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선수가 굳이 대한민국에서 뛴다면 그 선수의 마인드는 국가대표 한 번 나가보려고 축구 못하는 나라로 국적을 옮기는 축구 잘 하는 나라 선수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피파 온라인이 아니다

 

해축빠 꼬꼬마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는 피파 온라인이나 FM같은 게임의 능력치와 현실세계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 역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유럽으로 모여든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그 실력이라는 것. 참 오묘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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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2014년 상반기 신림동 고시촌 스타크래프트1 챔피언을 2002년 무렵, 전성기의 임요환과 대결 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참고로 신림동 고시촌은 수많은 스타고수의 요람과 같은 곳이었으며 지금까지 스타1을 한다고 궁상떠는 사람들도 근 20년간 단련된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감추고 있다.


나는 임요환이 질 수 있다고 본다. 전성기 임요환의 전략은 이미 수 없이 많은 대응법이 나와있는 상태이고, 2014년에 유행하는 새로운 전략은 과거의 임요환이 생각도 하기 어려웠던 기기묘묘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젊고 재능 있는 임요환은 2014년 트랜드를 몇 주만 익히면 다시 전성기의 기량을 회복할 것이다. 실력이 어디 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만들었거나, 혹은 유럽 시장을 겨냥하고 미국에서 만든 축구게임들은 너무나 당연히 한국 선수와 한국 리그의 능력치를 낮게 잡아 놓는다. 그건 마치 우리가 일단 덮어놓고 태국 리그의 실력이 당연히 한국보다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의 시각으로 우리나라 축구를 바라보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낙후된 변두리라는 자기확신을 갖게 된다. 그런 것을 우리는 ‘변두리즘’이라고 부른다. 축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훨씬 더 전략적이고 심리적이면서 동시에 비이성적이다. 선수의 성장은 ‘슈팅 + 10’ 따위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을 올드 트래포트의 변방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상암(혹은 다른 구장)에서 올드트래포트(편집자 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장)를 볼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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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외로워

트위터 : @vfoveri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