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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04. 금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3월 26일 베를린에서 조국의 위대한 영도자 ㅂㄱㅎ 댓통령 방독기념 환영? 퇴진 촉구 집회가 화려하게 거행됐다. 이에 본 기자 민족정론지 딴지일보의 이름으로 이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국정원 블랙’ 요원보다 더 큰 아우라를 풍기는 ‘베를린 블랙’ 정도를 상상했으나 그는 상냥했다. 다만 워낙 바쁜 두 아이의 아빠다 보니 인터뷰의 시기가 조금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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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동네에서는 그렇게 인사하면 안된다니까요.



타데우스 (이하 타): 반갑다. 일단 자기 소개를 간단히 해 달라.


유재현 (이하 유): 유재현이다. 유치하게 아이디를 적는 일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청운의 푸르른 꿈을 품고 독일에 온 지 어언 13년이 되었다. 현재는 예술 분야 전시기획일을 하고 있으며 순수 예술을 전공한 예술가다. 독일에 와서 어여쁜 독일 여자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이곳 베를린에 둥지를 틀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두 딸의 아빠로 살고 있다.


타: 이번 환영 및 퇴진 시위를 조직하고 개최한 주역으로 알고 있다.


유: 주역이라 이야기하기 애매하다. 물론 대표로 신고를 하고 경찰과 일정 등을 조율하는 일을 했지만 다 같이 참여하고 만든 집회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타: 다 같이 라면?


유: 젊은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서로 서로 아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고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 진 것이지 누구 하나가 대표로 지시하고 선동하여 이루어진 집회가 아니다. 즉 집회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팀이 만든 행사라고 보면 된다.


타: 여왕님 퇴진을 외치며 이번 집회를 하게 된 그 불순한 의도를 알려 달라.


유: 사실 작년 12월에 독일에서도 전 세계 각 도시와 연계된 시위가 있었다. 물론 이것 역시 어떤 조직이 주도한 그런 형식이 아닌 인터넷을 통하여 서로 서로 뜻이 맞는 교민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저쪽에서 보기에는 모두가 ‘종북좌빨'에 오로지 ‘척결의 대상’으로 보이겠지만 독일만 해도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 서로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그냥 인터넷을 통해 각자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알아서 집회를 연 것이다.


당시 알게 된 사람들과 그 전부터 알고 있던 젊은 친구들이 이번에 다시 한번 모여 우리의 뜻을 전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여왕님이 독일에 올 것은 알고 있었다. 작년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독일도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당시 독일 정부가 구성이 되어 있지 않아서 이번에 따로 온 것으로 알고있다. 그래서 이번에 환영 퇴진 집회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회의 불순한 의도라...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화’다.


타: 시위의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접했다. 물론 한겨레나 오마이 등 몇몇 진보 매체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이 되고 그 이면의 이야기를 해 달라.


유: 독일은 1인 시위가 없다. 최소 3인 이상이 모인다고 신고를 하고 대표로 한 명이 신청서만 작성하면 누구든 그 어떤 시위든 신고할 수 있다.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회를 하기 전 신고의무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경찰과의 협조를 위한 조항이므로, 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라고 해서 경찰이 마음대로 해산을 시키지는 못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적어도 미신고 집회라며 물대포를 쏘아 대는 터프함은 찾아볼 수 없다.


타: 그럼 경찰은 뭘 하는가?


유: 독일 경찰은 집회 현장에서 누군가의 신변에 위협이 있을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시위대를 진압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물대포, 체류탄, 스프레이 같은 것들도 시위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한 가지 예로 독일의 금속노조 조합원 중 한 명이 한국에 방문했다. 당시 금속노조를 방문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보고 아연실색했다고 한다. 경찰의 너무 강력한 진압을 보며 평소 독일 경찰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 독일인은 독일 경찰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 경찰의 진압 도구라는 것들은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의 신체 조건에 비해 너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덕분에 한국의 체류탄이 바다 건너 터키로 수출되어 터키의 집회 참가자들에게 강력한 한국 경찰의 힘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고 한다.


타: 누군가 좋아하는 국격이 높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이 바로 국격과 경제를 한번에 아우르는 창조경제 아닌가 한다.


유: 일단 독일에서 시위는 굉장히 간단하다. 인터넷으로 집회 신고서를 작성하면 끝이다. 이번에 신고를 하면서 조금 많이 놀란 게 절차가 굉장히 간단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명 서류의 나라 독일에서 말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인터넷에 신청서만 작성하고 끝나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그 후 경찰과 만나 일정과 동선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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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집회 신고 인터넷으로 한방에



*독일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회를 하기 전 신고 의무를 두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경찰과의 협조를 위한 조항이므로 신고를 하지 않은 집회라고 해서 경찰이 해산을 시키지는 못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적어도 미신고 집회라며 물대포를 쏘아 대는 터프함은 찾아볼 수 없다.



타: 왜?


유: 이번 여왕님 나들이를 위해서 독일에서는 보안등급을 3단계에서 2단계로 격상했다고 한다. 2011년,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MB의 독일 방문 때 3단계였던 보안등급이 2단계로 높아진 이유가 궁금하다. 독일 스스로? 혹은 한국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아무튼 그냥 국빈 방문의 수준이 아닌 국군식 방문을 했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다른 한인회 단체에서 우리를 방해하려는 시도도 있었기 때문에 경찰과 만나 사전 협의를 진행했다.


타: 오~호~ 흥미롭다. 다른 한인회와 무슨 일이 있었나?


유: 물론 모든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집회 신고를 하고 인터넷에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공지를 띄우기 이전부터 <베를린 한인회>라는 단체는 이미 우리가 집회 신고를 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개 단체가 경찰이 알려줄 리 없는 저런 정보를 알기는 어렵고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었을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타: 대사관 같은 곳에서 개입을 했을 가능성은 없는가?


유: 난 그런 말 안했다. 게다가 경찰과 만났을 때 경찰이 의아하다는 투로 저 한인회 사람들이 자신들의 집회 신고를 하러 와서 우리의 동선과 일정을 계속 캐물었다고 한다. 물론 경찰이 알려주진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어찌 알았는지 집회의 이동 동선이 겹쳤는데 이 역시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후 다시 경찰과 일정을 조율한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좋은 자리에서 편안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타: 대사관 맞는 것 같은데.


유: 뭐 니 말은 니가 책임 져라.


독일 경찰이 보기에도 저들은 극우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경찰과 가스통을 들고 다니는 엄마, 아빠 모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그들이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우파 혹은 보수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쨋든.


독일에서 극우파라고 하면 일단 굉장히 위험하다는 인상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우파의 시위나 집회가 있다면 경찰은 이 정보를 따로 공개하여 시민들에게 알려준다. 즉 한국의 가스통을 좋아하시는 엄마, 아빠 모임 같은 곳에서 집회를 한다면 경찰이 시민들에게 이를 알려주고 더 많은 경찰이 동원되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집회나 좌파 계열의 성향이 있는 시위에 대해서는 시위자의 정보를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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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뭐!! 어때서!! 이렇게 춤도 잘 추는데



타: 그래 이해가 간다. 그 외에 베를린 한인회와 충돌이 없었나?


유: 물론 있었다.


그들에게 어느새 본인은 종북세력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한인 사회가 그렇게 크지도 않으니 젊은 친구들이 직 간접적으로 주위사람들에게 많은 훈계 아닌 훈계를 또 회유 아닌 회유를 들은 것으로 안다. 게다가 인터넷에 그 한인회가 올린 게시물로 인하여 독일 한인 커뮤니티에서 많은 질타가 이어졌고 베를린 한인회가 사과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시락과 음료를 나눠 먹고 힘내서 환영회를 나름 열심히 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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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베를린리포트


*필자 주 


기본적으로 독일 한인사회에는 군사독재시절 정치적 망명을 선택한, 예전에 주사파라고 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전두환 독일 방문 때에도 그들은 열심히 시위를 했던 것으로 안다. 물론 그들에 대한 평가가 쉽지만은 않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진중권 교수가 썼던 글의 링크로 대신한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7-80년대에 독일로 넘어온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박정희는 거의 신급으로 추앙되고 있다. 박정희가 베를린에서 눙물을 흘리며 연설을 하고 그에 감동한 청중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두리둥둥 떠다니고 있다.


같은 교민 사회에서도 극명하게 갈리는 그런 사상적 단절이 심한 교민사회가 독일의 엄마, 아빠 세대의 사회다. 물론 이는 현재 젊은 세대가 아닌 그 윗 세대의 이야기임.



타: 도시락 값은 누가 댔는가? 대사관?


유: 그걸 내가 어찌 아나!!


타: 그래 종북세력의 수장이 된 느낌은 어땠는가?


유: 수장도 아닐뿐더러 종북은 더더욱 아니다. 본인은 독일 녹색당 당원이다. 녹색당이 종북이라니 말이 되나 이게. 게다가 있지도 않던 종북이니 뭐니 같은 말이 떠돌아 다니며 좁은 교민 사회를 또 다른 이념으로 가르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불편해지게 마련이다. 세상이 다시 7-80년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타: 오호~ 녹색당이라. 환경과 진보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그 녹색당 아닌가.


유: 뿌듯~


타: 집회 날 특이한 일은 없었나?


유: 오후 3시에 시작하여 8시까지 5시간가량 집회가 이어졌다. 대략 60명가량 모였고 독일 금속노조에서도 힘을 보태어 같이 즐기고 구호를 외치고 놀았다. 이때는 우리끼리 모여서 퍼포먼스도 하고 구호도 외치고 했는데 경찰은 심심한지 한쪽 구석에서 쉬고 있었다.


5시경 총리관저 앞으로 이동해서 집회를 이어가니 경찰들도 많이 나오고 우리 앞에 바리케이트도 쳐주고 하였다. 이 바리케이트가 우리를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용도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해 준다. 당일 가스통을 들지 않은 엄마, 아빠 연합 같은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오려고 하자 경찰이 바리케이트 밖에서 막아주고 우리를 대놓고 사진 찍던 한 아줌마도 경찰의 “초상권 침해로 6개월 이하 징역 혹은 1만 유로 이하의 벌금” 이야기를 듣고 허겁지겁 꽁무니를 빼고 도망친 일도 있었다.


경찰은 우리의 편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여왕님의 편도 아니다. 그건 당연한 개인의 권리이므로 그들은 질서를 위해 집회가 있는 장소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타: 그건 우리나라 경찰도 명목 상으로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한국에 오바마라든가 다른 외국의 정상이 왔을 때 그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한다면 그 시위대마저도 지켜줄지는 뭐...


그나저나 독일 젊은 경찰들(특히 집회현장 등에 많이 보이는 젊은 경찰들) 굉장히 잘생겼다. 외로운 아낙들아 독일 와서 공부 말고 집회현장에 가서 젊음을 불살라 보자. 동의 하는가?


유: 관심 없다. 아무튼 집회는 총리 관저 바로 앞에서 했으므로 여왕님의 차량 행렬이 지나갈 때 우린 바로 그 앞에 있었다. 불과 바로 몇 미터 앞이었다. 한국의 그 어느 집회 현장에서도 여왕님 근처에 이만큼 가까이 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시점에는 경찰이 많이 나와 집회 참여자들과 여왕님 행렬 사이를 잠깐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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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 오~ 가슴이 막 콩닥 콩닥 설렘?


유: 아쉽게도 여러 대의 비슷한 고급 차량이 짙은 썬팅을 하고 지나가서 어디 있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5시 50분쯤 총리 관저로 들어간 댓통령 일행은 7시 30분쯤 다시 나왔다고 하는데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빠져나가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다만 그 시간쯤 여러 언론사의 차량들과 수행원들의 차량은 총리 관저 앞으로 다시 나왔는데 차에 타고 있던 한 정치인(복장이나 차량으로 미루어 보아 정치인 혹은 청와대 행정관으로 강력하게 추측)이 우리를 향해 힘차게 가운데 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들며 일명 박규를 날리시고 사라졌다.


타: 오~ 박규를 날려주신 터프한 그 분은 도대체 누구인가?


유: 모르겠다. 얼굴은 잘 모른다. 차 번호판도 못 적었고 사진도 못 찍었다. 너무 순식간이었다. 저쪽 정치인들 중 한 명이겠지.


타: 아~ 그걸 찾아야 하는데 말이다. 사진 한 장만 찍었어도 여왕님 프랑스 방문 당시 김진태 우원에 버금가는 스타 한 명 탄생 했을 텐데 말이다.


유: 그러게 말이다.


타: 마무리 하는 의미로 마지막 질문을 하나 하겠다. 이번 집회를 보며 많은 수의 자칭(?) 애국자들이 불편함을 느꼈을 것 같다. 현재 독일의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도 나름 시끄럽고.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시위가 끝난 후 느낀 점이 있다면?


유: 집회를 하는 것이 애국이니 나라를 사랑하느니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런 집회 자체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진일보 시키는 데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소리내어 밖으로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강력하게 형성되어 있다. 유학생들은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데 열심히 공부나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혹은 괜히 저런 데 나갔다가 내 사회생활에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까지.


물론 전부 이해한다. 그들 중 물 밑으로 혹은 위로 이번 집회를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그럼에도 그 분들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진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사회.


이번 집회에 사진을 찍어준 츠카사 야지마 씨가 한 이야기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회에 함께 해 주었고, 한국에 방문했을 때 위안부 문제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준 고마운 친구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한국의 이런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는 분위기’가 아무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다가 스물스물 우클릭 우클릭으로 점점 우경화된 일본의 사회와 너무 닮아 있다고 한다. 일면 동감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집회를 하면서 함께한 많은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아직도 희망은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집회에 참여한 많은 젊은 친구들 가운데 무려 절반 가량이 예술, 문화, 영화 등을 전공한 친구들이었다. 이 친구들, 소위 말하는 예술가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말하고자 하는 바를 주눅들지 않고 큰소리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예술이 가진 힘이자 동시에 사회를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조그마한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인문학의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행동을 취하는 이 젊은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타: 긴 시간 인터뷰 감사했다. 다음에 한번 내려 와라. 맥주에 소세지 한 꼬치 대접하겠다.


유: 니가 베를린으로 올라 와라.

 

 

 

 

 

 

인터뷰를 끝나고 한참 여운이 남은 것은 그 어떠한 것도 아닌 박규를 날리신 그 분의 정체였다. 


필자의 능력으로 그 고귀한 가운데 손가락의 주인공을 찾기는 힘들 것 같고 인터뷰이도 자세한 기억을 하지는 못하였다. 아무래도 죽지 않는 돌고래 기자의 능력이 필요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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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유 끼유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트위터 : @tadeusinde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