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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08. 목요일

정우성










[57] 진보에 촉구함: 목돈사회를 허무는 데 있어 굳이 진보와 보수를 나눌 필요는 없다. 목돈사회는 단순히 목돈이 충분한 자와 목돈이 부족한 자를 구분할 뿐이다. 그러나 서민과 중산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정말로 진보의 정체성이라면 목돈사회를 향한 이 공성전은 보수성보다는 확실히 진보성을 띈다. 그렇지만 진보는 목돈사회에 대해 침묵한다. 그들은 전세제도와 월세 보증금 제도를 태연하게 존중하며 그것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빼앗는지 탐구하지 않는다. 단지 집값의 상승이나 하락만을 우려한다. 그들의 관심사는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도 동경에 마지않는 해외의 제도나 사례들인 것처럼 보인다.


역사는 시공간인 함수이며 비가역적이고 비초월적이다. 그것은 (x, y, z) 벡터이며, 변수는 시간, 공간, 사람이다. 이 묶음은 (시간, 공간, 사람)이다. 이 벡터장에서 역사 좌표는 그것이 사실에 관한 것이든 해석에 관한 것이든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리고 사람(그들의 사회구조와 문화를 포함하여)에 따라 다르다. 동일한 좌표는 없다. 동경하거나 모범적인 좌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신비로운 차원과 눈에 보이거나 느낄 수 없는 압도적 변수가 있어서 그것의 인도에 따라 절대적인 위치나 궤적을 지니는 역사 좌표의 존재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진보는 이상향을 전제로 한 역사철학에 친숙하다. 하지만 그게 진보 철학의 전부는 아니다. 


진보는 어떤 고정적이거나 당위적인 좌표에 매달려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운동이 아니며 현실도 아니다. 현실은 목적만 이야기하는 설교장이 아니다. 이상향을 설파하는 강단도 아니다. 나는 진보가 벡터함수의 '운동'에 주목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변수, 즉 시간과 공간과 사람 모두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변수는 항상 변화하고 발육한다. 변수의 변화에 따라 좌표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학문이다. 변수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좌표의 의미와 그 좌표가 가야 할 이데아를 탐구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다. 종교가 할 일이다. 변수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역사 좌표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토론하며 행동하는 것이 정치다. 목적만을 강변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동아리 활동이다. 


우리는 2014년의 목돈사회를 비판하고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은 목돈사회에 의해 고통을 겪고 있으나 아직 그 고통의 주된 원인이 사회가 개인에게 짐 지운 목돈게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언어로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합 상태에 머물러 있다. 방향을 잃어버렸다. 우리가 머문 상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껏해야 모르핀 중독에 빠질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은 모르핀 주사가 아니다. 적절하고 긴급한 처방이다. 개인에 대한 요구가 아니다. 사회 구조 개혁이다. 나를 위한, 우리를 위한, 그리고 후대를 위한 요청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보의 당면한 과제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보수를 위함이기도 하다. 당장의 급진적인 해결은 뒤로하고, 우선 나는 국가의 적절한 마중물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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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1504-1551), 초충도(수박과 들쥐)



[58] 한겨레와 중앙의 대비되는 사설: 정부는 지금까지 대략 6회에 걸쳐서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민간이 참여하는 임대주택 공급 구조를 만들며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토록 독려하고 하우 푸어 구제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월세 세입자의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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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국토교통부 자료 



2월 26일자 정부 대책에 대하여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의 사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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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링크 - [사설 속으로] 한겨레·중앙일보, '주택 임대차 선진화 방안' 사설 비교해보기



한겨레신문 기자는 말한다. 



하지만 전체 가계의 절반가량이 자고 나면 오르는 전셋값 때문에 불안과 고통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정부의 대책은 너무 한가하다. 전셋값은 전국 기준으로 2012년 8월 이후 18개월째 상승세를 이어오고 있다. 곧 봄 이사철이 다가오면 '전세난민'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또 사상 최저 수준의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임대 방식이 빠르게 전환하는 바람에 세입자들의 주거비 부담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전세가격의 지속적인 상승과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를 그대로 방치한 가운데 세입자에게 '대출 지원을 해줄 테니 집을 사든지 전셋값 올려주라'는 식의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자의 태도는 전세제도의 긍정성을 신뢰한다. 


반면에 중앙일보 기자는 말한다. 



우리는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이 비록 늦었지만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본다. 지난해 하반기 전세대란이 표면화된 이후 주택시장에서는 이미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정부는 이 같은 주택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전세보증금 대출지원을 늘리는 패착을 거듭했다. 전세 세입자를 보호한답시고 보증금 대출을 늘리는 바람에 전세대란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를 부른 것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주택임대차 방식인 전세는 주택가격이 계속 올라야 성립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런데 인구구조의 변화와 주택시장의 침체로 주택가격이 오르지 못하거나 심지어 떨어지는 상황에선 집주인이 전세로 집을 빌려줄 유인이 없다. 전세대란은 이런 상황에서 빚어진 당연한 귀결이다. 시장이 이렇게 바뀌는데도 정부는 전세수요를 부추기는 주택보증금 대출만 늘리고 있었으니 주택시장이 안정될 턱이 없었던 것이다.




기자의 태도는 전세제도의 부정성을 염두에 둔다. 


목돈사회 프레임에서는 중앙일보의 사설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59] 전세제도 폐지가 아닌 법정지상권처럼: 목돈사회는 정부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자체의 문제다. 정부가 속속들이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마중물을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시장이 폭주하면 국가가 개입한다. 문제 해결의 주체는 결국 시장이 되겠으나, 국가는 시장에 메시지를 줄 수 있으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개인의 자립과 활력을 빼앗는 시장으로 하여금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목돈사회를 허물기 위해서는 전세제도가 폐지되어야 하고 월세보증금 제도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전세제도는 민법에 규정된 중요한 물권이며 법정 제도이다. 월세보증금도 그에 준한다. 그리고 깊고 오래된 우리 문화다. 민법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지 않는 한 전세를 포함한 보증금 제도의 폐지는 불가능하다. 인위적인 강제책은 혼란과 저항과 역효과를 불러온다. 


민법에는 법정지상권 제도가 있다.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지게 될 경우 건물 소유자에게 토지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다. 서구사회의 문화나 우리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토지와 건물 소유자가 일치한다는 관념이겠으나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별개라는 우리 옛 문화를 민법이 인정해 준 제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보통 토지 소유자와 건물 소유자는 같은 사람이므로 법정지상권은 흔하지 않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전세 제도 그 자체는 인정하되 법정지상권처럼 예외적인 제도로 만드는 게 효과적이고 자연스러운 접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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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1504-1551), 초충도(산차조기와 사마귀) 



[60] 정책적 대안들: 목돈사회의 가장 거대한 진지인 보증금 제도를 개혁함에 있어 다음 같은 정책을 꺼내본다. 나는 정책을 입안하는 위치에 있지 않고 그럴 권능도 없으며 정치인도 아니다. 단지 나는 목돈사회를 우리가 충분히 허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정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순하지만 정교하게 디자인된 정책만이 문제의 핵심을 찌를 것이다.


첫째, 정확한 실상 파악이다. 보증금 제도의 실상을 분명히 파악하기 위한 투명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실상을 파악하고 정보가 명확해야 합리적인 해결책이 나온다. 전세제도와 보증금부 월세에 관한 우리나라의 통계는 추정치에 불과하다. 물경 1,000조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확실하고 정확한 통계가 없다. 우스꽝스러운 나라다.


둘째, 분양에서 임대로, 국가의 주택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요컨대 "보편적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실시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은 저소득층을 위한 시혜적 주택사업이었다. 반면 보편적 공공임대주택 사업은 (1) 전소득층을 대상으로 (2) 다양한 평형대의 (3) 임대주택을 공급하자는 정책이다. 이로써 소유가 아니라 거주 목적의 주거 문화라는 메시지를, 목돈이 필요 없는 주거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주는 것이다 


국가주도의 분양사업을 중단하고 임대사업 중심의 주택정책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말함이다. 보편적 공공임대주택은 장기 임대주택을 말하는 것이지, 5년 임대 후 매입을 전제로 하는 임대주택을 지칭하지 않는다. 보편적 공공임대주택은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다. 그게 당장 어렵고, 사업 시행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보증금이 필요하다면 월세의 12개월치의 보증금 이하로 묶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되겠다. 또한 하우스 푸어 대책과  보편적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연계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주거보장형 하우스 푸어 채무인수정책을 통해서 1가구 1주택 하우스 푸어의 채무를 인수하되 월세로 전환하여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요건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월세 산정의 지혜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LH 공사를 임대주택청으로 변경하여 행정기관으로 편입함으로써 공공성을 강화한다. LH 공사의 행정기관편입이 어렵다면 '임대주택관리공사'로 변경하는 것도 괜찮겠다. 


셋째, 금융정책의 변화다. 금융정책이 국가가 시장에 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유감스럽게도 진보주의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전세보증금 대출을 제한하면서 서서히 폐지한다. 대신에 LTV(담보인정비율, Loan-To-Value  Ratio) 규제를 차츰 완화하면서 폐지하고 장차 은행자율에 맡김으로써 목돈 없이도 현재의 소득과 신용에 따라 장기 모기지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LTV 제한이 마치 시장 투기를 막는 정말로 좋은 정책이라고 사람들은 믿는 것 같다. 전세중심의 임대주택 시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전세제도가 투기를 조장한다면, 투기를 막을 대책도 필요한 법이다. 그게 LTV 규제인 셈이다. 예외가 예외를 부른다. 그렇지만 예외가 사라지면 그 다음 예외도 거둬내야 한다.


한편 금융정책이 재정지출의 부담을 초래한다면 세금정책은 과세수입을 늘려준다. 하지만 세금정책은 모든 논점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한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고, 공평과세야말로 사회적 정의의 한 축을 이룬다는 점을 누가 동의하지 않겠는가. 다만 세금문제가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 과세정책은 당위성만으로는 부족하고 특별히 섬세해야 한다. 


넷째, 여성의 경제활동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적극 보장될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든다. 맞벌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육 인프라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뻔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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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1504-1551), 초충도(가지와 벌)



[61] 순수 월세와 그에 대한 반문: 흥미로운 점은 이들 상당수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세에서 월세 중심으로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정부 정책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야권과 시민 단체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무조건 비난하는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목돈사회 프레임에서는 환영할만한 정책들이 있고, 그런 점에서 지지한다. 몇몇은 여기서 다뤄질 것이다. 다만 전세에서 월세로 시장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는 중대한 오해가 있다. 목돈 전세에서 순수 월세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세보증금도 받고, 동시에 월세도 받는 구조가 대세를 이룬다는 점이다.(반전세, 보증금부 월세) 임대인에게는 꽃놀이패. 어쨌든 세 들어 살더라도 보증금 목돈은 당연하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이는 상황을 더 악화한다. 나는 임대 거주는 순수 월세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수 월세가 당장 어렵다면, 보증금 규모가 적절하게 억제되는 월세가 시장에 자리 잡혀야 한다. 복지사회의 대세가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월세의 6개월치 혹은 1년치 이상의 보증금을 요구하지 않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월세 부담은 어떻게 할 거냐고 반문한다.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그들은 말한다. 보증금 제도가 사라지면 월세가 인상될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런 반문이 목돈 부담을 변호하지는 못한다. 월세부담이 사회 자체를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반면 목돈부담은 사회 자체를 비정하게 만들었다. 월세 부담이 인간의 정신을 핍박하거나 자유를 빼앗지는 않는다. 그러나 목돈 부담은 개인의 정신과 자유 모두를 핍박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목돈사회 연재의 주된 화두였다. 개인으로는 마련 불가능한 목돈을 요구함으로써 개인과 가족과 사회를 모두 병들게 한다. 월세 부담은 주거비 부담이지만, 목돈 부담은 존재 그 자체의 부담이다. 


물론 월세 부담을 가벼이 보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이 필요하고, 앞서 말한 네 가지의 큰 줄기 대안을 꺼낸 것이다. 앞으로 이들 하나하나를 자세히 말해보고 싶다. 선생, 우리 함께 지식의 무중력상태에서 대화를 해보자.







요약하자면 이렇다:



1. 나는 진보에 촉구하는 거야. 목돈사회를 탐구하라고 말이지. 동경하는 외국 사례와 멋진 개념만을 설파하지 말고 그냥 '대한민국 사회'를 탐구하자고.  


2. 목돈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 특유의 전세제도와 반전세 제도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 물론 어렵겠지. 인위적인 금지책은 천만의 말씀이야. 하지만 서서히 사라지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목돈 없이도 소득과 신용과 성실함이 있으면 거주지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하자고. 원룸이든 저택이든 말이야. 


3. 나는 앞으로 네 가지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 작정이야. DB 정책, 보편적 공공임대주택 사업, 금융정책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인권. 우리가 서로 '목돈사회' 담론을 공유하고, 그 담론이 정책적, 정치적 의제가 된다면 목돈사회는 무너뜨릴 수 있어. 내가 말하는 정책보다 훨씬 효율적인 아이디어가 제언될 수도 있겠지.  


4. 선생, 디비지지 마셈. 개인의 성찰과 각성이 내 이야기의 결론이 아니야. 물구나무 서기를 멈추고 바로 서자는 것인데, 그건 결국 물구나무 서기를 요구하는 사회 구조를 뒤집자는 이야기. 다만, 개인의 성찰과 각성도 중요하니까 내가 너님께 부탁을 드릴게. 목돈사회의 비정함을 퍼뜨려줘. 낮에는 암탉이 듣고 밤에는 쥐새끼가 듣도록.










편집부 주


본지에 육아칼럼과 특허에 관한 통찰력있는 기사를 꾸준히 써 온


정우성 님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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