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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4. 21. 월요일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새벽에 죽돌 기자에게 혹시나 이번 사건에 대해서 쓸만한 글이 있는가 하는 문자가 왔다.


어차피 눈이 씨뻘겋게 충혈이 되도록 해가 뜰 때까지 트위터와 유튜브로 각종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있었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쓸 말이 없었다. 


정부의 무능력, 선장의 자질, 개떡 같은 시스템과 책임자들에 대해 욕이라도 하고 싶지만 사고 뉴스를 접하고 난 직후에 가졌던 생존자에 대한 기대는 이미 뉴스를 보며 목 뒤가 지릿 지릿한 분노로 바뀌었고, 계속되는 답답한 소식에 그런 분노는 어느새 한 없는 체념으로 바뀌어 딱히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독일의 모든 언론사와 방송이 이 사건을 두고 무수히 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사건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한국보다 한 발 늦다.


게다가 모두가 조심스러워 한다. 이 사고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상상할 수 있는 한국의 모든 문제를 내포한 후진국스러운 인재(人災)'라는 식의 논지나, 사고 이후 구성된 각종 본부의 난립으로 개판인 구조 과정이나, 미친 언론의 정신 나간 한 발 빠른 오보 경쟁 등을 전하지는 않는다.


한국에 특파원을 급파하고, 각종 한국어 뉴스를 번역하는 과정을 거친 그들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노미 상태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뉴스는 세세한 현장의 뒷이야기보다는 현재 구조상황과 그 결과만을 알려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너무 세세하다 못해 현장에서 80년대 멜로 드라마를 찍고 있는 한국의 언론들이 잘하고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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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에 대한 희망이 없다.

<출처: 타게스샤우>


게다가 독일 언론에선 아직 한국 언론이 쓰기에 너무 조심스러워 하는 ‘희망이 (거의)없다’는 타이틀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게 독일인 특유의 냉정한 현실 인식에서 기인했는지 아니면 남의 나라 이야기라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아서 그러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들이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실종자 가족들의 집단 행동이 시작된 이후 독일에서도 사실에 입각한(?) 비판적 기사가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일요일 아침,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항의 방문을 가려고 하자 경찰이 길목을 막은 뉴스에는 <혐오스럽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 몇 가지 글로 세월호를 바라보는 독일인들의 시선을 살펴볼까 한다. 남의 눈에 비친 한국의 맨 얼굴이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어 줬으면 싶다.



-인식- 


먼저 눈에 띄는 독일 프랑크푸르트(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줄여서 FAZ) 신문의 기사를 보자.


도시 이름이 들어가긴 했지만 일개 지역 신문이 아닌 독일에서도 굉장히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국구 신문이다. 이 FAZ에 페터 스투름(Peter Sturm) 씨가 쓴 칼럼을 보자.


18.04.2014  Die Schiffskatastrophe trifft Sudkoreas Prasidentin Park Geun-hye in einem schwachen Moment. 


Bisher hat sie alle Affaren unbeschadet uberstanden. 


Der Tod so vieler junger Leute und mogliche Versaumnisse der Behorden konnten ihr aber nun wirklich zusetzen.

Von Peter Sturm


2014년 4월 18일 - 선박참사가 힘든 상황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든 위기들을 버텨내왔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과 당국의 구조실패 가능성은 그녀에게 이젠 정말 큰 치명타를 줄 수도 있다.


- 페터 스투엄

 


Nicht nur war der Kapitan zum Zeitpunkt des Unfalls nicht auf der Brucke, er hatte das Kommando uberdies einem unerfahrenen Seemann ubergeben. ...

 

.... Denn in Korea wird Wert auf Hierarchien gelegt. Wenn der Weisungsberechtigte nicht zur Stelle ist, wird es fur die anderen Besatzungsmitglieder schwierig. Und fur die Passagiere todlich!


사고 시점에 선장은 함교에 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험 없는 항해사에게 지휘를 맡겼다. ...


.... 한국사람들은 계급체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책임자가 자리에 없으면 다른 승무원들은 행동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승객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독일 신문사의 정치부 편집장이 한국인의 특성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다. 게다가 아프다. 아이들이 말 잘 듣도록 키운 것도 어른들이고 그 아이들을 바다에 버린 것들도 어른들이다.


Aus Sicht der Angehorigen der Opfer tragt auch die Regierung Schuld. Das ist ebenfalls verstandlich und liegt irgendwie nahe.


희생자 가족들의 관점에서는 정부도 이 비극에 책임이 있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Dabei wird dann hoffentlich auch geklart, ob den Behorden Versaumnisse vorzuwerfen sind. Vor allem muss man hoffen, dass nicht "unangenehme“ Ermittlungsergebnisse unter den Teppich gekehrt werden. Im Augenblick des Unglucks sehen viele schnell sehr schlecht aus. Alle wollen Antworten auf ihre Fragen. Die Informationen konnen aber oft erst spater gegeben werden.


행정 기관들이 과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지가 확실하게 수사되길 바란다. 특히 무엇보다도 받아들이기가 '불편한' 수사결과들이 밝혀졌을 때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사고의 순간에는 많은 사람들이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문에 대한 답을 원한다. 그러나 진실은 자주 뒤늦게야 나타날 수 있다. 


페터 스투름은 한국의 정치상황이나 그동안의 사건들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확실한 수사와 그 결과를 덮지 않고 갈 것을 지적한 점은 그동안 한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지 않았다면 쉽게 짚어내기 힘든 부분이다.


Die Schiffskatastrophe trifft die Regierung von Prasidentin Park Geun-hye in einem schwachen Moment. ...

 

....Schon im Prasidentschaftswahlkampf hat der Dienst eine mindestens zweifelhafte Rolle gespielt. Von den Diskreditierungsversuchen gegen ihren wichtigsten Gegenkandidaten will Park nichts gewusst haben. Bisher hat sie alle Affaren unbeschadet uberstanden. Das gesunkene Schiff und der Tod so vieler junger Leute konnten ihr aber wirklich zusetzen.


Das Schicksal von Regierungen entscheidet sich manchmal an Ereignissen jenseits der Politik.


선박참사가 힘든 정치 상황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화요일에도 대통령은 국정원의 행동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


....국정원은 이미 대통령 선거에서 의심이 가는 일을 했다. 박근혜는 자신의 주된 경쟁 후보에 대해 평판을 실추시키려 했던 국정원의 작전에 대해 자신은 아는 바가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녀는 모든 위기들을 버텨 냈다. 그러나 침몰한 배와 수많은 젊은 이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정말로 치명타를 줄 수 있다. 정부의 운명은 때로는 정치와 전혀 연관되지 않는 사건들에 의해 결정된다.

위 글은 다음 아고라(링크)에 전문이 올라와 있다.


한국에 대한 그의 이해도를 높이 사는 것 만큼,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상당히 예리하다. 그러면서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려 한 신중한 어휘 선택 역시 돋보인다.


게다가 그의 마지막 문장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리에 연연하고, 정치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니편 내편 나누는 것에 온 역량을 집중하던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정작 자신들이 해야 할 국민을 위한 일에는 얼마나 어설픈지 많은 이들이 이번에 똑똑히 보게 되었다. 앞으로 한국에서 사후처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감시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뭐 큰 기대가 있다면 말이다.



-싸움- 


또 다른 기사도 (한국에서 나름)화제가 되었다. '한국인들의 분노'(Die Wut der Sudkoreaner) 라는 제목으로 <디 차이트> (Die Zeit) 온라인 판에 실린 기사이다.

역시나 아고라(링크)에 원문이 올라와 있다.


그 중 본문에 이러한 소제목을 단 구절이 있다.


Die Prasidentin inszeniert sich

포즈 취하는 대통령 (대통령이 연출한)

<차이트 온라인 원문 링크>


내용인 즉 대통령이 피해자 가족들을 방문 했을 당시 세월호에서 구조된 5세 여아와 함께 카메라에 잡힌 것을 두고 연출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오마이 뉴스>의 기사를 통해 연출이 아닌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독일 신문인 <디 차이트> 온라인 판에서 이를 두고 글을 작성한 기자의 자질 문제까지 대두되며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물론 양측 모두 독일어를 쓰는 한국인들이었겠지만 말이다.


기자는(교포) 자신이 글을 작성할 시점에는 <오마이 뉴스>의 기사가 나오기 이전이었으며 새벽부터 글을 지우라는 한국 대사관 측의 연락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반대 댓글을 단 사람들은 기자가 '친 정부 성향의 조선일보'라는 표현을 적은 것 등을 근거로 들어가며 증거도 없이 악의적인 글을 썼다며 폄하했다.


기자는 네가 그 댓글 알바냐며 추궁했고, 반대 쪽은 기자의 예전 글까지 찾아오며 싸워 댔다.


하지만 글 말미에 달린 댓글이 눈길을 끈다.


57. Kind soll geschutzt werden!


Es ist mir egal ob Prasidentin Park das Kind zur Sporthalle eingeladen hat oder das Kind mit der Tante gekommen ist. Ein sechsjahriges Kind sollte sich nicht in einer derartigen Situation in der Sporthalle befinden. Sie hat gerade ihre Eltern und ihren Bruder verloren. Die Verantwortlichen hatte das Kind zu einer gerechten Betreuung schicken sollen und nicht Offentlichkeit preisgeben.


57. 아이는 보호 되어?야 해!


대통령이 아이를 체육관으로 데려온 것인지 이모와 함께 온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6살짜리 아이가 그러한 상황에서 그 체육관에 있으면 안되는 거잖아. 그 아이는 바로 부모와 오빠를 잃었어. 보호자는 이런 아이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곳에 보냈어야지 저렇게 공공장소에 노출되면 안되잖아.(몸을 더럽힌다는 표현을 사용했음)


그렇다.


언론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여론, 또 여론에 따라 바뀌어 버리는 개인의 생각들, 그 속에서 놀아나지 않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하는 것이 이 사건을 멀리 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를 위해 딴지에 수 많은 이빨들이 펜을 갈고 있을 것이고 말이다.


어쨌든.



-처리-


이미 언론은 모든 책임을 선장과 회사 측에 전가했다. 기회만 있다면 사고 후 구조과정의 책임도 누구 한 명에게 넘길지 모른다. 


그들의 책임이 절대적이라는 것에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징역 2만 년을 살도록 만들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독일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2년 전 이탈리아의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침몰 사건이다. 당시 천하의 악당이 된 스케티노 선장과 <세월호>의 선장을 똑같은 놈이라며 비난한다. <이에 관한 내용이 JTBC 뉴스에 보도 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보며 정말 가슴이 아팠던 또 다른 이유는, 그 큰 배가 선장과 해운회사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교신을 했더라면, 교신 시에 조금 더 제대로 된 지시를 내렸더라면 최소한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독일의 일요일자 신문 곳곳에서 이 지점을 지적하고 나왔다.


세월호와 진도 해경의 교신 기록 전문이 공개되고 난 직후 한국과 독일의 언론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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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한명의 악마가 필요한 조선일보>


독일 언론들의 논조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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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피겔 온라인판: 교신내용이 선원과 해경의 카오스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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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트 온라인판: (공개 된)교신 해경과의 혼란스러웠던 대화를 드러냈다.>


교신 내용에 따르면 사고 선박 세월호의 승무원과 해경의 대화가 서로 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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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20 Minuten: 세월호의 선원이 세 번이나 구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었으나, 

그들은 정확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AP통신과 SDA 제공으로이루어진 이 기사에 따르면, 세월호 선원이 언제 구조선이 도착하냐고 재차 물었을 때, 해경 측에서는 10분 안에 도착한다고 얘기 했다고 한다.


하지만 승객들을 바로 구할 수 있던 또 다른 배가 이미 근처에 있다는 것은 해경 측에서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게 사실인지 몇몇 기사 만으로 확인할 수 없으나 교신 자체가 원활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 임에는 틀림없다.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곧 바닷속에서 차갑게 식은 그들이 전부 건져질 것이다. 아니 몇몇은 유실되어 가족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이 사회는 다 같이 울고 몇 달 간은 잊지 않을 것이다. 몇 달 간은…. 


정부는 졸라 발 빠르게 책임자들을 문책하고 처벌 할 사람을 선별해 처벌 할 것이며, 국회는 몇몇 법을 새로 제정하여 겉으로 조금 더 안전하게 보이는 장치들을 마련할 것이다.


몇 년 간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또 그렇게 잘 살다가 모두가 다시 마음을 놓을 때 이러한 사고는 또 일어날 것이다.


앞서 페터 스투름이 강조한 확실한 수사와 재발방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힘들어 보이기만 한다.


이런 식으로 이어져 온 관행을 고칠 수 있었다면 서해 페리호 사건 때, 삼풍백화점 사건 때, 성수대교 사건 때 이미 다 고쳐졌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안전해지는 시스템을 위해 한국은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려 왔다. 그럼에도 가야할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안전에 있어서 '사내 새끼가 뭐 이리 겁이 많아' 혹은 '괜찮아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얘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하는 사회 속에서 겉핥기 식의 안전 점검이 아무리 강화된다 해도 이런 사고가 없어질 리 만무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의 분위기 속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젖어 들어가 살아 온 나도 너님들도 모두가 이 문제에서 책임이 없다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근본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는 있을까?


그리고 그 모든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개인 혹은 약자의 몫이다.


결국 개인은 알아서 잘 살아남아야 하는 거냐!









독일특파원 타데우스

트위터 : @tadeusinde


편집 :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