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2일,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보도를 접했다.
출처 - <뷰스앤뉴스 : "국정원, 전문가 '세월호 인터뷰 통제' 의혹">
이 나라는 평소에는 다들 전문가처럼 말이 많지만, 실제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때 딱히 그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없다는 이상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저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에서는 그런 잘 나타나지 않는 전문가들마저 자유롭게 발언하기 곤란한 상황인 것 같다.
이렇게,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면 우리들은 이제 수많은 '비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만 할 것이다.
이제 <청해진 해운의 세월호 침몰사고> 원인을 두고, 언제나처럼 온갖 추측성 보도들이 마구 돌아다닐 것이다. 그중에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가설'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의 '면피'를 위한 의도가 가득 담긴 '주장'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저질러졌을 것이라는 '소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 그러한 이야기들은 많은 복잡한 용어와 접근하기 어려운 여러 개념을 마구 들이대기 때문에,
그걸 이해하라고 설명한건지 아니면 이해하지 말고 그냥 외우라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고, 결국 이해를 포기한채 '그렇다는군...'하고 받아들이게 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사고원인에 대해 섣불리 '추측질'이나 해보려는 것이 아니라(사실, 그럴 능력도 없고) 사고 원인에 대해 앞으로 쏟아지게 될 각종 '가설'과 '주장'들에 대해 그것을 똑바로 보고 판단하기 위한 기초적인 공학적 배경지식을, 중학생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설명하고자 한다.
(일부 어리석은 인문사회계열 출신들이, '공학계열출신들은 수학을 잘 할 것이다' 내지는 '토니 스타크 정도의 능력자일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헐리우드 영화 좀 작작 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1. 무게중심과 부체안정성
1) 무게중심
무게중심은 말 그대로 어떤 물체의 무게중심이다. 약간 어렵게 말하면, 중력의 합력(W)이 작용하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 무게중심은 물체의 모양과 재질 특성에 따라 그 위치가 다르게 변하는데, 다음 그림을 통해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1)의 무게중심은 G1, (1)을 두개 합친 (2)의 무게 중심은 G2이다.
딴거 다 알거 없고, 여기서 핵심은 '물체를 위로 합치면 무게중심은 위로 올라간다. 따라서 무게 중심을 원래 위치로 내리기 위해서는 아랫쪽에도 무게를 줘야 한다.' 이 정도만 알면 된다.
2) 부체안정성
이건 약간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일단 그림을 보면서 용어정리부터 하자.
- 부체 : 수중에 뜬 물체
- 부력 : 부체가 수면에 대해 수직으로 떠오르려는 힘 (B)
- 부심 : 부력의 작용점 (C점)
- 흘수 : 수면에서 부체의 최하단까지의 거리 (D), 만재흘수(짐을 가득 실었을때)를 줄여서 흘수라고도 한다. 이것은 어떤 항구의 수심과 입항할 수 있는 배에 관한 얘기다.
- 배수용적 : 물에 잠긴 부피 (V)
이제, 부체가 기울어지는 상태를 가정해보자.
배가 기울어지면 배수용적(V)이 변화하는데, 이때 무게중심(G)은 변화하지 않지만, 부력의 작용점이 C에서 C'로 변화한다. 여기에 핵심이 있는데, 부심의 이동점 C'의 위치에 따라 복원 또는 전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형상태의 C,G 점을 연결한 직선과 새로운 C'점을 수면과 수직으로 그은 선의 교점을 '경심(M, Metacenter)'이라고 하는데, 부체의 안정성을 판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아마도, 앞으로 접할 많은 보도에서 GM이라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될 것 같은데, 쫄지말자. 저 그림에서 무게중심(G)와 경심(M)의 거리, 즉 선분 GM의 길이를 얘기하는 것이다.
무게중심(G)을 기준으로 경심(M)이 위에 있으면 GM은 (+), 아래에 있으면 GM은 (-)로 하는데, 위의 그림에서 (1)처럼 M이 G보다 위에 있는 경우, 즉, GM이 (+)인 경우는 '복원모멘트'가 작용하는 '안정상태'라고 하며 (2)처럼 M이 G보다 아래에 있는 경우, 즉, GM이 (-)인 경우는 '전도모멘트'가 작용하는 '불안정상태'라고 한다.
이 GM의 길이가 길수록 복원력이 크게 작용하므로 군용선박 같은 경우는 이것을 크게 하는데 이것이 크면 탑승객의 멀미를 유발할 수도 이기 때문에 여객선은 좀 다르게 하는, 뭐 그런 얘기다.
그냥, M이 G보다 위에 있느냐 아래 있느냐만 알면 된다.
그럼 무게중심과 부체안정성을 연결해서 어떤 배를 생각해보자. 원래, 이해가 잘 안가거나 자신이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고 싶을 때는 연습문제를 풀어보는게 제일 좋다.
위의 그림에서, 왼쪽 배에 비해 오른쪽 배는 위에 물건을 잔뜩 실었는지, '증축'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게중심(G)은 훨씬 윗쪽에 있다.
이런 상태에서 천천히 기울이면, 왼쪽 배에 비해 오른쪽 배는 무게중심(G)이 윗쪽에 있으므로 GM의 길이가 짧은데, 같은 각도로 기울더라도 경심(M)의 위치가 무게중심(G)보다 아랫쪽에 오게 될 수 있다. 그러면 오른쪽 배는 '전도'된다.
즉, 왼쪽 그림은 M이 G보다 위에 있으므로 '안정', 오른쪽 그림은 M이 G보다 아래 있으므로 '불안정'이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배는 '밸러스트 워터'라는 것을 이용하는데, 배에 바닷물을 채워서 무게중심(G)를 낮게 함으로써 GM의 길이를 길게 해주려는 것이다.
<밸러스트 워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간이 필요하고, 그만큼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2. 베르누이 정리와 스쿼트 효과
1) 베르누이 정리 (Bernoulli Equation)
이것은 에너지 보존법칙으로부터 유도된 것으로서 유체를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정리이다.
위에 있는 복잡한 공식은 알거 없고, 핵심은 '유체가 흐르다가 흐르는 단면이 줄어들면 유속이 빨라진다'는 것과 '유속이 빨라지면 압력은 낮아지고 압력이 낮아지면 물체가 빨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꽤 많이 접할 수 있는 건데 차량이 정차해 있을 때 옆에 차가 (특히, 큰 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내 차가 잠시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가 내 차의 주변에 있던 공기를 빠르게 이동시켜 압력이 낮아지고, 그래서 잠시 그쪽으로 빨려들어갔다가 나왔기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다.
야구에서 변화구도 마찬가지로 공의 회전에 따라 공 주변 공기의 속도가 변하고, 이에 따라 압력의 변화가 생겨서 공의 움직임이 변화하게 되는, 뭐 그런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이다.
2) 스쿼트 효과 (Squat effect)
쭈그려 앉는 운동을 얘기할 때, 바로 그 '스쿼트'다.
이것은, 배가 낮은 수심을 지날 때, 앞서 언급한 베르누이 정리대로, 배 밑부분은 흐름 단면이 줄어들어 유속이 빨라지고, 배 밑부분의 압력이 낮아지는 효과를 말한다.
배 바닥부분의 압력이 낮아진다는 것은 쉽게 말해, 배가 바다바닥으로 가라앉는 힘, 즉 빨려 들어가는 힘이 커진다는 의미라고 보면 된다.
<얕은 수심에서 멈춰 있던 배가 출발할 때 배 뒷쪽 바닥면이 바다지면(해저)에 닿는다>
<그림의 1번은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 배에 작용하는 힘을, 2번은 수심이 낮은 바다에서 배에 작용하는 힘을 나타낸다. 2번에서 배에 작용하는 힘이 더 크다.>
3. 에어 포켓 (Air Pocket)
천안함 때부터 주구장창 나오던 에어 포켓이다.
주로 수도시설과 같은 압력관로에서는 에어포켓으로 인한 통수문제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번 사고에서 언론이 배의 앞부분, 기름통 부분을 보여주면서 자꾸 에어포켓 얘기를 하니, 마치 그 부분에 에어포켓이 있고 그 부분에 실종자가 모여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프레임이 그랬다)
기름통에도 공기는 존재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에어포켓이 있었던 것은 맞을 수도 있지만, 실종자가 기름통에 탑승한 것도 아니고... 실종자 얘기를 하는데, 그 부분을 보여주면서 에어포켓 얘기를 하는 건 일종의 '말장난'으로 느껴졌다.
이 에어포켓 문제는 실종자의 생존 가능성에 관한 얘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게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 두고두고 꽤나 말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에어포켓이 뒤집어진 배의 어느 지점에서, 얼마만큼의 양이 생겼는지는 아마도, 실제 모형실험을 하지 않으면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마, 컴퓨터 시뮬레이션(CFD) 정도를 할수는 있겠지만, 매우 높은 정밀도로, 그러니까 각 객실의 창문과 환기구 위치, 배가 잠기는 시간 등등 모든 것을 제대로 모의하지 않는 한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고, 오히려 논란만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압력관로처럼 단순한 경우도, 시뮬레이션을 통해 개략적인 위치와 개략적인 공기량 정도만 '추정'할 뿐이다)
분명한건, 이런 과정조차 없이 에어 포켓이 있었네, 없었네 하는 얘기들은 그냥 주장하는 사람의 머릿속에만 있는 어떤 가능성에 의한 '가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4. 결론
지금 상황에서,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문가'들이 입을 꽉 다물기로 한 모양이니, 각자가 대충 이 정도의 개념정리를 통해, 앞으로 쏟아질 '비전문가'의 얘기들 중 어느 '비전문가'가 헛소리를 하고 어느 '비전문가'가 그럴 듯한 얘기를 하는지 똑바로 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위에서 언급한 몇가지 공학적 상식들은 최근에 연구되었거나, 알려진 그런 개념은 아니다.
이미, 베르누이 정리는 1783년에 발표된 것이고, 다른 것들도 수세기 전부터, 아니 어쩌면 토목공학의 역사와 함께 했을 수도 있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매우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상식에 관한 얘기다. 따라서 만약, 이게 문제가 되어 배가 침몰했다면, 기본이 안되어 있는 사고였다는 얘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런 기본이 안되어 있는 선박사고가 -물론 사고 발생 상황은 다르겠지만- 선진국이라는 곳에서도 가끔씩 발생하는 것을 보면, 굳이 '후진국형 사고'라고 봐야할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얘기한다면 선진국이 되면, 사고가 안난다는 얘기같잖아.('선진국'인 영국에서는 배의 뒷문을 안 닫고 출발했다가 물이 차서 잠기는 병신 같은 사고도 있었다)
아니, 사실 '후진국형 사고'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후진국이라도 돈이 좀 없을 뿐, 안전관리체계나 의사결정 구조는 의외로 똑바로 되어 있는 나라들도 좀 있다.
후진국, 그러니까 평균 한국인 관점에서, 돈 없는 나라를 지칭하는 '후진국', 그들의 입장에서 이것을 '후진국형 사고'라고 부르는게 억울할 수도 있겠다. 걔네들한테서 이런 사고가 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국만의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한 '한국형 사고'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사고는 언제든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어떤 사고든 사고를 낸 놈들한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가 단순한 '사고'에 머무르게 될지, '대참사'에 이르게 될지는 분명히 그 국가 시스템에 달려있다.
정부는 사고를 막지 못한 책임과 사고에 신속하게 대응할 책임이 있다.
핵심은, 이 사건은 사고를 낸 놈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고를 정부가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해서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고를 박근혜가 낸 것도 아닌데 왜 박근혜를 욕하냐'는 얘기가 무식한 이유다.
-추가-
1. 위대하신 존나 존엄 박근혜 대통령 폐하께서 '청해진해운 소속 세월호'의 선장을 두고 '살인자 같다'라는 표현을 하신 것 같다.
예전에 '사법부'에서 이미 최종판결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GM의 사장이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나라에서는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법부에서 '살인자'라는 판단을 내리기 이전에 이미 행정부에서는 '살인자'라고 판단을 하였으므로, 삼권분립이 애매한 이 나라의 특성상, 아마도 그는 '살인자'가 될 것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고 나발이고 그딴 거 모르겠고)
난, 선장이 법정최고형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사고'를 냈다는 '과실'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승객을 구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가 어떤 벌을 받을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다만, 선장이 벌을 받을 때 이 국가 시스템은 어떤 벌을 받을 것인지,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국가 시스템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지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마, 안 될 거야 ㅆㅂ
세상에나. 전문가들의 입을 막을 생각을 다 하다니.
2.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본 요원이 만들어 놓은 '전문가'라는 '프레임'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인 교수나 박사라고 해서 다 맞는 소리를 한다거나, '비전문가'라고 해서 다 틀린 소리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이명박의 4대강'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아주 많이 봐 왔을 것이다. 중요한 건 '누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얘기를 하고 있느냐'하는 것이지 전문가냐 아니냐가 아니다. 이제 스스로 판단할 수 밖에. 진실은 공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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