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5. 01. 목요일
좌린
"가만히 있으라"
아, 웃을 때는 아니지.
29일 오후 세 시,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집회 공지가 올라왔다.
(29일까지만 해도 '게시물 URL 직접 외부 링크'가 갑자기 막혀서 '작성자 [용혜인]검색 결과 링크'가 SNS로 공유되고 있었는데, 30일 밤 열 시 현재 작성자로 검색을 해봐도 전혀 검색되지 않고 있다. 용혜인씨는 본인의 글을 삭제한 적이 없다고 확인해주셨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단 저 공지가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촛불문화제'가 어딘가 맥빠지게 느껴지는 마당에 도심을 종횡무진 누비는, 무려 '가두 행진' 계획이 청와대 게시판에 떡하니 공지되다니!
박성미 감독의 글을 퍼 올린 게시물이 조회수 52만을 기록하며 순식간에 성지로 떠오르는가 했더니 이제 '4.30 청년 학생 가투' 공지까지 올라오는 명실공히 국민 소통 게시판이 된 것이다. 게시판에 올라온 제안은 전통적인 가두 행진 시위는 아니고 한국판 두란아담(duranadam, 서 있는 남자) 즉, 그냥 가만히 있자는 취지의 '김감안 시위'였다.
터키의 두란아담 시위. 출처 : BBC TÜRKÇE
29일 저녁은 노을이 졌다.
저녁 노을은 화창한 날의 예고라고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 보라색 노을이 지면 날이 흐리다고 알려주었다.
4월 30일 오전은 맑았다. 한 시 반에 홍대입구역을 향해 출발.
배터리 충전을 깜빡해 23% 상태로 출발. 지하철을 기다리며 잠깐 '전기루팡질'을 했다. 방송 기자들이 시골 집에 취재를 가면 각종 조명과 충전기를 그 집 콘센트에 꽃아 누진세 폭탄을 안겨준다더니, 빨간 배터리 경고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이 '기레기'가 되고 말았다.
10분 늦게 홍대입구역 9번 출구에 도착했다. 스무 명 남짓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있다.
참가자는 '흰 색 또는 검정 색 옷을 입고, 노란 리본을 감은 흰 국화를 준비해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다는 나름의 표현을 하며 참여하면 된다'라는 주문이 있었는데 무척 어렵게 느껴졌다. 그냥...
나야 뭐 데모 하면 그냥 광화문에서 청와대로 밀고 올라 가는 것 밖에 모르는... 아, 아닙니다.
참가자들의 짧은 자유 발언을 듣고 홍대 일대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제안자가 마스크를 쓰지 않고 제일 앞에서 걸어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얼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다. 짧은 시간에 리트윗이 엄청나게 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어 <벙커원깊수키> 5월호 표지 사진으로 써도 된다는 허락까지 덩달아 얻어냈다.
조용조용 걷는다.
구름이 끼기 시작했지만 걷기 좋은 날씨.
지나가던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아, 세월호...'라고 자기들끼리 속삭인다.
정말 가만가만 걸었다.
사진을 찍느라 대열 앞뒤로 바삐 움직이는 내 모습이 유난히 부산스레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 말 없이 천천히
홍대 행진을 마치고 잠깐 휴식한 후 지하철을 탔다.
다음 장소는 명동 밀리오레 앞.
한 참가자가 "저는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습니다"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따를 수 없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피켓을 들고, 도심 곳곳을 말없이 걷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저 손 피켓의 내용도 좀 헷갈리는 것 같다. 지나가는 시민들 역시 '엇, 뭐지? 아, 세월호...'라는 반응을 보이는 일이 잦았다. 곱씹어 보게 만든다는 점이 오히려 더 낫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직접 피켓을 준비해 온 사람도 있다. 구조적 모순이라니, 아 이것도 어렵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가만히 있는 대신 남대문시장으로 가서 미뤄왔던 안경을 맞추기로 했다. (읭?)
안경을 주문하고 돌아왔다. 명동성당까지 갔다 온 걸어간 참가자들이 다시 명동 일대를 걷고 있다.
좁으면 좁은대로
횡단보도는 질서있게
시청앞까지 왔다.
또 횡단보도
잠깐 쉬었다가 합동 분향소 참배를 했다.
노랑 리본
참지 마요, 메론맛 우유, 참지 마요
참가자들이 분향소의 긴 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편의점에서 전화기, 보조 배터리, 허기 등 각종 충전을 했다. 사진기의 사진을 전화기로 옮기고, 트위터도 하고, 전화기의 사진을 외장하드로도 옮기고 이러느라 배터리 소모
가 극심하다.
줄이 길어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청와대는 레드라이트
다시 말없는 걸음 시작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는 파이낸스센터 앞
사회자가 "지금 SNS에 전파되고 있는 '가만히 있으라' 대오가 저희 집회에 합류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행진 대열은 그냥 조용히 지나치는 장면. 약간 걱정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청계천 도하
인원이 어느새 많이 불어났다.
어둑어둑
타박타박
종각 도착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놀랐습니다"
이 행진의 제안자, 안산이 고향이라는 25세 용혜인씨가 잠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다시 조금 이동하여 광통교에 모여앉아 정리 집회 겸 자유 발언 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촛불집회 쪽에서 함께 하자는 제안이 왔으니 가고싶은 분들은 함께 갑시다'라는 공지가 나왔다. 다들 군말 없이 힘든 다리를 이끌고 다시 파이낸스 센터 앞으로 이동했다.
하루 종일 조용히 걸어다니기만 하는 행렬에 있다 보니, 좀 더 큰 스피커에서 울려퍼지는 구호 소리가 얼핏 생경하게 들린다. 데모 따라다닌 하세월에 촛불문화제의 구호가 거칠게 느껴지는 일은 또 이번이 처음이다. 연령대부터 스타일까지 차이가 적지 않아 보이는 두 그룹이었지만, 아까 들었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다들 잘 자리잡고 앉았다.
침묵이니 촛불이니 횃불이니, 이런 거 신경 쓰고 따졌던 건 좀 쓸 데 없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서 걱정, 괜한 오지랖.
"가만히 있으라"
다만 청와대 게시판에 공지된 행진이라는 점이 궁금하여 홍대입구역으로 나와 본 거였다.
하루 종일 느리고 조용한 행진 대열에 사람들이 말없이 합류하고 있었다.
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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