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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02. 금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1. 세월호 침몰


2014년 4월 16일 오전, 대한민국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세월호 침몰. 참사 17일째인 5월 2일 현재, 구조174명, 사망 2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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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탑승객 수 476명이 '추정'이기에 실종자 80명 역시 '추정'에 불과하다. 




2. 정계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청해진 해운은 언딘과 계약했고 언딘은 해경이 추천(5월1일 시사인 주진우 보도)했다. 세월호 침몰의 초기 대응 실패와 구조 지연의 결과는 현재, 222명의 사망자와 80명의 실종자(추정)다. 


참사 관련 의혹이 하나 둘 사실화 되며 책임자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선장에서 청해진 해운, 청해진 해운에서 언딘, 언딘에서 해경으로. 


세월호 참사를 시작으로 해운비리에 대한 전반적 의혹이 수사선상에 오른 지금, 현직 국회의원의 이름까지 언론에 오르내린다. 검찰 수사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이루어진다면 여파는 해경에서 관료계, 정재계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3. 최초의 언급


언딘의 의혹이 시작됐을 때, 본지가 집중한 최초의 의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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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딘 장병수 이사 / 민간잠수사 성과 가로채기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 중>




'누가 언딘을 최초로 언급했는가'






검찰 수사가 종결될 때까지 공식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구조다. 실종자들의 확인이다. 다만 언딘과 해경간의 유착 의혹이 꼬리를 무는 지금, 유착이 초기대응 실패와 구조지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면 잃지 말았어야 할 생명을 잃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며, 범죄다. 


하여 참사 직후, 구난의 전체 흐름을 결정짓는 해경, 또는 해경과 정부관료가 참석한 최초의 대책 회의에서 '누가 언딘을 최초로 언급했는가'는 매우 중요한 의문이다. 


이에 따른 결정과 책임은 해양경찰청장이 진다. 허나 분명 최초의 언급자는 존재한다. 적어도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하여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거대한 카르텔의 키를 쥐고 있는, 검찰 수사의 핵심이 될 인물이다. 


거기서 시작하는게 가장 빠르다.  


세월호 침몰의 구조작업이 상식적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4. 최소 4월 16일 20:30분 이전  


청해진 해운과 언딘이 계약을 맺은 것은 4월 17일로 알려져 있다. 본지가 최초로 의혹을 가지고 확인한 문서는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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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인양작업 관련)구난업체 계약(언딘 社) 및 해상크레인 3척 수배". 


문서의 작성 시기 및 출처는 <2014년 4월 17일 (목) 1:10 현재,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여, 최소 4월 17일 오후 1시 10분 이전에 언딘은 '인양작업 관련' 계약을 맺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적어도 현재까지 확인 가능한 해양수산부 관련 문서 중 '언딘'이 최초로 언급된 것을 기점으로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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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점, 있다.


<2014년 4월 16일 (수) 20:30현재,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라고 명시되어 있는 문서에는 '은진'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언딘'이 아니라 '은진'이며 17일 아니라, 16일, 즉, 사고 당일이다.  


핵심은 "(인양작업 관련)구난업체 계약(은진 社) 및 해상크레인 3척 수배""(구난업체 의견) 부산 소재 은진社, 인양용 체인걸기 작업에 1개월 소요 예상"이다. 구난업체 은진사는 없다. 본지 심우찬 기자가 중앙사고수습본부 언론반에 확인 결과, 이는 "언딘"의 '단순'오타라고 한다. "은진"은 "언딘"이다. 


하여 해양수산부가 17일이 아니라 최소 사고당일 20:30분 이전에 청해진과 언딘의 계약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추진 또는 보고 받았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구난업체 의견이 명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초기대응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해경이 사고당일에 언딘으로부터 "인양용 체인 걸기 작업에 1개월 소요 예상"이라는 답변도 들은 것으로 판단된다. 


청해진 해운-언딘-해경이라는 구도는 최소 4월 17일 계약 이전, 아니, 4월 16일 20:30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공개된 문서는 사고당일부터 해양수산부의 대책이 '구조'보다 '인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설명한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해양수산부의 문서 상으로, 그렇다.   


그렇다면 누가 그 최초의 회의에 참석했는가. 




5. 최초의 언딘


처음, 해양경찰청 문의 결과, '세월호 관련 내용은 담당자들이 현장에 내려가 있으니 진도군청 쪽으로 연락하라' 한다. 


두 번째, 진도군청 범정부 사고대책본부 문의 결과, 해양수산부, 해경, 안전행정부 등이 참석한 최초의 중앙수습대책본부는 17일 00:00시에 만들어졌고 회의를 했다 한다. 누가 참여했는지 확인 요하니 모르겠다 한다. 최초 언급자는 해경 쪽 인물이라 판단, 추정되는 인물의 이름을 말하니 해수부 대변인실로 연락해 보라 한다. 


세 번째, 해양수산부 범정부 대변인실 문의 결과, 자신들은 현장 실무 쪽이라 사고 관련 업무 흐름은 세종시 해양수산부 관련부서에 문의하라 한다.


네 번째,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사무관 통화 결과, 해양수산부에서 수습대책본부를 세운 시간은 16일 9:40분이며 국무총리 주재 관계장관회의는 16일 22시 20분에 전남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서 열렸다고 한다. 해경 관련 인물의 팽목항, 군청, 세종시 등의 회의 공식일정을 확인했으나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 번째,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문의 결과, 장관급 대책회의 참석인원은 경황도 없고 누가 참석했는지 내용이 남아있지 않으며 기록도 하지 않아 모른다고 한다.


여섯 번째, 관계된 모든 부서와 본부, 보좌관, 해경 등에 차례로 연락했으나 참석 인원을 파악할 수 없었다. 한국선급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임한 전영기 회장이 정부관련 회의에 참석한 적 있는지 물었고 역시 확인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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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첫째, "은진(언딘의 오타)"이 최초로 언급된 문서는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내용을 전하면 종합하는 형태다. 둘째, <해수부 차관 주재>이며 사고수습본부의 각 반장들이 참석한다. 셋째, 어느 곳도 정확히 누가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하며 중앙사고수습본부의 회의는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8시, 하루에 두 번 진행된다. 


하여 언딘이 최초 언급된 회의는 침몰 이후 <해수부 차관 주재>의 중앙사고수습본부 첫 회의이며, 이 회의는 사고당일인 16일 저녁 8시에 있었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사고 수습 상황을 전하는 공식 문서 상을 기준으로, 그렇다.  


관계자에게 세종시로 갈테니 직접 만나서 얘기할 수 있냐고 하자 와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전했다. 




6. 없어진 '언딘'


다음날도 같은 작업의 반복, 장관, 차관급 인사의 확인은 불가했다. 사고 당일 회의록의 "(구난업체 의견)부산 소재 은진(언딘의 오타)社, 인양용 체인걸기 작업에 1개월 소요 예상"이라는 대목에 주목, 인양지원반을 시작으로 첫 회의에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각반의 반장을 통해 참석인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이 또한 불가했다.  


연결해준 곳으로 게속 문의했으나 돌고 돌아 제자리. 전화를 받는 사람 또한 달라지는 경우 많아 다시 처음부터 설명해야함은 물론, 해당 문서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언론반으로 다시 전화는 돌아가고 처음부터 문서를 설명하는 와중, 


"저는 그 부분이 안 보입니다."


라는 답변 돌아왔다. 본지 심우찬 기자가 같은 반 소속의 관계자와 통화하며 문서를 함께 확인했는데 다음날 해당문서의 관련 부문만 삭제되어 올라와 있다. 부서 관계자는 내용을 전혀 파악할 수 없고 그런 내용이 문서 자체에 존재하지 않기에 확인할 수 없다 했다. 나 또한 관계자에게 당황스럽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해양수산부의 사고 수습 상황과 회의의 내용이 기록된 문서에서 삭제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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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삭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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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삭제 부분> 


하여, 사건 당일인 16일과 다음날인 17일의 문서에서는 '구조보다 인양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으로 설명되는 내용'과 '언딘'의 이름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의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누가 언딘을 최초로 언급했는가'




7. 언딘의 피해자 


버젓이 공개된 문서의 내용까지 삭제되는 상황, 정부관계 라인으로는 더 나올 것이 없다 판단, 업체 쪽으로 눈을 돌렸다. 유착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피해를 보는 자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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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금호>




19일, 언딘보다 먼저 도착한 첫 바지선인 '2003 금호'에 집중했다. 모든 언론은 '2003 금호 바지선'이 언딘이 운영하는 '리베로 바지선'으로 교체되면서 수색작업이 중단되었고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극단적으로 '2003 금호 바지선'은 언딘에 의한 억울한 피해자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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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딘 리베로>



당시 동시에 취재를 하고 있던 곳은 ISU다.  ISU는 최초에 언딘과 정부가 강조한 것과 달리 국제공인단체가 아니라 국제적 이익단체임이 이미 많은 언론을 통해 증명되었기에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한국에는 언딘 이전에 '금호살베지'라는 인양업체가 ISU에 가입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ISU 본사 질의응답과 동시에 '금호살베지'관계자를 찾아 ISU의 성격과 언딘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당시 '금호살베지'에 근무했던 잠수사를 통해 확인 결과, '금호 살베지'는 '몇 년 전, 대표의 건강악화로 사업체를 접게 되었고 ISU는 반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3 금호'의 선주이자 금호수중개발 대표 박승도씨와 인터뷰 결과,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언딘 요청으로 갔어요'


대표의 말에 따르면 2003 금호는 언딘에게 밀려 쫓겨난 배가 아니라 언딘이 직접 부른 배다. 처음부터 비용 이야기는 없었고 선 조치 형식으로 갔다. 어떻게 빠지게 되었냐고 묻자 역시,


   '언딘이 빠지라고 해서 갔지요'


라고 답했다. 정확한 워딩은 2003 금호로 작업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 그래서 교체를 했다는 것이다. 2003금호는 359톤, 리베로는 1176톤이다. 시설도 훨씬 좋다고 덧붙였다.  


2003 금호의 선주인 금호수중개발 대표는 언딘이 국내 최고의 실력을 가진 것을 확신하며 현재 언딘을 때리는 언론의 행태에 대해 쌍욕을 하며 비판했다. 언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 회사라고 생각하면 된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정확한 워딩을 위해 하청업체로 이해하면 되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지만 거의 한 회사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로 다시 답변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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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보령호>



언딘의 또다른 피해자로 알려진 현대보령호. 해양과학기술원에서 추천한 오션C&I회사의 바지선 '현대보령호'선주인 사장은 56시간 동안 현장에서 대기만 하다 해경의 반대로 투입이 좌절되었다. 실손액은 본인의 배를 동원하는 비용을 제외하고 6천만원에 이른다고 답했다.





8. 정리




정리하자.


1. 해양수산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문서에  따르면 '언딘' 최초 언급 시기는 사고 당일 4월 16일 첫회의다. 최초 언급자는 아무도 모르며 아무도 확인하지 못했다. 

 

2. 사고당일부터 초점은 구조가 아닌, 인양에 맞춰져 있다. 


3. 관계부처, 차관회의 내용 및 언딘 관련 내용은 모두 삭제됐다.


4. 19일, 사고해역에 처음 등장한 바지선 <2003금호>는 전적으로 언딘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참사 당일부터 세월호와 관련된 본지 기자의 취재 및 사실 확인 결과물은 김어준 총수의 책임 하에 <김어준의 KFC>에서 종합, 방영되고 있다. 4월 말에 이루어진 본 취재와 관련된 내용은 5월1일 새벽, 번외편으로 방영됐다. 그 외의 내용은 방송에서 직접 확인 바란다. 


방송에서 세세한 취재의 흐름을 일일이 다 짚을 수 없기에 주요 사항은 앞으로 본지 기자들이 지면으로도 함께 전하겠다.  






KFC 특별취재팀

죽지않는돌고래

꾸물

홀짝

퍼그맨

너클볼러

좌린


종합 정리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