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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02. 금요일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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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월호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하려 쓰는 글은 아닙니다. 저는 그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그 무게를 알지 못하고, 글 몇 줄로 나서서 위로할 자격은 더욱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머지 우리들도 이 사건이 가져다주는 충격에 큰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사건을 둘러싼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이야기하는 분노와 환멸도 있지만, 어린 학생들의 때 아닌 희생, 그리고 그로 인해 환기된, 죽음 자체의 어두움이 전해오는 절망과 허무의 무게도 큽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을 통해 풀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은 제 자신에게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해왔습니다. 6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긴 했지만, 특별히 남들보다 죽음이 가까워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녔었습니다. 이른바 모태신앙이죠. 어머니와 가족 친지 대부분이 다녔기 때문에 따라다녔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들이 전부 교회에 있었고, 수련회나 연극 등, 추억도 교회의 것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기독교 문화와 사상의 영향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사춘기가 일찍 찾아온 것인지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죽음의 문제가 무겁게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조만간 겪을 수밖에 없는 절대적 한계라는 점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죽음으로 육체는 물론 의식과 자아 등 모든 것이 소멸한다면 그 자신에게는 스스로를 포함한 전 우주가 없어지는 것이더군요. 기억과 경험, 감정, 의미… 인간이 전 생애를 살면서 가꾸고 붙잡아 온 소중한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시커먼 허무 속으로 붕괴해버리고,  인간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그 운명 앞에 놓여있더군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의탁합니다만, 저는 교회에서는 도무지 그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믿기에는 모순과 불합리함이 너무 많아 보였어요. 나아가 교회가 세상살이에서 별로 모범을 보이는 것 같지조차 않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독교의 테두리 밖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습니다. 


30여 년 간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신비주의나 음모론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무한'과 '영원'이라는, 신과 이름만 다른 절대자를 힘겹게 찾아다니기도 했죠. 지금도 그 답을 명확히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는 중 제 자신에게 가장 정직하면서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초월적 존재에게 의지하지 않고 죽음을 대면할 수 있는 입장이 조금씩 만들어지더군요. 


그 열쇠는 결국 과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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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다윈은 오랫동안 종교적 관점에서 특별하게 취급되던 인간을 

다른생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존재로 재규정했습니다.



과학은 종교처럼 직접적이진 않아도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항상 건드려왔습니다. 인간 지성과 감성의 가장 첨예한 역량이 모이는 지점이다보니 당연한 일이겠죠. 특히 다윈의 진화론과 현대 의학 등은 우리가 다른 생물과 본질적인 면에서 구별되는 존재는 아니며, 따라서 죽음 이후 영혼이 '살아서'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해왔습니다.


사실 광막한 우주, 이 거대한 시공간 속에서 인간 존재의 영속성 같은 것이 특별히 보장될 자리도, 이유도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너무 하찮고 작습니다. 바다가 플랑크톤을 위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줄 리 없듯이 말이죠. 플랑크톤은 그저 바다의 일부로 존재하다가 사라져 가는 것입니다. 


과학의 특정 분야에서 인간 생명의 유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요즘에는 사람을 다시 젊게 만드는 유전학적 접근에서부터,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한다는 등 -이게 왜 쉽지 않은지는 일전에 한 번 썼던 적이 있습니다만- 여러 각도의 연구가 실제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다고 인간이 죽음을 진정으로 극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영생을 누린다는 판타지 속의 엘프조차도 칼이나 활에 맞으면 죽고 말죠. 제 의식이 옮아간 컴퓨터가 있다 한들 그 기계 역시 그리 오래가지 않아 망가지고 말 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죽음의 허무감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잊어버리고 삽니다. 물론 그럼으로써 하루하루의 일상을 가치있게 산다면 그것대로의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또 이번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면 더 이상 '언젠가'가 아닌, 지금 당장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현실 그 자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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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죽음을 비껴갈 수는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와 주변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 현실입니다.



그럼 과학은 이 점에 대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우주의 모든 것, 즉 '삼라만상'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보죠.


우주에 가장 많은 물질은 수소입니다. 원자핵과 전자 하나로 만들어진 가장 단순한 원소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다음으로 단순한 물질인 헬륨. 이 두 원소가 우주 전체 물질(암흑 물질 제외) 총 질량의 98%를 차지합니다. 정확하게는 수소가 질량의 70%, 헬륨은 28% 정도죠. 태양을 포함한 모든 별, 즉 항성은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수소는 빅뱅 때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단 몇 분 동안만 일어난 핵합성을 통해 중수소, 헬륨계 동위원소, 그리고 리튬계 동위원소들이 생겨났습니다. 수소와 헬륨, 리튬은 순서대로 원자 번호 1,2,3 이죠. 즉 우주에서 가장 단순한 물질들과 그 동위원소들이 우주 탄생 극초기에 탄생했다고 보면됩니다. 


하지만 이 원소들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물들과는 좀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지구상에서 우리가 익숙한 것들은 산소, 탄소, 질소 같은 기체들과 철, 구리, 금, 은 등의 금속들, 그리고 그것들로 만들어진 큰 물체들이니까요. 그럼 우리 주변의 구체적인 세상을 만들고 있는 이 다양한 원소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모두, 별이 스스로의 죽음을 대가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별이 연료인 수소를 다 태워 헬륨 덩어리로 바뀌면 초고온의 중심부에서 다시 핵융합이 일어나 헬륨보다 무겁고 복잡한 원소들을 하나씩 탄생시킵니다. 원자번호 26인 묵직한 철까지 이렇게 별 안에서 만들어지죠. 수소가 전자 하나를 갖는 데 비해 철은 26개를 갖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융합이 일어났는지 대략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별이 죽는 순간에는 초신성이 되면서 폭발하게 되는데, 이 순간 더욱 높은 열과 밀도 속에서 금, 은, 우라늄 등의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핵융합으로 생겨납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폭발을 통해 이 모든 물질들이 한꺼번에 주변의 우주공간으로 흩뿌려지는 거죠.


이렇게, 우리가 삼라만상이라고 부르는 세상 모든 것들이 별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고 퍼져나갔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있는 것들 중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늘, 구름, 땅, 나무 같은 자연은 물론이고 컴퓨터나 휴대폰, 티비, 자동차, 아파트 등도 전부 마찬가지죠.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을 위시한 생명도 포함됩니다. 생명체를 이루는 6개의 주요 원소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입니다. 원자번호 6, 1, 7, 8, 15, 16인 이것들도 모두 별이 죽어가면서 그 내부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인은 나머지 것에 비해 양이 매우 적지만 사람의 뼈와 DNA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소인데, 작년 말에 서울대 구본철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 연구팀이 초신성 잔해의 관측을 통해 그 기원을 증명하기도 했죠. 주요 원소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혈관 속을 흐르는 철분도 별에서 왔고, 우리가 매일 먹는 영양제에 들어있는 아연, 마그네슘, 칼슘, 나트륨, 그리고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수억, 수십억 년 간 엄청난 기세로 자신을 불태워 주변을 밝힌 거대한 천체들의 직접적인 후예입니다.


말 그대로 별의 아이들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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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신성이 폭발하면 이런 장관을 만듭니다.

태양보다 10배 이상 큰별들이 대개 초신성이 되죠.

우리와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이 폭발에서 뿌려져 나왔습니다.



그럼 우리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흔히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들 하죠.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흙으로 돌아간 우리 몸의 물질들은 박테리아와 식물, 동물의 양분이 되면서 순환합니다. 그러다가 70억 년 쯤 지나면 새로운 상황이 벌어집니다. 태양이 늙어 지금보다 훨씬 뜨겁고 거대한 적색거성이 되기 때문이죠.


그때가 되면 태양의 열로 지구는 산도 물도 들도 없이 그저 한 덩어리의 뜨거운 구체가 됩니다. 우리가 알던 지구의 모습은 모두 없어지죠. 그리고는 마침내 태양에 흡수되면서 지구를 구성하던 모든 물질은 개별적인 원자 상태로 녹아들게 됩니다.


하지만 순환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태양은 지구를 흡수한 후, 탄소가 주성분인 핵을 제외한 대부분의 물질을 우주 공간에 다시 방출합니다. 그런 다음 핵은 작은 백색왜성이 되어 천천히 식어가게 되죠.


그렇게 방출된 물질들은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천천히 뭉칩니다. 그래서 수십억 년 후에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별과 행성이 탄생하고 흙, 강, 하늘, 나무 같은 것들도 천천히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다른 생명체도 낳게 됩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런 일들은 우주에서 늘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실은 별에서 바로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이런 과정을 거친 물질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힌두의 경전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순환이 신화나 종교가 아닌 과학적 사실이었던 거죠.


이렇게, 우리는 죽어서 우리를 만들어준 별로 되돌아 갑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새로운 삼라만상을 탄생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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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78 성운에서 새로운 별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파란 구름이 성운이고 그 안의 밝은 것들이 새별들이에요.

이런 멋지고 거대한 존재들이 바로 사라진 지구, 태양, 

그리고 우리 인간에 의해 만들어질 겁니다.



이 광대한 순환의 드라마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인간적인 처연함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안도감을 갖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용을 써본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요. 부자가 되고 유명인이 되고 나아가 세계를 정복한다 한들 광막한 시공간 속에서는 티끌이자 찰나일 뿐입니다. 설사 은하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세운들 긴 세월이 지나면 폐허로 변하고 마는 것이 시간의 덧없음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죽음과 소멸을 극복하는 진정하고 항구적인 의미를 갖지 못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이 우주적 순환의 신성한 일부라는 것을, 우리를 이루는 요소들이 머나먼 시공을 넘어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가요? 그간 죽은 모든 사람들과 앞으로 죽을 우리들, 그리고 한때라도 여기 존재했던 모든 것들, 그 스토리는 잊혀질 망정 결코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처음의 허망함은 오히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절실한 소중함으로 되돌아옵니다.


물론, 제 다른 글에서 아실 수 있듯이, 그래서 현실의 구체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이 거대한 의미만을 붙잡고 살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의 일은 이 자리에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죽음은 삶의 귀결이지만 그렇다고 삶이 죽음을 '목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특히 때 아닌 어린 죽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삶 속에서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통과 슬픔을 줄이고 악을 단죄하는 것은, 탄소나 인 같은 원소 뿐 아니라 의지와 양심도 가진 인간으로 사는 한 당연한 책무입니다. 그 지옥 같은 배 속에서 먼저 떠난, 어쩌면 아직도 버티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남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하지만 분노의 표출과 정의의 실현만으로 이미 떠난 사람들에 대한 공허함 마저도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교훈'으로 앞으로 어떤 훌륭한 세상을 만든다해도 그 아이들은 그곳에서 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이 순간에는, 천국이 정말 있어서 모두가 그 곳에 갔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이 비뚤어진 나라에서 어려서부터 겪어야 했던 삶의 무게와 죽음의 공포가 한낱 꿈이었을 뿐이고, 이제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리게 되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더라도, 순진했던 우리 아이들은 그저 조금 먼저 별을 향해 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도 천천히 그곳을 향해 가고 있고요. 그래서 언젠가 때가 되면 만나서, 살아서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거대한 기적의 신성한 일원으로 함께 할 거라고 말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미안하지만, 그때는 더 이상 미안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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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