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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12. 월요일

메이비










어릴때였어. 1980년대 중반의 내가 읽었던 책들은 상당히 많은 분량의 '선데이 서울'을 포함해서 만화책이 2만 권 쯤? 성경 정독을 세 번 쯤 했고 그마저도 해답도 없고 지겹기도 해서 역사에서 배우자며 한국사에 손을 댄 게 중2 때 쯤인데 그때 한국사의 진도 나감이 마치 입에 재갈 걸고 트레일러 끄는 기분이라서. 어디선가 모여진 책들, 아는 집들이 서울 쪽으로 엑소더스할 때 버리고 가는 짐 속에서 골라왔거나, 혹은 아버지가 장거리 이동 시에 사모았던 것들 몇 권 속에서 지루함을 쉬어갈 수 있는 일종의 무협지 같은 책들이 있었지.


율산그룹의 흥망성쇠가 적힌 자서전 타입의 책과 이민사의 잔혹한 뒷 이야기가 담겼던 <김포국제공항(김승웅)>, 국내 대다수의 재벌이 태동한 이야기가 담긴 <재벌25시(조선일보 경제부)>, 뭐 이런 책들.


<김포국제공항>이란 책도 지금으로 따지면 "내가 미국갔을때~"로 시작해서 "~카더라"로 마무리되는 수준의 자료에 근거한 이민잔혹사 이야기라 중학생이 보기엔 좀 선정적이고 잔혹한 이야기가 몇 군데 있기도 했지. 그리고 <재벌25시> 같은 경우는 역시나 기업의 사사와 해방 이후 조선일보 경제부가 취재한 내용에 근거했으니정통 무협지에 가깝지. 무공이 아닌 돈빨 날리는 것만 차이가 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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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몇 군데 완전 폭삭 망한 재벌도 있고. 주구장창 살아남은, 현재론 애매한 대기업 위치의 중견그룹들과 공룡처럼 포식 최상위에서 정치마저 발 아래깔고 지내시는 그 분을 비롯한 거대기업의 1982년(초판이 나온 해)의 모습까지를 적어놔서 상당히 재미있다고. 해서, 인상깊은 두 책 중. <재벌 25시>와 당시 기업 사사와 검색되는 기사들을 보고 시리즈 글을 하나 쓰게 되었어.


나도 당시 이 책을 볼 때까진 기업들을 열렬히 사랑했지. 국민의 자긍심이 기업 자체이던 시절이고. 막 자국내 기업이 차도 만들고 하던 부흥의 시대 초입이니 말이야. 그 이후로 어느정도 머리가 굵어 대기업의 그들답지 않은 짓거리를 보게 되며 환멸을 느낀 IMF 이후까지의 시간으로 50년쯤 잡아, 제목은 반백년의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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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으나 싸늘한 뒷모습을 보니 짝사랑이었더라, 하는 마음으로. 사랑스러운 1982년까지의 기업 이야기를 현재와 오가며 풀어볼까 해. 참고로 내가 가진 책은 대충 레어급으로 도서관에 가면 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없을 가능성이 많지. 내가 가진 것 또한 종이가 노래지고 곧 맛이 갈 지경이거든. 뭐 새로 찍어낸 건 아마 살 수도 있을거야. 같은 책인지는 모르겠어.


여튼, 오늘날 애증의 대상인 대기업의 1982년 현재시점의 성장기를 들려주마. 쉬는 날 하나씩 올릴 테니 제법 늘어지더라도 이해해줘. (뭐 딱히 눈여겨 볼 작가도 아닌 담에야 기다릴 리 없을거라 예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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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 9일 ~ 6월 5일까지 당시 조선일보에 연재된 신 군부 치하에서 신문 3강에서 1등으로 올라선 조선일보의 콘텐츠 선정능력은 그때부터 꽃이 피었던지, 당시 기준에서 재벌기업의 역사를 한번 정리해둔 책을 만들더라고. 이 글의 시작은 아주 어릴때 그 책을 보고 기업천하에서 즐겁게 야망을 불태울 언젠가를 꿈꾸던 중학생 때의 나에게서 시작된 거고 그때 손에 잡은 책이 바로 이 책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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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5시>



조선일보 경제부 전체의 취재력으로 만들어진 책으로 이후 꾸준히 팔려나간 걸 보면 제법 인기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기업별 목차를 두고 해당기업의 시작부터 당시 시점에서의 활약상을 취재한 것이라 어쩌면 당시쯤 라이벌관계를 의식한 것일지, 목차는 삼성으로 시작해서 현대로 마무리가 지어지지. 오늘 그 책을 열어보며 이야기를 해볼까 해. 읽은 척 메뉴얼로 가기엔 가벼운 책이니깐 그냥 여기에다가 썰푸는 걸로 대신할게.

지난 한 달 간 한국에 있었고 중간중간 일본도 다녀오고 열대 해변에서 좋은 풍경아래 맥주와 진저에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 그런 시간을 보냈지. 개인적인 좋지 않은 뉴스 더하기 세월호 뉴스를 2연타 맞은 탓에 딴지를 방문하네 뭐하네 등등의 스케줄은 엉망이 되고 돌아오는 짐보따리 한가득 약을 가져온 탓에 또 세관에선 잠시 정지 당하고 그랬어. 부도수표 남발한 모양새가 되었으니 뭐 꼼장어 파티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지만 내 건강상태에서 발생한 좋지 못한 뉴스 탓에 어차피 파티는 커녕 묵념하게 생겼으니 이해하라고.



1982년엔 이병철씨가 살아있었고. 아직 이건희씨의 활약은 없던 시대야. 경제계의 대표선수였고 당시 나이로는 73세. 뭐 별 나이가 아니지만 당시 우리나라 평균수명을 볼 땐 너무너무 오래살아버린 산신령급인 거지.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삼성그룹의 첫 페이지엔 다소 시니컬한 표정에 멋진 백발이 섞여있는 단정한 머리를 한 이병철씨가 살짝 쪼개는 사진이 중앙에 떡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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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력이 있어. 



1910년 2월 출생.


1928년 4월 중동학교 중퇴.


1934년 3월 일본와세다 전문부 정경과 중퇴.



고로 이 사람은 중퇴전문 무학자네. 졸업장따윈 없어. 그 시대의 서태지였거나 다른 자료를 보면 이 시기에 집에 내려가 정미소도 하고 기생 치마 좀 벗기고 머리 올려주느라 좋았다는 그 시절인 거고



1938년 3월 삼성상회를 열어 국수를 팔지.


1951년 1월 효성의 조씨가문을 투자자로 끌어들여 삼성물산을 떡하니 차리면서 실질적인 기업이 되는거야.


1961년 8월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으로 마사오씨와 잇켄쇼부 해주시고.


1965년 4월 방송계 장악을 위한 첫발을 디디지. 중앙매스콤. 이름 참.



그리고. 이 책이 나오던 1982년 4월 보스턴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수여받았네. 딱 여기까지가 첫페이지 약력소개야. 뭐 흔히 보던 기록들이니 신기할 건 없겠지.


재미난 초반 내용 중엔 책임질 일 생길까봐 (결제라인에 사인 없이, 조직도에도 빠져있다는 세월호 사건의 덤터기 예정자인 구원파 교주 유씨처럼) 이병철 당시 회장은 구두결재만하고 서류나 수표같은 곳에 사인하거나 결재하는 일이 없이 기업을 운영했다고 해. 그러니 맨날 잡혀가도 최대 지 아들이지. 이번 세월호도 법적으론 잡아가봐야 그 녀석 아들까지인 것처럼. 신입사원 뽑을 때 관상쟁이 끼고 직접 참가했던 일화나 물건 들려 팔아오기를 시키는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이건 일본기업 쪽에서 베껴다 써먹은 걸 테고), 사건 터졌을 때 자기 책임이라고 덤터기 쓰는 타입의 인재를 매우 사랑하셨다는 내용이 쓰여있네. 그러니 이 양반도 길이 조금 엇나갔다면 교주해먹기 제격인 습관을 가진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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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에선 '천황'이라 불렸고 연중 한 번 열리는 사장단 회의는 '어전회의'였대. 1982년이면 참 과거긴 하다만, 우리나라 3대 신문 안에 들던 녀석들의 취재에 이렇게 적혀도 충분했을 지적, 문화적 수준의 대한민국은, 참, 뭐, 지금도 무릎 꿇는 국민이 어색하지 않은 공주님 모시고 사는 마당이긴 하니, 덮자.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진급한다는 이론을 잘 이용해서 무능하면 강등시켜주는 서비스도 자주 사용했다고 해. 제일주의, 완벽주의 때문에 제당 업계 경쟁 때 갖가지 권력도 이용하고 동원할 방법 다 동원해서 상대 회사들 말아먹은 이야기도 적혀있고. 아마도 이 책, 공소시효 지나서 막 나간 거 같기도 해.


미원에게 판판이 깨진 이야기는 마케팅 쪽 전설이기도 해서 이 책에도 적혀있고 당시 41세이던 이건희 3남에게 경영권 승계작업 진행중이란 것이 1982년의 삼성에 대한 이야기의 대부분이야.


이후 내용은 뭐 무협지지. 자유당 시절 증권시장의 절반을 소유한 부자, 금산분리가 없던 시절 대형은행 3곳의 주인, 불하(拂下) 받을 때 입찰 3등이었는데 자유당에서 1, 2등 제끼고 3등인 이병철씨에게 듬뿍안겼다, 뭐 그런 무용담들 있는 거야. 시중은행 절반이 자기 꺼였다는데 정말 사는 거 같이 산 거지.


그 다음 무용담이야 뭐 드라마에서 몇 번 우려드신 마사오씨와의 담판, 전재산 헌납신공을 주로 구사했던 강호의 고수 이야기지. 사인은 아들에게 맡겨서 아들 대신 학교 보낸 이야기도 나오고, 말년에 관상, 풍수, 역학에 관심을 뒀지만 접신까진 못하신 거 같고. 골동품을 좋아했던 건지 유산 상속 메소드인지는 알수 없고.


그런 내용들에 아직 당시 민감하던 한비 사건에 대한 변명도 상당 부분 나오고 장치 산업계엔 별로 투자하지 못한 자신의 얄팍한 상술에 대한 찜찜함을 언젠간 해소하겠다는 의지도 보이곤 해. 위암, 뇌암 수술 두 번이나 치른 사람치곤 참 할일이 많아 남았었던 거지.


아들이 당시 외형 4조 기업을 세계적으로 키웠으니 애 많이 깐 보람은 찾은 거 같고. 비슷한 덩치의 주영씨 집안의 자식농사가 별로인 것에 비하면 뭐 확률상으로 승리한거지. 상대는 3배수 이상 낳았어도 건진 거 없이 일베충 손자 하나 둔 셈이니 말이야. 


여튼, 1982년의 삼성을, 조선일보가 엉덩이 까고 다닌 내시의 마음으로 적은 책을 보니 묘하게 흥미로워.


이기면 장땡, 돈이면 다 되는 사회란 건.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 같진 않아서 내가 나이를 먹은 건지 아닌 건지 헷갈리기도 해. 조선일보가 다른 재벌 기업에 비해 4~5배인, 무려 30페이지 정도를 할애한 그룹, 단 한 번도 전재산을 투자하거나 모험을 해보지 않고 승산 있는 사업만을 해온 그룹으로서의 삼성. 이미 1950년대에 나라의 절반이 삼성 것이었으니 지금과 다른 게 무언지는 모르겠군.


인물은 인물이었지. 일본에서 우동 공수해 드신 걸 보아 (어쩌면 나도 한번 해봤으면 싶은) 호쾌한 식도락, 결재없이 입으로만 떠들어도 다 했을 종놈들이 당시로서도 무려 8만 명이었어. 뭐, 역대 한반도에 존재한 모든 나라들의 왕도 해보지 못했을 무소불위, 그리고 그 회사는 60년 넘도록 여전히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 한 때 외형 상으로 현대에 밀린적이 있지만 돈만 놓고보면 진 적이 단 한번도 없는, 현대란 그룹은 모험적인 올인을 통해 성장했고 삼성은 늘 가동 자금의 일부만을 투입하고 돌린 회사니깐.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닌 기업. 현재 그 자식들것을 다 합치면 대한민국의 절반도 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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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대한민국이란 국체는 허위고 사실은 삼성그룹 주인이 한반도의 주인인 상태.


고작 5년 짜리 권력 얻었다고 누가 나서서 건드려봐야 잠시 한국을 떠나 압박작전하면 금새 철들어버리는  것이 정치인들인 시대. 이런 곱고 순박한 마음씨로 굴종을 다하는 99.9%의 노예형 인간을 조련하신 그대 재벌들.


그 재벌들.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에도 그리고 지금 2014년에도.


사랑도 해야 욕도 씨부리는 법이니.









메이비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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