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사회]피사의 빌라 1

2014-05-15 16:28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펜더 추천12 비추천0

2014. 05. 15. 목요일

펜더









어제 일이다(5월 14일). 친구 2명이 생뚱맞게(!?) 내 작업실로 찾아왔다.


“O작가 힘들단 소리 듣고 위문 왔지.”


(Y는 언제부터인가부터 내 이름 대신 O작가란 호칭으로 날 부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제는 귀에 익다)


나와 가장 오래 지냈고, 가장 친한 2명이 위문차 날 찾아온 것이다. 함께 해온 세월이 있기에 낯빛만 봐도 서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놈들이다. 나야 고향을 떠났지만, 이들은 꿋꿋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다. 혼자보단 둘이 나은 게, 이들은 같은 업종에서 비슷한 일을 하기에 서로 의지도 하고, 어떨 땐 의기투합해 사업도 하는 상황이다. 나? 난 가끔 이들 일을 거들기도 하지만(이들 중 한 명의 회사에 ‘기획팀장’이란 타이틀을 아직도 달고 있다), 대부분은 이들이 사주는 술과 밥을 얻어먹는다(내가 경제적으로 몰렸을 때 날 가장 많이 도와줬던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 표현은 ‘고흐의 형’이 되겠다는 건데... 미안하다 친구들아 테오는 동생이야 ㅠㅠ). 이들의 직업은 ‘건설사 사장’과 ‘철거업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단순했다. 커피를 마시다가 화제가 이번에 ‘자빠진’ 아산의 ‘피사의 빌라’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런 건 ‘대륙’에서나 일어나는 일 인줄 알았는데 대명천지인 한국에서(하긴 세월호를 보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현직의 ‘노가다’들이 아닌가? 그것도 아산과 가까운 곳, 비슷한 규모의 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 아닌가? 단순한 호기심으로 던진 질문이었는데, 이 ‘주제’로 몇 시간을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대충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알았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황당했다.


1.JPG


“...씨바 이거 뭐야?”


건설업체 사장(자기말로는 ‘바지사장’이라고 엄살을 떨지만)인 L은 이 ‘피사의 빌라’가 벌어진 원인을 파악한 것 뿐만 아니라 ‘왜 자빠졌는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설계도에서 시작해 준공 직후 상황까지(준공 1주일 전에 자빠졌으니) 2개의 시나리오로 짜서 가지고 있었다. L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아산 공무원들 크게 한숨 쉬었을 거야. 만약 준공 후에 자빠졌으면... 세월호 짝 났을 거야. 요즘 분위기 흉흉한데, 제대로 시범케이스로 걸리는 거지.”


L의 말을 이어 철거업자인 Y도 거들었다.


“14층 건물이니까(7층짜리 두 동) 음료수값 이상은 받아먹었을 거 아냐. 포돌이 아저씨들 하다 못해 음료수값이라도 받아먹었지.”


“(웃음) 지금 경찰 아저씨들 정색하고 있을 거야. 평소에는 'O사장 왔어?' 하던 애들도 기자들 몰려오고, 전화오니까 'OOO씨 왜 그러셨죠?' 이러면서 정색 빨고 있을 거야. 아산 그 촌구석에서 한 다리 건너면 다 형동생일 텐데, 똥 빠지는 거지.” 


“(웃음) 준공 전에 자빠진 게 행운이지. (웃음) 준공 하고, 사람 들어오기 전에 자빠졌지? 아산 건축과 애들 똥 빠지는 거야. 준공하고 사람 입주한 뒤에 자빠졌지? 걔들 옷 벗는 게 아니라 빵에 가는 거고”


L과 Y 두 명 다 이해와 분석이 일치했고, 정확하게 2개의 시나리오로 이 ‘피사의 빌라’ 사건을 분석했다(뒤에 말하겠지만, 이들은 ‘피사의 빌라’ 건축주가 어디서 대출을 받았는지도 유추해 냈다. 그들 말로는 등기부등본과 토지대장만 확인 할 수 있으면, ‘피사의 빌라’가 어떤 식으로 자빠졌는지 100% 추리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해물칼국수로 시작해 농어회로 끝난 8시간의 대화 동안 이들은 시종일관,




“모르면 약이고, 알면 병이야.”




라면서 업계비밀을 말하는 것에 주저했지만, 어쩌겠나? 부랄친구가 궁금해 하는데... 이틀 연짱으로 새벽 4시까지 폭풍음주를 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달려보자!





L : 건설업자 Y : 철거업자 나 : 펜더


(이들은 자기 이름이 나오는 걸 끝끝내 반대했다. ‘요즘 몸 사리는 기간’이라고 한다)


나 : 그러니까 시나리오 1은 뭐고, 시나리오 2는 뭐야?


L : (심드렁) 1은 가능성이 한... 5% 되냐?


Y : 그 정도겠지?


나 : 그럼 시나리오 2는?


L : 95%정도의 확률이지.


나 : 두 개의 차이가 뭔데? 아니, 그 전에 왜 자빠진 건데?


L과 Y : (박장대소)


L : (웃음) 자빠질만 하니까 자빠지는 거지. 이것들이... 아니, 이놈이 노가다로서의 ‘양심의 선’(워딩 그대로이다)을 너무 낮게 잡은 거지


2.jpg


나 : 양심의 선?


L : (웃음) 업계비밀을 너무 많이 알려주는 건데... 이게 이 바닥에서 ‘기술’이란 게 도면 나오면 그걸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 빼 먹느냐의 승부거든? 그러니까 빼 먹긴 하되 건물이 안정성 있게 서 있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하거든. 그걸 잘하면 기술자고, 아니면... 자빠지는 거지.


나 : 야, 빼 먹는 거도 양심이 있냐? 


Y : (웃음) 있지.


L : 당근 있지. 철근이 10개 들어가는데, 2~3개 빼 먹고 7~8개로 잡는다? 이건 허용범위 안이야. 공구리를 쳐. 도면상으로 강도 5가 기준이야. 이걸 3.5나 4에 맞춰서 공구리 친다? 이건 OK야. 근데, 2나 2.5로 친다? 이건 양심의 선을 넘는 거지. 


Y : (웃음) 2.5로 친다고? 씨바, 금 가고 벽 푸석푸석해지고... (L보며) 레미콘(콘크리트 작업을 레미콘으로 칭한다)을 얼마나 묽게 한 거야? 술값을 얼마나 친 거야?


술값이란 말에 L과 Y는 또다시 박장대소를 한다. 차차 나오겠지만, 건축비 대비 ‘술값(영업비)’이 정해져 있단다(표준가 비슷한 수준으로). 이번에 자빠진 ‘피사의 빌라’의 경우는 많이 먹어봤자 3백 만 원 수준의 ‘영세한 수준’이라고 한다.


나 : 그래서? 현장에서 빼 먹어서 그렇다?


L : 처음에 인터넷 기사로만 봤을 때는 이게 소장이 좀 많이 해먹었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자빠진 거 보니까. 이건 소장 짓이 아니더라고. 그래서 시나리오 2가 나온 거야.


Y : (고개 끄덕이며) 완전판이 나온 거지.


나 : 보통 현장소장이 남겨먹는 거 아냐?


L : 글치. 분명 프리랜서 소장일테고...


나 : 프리랜서?


L : 예전 우리 회사에 있던 S전무 있지? 그런 거야.


나 : 아... 소장들이 왜 프리랜서를 하는 거야?


L : (당연하단 듯) 그게 돈이 되니까 그렇지. 회사에 있으면, 잘해봐야 3~4백이잖아? 근데 프리로 뛰면 10번 똥돈 치다가, 한 번 대박 나면 로또 터지는 거잖아. 


나 : 아, 건축비 큰 걸 수주하면?


L :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건축비가 큰 게 아니라, 많이 남겨먹을 수 있는 현장에 걸려야지. 공사비 30억 짜린데, 실제 건축비가 29억이야. 그럼 못 남겨먹는 거지. 


Y : (웃음) 건축이... 한 방이야.


3.jpg


나 : 한 방?


Y : (웃음) 한 방을 터트릴 수도 있고,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고.


L : (웃음) 아산 빌라가 딱 그짝이지. 한 방 터트리려다가... 아니다. 이건 한 방 터트릴만한 규모가 아니고, 그냥 기름값 좀 벌려다가 한 방에 훅 날아간 거지. 


나 : 자세히 말해봐. 한 방을 어떻게 터트리는데?


L : 이게... 아산 빌라랑 비슷한 상황인데... 우선 아산이 자빠진 이유를 말할게. 이게 파일을 빼 먹은 거야. 


Y : 철근도 빼 먹었어. 파일을 아무리 빼 먹어도 철근만 좀 받쳐줬어도 이렇게 쉽게 자빠지진 않아.


나 : 파일이 뭐냐?


L : 쉽게 생각하면 전봇대라고 보면 돼. 지반이 약하지? 아산 보니까 농지더만? 논이었나? 논이면 땅이 물을 존나게 먹었을 거 아냐? 그럼 지반이 약해. 그럼 땅 파고 파일을 박는 거야. 어려운 말로 하면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파일이라고 하는데, 일반인은 알 거 없고, 걍 전봇대야. 연약지반이다? 그럼 존나게 박는 거야. 이게 강도도 다 다르고... 여튼 깊게 들어가면 복잡해. 넌 그냥 전봇대라고만 알고 있으면 돼.


나 : 그 전봇대를 빼먹었다?


Y : (은근슬쩍) 철근도


L : (고개 끄덕이며) 이게 어쩌다 보면 로또가 터지는 경우가 있어. 땅을 파. 근데 이게 지반이 존나 딴딴해. 그럼 로또 터지는 거지. 처음엔 파일을 좀 박아야겠다 생각했는데, 땅이 딴딴해, 파일이 안 박힐 정도야. 그럼 그 비용 고스란히 회수하는 거지. 소장이 먹는 거야. 그럼 로또 터지는 거야.


나 : ...건축주한테 돌려주는 거 아냐?


L, Y : (동시에) 왜?


나 : ...그럼 파일을 더 박아야 한다면 소장이 대신 물어내?


L, Y : (동시에) 추가 청구해야지.


나 : 야,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L : 노가다는 도면대로 지어주는 게 일이야.


나 : 도면대로 안하는 거 아냐!


L : 도면대로 하는 거지. 파일을 박아서 지반을 다져줘야 하는데, 그 지반이 딴딴해. 그럼 도면이 원하는 수준만큼의 강도는 나온다는 거잖아. 도면대로잖아. 물론, 도의상으로 생각하면 그런데... 노가다에서 돈을 남겨먹을 수 있는게, 크게 자재비랑 인건비...


Y : 공기(工期)도 있잖아. 


L : 글치. 공기가 가장 중요하지. 이거 때문에 프리랜서 소장들이 목숨 걸고 달려들지. 여튼 자재비, 인건비, 공기가 있는데. 인건비는 빼 먹기가 힘들어. 딱 대가리가 맞춰져 있어. 노가다 판에도 도의란 게 있는데, 잡부나 일용직 아저씨들 간조(일당, 월급)는 챙겨줘야지.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그런데 자재는 공구리치면 모르잖아? 내장재는 모르겠지만, 기초 다질 때 철근이나 파일 박는 거 일일이 다 확인할래? 건물 올라간 상태에서는 확인 못하잖아? 그니까 빼 먹는 거지.


4.jpg


프리랜서 소장이 활약하는 경우가 이렇다. 어떤 건축주가 10억 짜리 건물을 올린다고 가정하면, 어디 사무소에서는 9억 5천, 다른 사무소에서는 9억을 부른다. 프리랜서의 경우 8억을 부르면, 프리랜서에게 도면이 간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 50억 짜리 공사에서 건축주나 건설사가 일 잘하는(공기를 단축시킬 수 있는) 소장을 찾는다. 그리곤,


“이게 50억 짜리 공사인데, 네가 42억에 맞춰라. 우리가 5억 먹고 네가 3억 가져가라. 어때?” (예시일 뿐이다. 비용에 민감해지지 말자)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140일이 표준적인 공기라면, 소장은 이걸 100일에 맞추려고 기를 쓰고 덤벼든다는 것이다. 건설현장은 시간이 곧 돈이다(어떤 판이나 다 똑같겠지만, 노가다는 하루 지체되면 그 부대비용이 엄청나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 그러니까 사람이 죽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의 생명이 중요해서가 아니라(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이 죽으면 공사가 스톱이 된다. 당장 검찰 뜨고 공무원들 달려오면 공기가 늦춰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회사는 사람이 죽으면 최대한 빠르게 유가족들과 합의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합의금을 빨리 쥐어주고 합의를 보는 게 ‘절대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은 ‘공기와의 전쟁’인 것이다.


나 : 야, 건물 올리려면 종합건설 면허가 있어야 하잖아?


L : 어유, 우리 O작가님 그렇게 순진하셨어요? 하긴, 글 쓰려면 좀 순수해야 한다. 야, 당연히 빌려주지! 지금 아산 빌라도 소장이랑 건설사 사장이랑 싸우고 있을 거야. 아... 이건 시나리오 1일 때지? 여튼 뭐 빌려주고 그래.


나 : 면허를 빌려줘?


L : 종합건설 면허를 빌려주는 거지. 우리가 건축 기술자 수첩을 랜탈하는 거랑 똑같아.


종합건설사의 경우 초급 몇 명, 중급 몇 명, 고급 몇 명 등등의(특급도 있다) 인력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고용을 해야 하는 데 당연히 돈이 들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이들의 자격증(수첩)을 돈 주고 빌린다(이걸 따로 해주는 에이전트도 있다). 건설사 면허도 이와 똑같다는 것이다.


L : 이런 거지. 네가 내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프리 선언을 하고 나가. 그런데 밖에서 아산빌라 같은 구찌를 물고 와. 건물 올리려면 건축면허가 필요하잖아? 보통 5%에서 7%를 받거든? 우리는 7% 받아. 이것도 복잡해. 세금 내줘야지, 이게 돈은 회사로 들어오는 거라서 세금 관련해서 비용 다 처리하고 수수료 받아야지, 보통은 친한 사람들이 해. 친분이 있거나 인척인 경우에 이렇게 하지.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빌려줄 수는 없잖아.


Y : 프리가 쉬운 게 아냐. 인맥 구축해야지, 영업력 있어야지... 생초짜가 나가서 하는 게 아니라니까.


L : 글치. 아산빌라가 그래서 이상한 거야. 소장이 프리 뛰었다면. 이게 말이 안 되거든 14층 짜리잖아. 7층 짜리 두 동. 그렇다는 건 그 정도 규모의 현장을 핸들링 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럼 최소한 고급 이상이란 거야(자격이). 그럼 알거든.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웃음) 혹시 모르지 바람이 났거나 목숨보다 귀한 돈을 썼던가...


나 : 목숨보다 귀한 돈?


Y : (웃음) 사채.


L : (웃음) 그거 잘못 썼다가 좆된 애들 수두룩 지천이다. 그냥 똥 빠지는 수준인 줄 알지? 완전 좆된다. 근데... 그 정도 현장 핸들링 할 정도면 알 거 다 아는 사람 일 텐데, 돈 좀 남겨먹겠다고 파일을 뺀다? 아니거든. 그렇게 될 수가 없어. 공구리 밥이 몇 년일 텐데. 아니, 최소한 십 년 넘을 텐데. 지반 보면 알지... 이렇게 뺏다간 좆된다는 거.


나 : 그건 알겠는데, 그래, 소장이 빼먹었다 치자. 아니, 누군 빼먹었겠지. 네 말대로 도면대로 해야 하는데, 안했다 치면... 원초적인 질문 하나 해보자. 감리는 뭐한 거야?


짧은 정적 이후 L과 Y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Y : (웃음) 우리 O작가 정말... 글 써야겠다. 이렇게 어수룩해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겠어?


L : (웃음) 아냐. 얘가 나름 영업 뛰던 앤데, 한참 쉬어서 감이 떨어진 거야 (나보며) 야, 이 정도 규모면 다 자체감리지!


나 : 자체감리?


L : 설계사무소가 감리 뛰는 거지.


Y : 그래서 술값이 필요한 거고.


L : 소장, 설계사무소, 종합건설 면허 빌려준 애... 뭐 그 전부터 다 안면 있고, 아니 친한 애들이지.


Y : (고개 끄덕이며) 그밥이 그밥이야. 면허 빌려준 애랑 현장소장이랑은 같이 일했거나 최소한 그래. 골프라도 같이 치던 사이고, 설계사무소랑도 이미 몇 번 같이 일했던 상황이겠지.


L : 글치. 그 상황에서 소장이 술자리 마련하는 거지. 아는 사람들끼리 우의를 다지면서 이번에 감리 좀 잘 봐줘라. 내가 어찌어찌 할 건데... 잘 봐줘라. 다들 빠꼼이들인데(웃음)


6.jpg


나 : 그럼 해줘?


L : 뭐... 약속을 할 때도 있고


나 : 약속?


L : 감리가 돈이 안 돼. 그러면 말하는 거지. 이번 현장은 얼마 안 남는다. 너도 도면 보면 알잖냐? 내가 다음 건 하나 할 건데, 그때 설계 너한테 맡길게. 뭐 그렇게 하는 거지.


나 : 설계는 돈이 돼?


L : 감리보단 돈 되지. 보통 건축주가 수정을 요구하면... 뭐 3번까지는 공짜로 해주고, 그 다음에는 평수 따라 더 붙고, 조감도 하나 그려주면 100에서 120 받고. 평수에 따라 다르지만, 돈 좀 만져.


나 : 건축주가 외부감리를 맡길 수도 있잖아?


Y : (웃음) 야, 다 그밥이 그밥이라니까. 설계사무소에서 자체감리 하기도 하지만, 외부감리를 하자고 건축주가 말하면... 건축주가 이쪽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 그럼 설계 사무소에서 자기 아는 설계사무소를 소개시켜줘. 건축주가 도면 들고 감리 찾으면, 설계해준 사무소가 친절하게 문 열어주면서 자기 아는 설계 사무소 소개시켜주는 거야.


L : 모셔가는 경우도 있지 (웃음)


Y : (고개 끄덕이며) 아산이잖아. 바닥이 좁을 테고. 그 쪼메난 곳에 설계사무소가 몇 개나 되겠냐? 2~3군데 사무소가 묶여서 이번엔 내가 설계하고, 네가 감리하자. 다음엔 네가 설계하고 내가 감리할게 그런 거지. 지들도 다음에 먹어야 하니까 다들 봐주고 그래. 현장소장? 다 알지. 셋이 쿵짝이 되는 거야. 자체감리면 더 말할 거도 없고.그래도 기름칠해야 하니까 현장소장이 술자리 마련하고, 어떻게 빼 먹을지 상한선을 정하는 거지.


L : 그냥 ‘팀’이라고 생각하면 돼. 팀. 팀플레이지.


나 : 다음을 어떻게 기약해? 배신 때리고 지가 다 먹으면?


Y : 노가다의 의리지. 이게 바닥이 좁아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알아. 아니면 못 살아남아. 게다가 아산이면... 좁아도 너무 좁아.


5.jpg


L : (느긋하게) 배신 때리기엔 서로의 약점을 너무 잘 알지.


Y : (웃음) 맞다. 배신 때리기엔 약점을 너무 잘 알지. 작정하고 꼰지르면 사무소 한두 개 박살나는 거 일도 아니지 (웃음)


L : (느긋하게) 노가다의 의리란 게. 다음에 일 주겠다고 하면, 100% 줘야 해. 관례라기보다는 일종의 불문율이지. 약속 어기지? 현장에 말뚝 하나 박기도 힘들어질걸?


그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피사의 빌라’는 당연히 기울어질 건물이 기울어진 거 같았다. 그래도 오기가 생겼다.


나 : 공무원 있잖아! 이렇게 막장으로 짓는데 그냥 내버려 둬? 건축허가 내려면... 그래, 준공 내려면 사진 찍고 그러잖아. 그럼 공무원들은?


L : (웃으며) 사진 찍지. 준공 내고 하려면 사진 첨부해서 보내야 하는데, (사이) 그래, 기둥이 4개 있다 치자. 4개 중 1개는 FM대로 다 넣어 그렇게 해서 사진 찍고 다 해. 그리고 나머지 3개? 다 빼 먹는 거지.


씨바... 그런 거였어?


Y : (느긋) 공무원들 술값이랑, 경찰들 음료수값이 어디서 나온다고 생각해?


나 : ...걔들 안 주면 큰일 나냐?


L : 100일 짜리 공기 건물을 300일 동안 짓고 싶으면 안 주던가. 


Y : 민원 들어오면 어떻게 하라고? 기름칠 해야지.


힘 있는 정부부처란 ‘규제’할 ‘꺼리’가 얼마나 있냐의 차이이고, 그런 의미에서 건교부(요즘은 국토해양부인가?)가 최강의 정부부처란 말이 있는데, 맞는 거 같다. 현장에서 건물 하나 올릴 때 마다 떨어지는 돈이 얼마인가?


나 : 야, 뭐 긍정적인 이야긴 없냐?


L : 뭐 그렇게 나쁜 건 아냐. 요즘은 감리가 빡세져서 옛날처럼 심각하게 빼고 그런 거는 많이 사라졌지.


Y : 그치. 감리가 빡세졌지. 괜찮아 요즘은...


나 : 야, 그럼 아산빌라는 왜 기울어진건데?


L : (회심의 미소) 야, 뭐 좀 이상하지 않냐?


나 : 당연히 이상하지!! 멀쩡한 7층 건물이 기울었는데, 그게 안 이상해?


L : 그게 아니라 이 정도면. 게다가 시절이 시절이잖아. 세월호 가라앉고 난리도 아닌 상황인데, 언론이 조용하잖아. 공무원들도 잠잠하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 정도 사건인데, 인터넷에서 짤방만 돌아다닐 뿐. 별말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정도 건물이 자빠졌으면 건축주가 난리를 쳐야 하는 게 아닌가?


L : (웃음) 글치, 이 정도 사건인데 건축주가 잠잠해. 나 같아도 언론 붙잡고 난리 쳤을 텐데 조용해. 저게 딱 보면 견적이 나오거든? 평당 350 짜리 건물이야. 아... 이건 내가 대충 계산한 건데, 아마 350 이쪽저쪽으로 책정됐을 거야. 근데, 이걸 현장에서 300 언더로 후려친 거야. 그러니까 자빠진 거야.


나 : 그니까 현장에서 소장이나 누가 빼 먹었다는 거 아냐? 그걸 감리나 공무원들이 눈감아주고!


L : 말은 바로 해야지. 제일 큰 잘못은... 그래 감리가 잘못했지. 감리가 똑바로 했으면, 이렇게 안 기울었지. 근데 공무원은 해당사항 없지. 이게 공공입찰도 아니고 사급공사잖아? 만약 시나리오 1로 하면 이런 거지. A라는 건축주가 있어. 이 사람이 건물을 지으려고 해. 그래서 견적을 뽑아 본거야. 대충 견적 나오지? 평당 350이고, 이쪽저쪽 하면 2동 짓는데 20억 이쪽저쪽으로 견적이 나온 거지. 이걸 사무소에 맡길까 하고 알아보다가...


Y : 제일 싸게 견적 내놓은 현장소장이 등장하지. 그 현장소장이 자기가 잘 아는 건설사 면허 빌려서 작업을 하고...


L : (웃으며) 규모가 작으니 자체감리를 했다치고, 건설사, 소장, 설계사무소 세 명이 회합을 한 다음에 어떤 딜이 오갔겠지? 다음에 일 하나 준다. 이번 거 아무리 봐도 나올 구멍이 없다. 딱 사진 보니 남겨먹을 거도 없겠더만? 똥돈 장사에 기름값 좀 건지면 되겠더만...


(L의 주장으론 ‘노가다가 은근히 부대비용이 많이 드는 직종’이라고 말한다. 부대비용이란 ‘술값’으로 대표되는 기름칠 비용과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름값’이다. 현장을 오가고 영업을 뛰려면 자동차를 많이 몰아야 한다고... 듣고 보니 둘 다 ‘기름값’이다. 아놔... Y의 말로는 소장이 많이 버는 것처럼 보여도 달에 5백 정도면 기본 친다는 것이다. 그러다 한 방 터지면 ‘복구’한다는 것이다. ‘소장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집에 가면 마누라랑 새끼도 있을텐데, 애들 학원비도 내야지.’)


Y : 글치, 노가다가 많이 버는지 아는데 기름값 빼고 달에 5백 가져가는 수준 정도로 맞춰야 해. 이 정도 규모에 달에 천 뽑아가려면...


L : (단호) 도둑놈이지.


나 : 그러니까 달에 천 뽑으려고 자재 빼돌린 게 아니다?


L : 아까 말했잖아! 이 정도 규모를 핸들링 할 정도면 최소한 10년 차 이상의 고급이라고! 대가리 총 맞았냐? 빤히 보이는데, 파일 빼돌리게?


나 : 근데 왜 기울었냐고?


L : (웃음) 그러니까 시나리오 1은 폐기해야 한다는 거지.


L과 Y는 탐정놀이를 하고 있었다. 중년탐정 김정일이 돼 ‘피사의 빌라’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고 있었다. 둘은 진지했다. 이들은 내 작업실로 오는 차 안에서 상당히 디테일한 ‘시나리오 2’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 2’는... 내가 보기에는 이 사건의 실체로 보일 정도였다. 자금출처까지 유추했고, 현장이 어떻게 진행됐으며, 왜 기울어졌고, ‘피사의 빌라’의 시공사와 건축주가 어떤 관계였는지까지 추리해 낸 것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일이 이 동네에서는 ‘일상’이라는 것이다(L의 주장으론 ‘등기부등본하고 토지대장만 떼 보면 사건의 실체가 확실히 드러난다’고 했다).



7.jpg


Y : (웃음) 만약 시나리오 1대로 갔으면, 지금쯤 소장이랑 면허 빌려준 애 둘이서 조낸 싸우고 있겠지.


나 : 아... 맞네. 면허 빌려준 애랑 현장 움직인 애랑 다르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


Y : 어떻게 되긴, 소장은 만세 불러야지.


나 : 만세?


Y : (웃음) 배째라고... 어차피 계약은 건설사가 했고, 서류상으로 소장은 건설사 직원이니까. 입금통장이 건설사 통장으로 들어가는 거니까. 법적으로 보면 건설사가 좆된 거지.


L : (웃음) 여기서도 시나리오가 다시 갈리지. 건축주가 있고, 건설사랑 현장소장이 있다면... 건설사랑 현장소장이 둘 다 만세 부르는 거지. 당장 물어낼 돈이 20억에... Y야 이 정도 건물이면 철거 견적 얼마 나오냐?


Y : 3억 5천에서 4억 나오지.


L : (고개 끄덕이며) 24억 꼬나박는 거지. 이런 존만한 회사에서 당장 그 큰 돈이 어떻게 나오냐? 둘 다 만세 부르고 배째라고 해야지.


나 : 그럼 건축주만 좆된 거네?


L : 제일 좆된 건 하도급 애들이지. 당장 잔금 나와야 돈 받는 애들인데, 돈 못 받는 게 기정사실화 됐으니... 얘네들이 제일 불쌍하지. 건축주는 법적으로 건설사 애들한테 지랄하겠지만, 시나리오 1 상으로 간다면 얘네들은 당연하게도 만세를 부르고, 빵에 가려고 하겠지.


Y : 에이, 빵엔 왜 들어가? 관급공사도 아닌데. 사급공사인데다가, 인사사고가 안 났잖아. 잘해봐야 집행유예야.


L : (웃음) 그것도 시나리오 1 상의 이야기지.


나 : 그러니까 현장소장이 빼 먹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L : 소장이 바보가 아니고, 지금까지 건축주가 언론에 안 나오고. 언론에 다른 소스가 안 나오는 거 보면 시나리오 1은 아니지. 거의 99% 시나리오 2야.


나 : 도대체 시나리오 2가 뭐야?


L과 Y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피사의 빌라’ 사건의 두 번째 추리이자, 가장 진실에 가깝다고 주장하는(L과 Y의 추리다) 두 번째 시나리오! 이 이야기는 내일 공개하겠다. 노가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한국 건설의 현실! 그리고 ‘건축주가 눈탱이를 맞지 않는 법!’ 여기에 추가해서 이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는 현장의 ‘고언(苦言)’을 듣고 싶다면... 다음회를 기다려주기 바란다.



첨언 : 연 이틀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느라 체력이 바닥이다. 한 번에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사를 쪼개야겠다. 이거 넘기고 좀 자야겠다. 수고!




8.jpg




펜더


편집 : 홀짝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