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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5. 28. 수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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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백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1>

반 백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2, 上>






이 글을 쓰기 전 거니제의 위독상황도 터지고, 더불어 삼성그룹사에 관한 여러 기사들도 주르르 나오는 바람에 조금 김이 빠졌네. 그래도 그 기사들과 난 바라보는 방향이나 감정이 다르니, 내 멋대로 글은 계속 되는 거지.


한국비료사건은 그 시작이 일반 필리핀 경제용어 '찹찹'에서 비롯된 거야.(찹찹은 하프앤하프의 필리핀식 표현이야. 사이좋게 나눠먹자는 소리로 쓰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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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공화국까지의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게 분명한 유수의 기업들이 그 나름의 능력으로 기업을 키워 국가를 위해 절반을 헌납하는. 그게 합법적이든 아니든 말이야.



한국비료사건


<한국비료>의 국유화과정에서 삼성재벌과 정부가 충돌한 사건. 66년 9월 22일 「한국비료를 국가에 바치기로 결심」했다는 이병철 삼성재벌 총수의 성명에서 발단되어 1년 2개월을 끌다 마침내 삼성 측이 주식 51%를 정부에 헌납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당초 이병철은 정부에 헌납의사를 밝히고 각서까지 썼으나 도중에 각서내용을 부인하는 한편, 사카린 원료 밀수사건(삼성재벌이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밀수, 시가 약 1,800만원에 상당하는 1,403포대를 시중에 유포시킨 사건. 이 사건으로 9월 22일 국회에서는 김두한 의원의 오물투척사건과 내각총사퇴가 일어났다)이나 헌납사건은 정부와 일부 과격한 언론의 조작극이며 문제의 각서도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힘으로써 정부에 정면도전했다.


이씨의 발언에 대해 「정부를 우롱하는 처사」라며 격노한 박정희가 교섭을 맡았던 장기영 경제기획원 장관을 해임함으로써 정계에는 일대파문이 일었다. 결국 이병철은 개각 1주일 만인 67년 10월 11일 주식 51%를 헌납, 백기를 들었으나, 한국비료의 국유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시종일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 측이 장기간 이를 지연시킬 수 있었던 이유, 밀수사건에 대한 검찰 측의 불철저한 수사, 절호의 정치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총선기간 중 내내 침묵을 지킨 이유 등 여러 가지 의혹이 밝혀지지 않은 채 이 사건은 묻혀버렸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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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일으킨 그룹의 모든 장교가 바른 세상을 꿈구진 않았어. 당연히 사병 동원해 땔감이나 거둬 팔아먹고 군용 트럭 렌트해 주고 돈 벌어먹은 군대 장교 녀석들이 갑자기 한 푼 생기지 않을 명예란 것에만 목맬 리가 없지.


물론 어떤 양아치 같은 새끼한테라도 완장을 채워주면 그 직위가 주는 권위와 그 나름의 윤리등급이 완장을 통해 그 작자를 변형시키는 '감투효과'라는 게 있어서 '혁명'이라고 주력세력이 되고 보니 잠시 똥을 보고도 덥석 물지 않을 용기와 눈치를 갖게 되긴 했지. 해서 혁명 초기에 밤 지새우며 과로로 코피 터지고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긴 했어.


재미난 건 당시 공무원의 수준이 일제강점기 일본 앞잡이들 수준에서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고, 오히려 미군정 하에서 사무를 배운 군인들의 행정능력이 더 앞서 있던 기묘한 시절이었던 바, 관료 체제를 빠르게 장악하고 타자기를 사용한 문서 정렬과 서식 보급을 통해 업무 진행 절차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던 시대였으니 흥이 넘치도록 나서 코피 터지는 것도 몰랐을 수도 있고.


일단 그런 시대를 살짝 넘겨 기업들이 국부형성을 위한 계획을 제출하고 그 달성을 위해 나름 머리를 굴릴 찰나, 채찍질을 서두르는 혁명 전위세력이 출현한 거야. 순서대로 완장을 차고 일하는 와중에 하위 위관급은 그저 시다바리나 하며 목조르기 조직만을 담당한 거거든.


여튼 설익은 계획, 조달되지 않는 자재와 자금을 뒤로한 채 일단 왜 완성이 안되냐고 채찍질만 하는 성급할 수 밖에 없을 혁명 전위부대들. 소란스러웠겠지.


미국에서 넘어오는 차관을 빼면 돈도 없던 시절이고. 아직 대일 수교협상에 진전도 없던 시절이니 돈의 흐름도 막혀 있고, 케네디에게 가서 세례받고 자금이 풀렸다 한들 그 현금을 덜컥 막 써대긴 힘드니 어수선하게 기업화되는 상태에서 당연히도 자금이 섞이고 할 일은 뒤섞이고. 그래서 이놈저놈 해먹기 쉬운 빈틈이 늘어나고.


이게 기업쪽에서 의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단 아니었다는 전제하에 그런 빈틈들에 슬슬 파리로 변신해 버리는 완장맨들이 생기는 거야.


한국비료사건의 전모는 아무도 명확하게 언급을 하지 않았다는 게 정확할 거야. 각자 자신이 바라본 만큼 자신이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썰을 풀어놓았고. 


그걸 정리하자면 박정희의 통치자금을 빼주기 위한 비공식적 밀수작업을 지행했고, 그 위장막을 가린 게 한국비료의 원재료 수입채널이었다는 점. 돈되는 가전제품 소비재 등을 몽땅 거래했으나 그나마 줄이고 줄여 사카린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 했다는 점. 박정희 돈인지 모르고 한 숟가락 얹으려던 나름 혁명의 실세 약간 밑의 아류가 터뜨린 일이 생각보다 무진장 커졌다는 이야기 등으로 정리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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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비료사업은 삼성이 나라를 위한다는 대의명분 + 그 시절 이후 20년간의 먹거리였다는 점에서 애타는 마음이 되어 버린 거지.


이미 5.16이전부터 수교하기 전 일본을 뻔질나게 드나든 이병철 씨는 당연히 '친일'이라는 필터를 들이대긴 유치한 상황이고, 일단은 아시아 최초로 선진국 진입을 했던 경험이 있는 일본 기업인과의 교류를 통해 직접적인 실력 행사를 하지 못하고 우호적인 친구를 통해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일본 경제인들의 욕구를 살살 긁어주러 다닌 거라고 파악이 되는 거야.


물론 루머로써, 당시 세컨드가 일본 경제계 유수의 서녀였다는 말이 있고, 차남, 삼남, 막내딸은 일본계라는 허무맹랑한 루머들이 당시 행보로 꽤 오랫동안 흘러다니게 된다고.


그런 류의 루머로썬 충남 이남의 기생머리는 이병철이, 그 이북의 기생머리는 방씨가, 5.16 이후엔 둘 다 설거지, 뭐 이런 음담야화도 있어.


여튼, 그런 한을 남기고 총대 메고 둘째 아들이 감옥에 가게 되지. 이 사카린 밀수사건을 촉발한 이후 가장 크게 화제가 된 건 김두한 씨인데, 지금 그 똥 뿌린 아저씨 딸은 똥 뿌린 원인을 제공한 여인 밑에서 아버지처럼

빨갱이 척결을 하고 있지. 김두한씨는 불학무식했으니 이해가 가는데, 머리 좋은 후손 얻겠다고 이화여대 출신 부인을 얻어 낳은 딸은 그 모양이니, 참 계산대로 뽑아지는 게 2세는 아닌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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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야. 지금 필리핀에 넘어와 사업을 하는 이들의 가슴에도 그런 로망이 있거든. 우리나라의 195~70년대까지 사업 활성화 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울분을 그 시대와 비견할 부패사회를 가진 나라에서 해소하며 기회를 거머쥐고 싶은 그런 로망.


그런데 뭐 알다시피 나라가 한국보다 못산다고 해서 여기 재벌이 한국 재벌보다 가난하진 않어. 더 부자면 부자지. 애들 헬기 태워 학교보내는 애들. 와이프 생일이라고 전기 내려버리고 불꽃놀이를 하는 배포. 그런 게 한국에선 가능하지 않은 거잖어.


당연히 부패한 나라에서 사업을 할 땐 비용이 많이 들어. 원가에 인건비와 정상적 합법과정을 거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매우 저렴하게 절약되지만 권력이 분산되어 있을수록, 부패할수록 입 벌리는 쓰레기 봉투들이 잔뜩이거든.


그래서 되도록 더 센 권력으로 숫자 많고 하잘 것 없는 자잘한 권력을 잠재우려고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위로 위로 가고. 흔들리지 않는 독재자 시대가 오히려 행복하고. 5년마다 바뀌는 지금 시대는 넘 불쾌하고.


시민단체 등의 시비를 불러오는 다양한 조직들이 넘쳐나는 불확실성이 증가한 밀레니엄에는 되도록 정권이라도 바뀌지 않길 바라는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그래서 여기저기 다 돈을 뿌려 잠재된 위험에 대비하는 거고.


해외 증권회사가 한국의 재벌을 신뢰하고 주식 가격을 높게 쳐주는 이유가 뭘까? 재벌은 기본적으로 자신들의 위험을 '통제가능'하다는 신뢰성을 가지고 있어야 '재벌'이야. 기업만 잔뜩 데리고 그룹이라 불린다고 재벌이라 불러주진 않는다는 말이지. 그래서 세월호 가진 교주나부랭이가 재벌이 아닌 이유고.


재벌은 '통제가능'한 위기를 '해소가능'한 실력을 보유하며 살아온 거야. 무려 60년 넘게.


삼성은 경제적인 성공을 '애국'으로 보았던 이병철의 시대에 통제가능한 범위가 작았던 이유로 몇 번의 치명적인 위험을 겪었고 '해결가능'한 총수의 능력으로 위기를 넘겨온 그룹이야. 그래서 1, 2등을 다투는 재벌이 되어서 욕을 많이 먹고 살아왔지만 적어도 추측가능하지 않던 와일드한 한국의 1, 2, 3, 5공화국을 견디며 성공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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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시대에 스러져간 재벌이 되려다 실패한 기업들. 명성, 율산, 국제까지. 김대중 정부때 망가진 대우는 재벌이었다 망가진 케이스니 좀 더 특별하고. 여튼 그런 기업들이 삼성처럼 살아남고 싶지 않아서 부서진 건 아닌 거니깐. 권력의 아주 성급하고 표변하는 욕망과 분노에 망가진 거지. 물론 그들 스스로 위태위태 올인작전으로 커온 탓도 크겠지만.


이병철 씨는 삼성이 된 이후 올인한 적이 없어. 나름의 올인은 했을지라도 동시대 현대의 정주영 씨처럼 빚을 내서 사채를 굴리며 올인하진 않았으니 상당히 스스로의 역량한계를 명확히하고 안전하게 달려온 셈이지.


다만, 죽기 직전의 삼남 이건희가 제안한 반도체에서의 올인 하나로 남은 수명 상당수를 날리며 고뇌하고 고민한 끝에 거의 올인을 한 번 하게 되지. 그건 알다시피 성공이었고, 수명을 깎아 고민한 보람은 있는 거고.


이병철 씨가 비난받는 주요한 이유들은 정경유착의 시작과 번성기를 이끌었고 '무노조'에 대한 강한 집착의 시작, 그리고 후대로의 상속작업이 법의 틈새를 사용하여 나머지 재벌들의 모범(?)이 되었다는 점 등이야. 그리고 조금 지나친 왜색.


그 시대를 이해하며 넘길 수 있는 부분은 정경유착과 탈세. 당시 세법으로 기업을 하며 살아남을 기업은 없었다는 게 중론이기도 하고, 지금조차 세금 제대로 내며 살아남기 쉽지 않아서 세무사 끼고 이리저리 회피하는 건 기본이 된 시대니깐. 게다가 지금과는 다르게 간접세와 각종 삥뜯기 제도가 많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범죄는 대중적인 것이라는 점. 그리고 애초 우리나라의 국체가 만들어진 것이 그다지 합리적이거나 정당하지도 않았던 시대였으니 말이야. 그나마 고용이나 많이 하고 재분배될 구조를 갖는게  최선인 시대였다고 비겁하게 인정하고 넘길 수 있지.


누구나 돈을 미친듯이 많이 버는 것이 할 수 있다면 하고픈 일이지. 그리고 자신의 후대를 위해 온전히 모아서 넘기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다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어떤 목표를 이루고 멈추면 좋은데 이병철 씨처럼 한국 최고의, 멈추지 않는 특이하리만큼의 거대한 야망을 가진 사람에겐 어떤 측정을 해야하는 건지 알 수 없어. 그 아들도 또한 세계 일류를 꿈꾸며 평생을 던졌으니. 그게 과연 잘 먹고 살기 위한 걸까 생각하면 아닌 듯 하고. 그렇다고 호랑방탕 부인을 넷쯤 두고 처첩을 수십 거느리고 살아온 호색한도 아닌 듯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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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를 좋아했던 기질이야 젊은 시절 유학경험과 앞선 것에 대한 열망으로 이해하면 이해되기도 하는 부분이지. 나도 일본 라멘이랑 우동을 좋아하거든. 여건이 되면 비행기로 불러다 먹고도 싶어. 형편이 되지 않을 뿐.


삼성만이 저지른 특이한 상황이란 건 없어. 오히려 한국비료사건 이후 적절히 다른 재벌에 비해 권력에서 살짝 한발 물러섰지. 1982년상황까지 국내기준 삼성전자는 2등기업이었고, 신라호텔도 2등, 미풍도 2등, 제일모직은 1등, 자연농원도 1등인데 그건 당시엔 비교대상도 없었지. 제일제당은 1등. 전체 규모에선 현대한테 살짝 밀리기 시작하던 상황. 막강의 1등이거나 한 부분이 없어. 정경유착에서도 대우에겐 밀리던 시절이니깐.


권력이 너무 가까이 가면 베는 양날의 검인 것을 한비를 통해 대차게 배워서 이후 한바짝 건너 서 있게 되는 것이 오히려 오늘날의 1등 삼성이 된 이유였는지 몰라. 가까이 다가선 대우는 망가졌고 그 자체가 되고 싶었던 현대는 잘 나가다 김영삼정부 5년간 대차게 물먹고 2등 후퇴를 강제로 당했으니깐. 한국비료사건은 일종의 백신 같은 것이었지 싶군.


입장을 바꿔 내가 춘추전국시대같던 1950년도의 한국 경제계에 일원이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상상해 본 적이 많아. 아마 더 나쁘고 더 독했으면 독했지, 그보다 명예롭거나 정의롭고 싶지는 않았을 것 같아.


명예가 소중했던 시대는 구한말로 끝났고. 대의와 애국심도 해방 이후 끝났고. 민주주의도 5.16에 끝난 시대. 오직 돈만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던 시대. 기회가 많던 시대. 그래서 누구나 악독하게 돈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던 시대. 항구마다 밀수가 판치고, 유통망을 건달을 데리고 뚫었으며, 경쟁 회사의 직원을 매수하고 협박하며 판촉 정보를 빼내던 시대.


그런 시대를 건넌 이에게 오늘날의 잣대를 들이대며 '넌 썩었어'라고 말하기엔, 우리나라가 걸어온 길이 간단치 않아. 다만 그런 1세대는 이미 죽었고, 2세대도 이미 노후했으면, 이제 3세대 당신들의 손자나 아들이 이어받는 시대엔 이쯤 밥 몰아먹고 그랬으면 명예와 정의가 어느 정도쯤 허락되는 시대. 그래도 노력하면 그들만큼은 아니라도 노력한 만큼의 평안이 얻어지는 시대쯤은 만들었어야 하는 게 아닌지 하는 투정이 남는 거지.


1세대. 이병철 씨에겐. 그래. 2번의 공감의 글을 쓰는 나로선.


최선의 자원과 인맥과 기회를 이용해서 가장 크게 키운 것은 이 인물의 능력인 거니깐 감탄을 아니할 수 없어. 게다가 이 사람의 자리에 앉고 싶던 수백 명의 기업인이 존재했던 시대인 거니깐. 거기에서 정점을 찍고 사그라진 인물에 대해선 감탄을 할 수 밖엔. 다른 말을, 더 이상의 부정의 말은 쓸 수가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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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1982년까지의 삼성이 다른 재벌들과 다른 점은 경영의 대부분을 분업화한 막강한 비서진과 사장단이 있다는 거야. 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비슷한 시대에 쓰레기 같은 쥐새끼를 키워서 나중에 대박 된서리를 맞는 현대그룹에 비해 경영의 분담을 어느 정도 이뤘고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자질 면에서도 현대그룹보단 우위거든. 현대는 형제가 많은 친족에서의 인재조달이 좋았고, 삼성은 공채로 키워진 인재군의 탄탄함과 조직력의 특성이 강하거든.


막걸리의 현대, 칵테일의 삼성이라고 하던 1990년대까지의 분위기를 봐도 인재의 세련됨, 요소에 배치된 인적 조직력의 강함은 추진력의 현대와 더불어 양대산맥.


관상쟁이를 대동했든 아니었든 인재보국이라는 기치하에 사람키우길 좋아했던 창업주 이병철 씨의 노력은 이후 경영권 승계를 맡는 삼남 이건희의 치세에 상당한 힘과 저력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


사업을 하다 보면 몇몇 미신을 믿게 되기도 하고 징크스에 민감해지기도 하는데 그런 점에서 사람을 쓸 때 배신을 했던 전임자의 인상과 비슷하거나 하는 선례에 따른 필터링을 하지 않을 사람은 없거든.


생각보다 삼성 내부의 인적 특성은 스카이에 의존하는 명문대 취향도 아니고, 지방 국공립 출신이 꽤 많은 편이며 집안 내력을 꽤 살피는 편이기도 해서 고위등급의 임원진에 올라가면 들어봤을 법한 집안 출신들이 많은 편이야. 이는 인재를 방패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살폈다고 볼 수 있는 점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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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출신과 연관된 인재가 현재까지의 대한민국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핀다면 생각보다 삼성의 보이지 않는 범위는 거대하다는 점을 알 수 있어. ERP의 전 세계 1등기업인 SAP한국 지사의 경우,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삼성출신 인재들이 지사설립을 주도했다는 점. 이런 식으로 한국 최초로 적용한 선진 기법과 소프트웨어 계통으로 선행 경험을 하고 이탈해서 창업한 범 삼성계 인재들이 우리나라 산업계 전반의 몇%인지 예측 불능이긴한데 아마 절반쯤?


이병철 씨가 살아생전 언급한 인재보국의 긍정적인 부분은 이런 식으로 발현이 되어 오늘날 한국 부의 절반은 모르겠지만 인적 영향력은 충분히 절반에 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


한 사람의 일생으로 이만큼을 이룬 한 세대의 인생 안에서 이만큼을 만들어내고 체계를 잡은 인물은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아.


어느 무협지의 절대고수도 아무런 가르침 없이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없어. 꿈 같은 이야기인 거지. 그런 불가능을 이룬 사람으로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1982년도의 삼성과 이병철 씨야.


아, 이제 마무리를 하고.


다음 글은 그럼에도 시대와 나라에 남긴 큰 흉터 같은 오점들. 그리고 회복할 수 없는 어떤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은 불가능할 것 같던 비판의 글을 쓰는 하루를 만나겠지. 뭔가 빼먹은 이야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라도 나중에 머리가 돌아가면 추가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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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엔 비판이다



즐거운 봄날의 마무리를. 굿럭.






메이비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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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