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5. 28. 수요일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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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에 등재된 논문 몇 편을 받아들고 책을 찍어낸 지 반년이 지났다. 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해당 분야의 '홍보활동'은 몇 번의 언론노출과 방송출연 이후 잠잠해졌다. 이미 계약이 완료된 상태였기에 나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딱히 아쉬운 마음은 없었지만 내 글이 오용(?)되는 게 아닐까란 불안함은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 불안함은 또 다른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1. 납품되는 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 이런 '의뢰'들이 줄지어 들어왔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SCI 논문을 가지고 회고록을 쓰고 반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 '단장'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물론 '의뢰'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게,
"그래도 차관급 인사신데..."
라며 말꼬리를 흐리던 팀장의 말이다. 스키니바지에 캐쥬얼 슈트, 티셔츠에, 워커, 머리띠를 하고 찾아갔으니 그럴 만 했을 것이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복장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다. 상대방이 차관급이든, 장관급이든 그건 중요치 않았다.
(17대 총선 직후 故 김근태 의원을 국회에서 인터뷰 할 일이 있었는데, 당시 편집장이 제발 면바지라도 입고 가자고 사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드레스코드란 단어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했던 게 나였다. 어린 시절의 치기 였던건지, 아예 이쪽으로는 생각이 없는 건지... 돌이켜보면 부끄럽다.)
당시 상황을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자세한 설명은 기회가 닿으면 하겠다.)
우선 알고 있어야 하는 게 '발주'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관급계약이나 기타 기업체 '발주'가 이쪽 분야에 꽤 많다. 쉽게 설명하자면, 관에서 자신들을 홍보하거나 자신들 부서 안에서 만드는 '사보' 같은 걸 만드는 것이다. 의외로 이런 '글'들을 많이 만들어 낸다. 관뿐만이 아니라 민간 쪽에서도 은근히 많은 '글'들을 소비한다.
일반 작가들은 '외고'라고 하면, 월간지나 주간지의 칼럼, 혹은 사보 등을 생각하는 게 고작이지만, 이런 '매체'가 아닌 곳에서의 발주가 훨씬 더 많다. 아울러 이런 매체가 아닌, OEM방식의 글을 주로 납품하는 회사도 꽤 많다.
블루오션이라고 해야 할까? 2013년 봄 이 OEM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편집장 제의가 들어왔으나 사정상 거절을 했었다.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다. 의외로 시장규모가 크고, 치열하다. 신자유주의의 여파일까? 인터넷의 반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글은 어느 순간 '외주화'가 됐고, 인력파견회사라고 해야 할까? ‘주문’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글을, 아니 '잡지'를 생산해 낸다. 그런 글이 어떻게 생산되고, 소모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겠는데, 일반 독자라면, 카드사에서 날라 오는 각종 소식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자기네 카드의 포인트로 어떤 걸 사용할 수 있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를 빽빽한 문자로 알려주던 시절이 지나 하나의 '브로슈어'를 만들어 발송하게 됐다. 그 브로슈어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카드社 직원이겠는가? 이걸 1~2년 단위로 외주를 맡긴다. 아파트 분양사가 모델 하우스에 비치할 '홍보용 글', 각종 기업체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들어갈 '기획기사' 들도 전부 '글'이 기반이 된다.
이런 업체들의 규모를 80~90년대 만들어졌던 사보외주사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는데, 어지간한 수준의 '회사'라고 할 때, 단순 크기 비교로 편집부 구성만 보자면, 딴지일보 상근기자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체제도 일반 주간지 편집부 수준을 그대로 따른다. 다만, 그 '수준'에 있어서는 약간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외형적인 규모나 체제 면에서는 주간지 데스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들이 관급계약을 할 경우에는 '입찰'도 하고, 낙찰을 받아 데스크를 꾸린다. 일반 대중에게 팔리지 않는다 뿐이지 또 하나의 '잡지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곳으로 수많은 '납품글' 청탁이 들어온다. 그 중에서 자신들이 소화할 수 있는 것들은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영양가가 없다면 프리랜서 작가들을 섭외해 또다시 '하청'을 주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편집장 오퍼를 넣을 정도로 검증이(?) 됐기에 외주를 넘겨받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형인 경우는 더 이상 이렇게 낭비되고 싶지 않기에 외주를 거절하고 있다.)
당시 내게 들어온 일은... 자세하게 말할 순 없지만,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산업자원부의 특단의 대책과 연관이 있었다. 그에 발맞춰 어떤 '관보' 비슷한 걸 만들게 됐고(정확한 사연은 잘 모르겠다. 이런 일 있을 때마다 난 내게 할당된 원고만 하고 빠졌기에), 그 인터뷰 기사를 맡게 됐다.
(인터뷰 기사의 경우에는 인터뷰를 해봤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 즉 언론 관계 쪽 경력자들을 찾는다. 재미난 사실은 '현직기자'가 아르바이트로 이런 일에 투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사실이다. 데스크에다가는 어디 취재를 간다고 말을 하고, 알바를 뛰는 것이다. 뒷돈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더 '건전한' 부업이지만 과히 좋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현직 언론사기자와 파트너로 인터뷰를 했었다. 그 기자와는 종종 일을 했는데, 아무래도 현직이다 보니 일정 잡기가 애매해 그 기자의 일을 넘겨받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철저한 성과급제라 일을 넘겨받은 만큼 페이는 늘어났다. 그렇기에 별 불만은 없었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애교이고,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에서 글줄 깨나 쓴다하는 사람들 중 이런 알바를 뛰는 사람도 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지만, 각 기업체나 단체에서 '보도자료'를 뿌리고, 언론담당 창구를 맡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 중 연차가 있는 이들의 '글빨'은 어지간한 말진들보다 낫다. 이런 경우도 있었는데, 명함이 2개 있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글쟁이가 있었다. 이런 일을 할 때 쓰는 '명함'이 따로 있고 자신의 '현직'에 대해서는 극히 말을 아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무원'이었다. 결국 그 분은 이 '사업'이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던지 그곳을 나와 사업체를 차렸다. 아니, 나와 같이 일하던 시절에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시장파악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 분야를 경험한 이들은 글을 쓸 줄 알고, 영업과 기획력만 있다면, 적은 돈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블루오션이라 생각들 하는데 경험자로서는 그리 녹록한 시장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그 '영업력'의 상당부분은 인맥으로 커버할 만한 사안이 아니고, 이곳은 기본적으로 '사람장사'이기에 자기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도 꽤 어렵다. 글을 잘 쓰면 다른 쪽으로 튀어나가고, 글을 못 쓰면 써먹기가 힘들다. 그 적당한 수준을 맞추기가 힘들다. 그리고 적당한 수준을 찾아도, 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1~2년 트레이닝을 하다가 성장해서 다른 쪽을 기웃거리기 때문에 사람 찾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당시 3~4군데의 인터뷰를 땄는데, R&D단장과의 인터뷰가 마지막이었다. 그 인터뷰에서 난 우리나라 SCI논문에 대한 문제점을 확인하게 됐다.
2. 기초과학 연구가 옳은 걸까?
R&D단장과의 인터뷰에서 놀랐던 건 두 가지였다.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점과 우리나라 기초연구의 문제점에 관한 것이다.
그 정도 연배의 성공한 '인생'이라면, 나름의 실적과 경력이 있고, 그에 걸맞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게 당연한 것이겠지만, 복지부동으로 대표되는 공무원 조직에서 자신의 신념을 그렇게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다(공무원들 인터뷰를 해 봤다면 알 것이다). 그 사람이 내추럴 본 공무원이 아니라, 학계와 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란 이력을 확인하면 그 '신념'의 근원에 대한 의문이 사라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인터뷰 중간에 난 인터뷰이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내가 겪었던 '사건'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단장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초과학 투자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당시 꽤 놀랐는데, 우리나라 기초과학 투자가 상당수준이란 점이었다. 우리는 기초과학 투자에 소극적이란 편견이 있는데, 기초과학 투자가 적다는 지적 이후에 투자가 몰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이에 '거품'이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하자면...
지난 10여 년 간 산학 협력을 하던 교수들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다. 기초 기술이 약한 우리나라가 기초 기술에 투자하자는 여론이 일어났고, 이런 여론에 힘입어 기초기술 분야에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기초 R&D 예산은 계속 증가했고, 2011년엔 결국 상용화 R&D 투자를 추월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기초연구 투자가 부족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투자총액에서는 상용화 기술연구를 앞섰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초연구 투자가 자연스럽게 산업계에 스며들어 상용화로 연결되면 좋겠지만, 시장 근처에도 못 가보고 사장되는 기술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중략
"GDP 대비 R&D 투자는 4.03%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이며 논문·특허 수를 나타내는 지식창출 부문은 3위입니다. 하지만, 기술 사업화·표준화를 보여주는 지식 효과 부문과 기술 서비스화를 나타내는 지식 확산 분야는 각각 43위와 20위입니다. 한 마디로 투입은 많았지만, 성과는 초라하다는 얘기입니다."
하략
당시엔 기초과학 투자란 게 단시간 내에 그 효과를 보는 분야가 아니란 생각과 함께 어떤 연구나 투자라도 일정수준의 '매몰비용'이 발생한다는 걸 생각한다면,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지만, 현장에서 수십년 간 싸워온 전문가의 '신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실제로 그 '신념'의 형성과정을 듣다보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이 연구자원이 풍부하다면, 기초과학이나 응용과학 모두에 대단위 투자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한정된 자원 속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돈이 될 만한 곳에 우선투자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그 투자도 분명 중요하다는 것도 알지만, 우선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히든 챔피언이란 방송 덕분에 당시에 히든 챔피언(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Hermann Simon)이 펴낸 <히든 챔피언 Hidden Champion>이라는 책에서 비롯된 말이다.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각 분야의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우량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 편집자 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독일이 참...) 문제는 상업적으론 물론, 학문적으로도 전혀 쓸모없는(당장의 관점으론) 연구들도 SCI에 등재됐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성과로 혹은 특허로 인정을 받지만, 당장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SCI논문...
그 논문에 담겨진 피와 땀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목격한 SCI 논문은 아직은 설익은 논리였다. 기초과학, 응용과학의 논리도, 투자대비 효과를 말하는 효율성의 논리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설익은 논리'도(아직 더 많은 연구투자가 이뤄져야 할 논리) 상업적인 성과를 생각해 완성된 논리로 포장되어(그 포장지로 SCI란 말이 활용되는 걸 눈앞에서 목격했고, 직접 그 과정에 참여도 했으니...), 대중을 유혹했다는 것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란 논리일 수도 있다.
후속연구를 위해서는 돈을 끌어와야 하기에 상업적으로 포장하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논리의 대표주자가 황우석이 아니던가? (당시 언론관계자들 중에서 황우석의 '고기'를 얻어먹지 못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황우석은 실제로 기자들에게 '고기'를 끊어 줬다. 자기가 키운 좋은 고기들을 말이다.)
3. 절필 1
R&D 단장과의 인터뷰 이후 난 미련 없이 '자서전 대필'을 포기하게 됐다. 절필이었다. (자서전에 대해서만은)아무리 돈이 궁해도, 내 양심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없었다. 내가 쓴 글이 오용될 수도 있고, 남용될 수도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걸 눈 앞에서 확인했기 때문이다.
두려웠다.
분명한 사실은 내게 자신의 논문을 건넸던 '연구 책임자' 분의 연구는 충분히 가치 있는 연구논문이었고, 그 논문이 나오기까지 그 분들이 상당한 노력을 했다는 건 지금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인과의 고리'만 제대로 찾는다면, 우리 일상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만한 대발견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마음 같아선 그 분의 연구투자에 대해 지원과 응원을 하고 싶다. 그러나 당장 현실적으로 그걸 과학의 범주 안에 넣고, 현상을 해석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확신을 할 수 없다. 당장의 현상에 대한 하나의 '해석'의 한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그런 관점에서는 좋은 시도이고, 노력이다), 이를 상업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한 해석이고, 확장이다.
어쩌면 회의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대필했던 인물들, 그리고 날 협박(?) 했던 인물들을 보면서(대필했다는 걸 말하지 말라는) 어떨 때는 안쓰럽기도 했다. 재미난 사실은 정작 난 그런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는데, 상대방 쪽이 과민반응해서 오히려 '그런 방향'을 고민하게 됐으니 말이다.
(내 글 중 내 이름이 아닌 이름으로 찍혀져 나간 책들 중 '빵' 터진 것들도 있다. 신기하게도 억울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냥 '신기하다'란 느낌이 들 뿐이다. 직접 쓴 책도 아니고, 해당분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강연도 하고, 말도 잘한다. 저자란 게 별거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고, 고스트라이팅이란 게 정식으로 인정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란 생각... 아, 그리고 '악동기질' 때문인지, 만약 이 사실이 공개됐을 경우 이 저자를 모셔다가 강연이나 수익사업을 했던 업체와 팬 사인회를 할 때 그 책을 샀던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냥 망상이다. 괜히 적을 만들 필요도 없고, 귀찮은 일에 얽히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글이 아닌데, 내 글인 척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란 안타까움이 남을 뿐. 이 만큼 살다보니 어지간한 일에 있어서는 무뎌진 거 같다)
이제 남의 글을 써주는 게 지친다. 아니, 두렵다.
나이 마흔이 다 돼서야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내가 아직 '덜' 됐나 보다.
첨언 : 프롤로그를 심각하게 써서 그런지 걱정하는 메일이 많이 왔다. 현재 내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 두 달 간 이 기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글을 쓰지 않고 멍 때리다가 요즘은 '몸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닭장도 짓고, 토끼우리도 짓고, 오이도 심고, 삽질도 한다. 이 나이 먹고 삽질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있다. 물론, 생계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그 보다는 내가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다. (그럼에도 뱃살은 줄지 않았다.) '노동의 신성함'을 뼛속 깊이 아로새기며 조금씩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도 쫓기는 마음을 완전히 지워내지는 못했고, 문득문득 불안하고 힘든 생각이 튀어나오지만, 그럴 때마다 삽질을 한다. 새참 때 받는 담배 한 갑의 소중함과 일 끝나고 먼지 가득한 목구멍을 씻어 내리는 소주 한 잔의 청량감... 근 10여년 만에 느껴본 땀의 맛이다. 당분간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펜더
편집 : 퍼그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