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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05. 목요일

춘심애비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시기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영향 안에서 이뤄진 선거였고,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 첫 큼직한 선거였으며, 또한 김한길, 안철수 퓨전이 일어난 이후의 첫 선거이기도 했다.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선거였던 만큼, 그 해석과 평가도 다양하고 활발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건, 이렇게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결과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선거일 수록, 야권에서는 암묵적인 터부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어느 선거나 승리는 중요한 가치이고, 그래서 분열은 금기시된다. 그 점에서 한 진영의 내부적인 비판은 선거 때에 유독 터부시 된다. 그 터부 문화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선거란 건 엄연히 현실이니까. 굳이 선거 전에 해야만 하는 말이 아닌 건 참을 수 있지. 난 어른이니까.


암튼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속시원히 내뱉지 못하고 못했던 말이나 수위를 조절했던 말들을 속시원하게 좀 풀어볼란다.




1. 새정치민주연합, 이게 당이냐




이번 선거에서, 도대체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당'은 뭘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대표 2명 궁뎅이에 GPS 송출기라도 달아서 추적하고 싶을 정도. 물론 각각의 후보들과 그 후보 캠프에서 일하는 당원들은 열심히 했겠으나, ‘당 차원'에서의 존재감은 공천 이슈로 시끄러웠던 이후 0에 수렴했다.


주요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각각 개인이 구축한 브랜드로 선거운동을 했지, 당의 정체성은 드러나지도 않았다. 기초단체장 후보들은 간혹 안철수 대표와 함께 찍은 사진(혹은 함께 찍은 것 처럼 합성한 사진)을 홍보물로 활용할 뿐이었고, 그마저도 약빨은 다 떨어져보였다. ‘당 차원'에서의 존재감이 느껴진 지역은 오로지 광주시 뿐이었다.


물론,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 이미지를 고려할 때 당차원에서 각 지역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면, 존나게 역효과가 났을 수도 있겠다. 그냥 냅둬주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현실적인 판단이었을지도.


혹시 저 말이 수긍이 되신다면 바로 이 지점이 무엇보다도 병맛인 지점이다. 다수 야당이, 당의 정체성을 선거에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전략적으로마저 보이는 이 상황. 주요 후보들이 개인이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개인 브랜드만 내세우는 것 보다, 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게 오히려 선거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이 상황.


시발 이게 당이냐. 왜 있는거야 이 당은.




2. 넘어도 되는 선과 넘지 말아야 되는 선의 경계, 김부겸



일단, 대구라는 지역에서 야당 소속 시장 후보로 힘든 싸움을 펼친 김부겸 후보에게는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 경의와는 별개로, 선거운동 당시 위 사진을 현수막에 걸어버린 행동과, 박정희 컨벤션 센터를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2가지는, 좀 생각해봐야 될 문제다.


문제를 단순화하면 이렇다. 저 2가지 행동은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은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선거는 현실이라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란 건 분명히 어딘가에는 존재할 거다. 예컨데 어떤 야당 당원이 다음 총선 때 대구 달성을 가져오겠다고 출마를 하는데,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출마했다고 쳐보자. 이건 누가 봐도 선을 넘은 거다. 선거를 이기는 게 아무리 중요하기로서니, 당적을 바꾸는 건 넘지 말아야 할 선의 너머에 있다.


분명 어딘가에는 존재할 그 ‘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당적을 바꾸는 게 그 선인가. 아니면 내 한 몸 야당에 속해있지만 내 마음만은 여당의 종이라고 선언하는 게 그 선인가. 아니면 김부겸이 그은 게 그 선인가.


필자의 주장은, 야당 후보가 ‘야당성', 그러니까 여당을 견제하는 것이 그 존재의 이유라는 근본적인 존재성에 모순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그 선이다. 야당 소속의 당원으로서 응당 가져야 할 기본적인 태도와 모순이 되는 행동은, 하지말아야 한다고 보는 거다.


김부겸의 저 2가지 행동은, 필자가 보기에 선을 넘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홍보에 활용하고, 박정희를 기념하는 건물을 짓겠다는 공약은, 그 이면에 ‘나는 야당이긴 하지만 대구시민 다수의 박 씨 부녀 사랑을 공감한다'는 의미를 담은 제스쳐다. 이건 말하자면, 박 씨 부녀를 스스로의 아버지, 자신의 딸로 인식하는 대구 특유의 정서를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저 2가지 상징적 행동으로 내보인거다. 그런거까진 아니라고? 그럼 저걸 왜했어.


그 척박한 대구에서도 김부겸 후보를 지지하는 42만 명 중 일부는, 박 씨 부녀에 대한 대구의 무조건적 애정에 반대하는 의미로 표를 던졌을 거다. 후보 자신이 박 씨 부녀를 긍정해버리면 이 사람들은 뭔가.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깡그리 무시하고 박 씨라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안아줄 준비가 돼있는 대구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야당에게 표를 던지는 대구시민들은 뭐가 되나.


이렇게 해서라도, 역대 대구지역 야당 득표율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게 성과라고 볼 수 있겠다만, 반대로 말하면 다음번에 야당에서 대구 시장을 배출하려면 이정도 간쓸개는 다 빼놓고 선거운동 해야한다는 결론을 지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김부겸의 이런 선거운동을 ‘대구에서 이기려면 이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상황이, 한국 유권자의 정서상, 노동당에서 국회의원 만들려면 대기업 친화적인 공약 막 걸어야되고, 녹색당에서 국회의원 내려면 환경보다 이윤을 먼저 생각한다는 슬로건 걸어야 된다고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른지 나는 존나게 모르겠다.




3. 조희연 교육감 지지자들, 구시대적 선거운동의 향연



다 지났으니 까놓고 말하면, 개인적으로 조희연 교육감을 지지하긴 했지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조 교육감의 지지자들이 SNS상에서 벌인 운동방식에는 실망하는 수준을 넘어서 좀 무섭기까지 했다.


기본적인 문제는 조희연 교육감이 그래서 구체적으로 교육에 대한 어떤 경험이 있고, 공약이 얼마나 구체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찾는 게 존나게 힘들었다는 거다. 구글링에, 공식 홈페이지 공약집 확인에, 역대 출간된 서적 확인에, 나름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도 명확하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고, 시간을 더 쏟아붇고 과거 학자당시 그의 서적을 읽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접하고 나서야 좀 윤곽이 잡혔다. 물론 이건 박원순 서울시장이 워낙에 명료하게 공약들을 만들어놔서 상대적으로 부족해보이는 면도 있긴 하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쳐도, 너무 많이 부족했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지만, SNS 상에서의 지지자들의 운동은 절대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선거운동 기간 당시 조희연 교육감 후보에 대한 지지 컨텐츠들은 대충 이런 식이었다.


- 진보 단일화 교육감 후보 조희연. 인지도가 떨어지니 많이들 알려주시라.

-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조희연

- 고승덕은 BBK 변호사

- 문용린은 룸싸롱쟁이

- 서울시 농약급식은 문용린 탓

- 딸도 비난하는 고승덕

- 박원순도 지지하는 조희연


컨텐츠의 절반은 상대후보 네거티브였고, 나머지 절반은 진보 단일화 후보니까 찍으라는 거였다.


이건 시발 좀 존나 아니었다고 본다. 그냥 진보 교육감이고, 박원순도, 조국도, 김제동도 좋아하니까 찍으라는 게 뭐야. 왜 찍어야되는지 교육감으로서의 구체적인 근거가 있어야될 거 아냐. 게다가 지지자들의 고승덕 공격은 이게 지금 정몽준 지지자들이 박원순 까는 걸 보는 건가 싶을 정도로 살벌하기까지 했을 지경.


이러지 말자 시발. 이럴라고 진보하는 거 아니잖아. 후보는 점잖은데 지지자들이 구태정치를 답습하면 어떡하나.




4. 마무리


이상, 떠들고 싶었으나 선거 앞두고 내부 분열 어쩌고 새누리 알바 어쩌고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 참았던 말이었다. 나이브하다고 욕해도 좋고, 현실을 모른다고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나는 맘에 안 드는 건 계속 떠들겠다. 참아왔던 더 큰 얘기는 다른 기사로 써제끼겠다.


끝내기에 앞서 꼭 말하고 싶은 건,


정몽준... 당신에겐 역시 코메디가...









춘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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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