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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09. 월요일

부편집장 죽지않는돌고래








1. 하여, 허정무


범지구적 광란이 관찰되는 날 있다. 4년에 한 번, 공 하나 놓고 완타치 쪼개는 날. 이름하야 월드컵.(여기서 각자 효과음으로 '따봉'을 외친다. 브라질의 기분을 살리는 동시에 여름철 전력 낭비를 위한 셀프 효과음이다.)

 

본 이너뷰 시작하며 <인터파크 북디비>가 내건 카드, '신간 낸 저자는 다 된다.' 마침 축구계에 자전 에세이 쓴 사람 있어 조인. 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허정무-히딩크 재단 이사장, 브라질 축구대표팀 단장, 뭐, 그런 거 일일이 기억은 못하겠고 대한민국 월드컵 원정 사상 첫 16강 달성 뉴레코드의 보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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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그가 이번 이너뷰의 주인공되겠다. 

 

 

2. 까고 시작하자

 

본 이너뷰, 첫 날 바람 맞았다. 바람 맞히기로 유명한 본지가 바람 맞다니. 이유가 고작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역대 전현직 축구 국가 대표팀 사령탑 모임>이랜다. 누가 봐도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소박한 행사인데 고작 이걸로 바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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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 소박해서 빠져도 될 것 같은 행사의 좋은 예>



허정무 부회장(이하 걍 허정무), 졸라 미안해하며 호텔 사우나 쏠 테니 좀만 기다려 달라 하더라. 허나 매일 벌어지는 범국가적 중대사인 민족정론지의 일일 업뎃을 책임져야 하기에 매몰차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퇴근 후엔 밀린 빅뱅이론(미드다)도 봐야 되니까 2시간씩이나 기다리고 뭐 그럴 수 있을 리가 엄따. 하여, "담에 만나야 되는데 그때 맛난 거 얻어먹을 거임!", 하고 문자 날리니 싸나 답게 콜한 허정무.

 

하여, 팔레스 호텔에서 갈비구이 정식 뜯어, 아니, 얻어 먹으며 스타트. 

 

 

3. 나무꾼이 될 뻔했던 국가대표


 

김창규 기자(이하 김) : 이번 자전 에세이, 일부러 월드컵 시즌이라 노리시고?(웃음)

 


<도전하는 이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되겠다.

 


허정무 부회장(이하 허) : 생각도 안 한 건데 , 월드컵도 다가오고 하니까, 떠밀려서 엉겁결에 낸 거예요. 기왕 하려고 하니까 고민되더라고요. 메세지가 전달되어야 하는데 내가 그런 게 있나 고민도 되고. 근데 내 인생 자체가 늦게 시작해서 빠른 시간 안에 따라가려고 애썼던, 뭐, 그랬던 것 같아요.

 


가죽공이 없어 고무공 차던 시절, 허정무는 진도 의동초등학교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7,8개 마을 또래들이 모여 10원 내기 축구경기를 할 때면 다들 초딩 허정무를 찾았다. 다만 초딩 허의 영광은 거기까지.

 

그의 부친, 교장이었으나 아홉 식구(허정무는 7남매 중 넷째다.)학비를 대기엔 역부족. 목포 중학교 졸업 후, 농사일 돕고 지게 지며 땔감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방학이 되면 돌아온 친구들이 읍내 이야기를 하는데 속에서 아주 그냥 꿈틀꿈틀 댔다고. 이렇게 살다 마는 것인가 하고 어린 나이에도 절로 한숨 나왔다 한다.

 


: 축구 시작할 때, 아버지한테 딱 6개월만 서울 유학 보내달라고 했잖아요? 당시 집에 돈이 없어서 학업도 포기한 상태고.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는 게 힘들었을 것 같은데.

 

: 그건 힘든 게 아니었어요. 아버지한텐... 미안한 감정이었죠. 미안함이 크죠.

 


작전 타임. 백그라운드 지식 풀고 가자.

 

허정무의 축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기는 목포 중학교 졸업 후, 땔감 하던 시절에 이뤄졌다. 당시, 진도 출신의 스타 선수 있었으니 축구판 실미도 부대라 불리는 양지팀과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동시에 겸한 스트라이커, 허윤정이다. 진도에선 그의 홍콩 세미프로팀 진출(한국 최초의 해외 진출)기념으로 축구경기가 열리게 되고 허정무는 의신 중학교에서 뛰어달라 콜 받고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스타이자 허정무의 먼 친척 뻘 되는 허윤정 선수, 허정무가 뛰는 걸 보더니 그의 부친에게 서울로 축구 유학을 보내자 한다. 가면 학비도 면제되니 돈 없이 학교도 다닐 수 있다고. 허나 햇수까지 넘기며 소식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서울에 올라갔을 때, 그가 들은 말,

 

"에이, 너무 작아서 힘들겠는데, 안되겠어"

 

학교를 갔으면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허정무, 당시 153cm에 왜소한 체구. 그는 아버지에게 6개월 안에 주전이 안되면 내려가겠다 사정했고 결국 2년을 꿇어 다시 중딩 2학년이 된다.(위의 말을 한 유판순 선생은 후에 허정무가 다른 팀에 있을 때조차 그를 응원할 만큼 뗄래야 뗄 수 없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다.)

 


: 당시에 2년이나 꿇고 들어갔잖아요. 나이 어린 동료들이 본인, 그러니까 막내 데리고 텃세도 부렸을 텐데.

 


감이 잘 안 올 텐데, 약 반세기 전이다. 참고로 허정무는 호적상 1955년생이지만 실제 1953년생. 실제 나이는 올해 무려 62.

 


: 많이 싸울 뻔 했죠. 비누도 귀할 때인데 비누 잘 안 줘요. 빨래를 시키면 비누를 어떻게든 구해서 빨아서 줘야 했어요. 운동 끝나고 집합하면 우물 있는 데가 있거든요. 한번은 거기 집합시키는데 버드나무 회초리 같은 걸 들고 있어요. 앞에 세워두고 "야 이 새끼야. 왜 말 안 들어?" 이러면서 얼굴, 머리 때리고 "왜, 말 안 들어, 새끼야. 까라면 까는 거지." 하는데. 하,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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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굼의 기억은 반 세기가 지나도 선명하다.>

 

 

: 그땐 짐 쌀 뻔했어요. 선배가 참으라 해서 참았는데 그땐 그랬죠.

 

: 당시엔 빠따도 많이 때렸을 텐데. 인격모독 때문에 더 화가 난 거네요?

 

: 그렇죠. 단체로 맞으면 차라리 나은데. 환장합니다.

 

: 게다가 따로 불러서?

 

: 네. 따로 나만 앞으로 나오라 해서.

 


축구를 하기 위해 2년 꿇고 다시 들어가야 했던 중동중학교. 허정무는 고무공으로 놀던 동네축구계의 레전드였지 밥만 먹고 축구만 한 아이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실력이었다. 하여, 무시 당할 만했다 고백한다. 패스조차 제대로 못했다고.

 

평생에 걸친 그의 개인훈련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남보다 늦으니 새벽에 홀로 일어나 홀로 연습하고 홀로 훈련일기를 썼다. 결국 축구 엘리트 사이에서 허정무는 주전자리를 따냈고 중학교를 두 번 졸업하는 희한한 학력을 가지게 된다.

 

서울 촌놈 사이에서 온갖 갈굼 받아야 했던 진도 성골 허정무, 축구 시작한 지 4년 만에,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대표, 대학 1학년 때 국가 대표 된다. (뭐야 이게… 이상해…)

 


: 중학교 졸업 후에 산에서 땔감 하다 축구 시작해서 무시란 무시는 다 받고... 지금은 조기 유학도 많이 보내는데.

 

: 당시에는 생각도 못할 때지요. 비행기 타는 거조차 신기했던 땐데. 여권 하나 만드는 것도 엄청 복잡했어요. 신원조회, 신원보증, 다 해가지고 조금만 하자 있어도 안됐거든요. 지금은 어린아이도 나가지만 당시에는 꿈도 못 꿀 시절이었죠. 1980년도에 네덜란드에 나갔을 때만 해도 정말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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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허정무와 요한 크루이프>

 


1980년 7월 네덜란드 PSV 아인트 호벤 입단. 3시즌 77경기 출전, 15골. 그는 대한민국 네덜란드 진출 1호 선수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에인트 호벤을 거친 선수는 허정무(1980-1983)를 포함, 이영표(2002-2005), 박지성(2002-2005, 2013-2014)까지 3명.

 

재밌게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무명의 박지성, 이영표를 처음 대표로 발탁한 이가 허정무다. 당시로서는 파격이었기에 뇌물을 받았냐는 각종 루머와 축구팬들 사이에서의 비난도 감수해야 했다. 이후, 박지성, 이영표가 어떻게 됐는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당시만해도 에이전트나 통역도 제대로 없었고 모든 걸 맨땅에 헤딩하는 시기였거든요. 전부 스스로 해야 했으니까. 특히 네덜란드 같은 경우는 교민이 없어가지고 고생했지요.

 

: 훈련할 때 토하고 그랬다면서요?

 

: 대충 생각하고 갔다가 너무 힘들었어요. 약한 모습 보이기 싫으니까 집에 올 때 기어 2단 놓고 기어와서 샤워도 못하고. 토한 뒤에 겨우 자고. 그러니까 괜찮더라고요.

 

: 그 전에도 훈련은 무식하게 받았을 거 아니에요? 청소년 대표, 국가 대표에 프로까지 다 하고 갔는데.

 

: 그 전엔 개인운동이 힘들었지요. 내가 남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스스로 한 운동들이 힘들었던 거죠. 늦었으니까, 이겨야 하니까.

 


그의 선수 시절과 네덜란드 시절, 이후 에인트 호벤에서 요한 크루이프와 맞짱 뜨는 이야기는 줄기차게 언론에서 다뤘으니 이쯤 하자. 마라도나 왜 깠냐고 엄청 물어보는데 그거, 좀만 검색하면 나온다. 신문 사진에는 공 부분 자르고 실은 거 되겠다. 

 

 

4. 독재자 허정무에서 사근사근 허정무로

 

: 현 축구협회 부회장인데 선수할 때랑 감독할 때랑 다른 거잖아요, 정치를 잘해야 하지 않나요. 룸싸롱 같은 데도 가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글고보면 실세 중의 실세지 않은가. 싫으나 좋으나 엄청 가야될 일 많을 것 같아 훅 던져봤다.

 


: 룸싸롱 같은 곳 가서 관계가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순간의 쾌락에 돈만 쏟는 거고. 뭐, 옆에 여자 세워두고 그럴 필요 없잖아요. 낭비도 낭비에 좋은 까페도 많은데. 그냥 반주로 소주 한잔하고 뭐하면 까페 가서 한잔하고 그래요.

 

: 생각난 김에 술은 어느 정도?

 

: 분위기에 맞춰 마시고 취하면 일단, 나는 잘 몰라요.

 

: 무서운 말인데, 잘 모른다니요?(웃음)

 

: 스스로 딱 되면 자야 돼요. 그냥 자야 돼.

 

: 주사 부리는 거 없이 그냥?

 

: 네, 시끄럽든 뭐하든 일단 자요.

 

: 좋은 주사 같은데요.

 

: 바로 자버리면 몸에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깨워야 한다고 하던데.(웃음)

 

: 지금 느낀 건데 전장을 헤쳐 온 사람이라고 하기엔 말하는 것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도 그렇고 너무 부드럽단 말이에요. 원래 그런 사람 아닌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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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라고 하는 것들을 많이 겪은 이들일 수록 부드럽고 겸손해지는 특징 있으나 허정무는, 심했다. 말도 조곤조곤, 눈빛도 사근사근. 눈 앞의 이 사람이 요한 크루이프와 마라도나를 묶었던 그 남자인가 싶다.

 


: 처음에 생활할 땐 선수들이 나를 많이 어려워했지요. 훈련할 때 엄격했거든요. 우리나라가 사실 훈련하고 경기하고 틀린, 그런 게 있어요. 훈련할 땐 적당히, 경기장 가면 격렬히.

 

저도 네델란드가서 배웠는데 유럽 애들은 훈련하고 경기가 똑같아요. 우리나라는 아직도 그런 경향이 있긴 한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훈련도 옛날에는 2시간 반, 3시간 했어요 시간만 길었지 별로였거든요. 난 1시간에서 30분, 시간은 짧지만 힘들게, 엄격하게, 약속 지키고. 할 거 하고 안 할 거 안 하고 원칙 다 지키니까, 좀 어려워하고 그러더라구요.

 


'좀' 어려웠다, 는 물론 본인 표현.

 


: 훈련 시간이 짧으면 선수들도 더 좋아하지 않나요?

 

: 그런 식으로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적응이 안되고 힘들었던 거지요. 갑자기 바뀌니까. 그때 소통이란 게 얼마나 중요한 건가 내가 많이 느꼈지요.

 

: 독재자였다고 들었는데.(웃음)

 

: 네. 그 방법이 아니었던 거지요. 지금은 부드럽다고 얘기들 하는데, 운동시간 외에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선수에, 감독을… 이렇게들 얘기해요.

 

: 언제부터 그렇게 바뀐 거예요? 예전에 이영표 선수도 우리 감독님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놀랐잖아요.

 

: 시드니 올림픽 이후에 남아공 월드컵 때 다시 만났잖아요. 그때 그러더라구요.

 

: 거꾸로 말하면 2000년도에는 엄청 갈궜다는 거네요.

 

: 애들이 힘들어 했죠. 훈련도 빡세게 했고. 어떻게 보면 본인들에게 득이 됐을 거예요. 나도 중간에 나오고 싶을 정도로 힘들게 훈련한 사람인데 그거 겪고 나면 훈련이 겁나지 않아요.

 


훈련은 짧고 빡세게. 아니, 졸라, 빡세게. 다만 그 빡심을 선수들에게 어떻게 설득하느냐에 대한 본인 내부의 격렬한 고뇌 거치며 호랑이로 불리던 남자는 무섭도록 부드러워졌댄다. 너무 부드러우니까 되려 무섭게 느껴지긴하더라.

 

 

5. 댓글, 보지 않는다

 

: 아, 맞다. 요즘도 댓글 안보세요?

 

: 안 봐요. 보기도 싫고. 좀 심하잖아요. 정상적인 비판이 아니라 이거는 완전히 인신공격에다가 얼굴 안 보인다고 뭐...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었던 허정무, 40일간 전지훈련 중 에스토니아 체류 당시,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는다. 귀국 후 5일장을 마치고 체코로 가서 다시 합류. 전지 훈련 동안 팀의 성적은 27전 25승 2무.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중이 기억하는 것은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대표팀과 가진 두 차례의 평가전이다. 일본 도쿄 운동장에서 1-4로 패, 서울 잠실 운동장에서 0-1로 패. 정식대회를 앞둔 유일한 패배였으나 두 차례 연속, 게다가 잠실 운동장에선 자책골로 일본에게 패하니 반응은 뻔할 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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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허정무가 충격을 받은 댓글은 "그러니까 네 애비가 뒈지지!"였다. 자신 떄문에 평생 마음 고생을 한 사람이 돌아가신 후에도 모욕받는다 생각하니 백전노장인 그도 눈물 울컥 나오며 다 그만두고 싶었다 한다. 


그 이후, 댓글 보지 않는다고.

 


: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리였으니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 정상적으로 비판하라는 얘기지요. 제 생각은 뭘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이래야 하는데 전혀 무관한 거 가지고 비판을 받아서… 제 아버지 관련해서 너무 강한 충격을 받았어요. 양심상, 사람이 진짜 사람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때 충격 받아서 안 봐요. 아무 것도.

 


6. 허카우터와 선수들

 

: 허카우터라는 별명 있잖아요?

 

: 허카우터? 그게 뭐죠?

 

: 으아. 정말 안 보시는 구나. 허정무가 사람 보는 능력은 최고다 해서 허카우터란 별명 있어요. 허정무를 싫어하는 사람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예를 들어 박지성, 이영표, 김주영, 김신욱, 김보경... 되게 많잖아요. 박지성 같은 경우엔 이미 엄청 알려졌고. 최근에 박지성 선수랑 얘기 좀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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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월드컵 8강 좌절 후, 박지성을 안는 허정무>

 

 

: 은퇴한다는 게 아쉽고 통화도 했는데… 지성이 처음 뽑을 땐 정말 뒷말 많이 들었지요. 그때 기자들한테 한 소리했어요. 이런 저런 얘기, 루머 나오는 거 다 좋은데 1년 후에 보고 얘기하라고. 내가 잘못됐다면 1년 후에 얘기하라고. 1년 후에 아무도 얘기 안 하더라고.(웃음)

 

: 박지성, 이영표 선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어땠습니까?

 

: 영표하고 지성이가 특별한 케이스인데 당시에 선발 명단에 올라오지도 않았어요. 내가 직접 일주일 동안 훈련시켜보고 이 선수는 우리 대표팀에 합류시켜 쓰겠다고 해서 통보만 하고 쓴 선수가 그 둘이에요. 그때도 영표보다 누가 낫다, 누가 낫다 많이들 그랬죠.

 

둘이 훈련을 시켜봤거든요. 지성이는 연습 게임 가서도 보고 감독이랑 얘기도 해보고 해서 데려왔고 영표는 추천 받았어요. 당시 김 코치가 파주에 K3 감독으로 있었을 거예요. 그 친구한테 "우리 사이드 쪽 좋은 선수 있으면 추천 좀 해 줘" 하니까 "우리 선수라서 얘기하기가 곤란한데..." 라면서 추천한 게 이영표예요.

 

괜찮아서 "1주일만 훈련 시켜볼게" 하고 울산에서 일주일 훈련을 시켜봤어요. 그리고 결정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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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올림픽 당시의 이영표>



: 딱 보면 감이 오나요? 선수 볼 때 뭘 보는 겁니까?

 

: 내가 보는 관점은 네 가지인데 첫 번째가 지능, 축구에 대한 지능이에요. 축구는 지능이 없으면 못할 수 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얘기하면, 축구는 발로 하기 때문에 완전히 내 볼로 소유하려면 일단 감각적이어야 하죠.

 

야구는 손으로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잖아요. 사인 받으면서 시간이 충분하거든요. 캐치 사인도 받고 벤치 감독 사인대로 하기도 하는데 축구는 영점 몇 초 사이에 순간적인 상황판단을 해야 돼요. 슈팅, 돌파, 패스, 돌아설 건가 나올 건가 순간적으로 해야 하는데 그런 판단이 뛰어난 선수가 좋은 선수예요. 그런 판단을 위해선 지능이 없어선 안되죠.

 

두 번째는 소질. 볼을 가질 수 있고 센스 있게 그 순간을 대처할 수 있는 소질. 세 번째는 체력이 아니라 체질.

 

: 체력이 아니라 체질?

 

: 왜 체력이 아니냐면 어린 선수들은 체력이 완성돼 있는 게 아니에요. 체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인데 체질적으로 이 선수가 그 과정을 통해 좋은 체력 조건을 갖출 수 있느냐, 혹은 아무래도 안되느냐 그런 거죠.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건 회복능력입니다. 체격이 크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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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들 들어 100미터를 풀로 뛴다고 쳐요. 풀로 뛰어서 10초 다음에 회복이 된다고 하면 10초 뒤에 추가 골을 넣을 수 있어요. 어마어마한 거죠. 그게 체질이에요. 훈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까진 만들어질 수 있는데 타고난 것도 있어요. 그게 바로 세 번째인 체질.

 

네 번째는 성격. 아무리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도 게으르고 소극적이면 안됩니다. 열정이 있고 근성이 있고 부지런해야 돼요. 부지런하다는 거, 그 자체가 근성이 있는 거지요. 이게 없으면 안돼요.

 

: 네 가지 중에 우선순위를 매길 수 있나요?

 

: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떨어지면 그만큼 떨어져요. 재밌어요. 한 가지라도 떨어지면, 그러니까 소질이 부족하면 아무리 해도 한계가 있죠. 체력적인 거, 성격적인 것도 마찬가지고. 네 가지 중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냥 뭐, 없다고 봐야죠.

 

: 네 가지 기준을 놓고 봤을 때, 지능 최고는 누구였나요?

 

: 최고였다라는 건 안 맞아요. 한두 명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그걸 기본으로 갖춘 선수는, 최고의 선수죠. 이영표, 박지성도 마찬가지고 황선홍, 홍명보도 마찬가지로 최고예요. 안정환 선수도 그때 내가 뽑은 게 처음인데 그런 선수들. 김남일, 이천수 이런 선수들, 다 그런 걸 갖췄어요. 갖춘 선수들은 그만큼 나가는 거지요.

 

: 결국 결론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 그렇죠. 다 같이 가는 거라.

 

: 이천수 얘기 나온 김에. 이천수가 시드니올림픽 때 꼭 뛰고 싶다고 직접 찾아와서 요청했잖아요. 이천수 선수가 대표적으로 말이 많았던 선수인데 안에서 볼 때는 어떤가요. 한참 말이 많았던 선수 중에 고종수도 있고.

 

: 중간에 그런 경우가 많은데... 참 안타까운 게 몇 %씩 새는 경우가 있어요. 뻗어나가고 더 잘할 수 있는데 그 정도에서 만족해 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허정무 감독은 최대한 말을 아낀다.


 

: 상당히 안타까운데 이천수, 고종수가 그런 경우입니다. 올라가는 건 엄청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하루아침이에요. 인생도 마찬가지지만. 정상 올라가는 건, 쏟아낼 거 다 쏟아내고 올라가지만 내려가는 건 정말 순간이란 말이죠. 그런 점에서 안타까움이 많이 남아요.

 

: 본인도 선수생활 하면서 유혹 많았을 거 아니에요? 1986 멕시코 월드컵 예선전 때, 본인이 넣은 결승 골로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 땄잖아요. 게다가 한일전이었는데. 아마 당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남자였을 때라 여자들한테 대쉬도 엄청 들어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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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상남자였던 허정무>

 

 

: 당연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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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 그때 그런 거.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사람이 괜히 스타가 되는 게 아니잖아요. 진정한 선수라면 그런 유혹을 뿌리칠 줄 알아야 돼요. 강남이나 그런 데서... 선수생활 할 때도 주변에서 불러내요. 아는 분, 선후배... 난 훈련하는데 술 마시다가 전화해서 오라 그러고 참 난처하게 만들어요.

 

간 적 많죠. 네, 갑니다. 정말 프로라면, 내 갈 길 가는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헤쳐나가야죠. 우리 같은 경우엔 그런 장소 가면 옆에 여자 앉죠? 남자라면 좋아하겠지요.

 

전 얘기를 해요. 그쪽에서도 막 친한 척 얘기하니까 ‘난 술 마시면 안되니 알아서 잘 좀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럼 나도 모르게 술잔 바꿔치기 해주고. 난 그렇게 때웠어요. 그런 식으로.

 

: 유혹에 강한 편인가요?

 

: 분명한 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 참는 거 잘하시는 거 같애요. 그런 사람 잘 보는데. 속에서 이글이글 끓어오르지만 절제할 줄 아는.

 

: 딴 건 없고 내가 가야 할 길인 거죠. 이쪽이 유혹이 많잖아요. 늦게 시작하다 보니까 절실했고 이겨야 되겠다, 안 그러면 내려가서 다시 농사 지어야겠지, 이걸 이겨야겠다는 어떤 주입력으로 썼다고 해야 하나. 집념은 강한 거 같애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걸 이겨내 보려고 애썼죠.

 

: 허카우터 얘기로 돌아가서 박지성이야 뭐 워낙 유명하고 김주영 선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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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서울 수비수 김주영>

 

 

: 서울FC 김주영? 용인축구센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 그 얘기 유명하잖아요. 자기 또래에 공격수로 날렸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넌 수비해야 한다'이렇게 말했다고. 이건 축구선수 인생을 완전 바꿔놓는 거잖아요.

 

: 보면 위치 별로 능력이 다 틀려요.

 

: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하시는데 그 사람한텐 인생이 걸린 문제거든요. 어릴 때 공격수로 가느냐, 수비수로 가느냐는.

 

: 쉽지 않죠. 우리도 가볍게 얘기해선 안돼요. 그러니까 이것도 시켜 보고 저것도 시켜 봐요. 하는 거 보면서 시켜 보고 판단하는 거지, 그냥은 말 안 하죠.

 


김주영의 말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 브라질 유학으로 축구를 시작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용인축구센터에서 테스트 받을 당시, “얘는 공격수 계속 하면 대학도 못 간다. 그런데 수비수하면 국가대표까지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사람, 허정무였댄다. 당시 김주영은 수비수를 해본 적도 없고 또래 중에서는 최고의 공격수였다고. 이후, 김주영은 K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가 된다.

 


: 구자철도 그랬잖아요. 첨에 뽑았을 땐 욕도 많이 먹었는데. 구자철은 가능성을 높이 봤다고 당시에 직접 해명까지 하고.

 

: 정확히 말하면 코치가 추천해서 불러가지고 봤어요. 안타까운 게 남아공월드컵에서 4명 빼는데 거기서 빠졌잖아요. 그때 빠진 게 이근호, 구자철, 신형민, 곽태휘였는데, 보내는데 맘이, 아, 정말, 안 좋더라구.

 

: 자식같은 애들을 보내야 하니까.

 

: 버틸 수가 없지요. 23명인데 27명이 갔잖아요. 4명이 돌아가는데 태휘는 다쳤으니까 어쩔 수 없고 위치 별로 이것저것 다 따졌는데 당시만해도 구자철 선수가 어렸어요. 이근호도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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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호 같은 경우에는 공격수 중에 안정환, 이동국 이런 선수들이 있었잖아요. 조커로 쓸 수 있는 선수, 조커란 교체선수로 쓰는데 냉정하게 감독으로써 누구한테 기대를 걸겠어요. 안정환이나 이동국이겠지요. 보내면서 참 마음이 안 좋아요.

 

: 진짜 스트레스네요.

 

: 그렇죠. 팀웍을 생각 안 할 수도 없고. 그때 구자철만 해도 이렇게 좋아지지가 않았어요. 스피드 변화가 부족했고. 신형민이도 그렇고. 그게 참 미안하지. 누군가를 꼭 내보내야 한다는 게.

 


고뇌가 읽힌다. 이근호, 구자철, 곽태휘는 이번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이다.

 


: 처음에 뽑을 땐 말이 많아도 허정무가 뽑은 선수는 나중에 분명 잘된다는 믿음 같은 게 있더라구요. 화제가 됐던 것 중에 윤빛가람 선수가 한창 천재다라고 할 때 경기 지켜보고 "윤빛가람은 평범한 선수다" 라고 했단 말이죠. 이후에 축구팬들은 허정무의 예언이 맞아 들어간다 막 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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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빛가람>



: 지켜봐야 할 선수죠. 한때 반짝한다고 해서 최고의 선수로 생각하거나 쉽게 판단하진 않아요. 그때도 지켜봐야 하는 선수지, 벌써부터 그렇게 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 겁니다. 좋은 선수는 좋은 선수지만 좀 잘한 거 가지고 대스타된 것처럼 되는 경우도 있잖아요. 냉정하게 보고 특출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 본인이 뽑은 선수 중에 누가 제일 뿌듯합니까.

 

: 일단 지성이와 영표는 빼놓을 수 없고... 지성이만 해도 성격, 지능, 센스, 체질, 다 갖춘 선수고 영표도 그래요. 아주 영리하고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지성이가 큰 선수가 되리라곤 생각 못했어요. 근데 어느 누구도 박지성을 따라갈 수 없잖아요. 맨유에 7년 있었는데, 최고의 팀에 그 정도 있었단 말이죠. 우리나라에 그런 선수 있어요? 없잖아요. 인정해 줘야 해요. 가슴이 뿌듯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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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뛰었던 설기현, 김남일, 황선홍, 홍명보... 내세우기 쑥스럽지만. 명보는 포항에 같이 있을 때 주장을 시켰지요. 어린 나이인데. 나이랑 상관없이 중요한 자리기 때문에 시킨 거지요. 그런 선수들, 다 뿌듯하죠, 정말 뿌듯한 선수들.

 


지금이야 부드러운 남자지만 지도자 시절엔 불 같았던 남자. 허정무는 1995년 포항 감독 시절, 선수들이 시간을 안 지키고 술을 많이 마시자 화를 참지 못하고 팀의 주장을 불러 대표로 따귀를 때린 적이 있다. 그가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이끄는 홍명보 감독이다. 작년에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죄책감을 덜어냈다고.

 

 

7. 16강, 가나? 

 

: 이거 안 물을 수 없는데 브라질 월드컵, 어떻게 보십니까? 포인트만 딱 짚어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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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적이라고 봐요.

 

: 16강은?

 

: 가야죠. 경기는 단정할 수 없지만, 지금 우리선수가 좋다는 얘기예요. 조편성도 정말 잘됐어요. 객관적 평가입니다. 벨기에가 왔다는 거, 우리에게 행운이고, 알제리도 행운이에요. 거기 강한 팀들 많잖아요. 나이지리아, 뭐, 다 있지만 알제리가 온 거면 편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러시아가 왔는데 플레이오프 진출한 팀, 이태리, 네덜란드, 프랑스 등 세계적인 팀들 중에 러시아가 온 거예요.

 

해볼 수 있는 팀들이고 이길 수 있는 팀들이에요. 언제 우리보다 낮은 팀이 온 적 있나요? 도저히 안 되는 팀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죠. 잘된 거예요.

 

역대로 본다면 상대적으로 미드필드진 최강이라고 봐야지요. 자, 기성용, 이청용, 손흥민, 하대성, 한국영, 박종우, 지동원, 김보경… 최고예요. 허리가 튼튼하면 인체가 튼튼하거든요. 굉장히 희망적이란 거,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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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성용    하대성    한국영    박종우    손흥민     김보경    이청용   지동원     



첫 경기가 중요할 건데, 왜 희망적이냐면 러시아, 해볼 만한 팀이에요. 또 한 가지는 우리는 마이애미가서 똑같이 적응을 해나가야 하는데 덥다면 누가 더 유리할까? 우리나라가 더 유리하죠. 러시아보다 여러가지로 나쁠 게 없습니다.

 


이상 16강을 가본 남자의 16강 판단, 되겠다.

 

브라질 월드컵 D-4인 6월 9일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훈련 중이며 허정무 역시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자 대표팀 단장으로 현지에서 지원을 책임지고 있다.

 

 

8. 허정무에게 가장 소중한 것

 

: 혹시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나요?

 

: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좀더 빨리 축구를 제대로 시작했더라면. 그 때는 아시안게임 2번 우승했는데 군대를 갔고… 되돌리고 싶다면 젊은 나이에 지금처럼 나가서 도전해보고 싶어요. 어땠을까,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비교적 늦게 시작했지만 나름 최선을 다 했고 정말 벽을 넘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은 다했다고 생각해요.

 

: 선수 허정무가 제일 행복했던 때는?

 

: 어떻게 보면 행복한 거보단 힘들었던 게 더 많았어요. 늦게 시작해 유럽 나가기 어려울 시절에 네델란드 가서 3년 뛰었는데... 행복해야 했지만 이겨내기 위해서 힘들었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선수는 성장하는 거죠. 다른 선수도 마찬가지로…

 

과연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선수가 있을까 싶어요. 그 때를 지금 생각하니 행복했던 때구나 하고 회상하는 거지, 당시의 저한테 너 행복하냐 물어보면 진짜론 저 죽겠어요, 이러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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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로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 월드컵 32년만에 나갔을 때. 그 마지막 한일전 경기에서 골 넣었을 때. 그땐 정말 짜릿했죠.

 

: 감독으로써 짜릿했던 적은?

 

: 이것저것 많지만 남아공을 따져봐야 되죠. 원정 16강. 걱정되는 순간에 원동력이 됐던 게 첫 경기, 그리스 전에서 2:0 되는 순간. 지성이가 골 넣을 때, 이겼구나 하고 짜릿했죠. 아쉬웠던 건 역시나 우루과이전이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한국이 16강에 오를 거라 생각하지 못해 미리 돌아갈 비행기표를 예약해 둔 상태였다.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숙소를 새로 잡느라 난리였다고.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던 조중연은 허정무에게 2014 브라질 월드컵도 맡아 달라 했지만 그는 잘될 때 내려와야 된다는 생각에 바로 감독직을 그만두었다.

 


: 그냥 인간으로서 행복했던 건? 그건 잘 안 알려져 있잖아요.

 

: 그냥...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이제 뭐 좀 알 것 같은데 이선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참 그렇거든요. 여태까지 배우고 쌓아오고 그런 건데 이제야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시점인데 물러나 있는 게 아쉽죠. 저는 그걸 해야 될 나이인데. 프로축구도 너무 젊어지는데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젊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거든요. 배우고 느끼고 하는 게 어우러져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패기가 있으니 경험, 노련미 등등 서로 배우면서 보완하고 또 좋아지는 거 아니겠느냐, 이거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느껴졌다. 하여,

 


: 그럼 다시 국대 감독의 기회가 온다면?

 

: 글쎄요. 국대 감독은 젊은 세대로 가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그건… 그래도 전 우리나라 최초로 스스로 물러난 경우라 위로를 받아요.

 

: 마지막입니다. 허정무에게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요?

 

: 축구는 내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한 혜택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팬들이 사랑해주고 알아주죠. 빚을 졌어요. 축구계에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는 축구를 통해서 보답을 해야지요. 그 중에 제일 큰 게 유소년축구입니다.

 

유소년 축구는 그 나라 축구의 미래거든요. 유소년 축구에 신경 쓰지 않는 나라는 물러나게 되어 있고, 거기에 신경 쓰는 나라가 강해집니다. 용인축구센터도 그래서 만든 거죠. 네덜란드 생활하면서 눈여겨본 게 아약스라는 상업구단인데요. 좋은 애들 데리고 키워서 팔고 자기 팀에서 쓰기도 하고 해요.

 

이런 시스템, 당시만 해도 우습게 여겼는데 그걸 보면서 프랑스 축구에서 실행했거든요. 84~85년 이때 준비해서 시작했는데 프랑스 전역에 유소년축구 트레이닝센터가 여섯 군데 있어요. 2000년 시드니 끝나고 가서는 뭘 했냐 물어보기도 하고, 에메 자케 감독(1998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 양반이 총책임자로 있어서 얘기도 들어보고 했어요.

 

13, 14, 15세 아이들, 트레이닝 센터마다 20명씩, 각각 전국의 360명 영재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그 중심에서 아넬카, 트레제게, 앙리 이런 선수들이 나온 거예요. 그때부터 준비를 해서 98년 월드컵 우승한 거 아니에요? 그게 결실이죠. 그러다 보니까 다른 나라에서도 아차 싶어서 힘을 쓰고.

 

이런 것들 보면 유소년 축구를 육성하지 않으면 그 나라 축구는 미래가 없어요. 청소년들이 크질 못하면 나라 자체는 누가 이끕니까. 독일도 엄청 유소년에 투자하고 있고 현재 선진국은 어린아이들, 20~21세 이하 아이들 팀에서 쭉 길러 그 선수들을 2부리그에 소속시켜요. 그런 팀들이 얼마나 효율적이에요.

 

수원도 중고등학교 돈 들여서 정작 써먹는 선수는 거의 없어요. 왜? 성적을 내야 하니까 바로 쓸 수 없는 거예요. 경기 못나가고 몇 년만 있어봐요. 바보 되죠. 수원 이런데, 울산, 전북, 서울 다, 해야 돼요. 충분히 재력 있는 곳이고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애들을 2부 리그에 넣어서 해봐요. 얼마나 많이 발전하겠어요. 어차피 연봉 비싼 선수들도 아니잖아요. 중고등학교만 잘라서 신경 쓸 게 아니라 점점 올라가는 시스템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학원축구 중심이었죠. 공로는 인정하지만 변해야 할 때예요. 옛날을 고집하면 스스로 발목을 잡는 거예요.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면서 생각하고 스스로 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요.

 

우리 아이들이 시키는 건 굉장히 잘하는데 스스로 뭘 하라고 하면 뭘 해야 될지 몰라요. 이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우리나라가 창조적이지 못한 게 거기서 나온 거예요. 어렸을 때 그게 되는 풍토를 만들어 주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죽었다 깨어나도 메시 같은 선수 못 나와요.

 

즐겁게,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부터 믿고 맡기면서 학교 공부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풍토. 초등학교 때 축구부 들면 일생이 정해지고 얘는 축구 아니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 되게 만드는, 그건 아니잖아요. 이렇게 풍토를 차차 만들어서 좋은 선수 한 명이라도 더 나올 수 있다면 그게 큰 보람이고.

 

: 이고..?

 

: 인생에 있어선, 우리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게, 그게 가장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축구와 가족. 좀 더 정밀히 말하자면 유소년 축구 앤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되겠다. 묻고 싶은 질문 산더미 같았으나 월드컵 일정이 빡센 탓에 허정무는 점심을 먹고 서둘러 고고씽. 


어린 친구들의 숨겨진 재능과 잠재력을 발견하는 데 한국에서 그 이상 신뢰받을 남자는 없을 거라 확신하며, 대표팀 잘 지원해 브라질 월드컵에서 뽕 한번 뽑아주시라.

 

오늘은 여기까지.





 


딴지스 독자를 위한 보너스



*. 아래 질문은 트위터에서 딴지스에게 받은 질문이다. 별 쓰잘데기 없는 것도 있지만 쓰잘데기 없는 거 우리가 아니면 누가 물어보나 싶어 그대로 물었다.

 


Q. 축협에서 숨겨진 월드컵 수당 있지 않나.

 

A. 없다. 딱 정해져 있는 게 전부다. 16강 갔을 때, 뭐 했을 때, 이런 식으로.

 


Q. 축협에서 왜 K리그 중계 안 해주나.

 

A. 방송국에서 실리를 따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경기 질을 높이는 게 우선이어야 할 것 같다. 많이 노력하겠다.

 


Q. 야구팀도 응원하나

 

A. 이승엽 나올 때 응원 많이 한다. 이승엽은 당구장에서 만났는데 인간적인 면이 좋다. 예의 바르고 먼저 와서 인사해주고 그런 모습, 참 좋다.

 


Q. 당구장에서 강호동도 만났다는데 도대체 몇 치나.

 

A. 300인데 사람들이 짜다한다. 축구랑 공통된 게 볼을 이리 치면 어떻게 가고 뭐, 그런 게 재밌다.

 


Q. 위닝일레븐 하나

 

A. 안 한다.

 


Q. 속도위반(?)이 특기다. 실제 운전도 그렇게 하나.

 

A. 에이, 그거하곤 틀리지. 내 차를 타면 사람들이 아주 편하다고 한다. 조금 빨리 하는 편인데 지킬 거 딱딱 지킨다.

 


Q. 김우중 회장이랑 바둑 둘 때 진짜 안 져주고 끝까지 다 이겼나.

 

A. 져준다는 건 상상도 못한다. 져주는 건 상대를 욕하는 거다.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다.








편집부 주



본 이너뷰는 

인터파크 북디비(링크) 작가 이너뷰어

본지 부편집장이 용병으로 뛰게 된 겸사겸사 

인터파크 북디비 측과 협의하에

본지 동시 게재합니다. 


최근 신간을 낸 저자라면

남녀노소 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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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너뷰어 및 정리

죽지않는돌고래

@kimchangkyu

Profile
딴지일보 편집장. 홍석동 납치사건, 김규열 선장사건, 도박 묵시록 등을 취재했습니다. 밤낮없이 시달린 필진들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북극(혹은 남극)에 사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