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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11. 수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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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필리핀에 살어.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못 살지만 행복지수는 높다는데 뭔가 설문조사 오류 같아. 가난한 계층이 절대적으로 많은 상태에서 뭐가 행복한건지 이해가 가지 않아. 못 살기 때문에 정은 깊어서 1970~80년대풍 이웃들을 볼 수 있고 좋은 의미로는 정이 깊고 나쁜 의미로는 빈대근성이 잔뜩이라 '이쯤이면 이웃인 니가 도와줘야하지 않겠니?'라는 바디랭귀지가 난무해. 


나는 초반 이미지 메이킹을 잘 해둔 덕에 더 이상 집에 돈 빌려달라고 찾아오거나 도네이션을 기대하는 마을 단체장들도 없지. 수염 기르고 머리는 더벅머리에 담배나 줄창 피워대고 바나나나 먹고있는 헐어빠진 차림새로 '저거 털어봐야 가진 건 살뿐인 한국 뚱땡이다'라는 인식을 심어줬거든. 그리고 일단 덩치가 크면 편한 게 어디 가든 아무도 쉽게 건드리지 않고 주변에 오길 꺼리지. 


처음 왔을 때, 필리핀이 한국의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필리핀과 한국은 서로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과거가 무척이나 닮았고 반골기질도 닮았어. 게릴라 능력 면에서는 베트남 이전, 아시아 쪽에서 맹위를 떨친게 필리핀이어서 2차 대전 일본군의 뒤통수 꽤나 두들겨 패고 다닌 탓에 실질적으론 식민지였지만 거의 전승국 대접을 받아 독립을 거머쥔 나라라는 점이 좀 다르겠지. 민중의 저항 면에선 한국과 비슷하고 지금 시점에서 언론인의 수준을 보면 한국보단 필리핀이 윗길이고 사회정의면에선 필리핀이 막장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이 요즘 스피디하게 따라오는 중이라 언제 잡힐지 궁금하긴 해. 


특히 한국 정치에 대해 싸늘한 시선으로 글을 쓰다보면 필리핀 마르코스랑 박통을 비교하며 그래도 박통은 청렴했다,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위키피디아 검색해보는게 얼마나 어렵길래 찾아보질 않는건지 모르겠어. 상대가 견고할 때 이기지 못하는 것보다 상대가 수준 이하임에 저런 것들을 상대하고 있는 스스로의 한심함이 더 절망스러운 것처럼, 도통 필리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필리핀에 살지도 않는 한국 어느 골방의 쓰레기더미 옆 키보드 워리어들이 가끔 대들 때면 만감이 교차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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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박통과 마르코스. 


둘 다 막상막하야. 한국은 18년. 이 쪽은 21년. 시작은 박씨가 먼저, 마무리는 마르코스가 더 잘 끌었지. 총 맞고 죽은 사람보단 안전하게 도망가서 잘 살다 울화병 걸려 죽은 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어. 돈이 무척 많아서 미국에 망명을 딜할 수준이 되었다는 게 필리핀 쪽의 특성이겠고 그걸 이유로 마르코스가 훨씬 더 해먹었네, 그래서 그 처인 이멜다의 구두가 3천 켤레나 되었네 등등의 말이 나와. 


근데 마르코스는 원래 부자였어. 그게 한국에서 마르코스와 비교하며 박통을 옹호하는 이들이 모르는 점인데, 계급이 달라. 7등급 정도 나뉘는 필리핀 계급 중 마르코스 정도면 1등급 상위야. 한국으로 치면 한 도의 맹주집안. 돈으로, 정치력으로, 군사력으로 모두 최고인 집안. 그러니 키작고 새까만 외모에도 불구하고 미스필리핀이던 여자를 쟁취하지.


이 마르코스란 사람은 태생도 고급이지만 청년기 삶 또한 마사오씨와는 질적으로 달라. 항일 독립군 장교였어.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서 죽을 뻔도 했고 탈출까지 해서 필리핀의 대 일본 게릴라전 선봉장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던 사람이야. 젊은 나이부터 목숨 던져 무언가를 할 줄 알았던 사람이지. 만주군에서 칼차고 동족 목따러 다닌 국산새끼랑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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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싸운 군인(왼쪽)과 일본을 위해 싸운 군인



마르코스는 필리핀의 정부구성 이전, 2차 대전 시절에 이미 사람을 죽여보는 경험을 해. 자신의 아버지 정적을 암살해버린 건데 필리핀은 지금도 그러하듯 힘있는 집안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정적을 대놓고 죽여버린 후 무죄로 잘 나와서 살아. 이미 죽었으니 피해자 가족은 돈으로 보상받고 잘 덮어버리는 거지. 이런 게 야만적이거나 후진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게 한국인의 시선이겠지? 


그런데 필리핀의 역사상 원래 부족국가 베이스의 나라이고 부족국가에선 정치적 라이벌이 영역 내에 생겨나면 죽여버리는게 당연했고 그런 전통은 스페인의 통치시절에도 다분히 자주 일어나던 일이라서 근대 이전의 이미지를 가진 관습적 살인이 현재까지도 이어진다고.


필리핀 다바오 시장은 사병을 가지고 있고 시 영역 내 마약사범이나 풍기문란 사범 등을 경고 후 직접 처형하러 다닌다고. 사병을 데리고. 그걸 대법원이란 데에선 경고만 하고 조치하지 못하지. 왜냐하면 확실한 심증이 있지만 몰살 당한 쪽에서 증거를 내놓을리 만무하고, 증인으로 나섰다가 또다른 일가족 몰살날 게 뻔한데 누가 증인을 서겠냐 하는 문제인거지. 쉽게 말해, 정적 청소는 필리핀에서 어느 정도 전통적인 정당성을 가졌다고 봐야 해. 다만 현대 국가로서 지워야할 폐습인데 아직도 가졌다는 점은 뭐, 외국인의 시각으론 언빌리버블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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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흔한 사병들



여튼 마르코스는 정적살해로 당시 선진국이던 미국 치하의 법정에서 재판 받고 대법원까지 가서 무죄판결이 나. 그리고 자유를 즐기던 중 2차 대전 때 게릴라 활동으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변호사가 되어 경력을 쌓기 시작하지. 당연히 자기동네 왕이니깐 정치적 경력도 쌓게 된다고. 하원, 상원의원 등을 거치며 정계 실력자로 부상한 거야. 우리나라 서프라이즈에도 나온 적이 있던 야마시타 골드를 발견해서 막강한 정치자금을 가지고 정치지도자로 성장을 하게 되는 거지. 돈질 잘 되고 집안 좋고.


필리핀에서 가장 자존심과 자부심이 막강한 부족이 사는 루손섬 북부 사라트지역이 마르코스의 고향이야. 일로코스라고 불리는 지역과 넓게 보면 한 지방인데 중국 유교영향을 받았고 전투적인 호전성을 가진, 정치적으로 강한 기세를 자랑하기로 유명하지.


막강한 돈으로 지도력까지 확보한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 후보였다가 밀려나 상대당으로 옮겨 출마해서 당선이 돼. 당연히 원래 당적에서 밀려나게 했던 새퀴들 다 청소당하고. 1972년 게엄령과 함께 독재를 시작하지. 일설에는 1961년 박씨의 쿠테타와 1972년 유신의 전개가 서로 주고받은 베끼기의 결과라고들 하는데, 뭐, 당사자만 알고있겠지.


이후엔 정적 살해해서 핀치에 몰리고 그러다 하와이로 망명하고, 구두 3천 켤레를 비롯한 여러 뉴스 주인공이 되고, 아직도 스위스 은행에 돈이 많이 있네, 뭐하네 등등이 이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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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르코스는 원래 부자+야마시타 골드 주인공 이라니깐. 무일푼으로 처가 묘지기하던 집안 막둥이랑은 태생이 달라. 재산 상승비율로 보면 박씨가 2천배쯤 더 클껄. 마르코스는 오히려 미국망명하고 그러느라 돈 많이 날려서 야마시타 골드발견 시점으로 본다면 지금은 거지인 거야. 부정부패를 했다고 해도 그 돈의 크기가 박통이 작다고 할 수 없는 게 박씨는 아직 어딘선가 계속 스며나오는 돈이 있는 거고 그게 얼마일지는 아무도 모르지. 마르코스는 해먹은 돈 규모라도 대충 나왔지만 말이야. 


우리나라랑은 또 사이좋게 마르코스 아들도 상원의원 해가며 정치활동 중이고 또 타산지석 삼아 대통령에 나올 가능성이 높아. 여전히 돈도 많고. 모계가 강한 필리핀의 문화 특성 때문에 마르코스 시절 정치적 동업자였던 이멜다가 살아 있는 한 필리핀 내 마르코스 돈 받아먹은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커넥션은 무너지지 않았고 당연히 언젠가 한 번 오지게 힘을 쓰겠지. 이멜다는 마르코스 재임 중 마닐라 시장을 했던 경력도 있으니 1972년 계엄령 이후 실질적인 나라통치를 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치력이 있거든. 이쁘기만한 게 아니라 똑똑하기까지 한 거지. 


아들은 현재 필리핀 내에서 꽤 지지를 받아. 아버지 마르코스 시절의 아시아 2위이던 이미지도 있고 이 나라에선 돈 있는 자의 범죄에 대해선 관대한 측면도 있어서 어차피 그쯤 부자에 권력자인 사람이라면 부패하지 않다는 게 이상하다는 인식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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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의 캡틴 자리를 두고도 라이벌을 살해하는 일이 많고, 그 작은 마을 캡틴, 한국으로 치면 면장 쯤의 자리만 돼도 해먹을 돈이 상당한 것으로 볼 때, 온 나라가 다 해먹기 바쁜 전통을 가진 이 나라의 국민은 차라리 거의 혼자 독식해서 나머지를 못 먹게하던 마르코스가 그리울 수 밖에. 


먹고 사는 것으로만 볼 땐 독재가 민주화보단 더 간결한 구조를 가지고 독재라는 걸 하는 정치인은 보통 민중을 상대로 한 포퓰리즘적 적절한 베풀음 신공을 구사하기에 밑바닥 인기는 사실 높거든. 박씨가 죽었을 때 각 시청마다 만들어둔 장례식장에서 울던 사람들 보라고. 김일성 죽었을 때랑 별반 다르지 않아. 대한민국의 국민수준은 사실 북한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한 민족인데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어. 좀 굶기고 직업 좀 없애고 후달리게 만든 후에 찬밥 좀 던져주면 '주인님~'하는 게 인생이지.


자, 어이없게 박씨랑 마르코스씨를 비교하는 사람들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을 위키피디아 보고 썰을 풀었어. 이 나라 주요 공직에 있는 사람들 중 부유한 리더계층을 빼고는 모두 마르코스를 그리워 한다고. 아마도 한국을 벤치마크해서 마르코스의 자식들이 전면에 나서는 때가 올 거라고 봐. 뭐, 박씨 딸내미 재임 중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재미는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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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미군부대와 미군에게 작전권 내주고 헬렐레하는 걸 보면 피부 하얀 애들 졸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외출 자주 안 해서 하얀 박씨 공주보고 침 좀 흘릴 수도 있겠다. 


아로요와 현 대통령인 아키노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에 이어 대통령을 한 2세 정치인인 점을 볼 때, 마르코스 아들이 다음에 나온들 필리핀 국민이 딱히 저항할 것 같지도 않고 강력한 치안을 확립했던 시절에 대한 추억도 강해서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


정치적인 수준이 필리핀과 한국은 거기서 거기고 흐름을 잘 타고 모험심 많은 기업인이 좀 더 많아서 한국이 경제적인 성공은 더 이루었지만 어차피 그건 일부 재벌이야기지,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어. 필리핀엔 부자비율이 적다고는 해도, 부자라 불린다면 적어도 한국의 부자들보단 스케일이 커서, 생각보다 한국이 만만하게 후진국 취급하기엔 이 나라의 리더계층의 부는 크고 단단해. 세계 도처의 블랙머니는 한국이 더 우위에 있다지만 일단 맘껏 쓸 수 있을 가처분 소득은 필리핀이 더 윗길이 아닐까?


서로의 타산지석으로 비슷하게 해괴한 짓거리를 하는 쌍둥이 같은 나라.


다른 점은 필리핀 국민은 지네 나라가 얼마나 후진지를 알고있고 한국인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나라가 꽤 좋다고 착각하는 점이겠지. 


돈 좀 있으면 사람쯤 죽여도 되는 나라와 돈 좀 있으면 뭘 해도 기소조차 못하는 나라는 '오십보백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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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으로 쏴 죽이는 게 대대로 말려죽이는 거보다 더 잔인한지도 모르겠고, 총 맞아도 할말 다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나라가, 월급과 자리에 얽매여 비겁질하다가 조금 유리해져야만 언론독립을 외치는 배뱅이 병신 삽질하는 기레기 새끼들이 전부인 나라보다 나은 걸까, 헷갈리기도 하지.


마르코스가 부러워 10월 유신을 한-물론 카더라 통신이긴 해도-그런 독재자 딸을 또 뽑아 놓은 나라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것에 가슴 치며 아파한다는 건 대체 무슨 자학질인 건지.


니들이 만든 나라야. 보복하지 않는 바보 같은 선택, 돈만을 쫒는 사회, 결혼은 더 고급차에 탄 남자에게 몸을 파는 비지니스가 되어버렸고 돈 발라 미인이 된 공산품 여인들에 휩싸인, 눈먼 사회의 사람들. 매번 속아도 애국심으로 상품을 소비하고 분노한 채 고작 잠시 집중 할 뿐인, 기업 하나도 문닫는 결과를 보지 못하는 한심한 독기 없음의 사람들.


세월호 이전에 서해훼리호가 있었고 그 중간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있지. 뭐 하나 잊고 말겠단 적 있었던가? 니들은 또 잊을 거고 또 어딘가에서 왕창 죽어가며 또 질질 짜다 다시 해맑게 용서하며 다같이 대동단결 코리아~를 할 거야. 차라리 매표를 하는 필리핀 선거가 더 인간적이고 보기싫은 정치인 총으로 쏴달라고 돈 걷어 청부하는 사람들이 고상하다.


서로의 미래인지 과거인지 모를 혼재된 타산지석 상태긴 하다만 여긴 못산다는 핑계거리라도 있는데, OECD 자랑질하는 한국은 대체 뭐가 결여된 반푼이들인 거지? 보고 좀 배우자. 서로.


정치인으로나, 민족과 해당 국가에 대해 기여한 바로나, 마르코스가 박통보다 더 윗길 아닌가 생각해본다. 일단 니들 기준에 미인을 얻은 것만 해도 승자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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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멜다 젊었을 적 사진


처음 이 나라에 와서 마르코스를 그리워하는 필리핀 지인에게 황당함을 느끼며 꼬치꼬치 묻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미 2012년에 우리 쪽에서 할 말 없는 결과를 먼저 도출했으니 이후론 반박할 여지가 없지. 적어도 이 나라 2세들은 정치적 커리어라도 좋고 능력을 보여준 바도 많아서(부패 쪽으로 그 능력이 더 뛰어나긴 하지만) 그저 이미지와 입다물고 찍어달라는 우리 쪽 2세와는 사뭇 달라. 한국 쪽은 그냥 한심하지. 


독재에 축재를 했더라도 마르코스는 평생 자신의 아내 외엔 한눈 판 적도 없고 잠들었을 때도 보고싶어 문득 깨어나 바라봤다던 순정파였으니까. 남의 아내까지 탐하는 사람보단 낫다 싶은데, 어때? 


그런 이를 그리워하는 한국의 50대는 호구인지, 병신인지. 지들이 처용이라도 되나? 전 세계에서 무작위 추행범을 대통령으로 가졌던 나라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긴 하다만, 그 딸이 대통령이 된 것만으로도 더 알 필요가 없는 국격이라. 


비 내리는 필리핀 오후, 난 한국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치안이 좋지 않다고 알고만 있는 필리핀 시골에서, 만족하며 사는 이웃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 속에 묻혀 즐겁게 지내고 있어. 강제로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이 끊긴 시간엔적어도 한국뉴스와 격리되어 행복하거든. 위키도 못 들어가보는 한심한 인간들 글질 안 봐서 좋기도 하고.


니들, 고생이 많다. 참고 살아야지 뭐, 업보인데.










메이비


편집 :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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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