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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12. 목요일

논설우원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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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6]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 17]



 






“도대체 왜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박사는 와인잔을 기울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발표할 내용이 없네.”

 


남자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는 말했다.

 

 

“많은 비용을 들여 5년간이나 지속한 연구입니다. 사이비 과학이라는 논란도 많았지만, 그동안 유효한 데이터가 충분히 나온 걸로 압니다.”

 

“데이터가 중요한 게 아니네. 해석이 되지 않으면 소용없어.”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해석할 수 있도록 데이터라도 공개를 하시죠. 왜 꺼리시는 겁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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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이 화창한 5월의 오후였다. 이 대도시 근교에 그런 곳이 있을까, 싶을 만큼 넓고 고른 잔디밭 가운데 그림같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마치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목가적인 정경을 만들고 있었다. 멀리서라면 두 사람의 긴장된 대화마저도 마치 집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나누는 한담처럼 보일 법한 곳이었다.

 

 

“이 연구소를 폐쇄하겠네.”

 

“뭐라고요?”

 

“말 그대로야. 이제 끝났네.”

 

 

남자는 답답한 듯 담배를 거칠게 비벼 껐다.

 

 

“박사님. 저희 교단은 박사님의 능력과 인격을 믿고 그간 전폭적인 지원을 해 왔습니다. 약속 드린대로 연구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러 든 적도 없고, 서둘러 성과를 내 놓으라고 재촉한 적도 없죠. 그리고 박사님은 의학자로서 오랜 임상경험을 통해, 육체가 죽은 후에 영혼이 존재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알고 있네.”

 

 

남자는 잠시 가만히 앉아 늙은 과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혹시 반대의 결과가 나온 건가요. 유물론자들의 주장처럼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하지만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수백 명의 임사체험자들을 연구하신 건 물론이고 박사님 스스로도 임사체험을 하셨잖아요. ”

 

“그렇네.”

 

“1주일이나 뇌사 상태셨습니다. 병원 기록이 증명하고 있고, 저도 열람해서 알고 있습니다.”

 

 

남자는 담배에 새로 불을 붙였다.

 

 

“박사님은 그 1주일 동안 빛의 터널을 지나 기쁨이 가득한 천국에서 죽은 가족들과 재회하고, 심지어 창조주 자신을 알현하고 발등에 키스를 하고 돌아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분명히 그런 경험을 했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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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작년에 내신 보고서에서도, 기억 시냅스 재구성법을 통해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100%가 내세를 실제로 경험했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하셨죠. 그건 조작이었던가요”

 

“아니네. 모두 진실이야.”

 

 

남자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연구 결과가 우리가 옳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데, 데이터를 폐기하고 연구소를 닫겠다니요.”

 

 

박사가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연구 계약서에 명시된대로 내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네.”

 

 

그 말을 들은 남자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지금 권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납득이 되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도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박사님을 담당한 교단의 성직자이자 개인적인 지지자로서 이러시는 이유를 알 자격이 있습니다.”

 

 

박사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와인 한 모금을 천천히 들이키고는 말했다.

 

 

“그래. 자네는 그 이유를 알 자격이 있겠지. 하지만 그게 자네에게 좋은 일일지 모르겠군.”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 없습니다. 박사님의 연구 결과가 무엇이든 제가 그것을 완전히 신뢰할 이유도 없고, 신앙이 흔들리기라도 할 이유는 더욱 없으니까요.”

 

“알았네. 따라 오게.”

 

 

두 사람은 정원의 나무 의자에서 일어나 낡은 집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가구가 놓여있는 내부는 소박했다. 박사는 익숙한 움직임으로 낡은 소파를 밀고 지하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고, 두 사람은 어둑어둑한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잠시 후, 바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와 시설의 연구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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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는 연구실 중앙에 장치된 모니터로 남자를 데려갔다. 작은 버튼을 누르자 구식 8mm 카메라로 찍은 듯한 비디오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자, 이걸 보게.”


“이건 무슨 영상이죠?”


“임사체험자의 저승 기억을 재구성한 것일세. 기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누구나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영상 형태로 만드는 것이 내 연구의 핵심이었어.”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요?”

 

 

남자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노이즈가 많이 섞여 있었지만, 분명히 1인칭 시점에서 바라본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듯한 배경들과 흰 옷을 입은 존재들, 그리고 하늘을 날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장면 등이 등장했다.

 

 

“가능하더군. 시냅스 재구성법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알아냈네. 죽음 후의 기억도, 살아 돌아온 이상 뇌에 시각적인 정보로 저장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거지. 거기에 몇 가지 뇌신경학적 기법을 더해서 이렇게 알아볼 수 있는 영상을 뽑아 낼 수 있었네.”

 

 

버튼을 다시 눌러 재생을 멈추며 박사가 말했다.

 

 

“이건 흥미로운 부분들을 골라 시연용으로 편집한 거네. 하지만 조작을 가한 것은 없어.”

 

“대, 대단합니다. 우리 교단에서 이야기하는 천국과 거의 흡사하군요! 영상은 이것 하나 뿐인가요?”


“아닐세. 시도한 대상의 절반 정도에서 영상을 얻을 수 있었지. 나머지 절반이 실패한 것도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네.”

 

 

박사는 턱으로 스크린 옆의 선반을 가리켰다. 다양한 내세 영상을 녹화한 듯한 디스크 수십 장이 사람 이름이 붙은 라벨과 함께 정리되어 있었다.

 

 

“아니, 그렇다면 뭘 주저하십니까. 얼른 논문으로 정리해 발표하셔야지요! 다른 영상들도 비슷한 장면을 담고 있나요?”


“바로 그게 문제였네.”

 

 

박사가 말을 이었다.

 

 

“비슷한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것도 많았어. 지옥같은 곳을 묘사한 건 차라리 이해가 되지만, 아무것도 없는 사막이나 현대 도시와 비슷한 곳이 등장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네. 전혀 맥락을 알 수 없는 정신병자의 세상 같은 곳도 있었어.”

 


4.jpg

 

 

“그런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단 내세가 존재한다는 게 확인된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렇겠지. 그래서 나도 이 영상과 함께 결과를 발표하려 했었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내세의 모습이 학자로서의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지. 내세가 이렇게 주관적인 형태라면 뭔가 그만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나 말일세. 따라오게.”

 

 

박사는 영상을 끄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자가 뒤를 따랐다. 전등이 켜지자 푸르스름한듯 투명한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에는 젊은 여자가 누워 있었다.

 

 

“…누굽니까?”

 

“내 마지막 실험체일세. 아니, 실험체 ‘였다’고 말해야겠군. 죽었으니까.”

 

 

남자는 장치에 가다가가 여자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니, 저 사람은…!”

 

“그래, 자네도 안면이 있지. 가엾은 내 딸일세.”

 

 

남자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소리쳤다.

 

 

“무슨 짓을 한 건가요? 설마!”

 

 

박사가 회한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애는 악성종양 말기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고, 그저 빨리 죽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네. 그리고 나는 그간의 연구로 내세의 존재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 그래서 딸 아이를 고통에서 해방시키면서 내 의구심을 풀어내는 실험을 하는 데 별다른 죄책감도 없었다네.”

 

 

얼굴이 하얗게 된 남자가 V 자 형태의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도대체 따님으로 무슨 실험을 했단 말입니까.”

 

“자네도 알다시피 내 연구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임사체험, 즉 죽음의 경험 후에 살아 돌아온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 거였네. 단순한 경험담의 청취에서 시작했던 것이 결국 조금 전에 본 영상의 추출에까지 이르렀지. 하지만 각기 너무나 다른 영상의 형태와 내용 때문에 사후세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했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였어.”

 

“그래서…”

 

“그래서.”

 

 

박사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실제로 사람이 죽을 때, 정확한 죽음의 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해야 했네. 딸 아이는 고통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는 내 말에 설득됐고.”

 

“맙소사.”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남자가 연거푸 성호를 그었다.

 

 

“자네, 왜 그리 놀라나? 성직자인 자네야말로 내세를 확신해야 하지 않은가? 이 모든 연구가 바로 자네들의 그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어. 살아날 희망이 없는 병을 가진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사후 세계로 보내주는 것이 그리 두려운 일인가.”

 

“그렇지만…”

 

 

박사의 얼굴에 뜻모를 냉소가 번졌다.

 

 

“상관없네. 여하튼 자네도 실험 결과가 궁금할 테지?”

 

“…”

 

“의식이 있는 상태부터 약물 투여로 코마에 들어간 후 심장이 멈추고 뇌파의 활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를 남김없이 기록하고 파형을 디지털로 레코딩했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심장이 멈추고 나면 뇌파도 약해지면서 그래프는 결국 직선을 긋게 되네. 이게 상식이지.”

 

“그,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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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 지점에 뭔가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여겼네. 그래서 얼핏 직선처럼 보이던 뇌파 그래프를 최대한 확대해서 들여다 봤지. 그러자 심장이 멈춘 후에도 뇌의 활동이 한참이나 유지된다는 놀라운 사실이 드러나더군. 아니, 도리어 강한 의식의 고양 상태를 보여주는 파형이 약하지만 30초나 이어지더란 말일세.”

 

“심장이 멈춘 후에 말입니까?”

 

“그렇네. 그래서 그 30초 동안의 디지털 파형을 영상으로 재구성했지. 살아있는 사람의 저장된 기억을 영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힘든 일이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 하지만 그렇게 나온 영상은 도저히 판독이 불가능했지. 보겠나.”

 

 

박사는 서랍을 열고 ‘Emma’ 라는 이름이 적힌 디스크를 꺼내 플레이어에 넣었다. 모니터에서는 색과 명암이 빠르게 교차하는, 어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영상이 재생됐다.

 

 

“이건 그저 노이즈일 뿐이군요.”

 

“그렇지. 하지만 단지 스태틱 노이즈라고 하기에는 색과 명암이 선명하더군. 그래서 여러가지 작업을 해 보다가, 한번은 아주 느리게 플레이해 봤네.”

 

 

박사는 다이얼을 돌려 재생 속도를 조절했다.

 

 

“30배 느린 속도네. 어떤가.”

 

“달라진 점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겠지. 이건 어떤가.”

 

 

여전히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화면에 무엇인가 형체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저속 3만배일세.”

 

“3만… 배 라고요?”

 

“이제 한번 다시 보게나.”

 

 

박사는 다시 한번 다이얼을 조작했다. 화면에 구조물, 하늘, 사람 등으로 보이는 형체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3천만배일세. 저렇게만 생각해도 1초가 1년인 거지.”

 

“그 말씀은…”

 

“그래. 엠마의 죽어가는 뇌 속에서 저런 일이 벌어졌단 말일세. 기술의 한계로 더 이상의 저속 재생은 불가능하지만, 실제로는 60배 정도 더 느려져야 정상 속도로 보일걸세. 즉, 우리의 1초가 저 속에서는 60년인 셈이네.”

 

 

남자의 얼굴이 충격 속에서 굳어졌다.

 

 

“그렇다면 뇌의 활동이 완전히 사라지고 진정한 죽음이 올 때까지의 30초는 엠마의 머리 속에서 몇 년이었겠나?”

 

“…1,800 년이군요”

 

 

박사가 말 없이 영상을 정지시켰다. 마치 셔터를 오래 열고 촬영한 것처럼 번진 화면 속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10년 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일세. 엠마가 어렸을 때 많이 따랐지. 무척 그리워했고.”

 

“하지만 저것은…”

 

“그렇다네. 진짜가 아니지. 어머니의 영혼이 아니야. 엠마의 죽어가는 뇌가 기를 쓰고 재구성한 영상일 뿐인 거지.”

 

 

남자는 현기증을 느끼며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이제 알겠나. 나는 이 연구를 통해 그저 내세가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내세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 버린 거야. 내 자신의 경험을 포함해 그 많은 임사체험들, 그리고 인류 역사 속에서 전해져 온 사후 세계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 나아가 자네의 교단을 포함한 모든 종교들의 내세관이 어디에 바탕하고 있는지, 말 그대로 내 눈으로 보고 만 것일세.”

 

“어떻게 이런 일이.”

 

“나도 처음엔 큰 충격을 받았지. 하지만 평생에 걸친 긴 꿈을 꿔도 실제로는 단지 몇 분이 지났을 뿐이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네...  저 현상은 심장이 멈추기 조금 전부터 시작되더군. 죽기 직전에 평생의 영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하지 않던가. 뇌가 죽음을 감지하면서 이미 폭주가 시작되는 거지

 

 

박사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그 짧은 시간동안 엠마는 긴 사후 세계를 실제처럼 경험했을 걸세. 그렇다면 본인의 입장에서는 내세가 있었던 거라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닐까?”

 

 

남자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30초였을 뿐입니다! 이제 그녀는 소멸하고 없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허나 자네가 말하는 그 ‘실제’라는 건 뭔가. 딸 아이는 죽은 후 수천 년의 긴 삶을 살았네. 그게 부족하다면 우리는 대체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 건가. ‘영원히’ 살 수 있을 때만 우리 존재는 의미를 가지는 건가? 설사 영혼과 내세가 있다 한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남자는 멍한 눈으로 모니터의 멈춰진 화면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충격이 가신 후,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지 생각해 봤네. 아마도 진화의 산물일 거야.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서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위험을 피해야만 하지. 그렇지만 반대로 죽음이 완전한 소멸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 개체는 공포심으로 어떤 모험이나 희생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생존과 연명만을 도모할 걸세. 그런 행위는 오히려 종 전체의 번성에 해가 되겠지.

 

“그래서 인류가 이렇게 진화했다는 말입니까. 죽음의 순간부터 사후 세계를 뇌 속에서 그려내도록? 그리고 우연히 살아 돌아온 개체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내세에 대한 경험담과 이미지를 퍼트려 죽음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을 피해갈 수 있도록…?”

 

“인류만이 아닐세.”

 

“뭐라고요?”

 

“엠마가 죽은 후에 쥐를 대상으로도 실험해 봤네. 비슷한 결과가 나오더군.”

 

“믿을 수가 없군요. 모든 생물이 그런 장치를 뇌 속에 갖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건 모르지. 적어도 포유류는 그렇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네. 소위 ‘포유류의 뇌’가 그 기능을 담당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연구할 생각이 없다네.”

 

 

잠시 말이 없던 남자의 얼굴 표정이 담담해졌다. 이윽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없다는 말씀이 이제 이해가 됩니다. 어찌보면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역사상 최대의 발견이겠지만요.”

 

“바로 그 점 때문이네. 나는 세상을 뒤집을 생각이 없어. 그런 책임을 질 수는 없다네. 게다가 연구를 위해 딸을 내 손으로 죽이기까지 했지…, 아무래도 바람을 좀 쐬어야겠군.”


 

박사는 무거운 몸짓으로 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향했다. 남자가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박사님.”

 

“왜 그러나.”

 

“미안합니다.”


 

그 순간, 남자는 어느새 손에 숨기고 있던 큼직한 메스로 박사의 등을 깊이 찔렀다.

 

 

“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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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경악 속에 뒤를 돌아보는 박사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그가 말했다.

 

 

“정말 미안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을 살려 둘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밝힐 생각이… 없다지 않았나.”

 

“언젠가 생각이 변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박사님, 인간은 약합니다… 우리들은 믿고 의지할 절대자와 그가 주재하는 세상이 꼭 필요합니다. 설사 환상이어도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두뇌 속의 허상 같은 것으로는 곤란합니다. 그런 것에 우리 존재를 의탁할 수는 없어요.”

 

“으음…”

 

 

신음을 흘리는 박사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부디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저도 이 연구실과 모든 데이터를 파괴한 후 박사님을 따라 가려 합니다. 저 역시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니까요. 헌데 박사님, 그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세상에는 인간이 알아서는 안되는 무엇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알게 되는 순간 존재의 바닥부터 무너져 내리는 그런 지식 말입니다…”

 

 

이윽고 등에 메스가 박힌 박사의 몸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남자가 성호를 그었다.

 

 

“이곳에는 불에 잘 타는 화학약품들이 많더군요. 30초, 아니 30분 동안 기다려 드리죠. 그 동안 박사님은 긴 세월을 살면서 이 모든 기억들, 조금 전의 고통도 결국 잊으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말을 마친 그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정원의 나무 의자에 걸터 앉아, 마시다 남긴 와인잔을 집어 들었다.

 

…황혼이 그 어느때 보다도 아름답게 일렁이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놀라운 실제 연구 결과를 포함한 이 소설의 해설편이 이어집니다.

 

 

 



 

 논설우원 파토

트위터 : @patoworld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