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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30. 월요일

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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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가 쿠바에 들어가기 전에 들은 정보는 "휴지가 없으니 휴지를 사가라", "현지인과 관광객 화폐가 다르니 조심해라" 정도였다. 모두 멕시코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자 커플이 해준 이야기다. 미국인이 쿠바를 여행할 수 있다니! 이것 또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쿠바 화폐로 열심히 검색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정보를 찾지 못하고 미국 달러가 쿠바에서는 똥값이니 멕시코 페소나 유로로 바꿔가라는 정보를 얻었다. 멕시코 페소와 두루마리 휴지 4개를 배낭에 넣고 미지의 나라 쿠바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우리 부부 외에 멕시코에서 만난 여학생도 함께 아바나 행 비행기를 탔는데, 우리는 서로 짠 것도 아닌데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멕시코 페소와 두루마리 휴지와 체 게바라 티셔츠. 든든했다.


쿠바에 가보니 미국 달러가 똥값인 건 사실이었지만 휴지는 어디에나 있었다. 그리고 체 게바라 티셔츠는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비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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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져도 쿠바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쿠바를 여행하는 한국인이 많지 않기도 하지만 쿠바 전역에서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탓이 크다. 아주 일부 인터넷 사용이 가능한 곳이 있긴 하나 평범한 여행자가 쿠바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외부와 단절된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인터넷이 가능한 곳으로 오더라도 이미 쿠바를 떠나는 순간 그곳은 꿈처럼 아득해진다. 말하는 순간 꿈에서 깰 것 같아서 우리는 입을 다문다. 그것이 좋은 꿈이든 나쁜 꿈이든 깨고 싶지 않은 꿈.


바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을 한국에 돌아와서도 종종 만나는데, 우리끼리도 쿠바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 모여 앉아 모히또나 만들어 마실 뿐.


용기 내 고백하는 건데 나는 아바나가 첫날에만 좋았다. 둘째 날부터 아바나와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름 후 쿠바를 나오는 순간까지 끝내 아바나에 적응하지 못했다.


쿠바는 나에게 나쁜 꿈이었을까. 더럽고 시끄러운 나쁜 꿈.



똥 트라우마


아바나 하늘은 맑고 청명하다. 하지만 아바나를 걸을 땐 하늘을 봐서는 안 된다. 저기 길 건너에 근사한 올드카가 지나간다고 넋을 놓고 쳐다보며 그쪽을 향해 걸어서도 안 된다. 멀리서 신나는 쿠바 음악 연주가 들린다고 혼 빼놓고 달려가서도 안 된다.


항상! 땅을 보며 걸어야 한다. 아바나 거리에는 개똥 소똥 말똥 어쩌면 사람 똥까지 골고루 널려있다. 하늘을 봤다가도 이내 다시 땅을 확인해야 하는 산책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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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발견할 때마다 남편 '두'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 소리 내어 "똥"을 외쳤는데. 뭐 거의 계속 외치며 다녀야 했다 "똥! 저기 똥!", "오빠 있잖아... 앗! 똥!", "오늘 저녁 뭐 먹지? 앗, 저기 똥!" 태어나서 똥이란 단어를 제일 많이 뱉었다. 덕분에 밟은 적은 없다. 아마 밟고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지만.


똥이 뭐가 그리 더럽냐? 그러는 너는 깨끗하냐고 묻는다면, 난 소심하게 기가 죽어 더럽다고 조용히 중얼거리고 말겠지만. 나에겐 똥에 대한 사소한 트라우마가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집부터 학교까지 걷는 이삼십 분 남짓 등굣길은 주택가 골목길이었는데, 길에는 개똥 천지였다. 조숙했던 여자아이는 똥을 밟지 않기 위해 똥이 저기 있는지 없는지 살펴야 했다. 하지만 또 똥을 보기는 싫어서 실눈을 뜨고 시야를 흐릿하게 만든 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하도 구석구석 살피는 통에 아마 그날 거의 대부분의 똥을 찾아냈을 거다. 그래서 나는 그때 개도 싫어했다. 아바나를 걷는데, 잊고 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그 스트레스도 함께. 아니, 이 멀고 먼 아름다운 남미 땅에서 그 기억이 떠오를 줄이야.


하지만 뭐, 똥만 있다면 괜찮다. 소와 말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싼 똥이 천지인 제주도의 오름을 걸을 땐 밟아도 뭐 상관없지 하는 기분이 드는데, 아바나엔 똥만 있는 게 아니다. 유리 조각이나 종이 따위의 쓰레기는 물론, 무너진 집에서 나왔을 법한 건축 폐기물도 거리에 흔하게 널려있다. 하루는 비가 왔는데, 비가 와서 거리가 깨끗해졌겠구나 기뻐하며 밖으로 뛰어나갔다가 화들짝 놀랬다. 거리엔 똥물이 흐르고 있었다.


커다란 컨테이너 쓰레기통이 골목골목마다 있는데, 거기에서 나는 악취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그 쓰레기통에서 삐져 나온 네 발 짐승의 것으로 보이는 다리도 본 적이 있다. 아, 제발 잘못 본 것이기를.


여하튼 아바나는 내가 걸었던 모든 중남미 땅 중에서 가장 더러웠다.



제발 나를 모른 척 해줘


여행을 할 때, 현지인인 척,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조용히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천천히 걷고 아무데나 쪼그리고 앉아 동네 사람들이랑 편하게 말을 섞고, 동네 애들이랑 마주보고 '꺄르르' 거리거나 아니면 조그만 카페에 단골인 양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행.


하지만 아바나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걸음걸음 사람들은 우리를 부른다. "헤이! 치노 코히바? 딱시?" 헤이! 거기 중국인 시가 필요해? 택시 탈래? 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나는 본인들과 다른 '관광객'이라는 걸 매 걸음 확인 시켜주는 쿠바노들.


그들이 몹시 귀찮았다.


"치노", "딱시" 하는 쿠바노들에게 보통은 "노 그라시아스. (노 땡큐)" 대꾸하고 지나갔지만 몹시 피곤한 날은 못들은 척 냉담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않고 지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지나치고 나면 마음이 또 불편해졌다. 혹 나의 외면에 저들이 상처받지 않았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 보면 걸음걸음 피곤이 더해졌다.


상처를 받는 건, 정작 나였는데.


하늘도 맑고 볕도 좋고 그래서 기분도 좋던 어느 날. 거의 깽깽이 걸음으로 깡총거리며 아바나 시내를 걷고 있었다. 그런 날은 달려드는 쿠바노들에게도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달려드는 삐끼들을 적당히 뿌리치며 길을 걷다가 웃는 모습이 기분 좋은 덩치 큰 흑인 언니와 마주쳤다. 입술 위가 거뭇한 게 아마도 옆 나라 아이티 사람인 것 같았다. 머리를 땋아준다고 한다. 냉큼 얼마냐 물으니 10cuc. 만 원이 조금 넘는다. 평소 같으면 협상을 해야 했지만 기분이 정말 좋은 날이라 깎지도 않고 거리의 나무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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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 앉아 머리를 땋고 있는데, 저만치 청바지에 청자켓에 기타를 멘 삼인조 악단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내 앞에 서서는 연주를 시작하네? 이런 경우 다른 나라였다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게 정상이겠지만 여기는 아바나. 이런 연주는 100퍼센트 돈이다. 꼼짝없이 머리를 잡힌 채 앉아있는 내 앞에서 짧은 연주를 하더니 팁을 달라고 한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니까, 큰 맘 먹고 1cuc를 건넸는데 너무 적다며 인당 1cuc 씩 달라고 한다.


아, 여기는 아바나.


머리를 다 땋고 돈을 주고 일어나려는데, 이 언니, 고급 머리 끈을 썼다면서 두 배의 돈을 요구한다. 돈 없다고 더 못 준다고 하고 얼른 일어나는데 그토록 예쁘게 웃던 언니가 무서운 얼굴이 되어 우리를 노려본다.


아, 그래 여기는 아바나.


우리를 부르는 쿠바노들에게 마다 온몸으로 화를 내며 숙소로 돌아왔다.


가이드북 '론니플래닛' 남미 편에는 쿠바가 여성 여행자가 여행하기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쓰여있다. 사실 그렇다. 밤거리는 낮보다 환하고, 맥주병을 손에 들고 새벽까지 거리를 휘청거려도 누구도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안전하다는 쿠바에서 매 순간 긴장하며 지내야 했다. 거스름돈을 받을 때면 혹시 잔돈을 적게 주지 않았나 꼼꼼히 세어봐야 했고, 혹시 누가 나에게 '팁'을 바라며 친절을 베풀기라도 할까 봐 다가오는 사람에게 예민하게 굴었다. 사소한 긴장으로 촘촘히 채워진 하루.


아바나를 떠나기 전 날, 거리에서 길 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거리를 걸으며 고양이 밥을 줬다. 따뜻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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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끝에서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도 고양이 세 마리가 있는데, 집에 같이 가서 볼텐가" 초대했지만 우리는 응하지 못했다. 따라갔다가 혹시나 돈을 요구한다면 우리와 할아버지의 선량한 사이가 깨어질 것이 두려웠다.


할아버지와 인사하고 돌아서며 안전하다는 게 도대체 뭘까. 내 목숨을 위협하지 않고, 내 가방을 뺏어가지 않으면 안전한 건가. 하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웠다. "안전하긴 뭐가 안전해 내 마음은 이곳에서 이토록 의심투성인데" 죄 없는 가이드북에게 화를 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싶어진 거다. 뒤늦게 조바심이 났다.


떠나는 날 아침 배낭을 다 싸놓고 남편과 다시 길을 나섰다. 어제 만난 그 할아버지를 만나야 했다. 같이 길 고양이 밥을 주고 할아버지 댁에도 가야 했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던 공원, 함께 걸었던 길을 몇 번이고 되짚어 걸었지만 다시 만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아바나에 대한 경계를 끝끝내 풀지 못했다.



안녕 아바나


이리저리 똥을 피해 가방을 끌며 골목을 걸어 나와 달려드는 쿠바노들과 요금을 협상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는 말레콘과 혁명광장을 지나 달린다. 아바나 거리를 바라보자니 문득 눈물이 났다. 섭섭한 것도 시원한 것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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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래도 이곳에 다시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 시끄럽고 더러운 지긋지긋한 아바나에.


나쁜 꿈일지라도 오늘 밤은 쿠바 꿈을 꾸어야지. 아, 그렇다면 잠은 좀 설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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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는 두 종류의 화폐가 있다. 여행자 화폐(CUC)와 내국인 화폐(MN)가 분리되어 있으며, 여행자 화폐 쪽이 월등히 비싸다. 여행자도 내국인 화폐를 사용할 수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히 교통이나 숙박의 경우는 CUC 사용을 강요 받는다. 심지어 CUC은 쿠바 외의 지역에서는 화폐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지 못하며, 쿠바를 벗어나면 환전도 불가능한 종이 쪼가리가 된다. 다 쓰고 가라는 뜻이다. 쿠바에 가면 쿠바 법을 따라야겠지만, 이건 좀 당황스럽다. (1 CUC = 1 USD, 1 CUC = 24 MN, 즉 1 CUC은 약 1,100원, 1 MN은 46원 정도)


MN 기준, 쿠바의 물가는 말도 안되게 저렴하다.


커피 한 잔에 고작 1 MN (약 50원)


햄 샌드위치는 3~5 MN (150~250원)


커다란 소시지가 들어간 핫도그는 10 MN (500원)


갓 구운 치즈 피자 한 판에 10 ~20 MN (500~1000원)


가격이 저렴한 만큼 맛도 저렴하긴 하지만 입맛 또한 저렴하다면 어쨌든 정말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사실 MN로 생활하려면 맛이나 편의성은 상당 부분 감수해야 한다. 피자를 신문지에 싸준다거나, 볶음밥을 시켰는데 숟가락을 주지 않는다고 당황해서는 안 된다. 빵을 씹다가 턱이 아파져도 하소연할 수 없고, 앉을 곳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서서 먹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어쨌거나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24 MN, 1 CUC으로 두 끼 식사 정도는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피자 두 판, 커피 네 잔)


아내 단과 나도 대부분의 식사는 MN로 해결했고, 특히 500원짜리 치즈 피자를 즐겨 먹었다.


하지만, 라 보데기따La Bodeguita del Medio-헤밍웨이가 모히토를 즐겨 마셨다던 그곳-에서 연주하던 밴드에게 사진을 찍은 대가로 1 CUC을 팁으로 줬다가 격한 코웃음과 비아냥을 듣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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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무 적은 돈'이라는 것이다.



월급은 이만 오천 원, 밥 한끼에 오천 원


쿠바의 많은 호객꾼들이 똑같이 하는 말이 있다.


"친구, 겨우 5 CUC이야"


"친구, 고작 10 CUC이라고"


쿠바 의사들의 월급이 25 CUC 정도, 다른 대부분의 직업도 그 이하거나 유사한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10 CUC이라는 돈 어디에 '고작', '겨우'라는 부사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 것일까. 10 CUC이면 네가 한 달에 버는 돈의 40%라고!

 

CUC를 사용하는 식당은 대부분 한 끼에 5 CUC 이상, 비싸면 10 CUC 이상 소요된다. MN 물가와 비교하면 최소 10배 이상 비싼 가격이고, 현지인의 (공식적인) 소득 수준을 생각한다면 쿠바인에게는 사실상 제한구역인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많은 쿠바노들이 CUC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밥을 먹고, CUC로 술을 마신다. 또 어떤 택시 기사는 2만 유로짜리 갓 뽑은 새 차를 몰기도 한다 (의사 월급을 66년 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돈, 실제로 우리가 이 택시에 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이 경제 구조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삐끼맨 비긴스


올드 아바나, 오비스포 거리에는 1 MN(50원)짜리 에스프레소를 파는 가게가 있다. 제법 맛도 있고, 손님도 많다.

  

주인장은 숨쉴 틈 없이 일한다. 혼자서 커피를 내리고, 서빙을 하고, 계산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커피를 내린다. 물이 떨어져서 기계를 돌리지 못할 때를 제외하고는 밀려드는 손님으로 도무지 쉴 틈이 없다. 하지만 그래 봐야 한 시간에 50잔 팔기가 어려울 것이다. 판다고 해봐야 고작 50 MN, 2 CUC을 벌 뿐이다.


외국인을 태우는 택시 기사는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도 최소 3 CUC을 부른다. (그것도 잔돈이 있을 경우다. 섣불리 5 CUC이나 10 CUC 짜리를 냈다가는 거스름돈을 받지 못할 것이다)


까사(숙소)는 1박에 최소 10 CUC이다. 1명이 2일만 묵으면, 한 달 월급이 생기는 셈이다. 세금 등을 통해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지고 있겠지만 쿠바는 관광객을 호구화하는 시스템이 이미 국가적으로 갖춰져 있는 듯 하다. 누가 봐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이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그래서 많은 쿠바인들은,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호객꾼이 된다. 삐끼질의 시작인 것이다.



웰컴 투 김성모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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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에는 견디기가 좀 힘들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매 발걸음마다 삐끼들이 들러 붙는다. 쿠바인의 건장함이 아니었다면 저리 좀 꺼지라고 주먹을 휘둘렀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능력은 코히바(시가), 택시, 바닷가재, 공연, 매춘, 심지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다는 전지전능함에 이른다. 더군다나 끈덕지다. 관심이 없다고 하면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다.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하면 그럼 쿠바에 왜 왔냐고 묻는다. 아예 대답을 안 하면 '헤이 치노(중국인)'를 외치며 끝까지 따라 붙는다. 어디라도 들어가려고 하면, 잽싸게 먼저 들어가서는 가게 주인에게 자기가 데려왔다며 커미션을 요구한다. 화폐 가치가 낮은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 여행자의 미덕이라고 생각했지만, 쿠바에서 이 미덕을 행하다가는 하루 아침에 오링이 날 판이다. WBC에서 쿠바 대표팀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시가를 팔았다는 뉴스를 보면서는 그저 웃었다. 이쯤 되면 국민성이다.


직선적이고 솔직한 심성도 한몫 한다. 팁을 요구하는 데 주저함 따윈 전혀 없다.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넌 돈이 많고 난 돈이 없으니 네가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은 당연한 거야, 내가 널 도와주는 것은 팁을 받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인 것뿐이지 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함께 여행하던 친구 하나는 아바나 국립현대미술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데, 옆에 있던 쿠바인이 비누를 집어주고 팁을 요구했다고 한다. 김성모 월드가 현실에서 펼쳐진다.


확실히 쿠바는 격렬한 변화 중에 있는 듯 했다. 


소위 돈 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체 형님이 작금의 현실을 보고 있다면 분명 슬퍼하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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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다. 이 모든 부조리함에 진저리를 치더라도 쿠바를, 아바나를 왠지 싫어할 수가 없었다. 좋아할 이유보다 싫어할 이유가 훨씬 많았지만 나는 의외의 부분에서 너그러워지곤 했다.


아바나에는 어제 걸은 그 거리를 오늘 또 걷고, 다음 날 또 걷고 싶어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비록 삐끼에 지쳐 한 시간 만에 되돌아오더라도, 또 기운이 나면 바로 나가고 싶어지는 그런 에너지 말이다.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다. 아바나 거리는 이국적이긴 하지만, 무조건 아름답다고만 할 수는 없다. 중심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건물은 쓰러져가고, 거리에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가 넘친다. 보폭이 2m 쯤 되는 사람이라면 똥만 밟으면서 도시를 일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밖에 나가 걷고 싶어지는 이유는, 아바나의 거리에는 쿠바노의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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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먹고 자고 싸고 일하고 사랑하고 논다. 아무리 잘난 척 해봐야 결국 그게 사람 사는 삶이야- 라고 외치는 듯한 풍경.


특별히 포장하지 않은 날 것 상태의 삶을, 한 명 한 명의 일상의 자취를 마치 유화처럼 덧대어 그린 도시, 조금 더럽고 지저분하고 노골적이더라도, '사는 것이 원래 그런 거야'라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도시, 그것이 아바나인 것 같았다.


사실 아바나가 좋은 또 다른 이유라면, '쿨한 사람이라면 쿠바와 아바나를 좋아해야 한다' 같은 허세 섞인 강박관념의 발로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청소를 미뤄둔 내 방 같은 아늑함이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똥냄새 사이로 간간히 풍겨지는 커피 내음이 좋아서일 수도 있겠다.



애증의 도시, 아바나


내게 아바나는 애증의 도시가 되었다.


나름대로 좋고 싫음이 확실한 나는 애증이라는 감정에 그리 익숙한 편이 아니지만 아바나만큼은 이 단어처럼 적절한 설명이 없을 듯 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도시의 매력에 감탄했다가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과 냉소를 내뱉곤 했다.


더럽고, 시끄럽고, 관광객은 순 호구 취급에, 각종 사기와 바가지가 극성을 부린다. 혁명의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체를 팔아 지갑을 채우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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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는 곳 어디에서나 음악이 들리고 올드카가 활보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늘어선 거리는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으며 사람들은 열정적이고 놀랄 만큼 솔직하다.


보름은 짧았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아쉬움뿐이었다. 아바나에서 하고 싶었던 것들은 대부분 해보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들이 아쉬웠다.


이 도시에는 언젠가 분명히 다시 와서 그 아쉬움을 채우고 가겠지, 그리고 더 큰 아쉬움을 남기고 가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집부 주



이 글은 딴지일보의 무규칙 이종매거진 

<더딴지> 13호에 실린 글의 전문입니다.


단&두의 여행 글은 지금까지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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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


편집 : 너클볼러, 퍼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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