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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추천12 비추천0

2014. 06. 16. 월요일

정치부장 물뚝심송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대머리 아저씨 하나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바로 위대하신 박근혜 대통령 각하께서 차기 총리로 지명하신 문창극 전 중앙일보 부사장 대우 주필 문창극 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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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제위께서 익히 아시다시피 딴지일보 편집부에서 몇 년 굴러먹다 보면 모발의 개수가 줄고 단면적이 감소하는 증상이 있다. 따라서 문 총리 지명자의 두발상태를 보자마자 '중앙일보 역시 오래 근무하면 모발의 개수와 단면적이 공히 감소하는 극악한 근무환경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건 이 글의 내용과는 하등 관계가 없고…….

 

도대체 이 분이 어떤 분이길래 세상이 이리 시끄러운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던 본 부장은 잠시 혼란에 빠져 버렸다.

 

혹자는 이 자를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자라고 비난을 하고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자를 친일 사관을 가진 자라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이 자를 기독교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버린 광신자라고 비난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뉴라이트인가?

 

뉴라이트 사관이라는 것은 뭐 대충 말하자면 “식민지 근대화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역사관 아니겠는가? 더 복잡하게 따져봐야 하등 영양가가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치자.

 

말인즉슨, 일제가 우리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여 지배한 식민 시대가 그냥 참혹하고 눈물겨운 수탈의 시대만은 아니었고, 그 기간 동안 수탈을 위해서건 징병을 위해서건 뭐건 간에 우리 한반도에 각종 공업 시설 및 교통망을 확충했고,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구려빠진 각종 관습과 제도를 혁파하고 교육제도를 바로 세워 결과적으로 우리 민족을 근대화시켜 줬으니 이 또한 그리 나쁘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하는 지렁이 용틀임하는 소리를 폼나게 일컬어 식민지 근대화론이라 하고, 그 이론을 기반으로 우리의 근현대사를 재해석하려는 역사관을 우리는 보통 뉴라이트 사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문창극 총리 지명자의 발언을 약 3분 20초 정도만 지켜보면, 이 자는 그런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주 쉽게 발견하게 된다.

 

일단 문 지명자는 일제시대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을 한다. 으잉? 일단 하나님이 등장하면 이건 뉴라이트 사관, 아니 그 이전에 역사관 자체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우기기 전문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런 발언의 근거가 되는 사고체계가 “종교적 역사관”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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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하나님의 뜻이라 치자. 그러면 그게 상인가, 벌인가? 문 지명자의 발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게 시련의 형태를 띤 은총이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사 시련을 줌으로써 우리 민족의 미래를 더 번성하게 하려는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다는 것을 자기는 간파했다는 얘기다. 눈치도 빠른 인간...

 

그런데 왜 하필 그런 시련을 주시는가? 그것도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이조 500년동안 너무 게을러서 라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본 부장은 상당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아, 나만 게으른 것이 아니었구나,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몽땅 게을렀구나. 나는 표준형 조선민족이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씨바, 근데 왜 조선조도 아니고 이조인가? 이런 용어를 쓰니까 자꾸 친일파로 오해 받는 거 아닌가 말이다. 역시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문 지명자는 절대 친일파도 아니다.

 

하여간, 이 분의 설명에 따르면 이조 500년간 우리 민족은 지나치게 게으른 민족성을 사해 만방에 떨쳐 왔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제 그만 좀 게으르라고 일제시대를 선물로 주신 거다.


이 부분에서 이미 문 지명자의 세계관은 뉴라이트와는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근대화가 앞당겨졌다는 뉴라이트 사관은 이 분의 주장 앞에서는 빛이 바랠 수 밖에 없다. 근대화 따위가 문제가 아닌 거다. 신께서 우리에게 게으름을 떨치고 일어서서 번성하라는 은총을 내린 것이다.

 

그 뿐인가? 이어지는 해방 정국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우리 민족을 지옥으로 떨어끄릴지도 모르는 가장 큰 적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바로 공산주의자 빨갱이 시키들.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그 간악한 빨갱이 무리로부터 지켜주시려고 분단을 주신 것이다. 분단이 없었으면 우리 한반도는 몽땅 공산화되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하나 더 있다. 분단으로도 모자라 전쟁까지 주셨다. 분단만 되고 전쟁이 없었으면 우리를 지켜줄 미국이 우리를 떠났을 거라는 얘기다. 그나마 전쟁이 나서 미국이 우리를 지켜줬고, 그나마 전쟁이라도 했으니 이제 우리가 이 정도 먹고 사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베트남이나 중국, 아니 중국은 요즘 잘 나가니까 빼고, 북한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고 몸서리를 친다. 그러지 않았으니 이 얼마나 큰 은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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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다 신의 은총이자 선물이라는 거다. 뉴라이트 꼴통들도 이런 주장을 펼치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만한 배포는 없다. 그저 쪼잔하게 역사적 사료를 긁어 모아, 그래도 일본이 우리에게 나쁜 짓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르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기가 힘들지도 모르지 않는가 라고 주장하며 그 얘기를 어떻게 교과서에 좀 써볼까 하고 획책하고 있을 뿐이다.

 

문창극 지명자의 역사관은 뉴라이트 사관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그의 강연에서 드러난 그의 사관은 결코 뉴라이트의 범주 안에 머물고 있는 그 무엇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친일파인가?

 

친일 이전에 그는 친미인가? 본인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나님이 미국을 붙잡기 위해 전쟁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줬고, 그 이후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을 해서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미국이 다 사줬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고 물어보면서도, 그렇다고 자기가 친미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사람이 얘기를 하면 좀 믿어 주자.

 

그리고 나서 오히려 우리의 경제발전은 사실 일본 덕분이며,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우리 옆에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주장을 한다. 이거 이거 친일파 같은데.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읽어 보면 이 사람은 절대 친일파가 아니라는 사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경제개발 시대의 우리가 일본의 기술을 베껴 와서 발전을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오늘날 일본이 별 볼 일 없는 상태라고 지적을 한다. 맞는 말이지 않은가?

 

오히려 긴 시간을 들여 중국과의 관계를 역설하며, 앞으로 세계사의 발전의 흐름이 대서양 축에서 태평양 축으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우리가 있는 동아시아로 그 흐름의 중심이 옮겨 올 것이라고 주장을 한다. 굳이 일본한테 잘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렇게 약간 합리적으로 보이는 발언을 하다가도 그 살벌한 경쟁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터치가 필요하다”면서 하나님과의 스킨쉽을 강조하는 터치성애자 같은 발언으로 옆길로 새기도 하지만, 이 분은 친일파라는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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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사랑해주세요 더!

 

그저 잘 살고 싶어하는 그런 사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뿐이다.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위안부 관련 발언도 마찬가지다. 정녕 친일파라면,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며, 심지어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일본군을 따라다닌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분은 그러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는 예전과는 다르게 선진국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굳이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은 국가가 됐다”라고 말씀하셨다.

 

즉, 핵심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잘 나가기 때문에 일본에게 사과하라고 조르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이다. 호쾌하기까지 하다.

 

 

한국정부 :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속히 사과하라!!

 

일본정부 : 사..사과하겠습니다.

 

문창극 : 필요 없어!!

 

 

이런 상황이 머리에 떠오른다. 이게 과연 친일파의 발언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그저 이 분은 ‘하나님의 뜻’에 입각해서, 그냥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잘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진 그런 사람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나 뭔가 찝찝하다. 하나님의 뜻이야 뭐 종교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저 더 잘살아보자고 외치는 새마을주의자의 발언이라 하더라도 뭔가 졸라 재수가 없다. 도대체 그 재수없음의 기원은 무엇일까?

 

도대체 뭐가 이 분의 발언 하나하나가 그토록 재수없어서 모든 사람들이 화를 낼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일까?

 

본 부장, 장시간 화장실 비데 위에 앉아 고민을 하다가 문득 그 답을 찾았다. 바로 모 강연에서 문창극 총리 지명자가 언급했다는 윤치호의 이름에서 그 단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윤치호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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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1865~1945)




윤치호

 

윤치호는 구한말의 인물이다. 1865년에 태어나 1945년까지 살았던 사람이니 한참 윗 세대의 사람이기도 하다. 으리으리한(의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많이 하고 독립운동도 하는 것 같더니 결국 일제에 협력했던 사람이며, 문창극 지명자의 말에 따르면 영어도 잘했다고 한다. 구한말 당시에 이미 영어로 일기를 썼던 사람이다. 이 사람과 비교하면 우리는 다 죽어야 한다고 문 지명자가 주장하기도 했다. 영어로 일기를 안 쓰면 왜 죽어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윤치호는 나름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해서든 개화시켜 보려고 노력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포기한다. 왜? 사람들이 하도 멍청해서. 농담이 아니다. 그 이후로 윤치호는 사회개조론을 내세운다. 국가개조론은 아니지만 뭐 별로 다르지도 않다. 아니 써놓고 보니 뭔가 맥이 통하는 것 같기도 한데?

 

어찌되었거나 윤치호의 기본적인 정서는 이렇다.


“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겠다.” (1890년 5월18일 일기)

 

“만약 내가 마음대로 내 고국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일본을 선택할 것이다. 오, 축복받은 일본이여! 동방의 낙원이여!”(1893년 11월1일 일기)

 

“인종편견과 차별이 극심한 미국, 지독한 냄새가 나는 중국, 그리고 악마 같은 정부가 있는 조선이 아니라, 동양의 낙원이자 세계의 정원인 축복 받은 일본에서 살고 싶다.”

 

“청인(淸人)의 집은 음침하기 측량 없어 일본 사람의 정결하고 명랑한 집에 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의 똥뒷간 같은 집이야 어찌 청인의 2층집에 비하겠는가.”


아, 재수없어. 졸라 재수없어. 이런 씨바, 더럽게 재수없어.

 

윤치호는 이 조선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미개하고 더럽고 게으르고 개화되지 못한 것을 정말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혐오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이 나라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을 가르치고 사회를 개조하고 해야 한다고 믿었고 그렇게 노력을 하다가 일제에 협력까지 하게 되고 사람들을 끌어다가 전쟁터로 내 보내고 그러는 활동에 매진하게 된다. 진짜 돌아가신 분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해방 되던 해에 돌아가시길 참 잘헀다.

 

이런 정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비하’를 유발하게 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못났을까? 왜 이렇게 우리는 찌질할까? 왜 우리는 더럽고 불결하고 게으를까? 왜 우리는 아직도 개화되지 못했을까? 우리는 안될 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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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하甲 

출처 -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

 

이런 정서는 굉장히 다양한 잘못된 추론을 초래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렇게 미개하니 타국의 지배를 받는 게 낫겠다, 하는 식민사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렇게 발전한 사람들이 많고 일제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이 되기도 한다.

 

또 우리는 이렇게 엉망이니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저 나 혼자서라도 잘 먹고 잘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세속적 이기주의로 발전하기도 한다.

 

또 우리는 이렇게 엉망이고 나 또한 엉망이니 그저 개같이 돈이나 버는 게 장땡이라는 천민자본주의로 발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주 극심한 경우는 지나친 자기 혐오로 발전하면서 염세주의자가 되기도 하고, 실제로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손으로 끊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여간 자기 비하는 그다지 건강한 사고체계는 아닌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자기 객관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거기다가 윤치호가 혐오했던 것은 실제로는 별것도 아닌 ‘물질문명의 발달 수준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그다지 비하를 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는 얘기다. 당시 유럽은 뭐 얼마나 깨끗했다고 그러는 걸까?

 

어찌했거나 윤치호는 자기 비하에 기반을 하고 사회를 자기 입맛에 맞도록 개조하려는 세계관을 가졌던, 어쩌면 자기비하 사관의 창시자였을지도 모른다.

 

 


문창극의 역사관

 

문창극 총리 지명자는 강연에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언급할 정도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로 보인다. 아예 강연 첫 문장이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뭐 이런 걸로 시작을 한다. 교회에서 행한 강연이라 할지라도 설교도 아닌데 이렇게 강연의 서두를 장식하는 일반인은 별로 없다.

 

그는 왜 이렇게 기독교에 몰입하게 된 것일까?

 

강력한 심증에 의해 추론하자면, 문 지명자 역시 자기 비하에 빠져 있었고, 그 자기 비하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기독교의 정신을 차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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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강연에서도 윤치호의 흔적과 유사하게 자기 비하들이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조선시대의 상황에 대해서 1832년 서해 몽금포에 당도해서 목격한 독일기독교 선교사 퀴츨 라프의 증언 :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의 피부는 때로 덮혀 있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이 같은 해충이 득실댔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 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살림 도구는 서툴게 빚어졌다. 진흙으로 빚어졌는데 상상할 수 없이 조잡했다.”

 


1874년 프랑스의 달레 신부의 증언 :

 

“창고의 저장은 장부 상에만 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 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나부랭이를 대신 갖다놓았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다. 길마다 송장이 널려있다.”

 


1890년 영국의 비솝 여사가 쓴 <조선나라와 그 이웃나라들>에서 발췌 :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일본 사람들이 거주하는 부산의 동래를 가보니 동래 현은 그렇게 깨끗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하지만 조선 사람들이 사는 부산진은 왜 이럴까. 서울도 마찬가지다. 냄새가 나고 다닐 수도 없을 정도였다. 영월에 가서 잠을 청했는데 빈대나 이 때문에 잠을 못잘뿐더러 잠자리를 동네 수많은 사람들이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지켜볼 정도였다. 여행을 하다가 양평까지 당도해서 양평군의 사정을 알아보았는데 그 조그만 동네에 이방이 800명이나 있었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 사람들을 다 누가 먹여살릴까. 백성들이 먹여살린다. 이방들은 사람들의 집에 뭐가 얼마나 몇 개씩 있는지 다 알고 있다. 어떤 백성이 열심히 일해서 무언가 남아서 가재도구를 새로 마련하면, 이방이 그 백성을 불러서 무조건 곤장을 친다. 네 죄는 네가 알지 어서 네 죄를 고하라고 말이다. 조선 사람들은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왜? 일을 해도 남는 건 다 빼앗겨 버리니 말이다. 그런데 연해주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가서 목도해보니 깜짝 놀랐다.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인과 달리 연해주의 조선인들은 러시아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살고 있었다. 나라가 잘못되어서 이런 것이다. 백성이 뭘 얻기만 하면 곤장을 쳐서 빼앗아버리는 나라에 있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온누리 교회 강연 녹취록에서 발췌


뿐만 아니다. 문 지명자는 자신의 강연에서 자기 비하로 가득 찬 윤치호의 글들을 상당수 인용하기도 한다.

 

“러시아와 일본 간의 러일전쟁이 조선땅에서 일어났다.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고종)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민비)은 미신을 섬기는 것의 반만큼 백성을 섬겼다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을 수도 있다. 조선은 당시 기울어져가는 나라였고, 조정은 물론 대신들도 부패하고 민중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던 상황이다. 그러나 500년 내내 그랬을까? 또 실제로 그랬다 하더라도 모든 나라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거의 정규 과정처럼 겪기 마련이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마치 본질적이며 영속적인 상황인 것처럼 치환해 놓고 자기 비하에 빠지는 것이 적절한 반응일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문 지명자는 그것을 본질적인 문제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그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기독교 신앙, 즉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비하는 자신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외부의 구원이 필요하다. 엉망이 되어 아무도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필요하듯이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비천한 무리는 외부의 구원이 없으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당시 조선은 기독교 국가가 되었어야 하지만 그렇게 못했고, 일제시대를 맞이하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그 증거로, 이승만의 당시 글을 제시한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 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에서 일어나고 썩은 데서 싹을 띄우자고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국 사천이백삼십칠년 유월이십사일.” 


이승만의 <독립정신>에서 발췌

 

이승만이 원하던 대로 기독교 국가가 되었으면 우리 모두 이 비천한 상황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다고 믿는 것이다.

 

이거, 무척 편한 논리다. 일단 자신의 상황은 무척 개판이다.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엉망이다. 그러나 여기서 탈출하려면 신의 구원이 있으면 된다. 신의 터치가 필요하고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그러면 신의 뜻만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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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헷~ 나 잘하고 있죠?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풀려 나간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를 이렇게 비천하게 놔뒀을까? 우리가 게을러서 벌 받은 거다. 우리를 사랑한다면서 왜 일제시대 같이 힘든 시기를 겪게 했을까? 게을러서 그렇다니까!!

 

일제는 그렇다 치고 분단은 왜? 아직 벌이 덜 끝났고... 또 공산주의자 무신론자 빨갱이 시키들로부터 구해주려고 그런 거야. 분단은 그렇다 치고 전쟁은 또 왜? 그건 미국이 너희들을 버리려고 하길래 미국이 정신차려서 한반도에 눌러 앉게 하려고 한 거지.

 

그 뒤로는 뭘 해줬는데? 너희가 열심히 일하니까 그거 미국에 잘 팔게 해주고 일본 기술을 베껴다가 산업 발전되게 해 줬잖아. 등등.

 

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아직도 비천하다. 자기 비하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원래 신 앞에 인간은 모두 비천한 존재니까. 그러나 신의 뜻만 이해하고 신의 뜻에 따라 행하면 그 비천함이 조금은 사라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의 뜻은 도대체 누가 해석하냐는 거다. 돈 많고 권력 많은 자가 해석한다.

 


일단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은 안 된다 무신론자들이니까. 우리는 무조건 반공이다.

 

이승만은 우리 편이다. 그렇게 일찍부터 우리가 기독교 국가가 되었어야 한다고 주장한 현명한 사람이니까.

 

이승만을 쫓아낸 4.19는? 비천한 것들이 뭣도 모르고 설친 것.

 

4.19를 뒤엎고 들어선 박정희는? 돈 벌게 해줬으니 신의 뜻이 함께 하는 사람.

 

박정희한테 덤비는 김대중은? 비천한 주제에 자신도 모르고 설치는 빨갱이 놈.

 

앞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지표는? 비천한 것들을 멀리하고 신의 뜻에 따라 돈 많이 벌어서 안 비천하게 잘 사는 것. 비천한 것은 너무 싫잖아.

 

 

이렇게 명쾌하고 단순하며 확고한 역사관이 또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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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편하게 사는 방법이 있다니!

 

본 부장, 여기서 이런 기괴한 역사관을 자기 비하성 개독 역사관, 줄여서 자비사관이라고 부를 것과 함께 문창극 총리 지명자를 그 자비사관의 공식 계승자로 인정할 것을 제안하는 바다.

 

 


자비사관의 계승자가 총리가 된다면?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국민들이 미개하다고 주장하던 정몽준의 아들이 총리가 된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자신들이 가진 만큼의 돈이 없다면, 그래서 비천하게 집도 없이 담보대출 아파트에 살고 있다면, 미개하고 비천한 것이다. 그런 자들은 통치의 대상일 뿐이다.

 

남북 관계는? 비천한 공산주의자들과 무슨 대화를 하고 무슨 경제협력을 하는가? 북한 땅에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기 위해 풍선이나 더 날리고, 하나님의 터치가 미국에게 전달되어 어서 빨리 싹 쓸어 버리길 기원할 뿐이다.

 

외교 문제는? 역사관이고 뭐고 필요 없다. 돈이 되면 바로 그게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될 일이다. 위안부 문제? 그런 거 사과하라고 우기면 우리가 비천해지는 거니까 그런 건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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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어떤 나라하고는 외교 잘 하겠다.

 

복지 문제는? 복지를 바라고 앉아 있는 비천한 자들에게 국가가 해 줄 일은 없으니 하루 속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비천을 버리고 돈을 벌라고 얘기해 주게 될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그거 다 너희들을 잘되게 해 주려고 하나님이 시련을 주시는 거니까 기도로 극복하라고 얘기해 준다.

 

정권의 도덕성은? 도덕성이 뭐 말라 죽은 것인가? 돈 없으면 비천한 거고, 돈 많으면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내가 재단 이사장 하면서 내가 선발하는 교수직을 내가 따먹고 수천만 원 받은 거, 그렇게 돈 벌면 되는 거다. 나도 원래 비천한 놈이었는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열심히 돈 번 것뿐이고, 그렇게 나는 비천을 벗어났다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위험한 일이다. 차마 역사관이라고 불러 주기도 민망하기 그지 없는 이런 비뚤어진 정신병적 가치관을 가진 자, 그것도 그 가치관의 내부적 모순과 어이없음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종교적 몰가치로 덮어버린 그런 세계관을 가진 자가 일국의 국무총리가 된다? 위험할뿐더러 창피해서 봐주기 힘든 일이다. 친일파가 문제가 아니고, 뉴라이트가 문제가 아니다. 이 정도면 거의 병적인 광신자의 수준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가장 위험한 문제는,

 

이게 어디 문창극 개인, 그 한 사람만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자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이의 제기가 없었다는 현실, 그의 강연 전체를 새누리당 의원들이 모두 모여서 들어 보고도 매우 훌륭하고 건전한 가치관의 보유자라는 총평이 나오는 현실, 쉽게 말해서, 이런 미친 것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자들이 이 사회, 이 나라의 상층부에 적지 않게 포진하고 있다는 이 암담한 현실이 가장 위험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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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사관, 인류가 문화를 기록한 이래 가장 위험한 가치관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너무 암담해서 막 내 머리 속에도 자기 비하가 생기려고 그런다.

 

우린 안될 거야.. 아마..







물뚝심송


편집 : 홀짝,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