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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20. 금요일

독투불패 폭주구루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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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참 묘한 물건이지. 술을 마시면 평소의 나 말고 또 다른 내가 튀어 나오게 돼. 이건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다들 알 거야.


중요한 건 방향성이지. 내 안의 수많은 나 중에 어떤 놈이 튀어나오냐도 문제지만 일단 튀어나온 놈이 어디로 튈 것이냐 또한 중요한 거 아니겠어? 그걸 결정짓는 게 분위기라고 생각해. 설사 그날 하필이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이명박이 튀어나왔다 할지라도 그 자리의 분위기가 행복하고 따사롭고 선량하면 튀어나온 이명박은 법정스님 같은 무소유를 실천할 수도 있다고 난 생각해.


그 날 박 팀장은 광란의 술자리를 원했어. 그러니 잘 못 논다는 이유로 어린 호스트 둘을 돌려보내고 나이 지긋한 아빠 둘을 부른 거지. 돈을 받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고객의 니즈에 부응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난 쌩초짜잖아. 등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나는 햇병아리.


슬램덩크 봤어? 거기서 강백호가 처음 코트에 섰을 때 너무 긴장해서 어기적거리며 쓰리스텝 트레블링 파울을 저지르잖아. 내가 딱 그 상태였거든.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하며 이미지 트레이닝(?) 해놨던 것이 박 팀장의 주물럭 한 번에 모조리 날아가고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버리더라고.


헌데 마침 나랑 같이 들어갔던 '현욱이'가 전직 호스트 출신의 프로였던 거야. 와아, 내 눈엔 마이클 조던이 따로 없었어. 플레이가 그리 현란할 수가 없어. 그 동네에서도 일종의 매뉴얼이 있나 봐. 미리 준비해 온 순서라도 있다는 듯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어. 뭐랄까.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은 레크레이션 강사? 나조차도 잠시 내 신분(?)을 잊고 현욱이의 원맨쇼를 넋 놓고 바라봤을 정도니까.


이상한 쇼 같은 건 아니야. 듣기론 남자 물건에 주전자를 걸쳐놓고 힘자랑을 한다거나 뭐 그런 얘기도 있던데 내가 일한 업소에서 그런 건 안했어. 있다면 티슈를 속에 넣어놓고 바지 지퍼를 내린 다음 마술사가 모자 안에서 손수건을 여러장 뽑아내듯 티슈를 파바바박 뽑아내는 걸 쇼랍시고 한 적은 있지만 노골적으로 옷을 벗거나 그런 건 없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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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욱이는 마이크를 잡더니 행사 사회를 보듯 분위기를 리드했어. 우린 그저 현욱이가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되었던 거야. 그 술자리의 조타수는 현욱이었어. 나중에 알았는데 현욱이는 나보다 두 살 어린 이혼남이었어. 이십대 초반 어린 나이에 북창동에서 삐끼랑 웨이터를 했고 어쩌다 보니 호스트의 길로 들어섰대. 웨이터 하다가 만난 아가씨랑 동거하다가 애 낳고 결혼도 했는데 벌어놓은 돈으로 섹시bar를 냈다가 2년만에 홀랑 말아먹고 이혼 당하고, 서른 중반의 나이에 다시 아빠방으로 출근하게 된 '흔한 반도의 아빠.jpg' 였지.


내가 "너 같은 프로가 왜 벌이가 더 좋은 정통으로 안 가고 값싼 콜을 뛰냐?"라고 물어보니까 이쪽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지 몸이 버티지 못한대. 콜은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하루나 이틀 정도 거를 수도 있지만 정통은 출근도장을 찍어야 하니 너무 힘들대. 하긴, 어릴 적 음주가무에 미쳐 날뛰어 본 형들은 깊이 공감할 거야. 서른 중반 넘어가면 몸이 예전같지가 않지. 이 일은 정말 철저히 몸을 쓰는 직업이니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야.


호스트나 아빠나 둘 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야. 하지만 그 결이 약간 다르더라. 나중에 일 끝나고 포장마차에서 쏘주 한잔씩하며 얘기들 두런두런 하는 걸 들어 보니 어린 호스트들은 지금 당장 먹고 노는데 쓸 돈이 우선인 반면 아빠들은 글자 그대로 '인생역전' 로또를 원하더라고. 돈 많고 외로운 누나 만나서 누나가 던져주는 차키와 용돈, 더 나아가 가게 하나 차릴 사업자금 같은 거, 그게 이 직업의 최종 목표인 거지.


현욱이도 그랬어. 그래서 그런지 그 룸 안의 조타수를 맡은 현욱이는 최선을 다해 능수능란하게 우리를 리드해 갔지. 현욱이가 술을 마시라면 우린 러브샷을 했고 현욱이가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를, 춤을 추라면 춤을 췄어.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어.


내가 얘기했잖아. 콜은 시간당 끊는 거라고. 이제 좀 놀아보려고 하는데 벌써 1시간이 흘렀다는 거야. "어떡할까요? 시간 연장할까요?" 그런 말도 없었어. 시간 연장은 너무나도 당연한 분위기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술과 안주가 모자라니 빨리 술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를 정도였으니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거 같은 느낌. 내가 소싯적 좀 놀아봤다고 자부한 게 부끄러웠어. 내가 논 건 애들 장난이었달까.

 

내가 아까 '방향성'이 중요하다고 했잖아. 룸에서의 방향성은 조타수인 현욱이가 쥐고 있고 말야. 얼추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얼굴이 벌개질 만큼 달아오르니 조타수는 슬슬 분위기를 '에로에로'의 바다로 몰고 가기 시작했어. 자기 파트너를 자연스레 껴안고 달달한 발라드를 부르니까 순식간에 방안 공기는 끈적하게 내려 앉았지. 현욱이가 만든 방향성에 내 안의 음란한 내가 튀어나온 거야. 욕정을 에너지로 한 용기가 불끈 솟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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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밥값을 할 차례가 된 거야.


그거 알아? 정답은 '등'이야. 나도 몰랐어. '등'이 그렇게 중요한 부위인 줄. "등짝을 보자"라는 드립이 있잖아.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사. 그거완 좀 다르게 '등'은 엄청 중요한 곳이더라고.


난 정말이지 아무 짓도 안했어. 그냥 같이 러브샷도 하고 마이크 잡고 같이 나가서 캉캉춤 비슷한 춤도 추고 초면의 식은땀 나는 어색함이 언제 사라졌나 싶게 어깨에 팔도 두를 정도로 분위기가 나긋나긋해졌으니 그저 별 생각없이 내 파트너인 박 팀장의 등을 부드럽게 쓰윽 쓸어내렸을 뿐이야.


"하아..."


그 순간 박 팀장은 짧은 탄식을 내뱉고 등이 활처럼 휘더니 눈이 탁 풀려버린 거야.


"...하지마...나 등이 성감대야..."


아, 죄송합니다. 몰라뵙고 그만, 하면서 얼른 등에서 내 손을 뗄 리가 없잖아! 손바닥에 닭똥냄새가 날 정도로 죽어라고 등만 문질러 댔지 뭐. 골리앗이 다윗에게 다가와 "제 미간에 돌을 꽂아 맞추면 저는 바로 죽어요."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달라. 이건 그냥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거잖아.


생각해 봐. 자, 여기 핵 버튼이 있고 니가 이 버튼을 누르면 지구는 멸망합니다. 눈앞에 이런 기회가 왔어. 안누를 거 같냐. 난 눌러. 누를 꺼야. 죽어라 누를 꺼야. 핵 버튼도 누를 판에 "이 스위치를 누르면 나무에서 돈이 열립니다."라고 하는데 안누를 인간이 대체 어디 있겠냐고ㅋㅋㅋㅋ 그렇다고 목욕탕 목욕관리사마냥 등껍질이 벗겨져라 문질러 댄 건 당연히 아니고 부드럽게. 응? 알잖아. 샤라락~ 샤라라락~


몸을 배배꼬며 정신줄을 반쯤 놓은 팀장에게 귀엣말을 하는 척하면서 귀에 뜨거운 바람을 불었어. 이걸 전문용어로 '확인사살'이라 하지. 아마? 죽어라! 한여름 땡볕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마가린처럼 녹아 버려랏! 확 녹아서 찐득찐득한 액체가 되어라! 그래서 내 노예가 되어 버려라!


너무 귀엽더라. 미인까진 모르겠지만 나름 귀엽게 생긴 연상의 아줌마가 내 손놀림에 움찔거리며 하앟하앟 얕은 숨을 뱉으니 나도 엄청 므흣해지면서 정말 사랑스럽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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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는 아녔겠지만...



그래서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볼에 뽀뽀를 쪼옥~했어. 그 순간, "이걸 기다렸어. 병시나" 같은 표정으로 날 확 덮치더군. 그러니까, 여자인 내가 먼저 네놈에게 키스를 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지만 네놈이 내 볼에 뽀뽀를 함으로써 결계가 풀렸으니 이제 너를 맘껏 유린해 주겠다, 랄까. 그리고 난 그 자리에서 석 달치 양기를 빨렸어. 혀가 뽑히는 줄 알았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혀수직근이 뻐근할 정도였단 건 확실해.


만약 내가 밖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내 왼손은 놀고 있지 않았을 거야. 무릎과 허벅지를 지나 어떤 디자인의 팬티를 입었는지 손으로 확인하려 들었겠지. 하지만 박 팀장은 바지를 입고 있었고 난 어디까지나 아빠(?)니까. 내 주제를 알고 허벅지 위로는 염탐을 하지 않았어. 중간에 곁눈질을 하니 다른 일행들은 우리의 퍼포먼스를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며 킥킥대고 있더군.


그렇게 양주 네 병째가 비워질 즈음 세 시간 정도 흘렀고 다들 많이 취했으니 현욱이는 마스터답게 술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어. 난 내심 파트너가 2차를 가자고 하길 바랐어. 난 나대로 엄청 뜨거워져 있었으니까. 헌데 꼬인 혀로 이런 저런 소리만 하고 딱히 날 따로 데리고 나갈 기미가 안보이더라. 그래서 내가 "담에 또 저 불러 주실 거죠?"라고 물었더니 그제사 날 붙잡고는 귀엣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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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애들 눈이 있으니까 같이 나가진 못하겠고, 담에 밖에서 만나자."



라더군. 그러면서도 전번을 주거나 명함을 주진 않더라. 애들 앞에서 물고 빨고 하는 건 괜찮고 같이 나가진 못하겠다는 게 선뜻 이해는 안되지만 그렇다니까 그런가 부다 해야지 뭐.


아, 남자들이 가는 술집에선 파트너랑 2차를 나가려면 돈을 내야 하잖아. 하지만 아빠방에선 2차비가 따로 없어. 예를 들어 1차 노래방이 끝나고 밖에서 술 한잔 더 하려면 그저 시간을 끊을 뿐이야. 술이 아니라 모텔을 간다 해도 마찬가지. 시간당으로 계산해서 돈을 받을 뿐이지.


어디서 보니 무조건 2차가 가능한 하빠(퍼블릭)란 곳도 있다는데 난 이게 어딘지도 모르겠고 왜 하빠라고 (퍼블릭은 또 뭐야?) 불리는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그렇게 인사하고 나와서 또 봉고차를 타고 박스라고 부르는 사무실로 와서는 6만 원을 손에 쥐었어. 현욱이에게 아까 내 파트너가 담에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은근히 자랑했더니 그러지 말래. 자기가 볼 땐 그 여자 범털도 아니고 밖에서 만나면 양기만 빨리지 정작 돈은 안될 거라나.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판단이었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여기고 말기로 했지.


그렇게 나는 아빠로서의 첫경험을 치렀다. 어떤 이들은 손님을 더 받겠다며 대기하고 있었고 나랑 다른 노래방서 뛰다 온 몇몇은 너무 취한 거 같아서 오늘은 이만 퇴근하겠다며 박스를 나섰지. 쏘주 한잔하자는 걸 뒤로 하고 집으로 향했어. 비척비척 걷는 새벽길의 공기는 이유없이 상쾌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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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직업엔 귀천이 있어. 내가 대리운전할 때 날 발로 툭툭차며 반말짓거릴 해대던 아저씨들과 노래방 와서 꼬인 혀로 내 꼬추를 때리며 "너 잘 하냐?"라고 묻던 아줌마들의 태도가 내 위치를 잘 설명해 주지.


7센치 깔창을 깔고 미용실에서 8천 원 주고 매일같이 만진 머리로 열 번 중 대여섯 번 뻰찌를 맞으며 아빠 생활을 약 석 달간 했어. 사내새끼 넷이 들어가서 양주를 두 병밖에 못비웠다고 노래방 업주에게 쌍욕도 먹고 술 취한 파트너에게 이유없이 "병신새끼"라는 말도 들으며 말야.


앉아서 죽느니 서서 죽겠다는 비장한 심정까진 아니었지만 처음 경험했던 신기하고 꼴릿한 감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냥 내 자존감을 하루하루 갈아서 돈으로 바꾸며 사는 게 싫어졌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내가 판검사나 의사가 못된 탓일까. 요즘은 의사나 변호사도 벌이가 시원찮아 죽겠다던데?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성실하게 살지 못했을까. 남들 다 하는대로 대학 나오고 군대 다녀오고 세금 내며 살았는데. 회사의 구성원으로 더욱 근면성실치 못해서 회사가 망한 걸까. 일말이라도 내 탓이 있을까. 사장새끼가 땅투기하고 엉뚱한 사업을 벌이다가 망한 건데도 불구하고 말야.


그냥 이 땅에 태어난 탓일까. 누구 말마따나 게으르고 남에게 기대기 좋아하는 DNA가 새겨진 민족의 새끼로 태어나서? 난 하루 18시간을 일했어야 하는데 고작 14시간밖에 일을 안해서? 그래서 난 게으른 새끼인 걸까? 그래서 이 모든 게 다 내 탓인 걸까?


남 탓하지 말라 하지. 물론 맞는 말이야. 남 탓해봤자 끝이 없지. 운이 없는 것도 내 탓이니 말야. 어쩌겠어. 하지만 이 말 한마디는 꼭 해야겠어. 남 탓하지 않을게. 내 인생은 온전히 내 것이니 내가 피땀흘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게. 도와 달라고는 안할게. 다만, 내가 어떤 길을 어떻게 가면 좋은지 누가 내게 좀 알려줘. 열심히 살아도 끝이 안보이는 삶, 이게 답이 아니라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어휴, 갑자기 심각해지고 지랄이네. 미안.


나야 꼴랑 석 달 일한 게 전부인데 그 바닥을 다 아는 듯이 까불었다면 미안. 그냥 육두형들에게 세상엔 이런 경험도 있다는 얘길 하고 싶었어. 재밌게 읽어줘서 고마워. 그럼 됐지. 뭐. 글 세 편이 마빡으로 가면 필진이 된다지? 헌데 난 글재주도 없고 이런 거 꾸준히 써낼 능력도 없으니 한번 간 걸로 만족해야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내가 여성전용 안마방에서 일한 얘기를 ㅆ.....ㅋㅋㅋㅋ 농담ㅎㅎ


육두 화이팅-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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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투불패 폭주구루마


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