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6. 24. 화요일
국제부 Samuel Seong
1. 매뉴얼, FM, 그리고 System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후,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내용 중에 하나는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매뉴얼의 실종'이었다. 이 내용을 가장 열심히 리트윗하던 분들은 마치 정부의 모든 매뉴얼을 청와대에서 직접 만들었던 것처럼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매뉴얼, 해당 기관에서 만든 것들이다. 해난구조와 관련된 매뉴얼은 해경이 만들었다는 이야기 되겠다. 해경이 만들었던 매뉴얼 관리를 국무총리실로 이관했다가 공중에서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건 해경에서 만들었던 것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6년전에 매뉴얼을 만들었던 이들이 모조리 정년퇴임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고 한다면 매뉴얼의 유무에 집중하는 것은 그닥 의미 없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군대 갔다온 이들에게 FM은 Frequency Modulation도, Field Marshal도 아니고 Field Manual로 입력되어 있다. 이들에게 "그 사람 FM이야"라는 말은 "그 사람은 규정만 따라"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자 그런데... FM과 현실이 항상 맞을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FM, 우리 말로 야전교범 정도 되겠다
FM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곳들이 사실은 AM을 콩글리쉬로 소환해서 쓰는 곳들이다. Amplitute Modulation의 준말이 아니라 가방끈 짧은 군발이들의 FM의 반대말이라고 생각해서 쓰는 것. 그런데 이 짓을 수년간 계속 하고 나면 현실과 매뉴얼의 간극은 매뉴얼이 있는 것만 못한 상태가 되고 만다.
사실 매뉴얼은 항상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발전, 혹은 상황변화, 경제력의 변화 등에 따라 계속 판갈이 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진 놈이다. 그리고 한 체제가 자신의 문제점을 계속 찾아내서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을 두고 시스템이라고 한다. 이 시스템 조차도 판갈이를 계속 한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몇 번째였는지 기억하는가?
우리도 매뉴얼이, 교본이 바뀌기는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다.
2. 1954 대한민국
60년대 중후반, 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이들이 필진들의 상당수인 본지도 사실 졸라 늙은 매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이들의 정서는 똘이장군 관람한 것을 흑역사로 치는 본지기자들을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기춘대원군이 1939년생이다. 그는 해방되던 해에 7살이었고, 한국전쟁이 터졌을때 11살, 베트남전이 끝난 해에 36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전쟁의 참상을 겪던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갈 수 밖에 없다.
기춘대원군 연식의 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가난의 기억이라고 하 는거, 사실 우리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본 기자, 상당한 오지에 들어가는 것이 일상이라 하루 1~2달러 미만의 돈으로 간신히 생활하는 이들을 꽤나 많이 만나지만 이는 간접 경험일 뿐, 그 삶을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 깨닫음을 얻으신 곳, 비하르주 보드가야의 국제사원구역
그럼에도 2006년 4월, 본 기자가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하다고 하는 비하르주를 찾았을 때의 충격은 잊어버리기 힘들다. 인도 대륙의 환영인사인 이질까지 앓던 까닭에 정신 혼미한 상태에서 지냈던 빠뜨나에서의 며칠. 뭐 이 일화를 말하면 이해들 하려나...
부처님께서 깨닫음을 얻으신 곳이기에 불교 4대 성지로 알려져 보드가야를 찾는 스님들이 꽤 많다. 어느 스님께서 완행버스를 타고 가시던 길에 잠깐 졸아서 엉뚱한 곳에 내렸을 때 다리가 잘린 노인네 한 분을 보고 미화 500달러를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몇 년 뒤, 기억을 되살려 그 마을을 찾아갔을때 노인들 중에 다리가 둘 다 붙어 있던 이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500달러면 그 마을에선 한 가족의 1년치 생활비를 상회한다. 다리가 잘렸다는 이유로 한국 스님의 동정을 받았던 한 집안의 횡재가 한 동네에서 참사를 만들어냈던 것. 과한 선의가 참사를 만들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었다. 그리고 기춘대원군의 세대는 저런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이다.
3. 이식된 시스템
본 기자, 그동안 쓴 기사의 양에 비해 필진으로 활동한 연식은 상당히 길다. 99년 초에 필진으로 합류했었으니 벌써 15년째다. 자기 자랑이 심한 사단급 숫자의 필진들이 지나간 본지의 수많은 필진들을 꽤 많이 만난 본 기자,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자랑이 있다. 자신이 외국어 잘한다고 하는 필진.
해외 장기 체류자는 물론 동시통역사까지 있는 판국에 외국어 좀 한다고 이야기하면 바보 취급 받는다. 뭐 외국인과의 연애 경험도 꽤 되는 본 기자 같은 넘들이 쎄고 쎈 딴지필진들 구성상 외국어 구사능력은 2종소형 운전면허증보다 훨씬 흔한 거다.
하지만 딴지 노예가필진이 되는 데에 있어, 이딴 거 필요는 없다.
그저 독투에 쓴 글이 마빡에 세 번 오르면 끝.
그러니 19세기 말에 영어 일기를 썼던 것을 두고 '우리는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문참극 총리 지명자 같은 분들의 말을 이해하는 이들, 적어도 딴지 필진들 중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뭐 미국 몇 번 갔다와서 쇠락하는 제국을 보는 느낌이라고 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기도 하고.
지난 정권 출범당시, 정권인수위원장의 '오뤤쥐' 발언과 총리후보의 '영어로 일기도 못 쓰는 우리는 죽어야 한다'이야기에 깔려 있는 것은 최소한 딴지 필진들과는 안드로메다 은하 만큼의 간극이 있다. 사실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바로 앞절에서 말한 그런 삶을 살던 나라에서 국비장학생으로 조국근대화의 사명을 안고 공부하러 갔던 이들은, 피곤에 쩔은 상점 직원이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만으로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다. 요즘이야 영미권 친구들이 발음 못 알아먹으면 니네가 못 알아먹는 발음 쓰는 이들이 전체 영어 사용자의 80%에 가깝다고 쏴주는 이들이 더 많지만, 지지리도 없던 나라 출신들에게 미국의 모든 것은 그저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
사실 이건 지난 세대들에게 공유된 기억이다. 2006년초, 처음 출전했던 WBC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을때 한겨레21에 이윤기 선생이 쓴 글이 실렸었다. 압도적인 체격과 체력의 차이, 먹는 것의 절대적인 차이, 그랬던 그들을 한 세대만에 따라 잡았다는 것을 보고 꽤 복잡한 감정을 토로하셨던 글이었다.
이런 절대적인 동경이 그들의 체제를 별다른 비판적인 검토 없이 베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뭐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베끼기만 하고 있다. 문제점들을 자체적으로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조정없이 그냥 베끼기만 한다.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4. 민생, 이해당사자간 미세이견조정
본 기자,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는 사실 아주 많이 낮았다. 초기에 청와대로 불려들어갔던 이들의 면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나 조시프 스티글리츠와 아마티야 센 등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로 해외 경제자문단을 꾸리자는 제안이 들어오니 '월가가 싫어할 것'이라는 생뚱 맞은 이유로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너무 일찍 들었던 것도 있지만, 참여정부를 관통하던 정서 자체가 좀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우리 진심을 몰라준다."라고 하던 것
국가시스템에 진심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뭐 하긴 그 다음 정부부터는 국가 기관이 '인격권'을 주장하면서 조직이 명예훼손을 당했다고 민간인을 고소고발하는 코미디를 벌이기 시작한 이들이라 전 정권이 나아 보이는 희한한 착시 효과를 만들어내긴 했다만.
여튼 저 까닭에 이해관계자 이해조정능력은 거의 바닥이었다. NEIS같은 시스템 도입과정에서의 어리버리함은 NEIS자체가 거대한 똥덩어리로 작동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현상 유지만 하는 것이 다행인 상황이 되었다. IE6에서만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니.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의 대타협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다룬 <밥꽃양>이 청와대에서 상영되긴 했지만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적대감이 강화되고 있던 것이나 극단적으로 진행되던 양극화에 대해선 무력하기 그지 없었다. 사실 문제들은 섬세한 이견조정이 대부분이었는데 본인의 정치 여정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황우석 박사에 대한 초현실적 지원이나 한미FTA 같이 일점돌파 전략만 꾸준히 선택했던 것이 참여정부였다.
정책 결정단위에서 엔트로피 제1법칙과 제2법칙도 모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의 관료체제를 두고도 '기가 막히게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하던 것도 코웃음만 나왔다. KDI 사이트에 접속해 보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실행할 즈음부터 그 정책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바로 동시에 진행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논문들에서 빠져 있는 것은 그 사례들이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결론을 냈고, 그 이후의 여파를 어떻게 합의해가는가 라는 과정'이다.
제일 중요한 그 문제가 빠져 있는 연구결과물을 가져다 주는 연구소에서 한미FTA에 대한 예상분석 자료를 내놨을 때 마음에 안 든다고 숫자 바꾸라는 압력을 은연중에 넣었던 것도 참여정부였다.
IT바닥에서 그래도 몇 년 이런 저런 서비스 설계하면서 밥 먹었을때 수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가르쳤던 것은 '대중이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아닌 말로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렸다고 하면 에프킬라를 뿌리는 사용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거의 안 쓰지만 광학미디어 드라이버의 트레이를 컵홀더로 쓰는 인간이 없던 것도 아니다. 그런 사용자들의 기상천외한 사용법에도 자빠지면 안되는 게 시스템이다. 뭐 요즘은 워낙 막장이 되어서 모 자동차 회사는 센서가 작동하지 않아서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참 뻔뻔하게도 하더라만.
5.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 것, 시스템의 부재
본 기자도 노빠라면 노빠다. 그럼에도 앞에서 참여정부를 비판했던 것은 두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의 기준이 너무 형편없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생산시스템의 문제는 현장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감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그 문제들을 비정규직 노동자를 문제현장에 투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 결과 어느 공장은 사막에서 월드컵 경기장을 만들고 있는 카타르 현장보다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고 있다.
시스템은 자체적 업그레이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존재다. 참여정부는 이런 입장을 가진 이들에게 '우리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말했지만 지난 정부와 현 정부는 인간 도색전문가들의 활동 영역을 늘려주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행정부가 입법부의 도움 없이 한 개 정부 부처를 날려버리는 짓을 하진 못한다.
시스템이라는 것 자체가 불완전하기 그지 없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들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간다면 '뭐 안 하면 뭐'라는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는 문제를 키우기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 도색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는 것으로 정국 돌파하시겠다는 분들이 지금 이 상황을 개선할 가능성은 없다. 아니, 그거 안하겠다고 인간 도색전문가들을 불러들인 게 아닌가.
이 나라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저 좋아보이는 남들 꺼를 별 다른 비판적 고민 없이 가져다 붙여서 써 왔고, 그것이 임계지점에 달해서 벌어졌던 일이 세월호 참사다. 대한민국이 2014년 4월 16일을 기점으로 달라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시스템들을, 미세한 집단간의 이견조정능력을 스스로 키워가지 않는 한, 사실 답 없다.
시스템의 중요성을 오래 전부터 강조하여 온 사람이 있었으니...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하는 미세한 이해관계 집단들끼리의 이견조정이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을 우리들 스스로 해내지 않는 한, 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언젠가 쓴 일화를 다시 한번 인용한다.
참여정부 시절 꽤 인기를 끌었다가 없어졌던 시사투나잇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거기서 언젠가 아파트 단지와 개 사육 집단지 간의 갈등을 다룬 적이 있다. 개 도살 과정에서 개 털을 그슬리는 통에 건너편 아파트 주민들은 창문도 열어 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파트 주민대표 선거는 물론이고 지자체 선거에서도 주요 이슈가 개 사육 농장 문제가 항상 들어갔다고 한다. 민원 접수를 계속 했음은 물론.
그런데 기자가 개 사육 농장에 직접 찾아가서 그런 현실을 아느냐고 개 농장주들에게 물어보니 "몰랐다. 그럼 이거 안 하면 된다"라고 대답하더라는 것.
나의 문제는 남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귀중한 것을 파괴하겠다고 덤비는 이들은 어디든지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정치이며 여기에 필요한 '조직된 시민의 힘'은 정당에서 나온다. 정치인 팬클럽질 하는 건 정치가 아니다. 민생이라는 정치를 우리 스스로 하기 시작했을 때, 아마도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시스템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할 것이다.
국제부 Samuel 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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