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홀짝
2014. 06. 24. 화요일
편집부 홀짝
이야기 하나. 김 모 이병
필자는 2004년도 1월에 입대하여 A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은 뒤, 3월에 B연대 C대대로 자대배치 받았다. C대대는 흔히 말하는 GOP대대로 초여름 경 대대 전체가 GOP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GOP는 'General Out Post'의 약자로 '일반전초'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상적으로 휴전선 철책의 경계 임무를 맡는 부대를 가리킨다.
필자 또한 당시에는 이등병 나부랭이에 불과했지만 밑으로 꽤 많은 수의 신병들이 속속 들어왔다. GOP 근무 특성상 일정 숫자 이상의 병력이 항시 유지되어야 하기에 투입 전 인원 보충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김 이병도 그 중 하나였다.
김 이병은 붙임성이 별로 없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그래도 다가가 말을 걸면 작고 차분한 어조로 이것저것 대답도 잘하는, 꽤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 같은 지역 출신이었고, 나처럼 서태지를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이야기 할 거리가 많은 후임이기도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김 이병은 선임들에게 자주 '갈굼'을 당했는데, 그래서 필자의 마음이 더욱 갔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신병 시절에는 '한 갈굼' 당하는 '꼴통'이었기 때문이다.
GOP에 투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일병으로 진급했다. 내가 맡은 보직은 상황병이었는데, 상황병은 철책 경계 근무를 서는 일반 병사와 달리 상황실에서 경계 근무 및 병력 이동 현황 등을 소초일지에 기록하고 상급 부대에 상황 보고를 하거나 지시를 전달 받는 일을 담당한다. 날마다 해 떨어질 무렵이면 경계 근무에 투입되고, 동 트면 철수하는 소대원들을 지켜보는 와중에 유독 김 이병이 눈에 띄었다. 원래 말수가 적고 조용한 그이지만 점점 더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GOP의 근무는 단조롭다. 김 이병 같은 부사수 급 병사들은 그날 배정된 한 명의 사수 선임과 함께 밤새 단둘이 붙어 다니면서 근무를 서야 한다. 가뜩이나 김 이병처럼 선임들에게 자주 욕을 들어먹는 후임의 경우에는 근무 자체가 꽤나 큰 정신적 스트레스일 수 있다. 그래서 당시 나 또한 김 이병을 보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 뿐이었다. 다른 선임들 입장에서 보면 모르겠으나 내 눈에 김 이병은 그렇게 남들 먹을 욕을 다 들어가며 혼날만한 짓을 하는 후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해 가을 쯤이었던가. 포상 휴가를 나갔다가 부대에 복귀하는 날이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나는 중대 본부에서 중대장에게 복귀 신고를 한 뒤 소초 막사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중대 본부 복도에서 어딘가로 걷고 있는 김 이병을 보았다. 전투복 차림에 활동화(군대에서는 운동화를 활동화라 부른다)를 신고 나를 스쳐가는 김 이병. '분명 지금 시간이면 근무에 투입되었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냐고 김 이병에게 물을 겨를도 없이 그는 내 옆을 지나쳐 어디론가 가버렸다.
의아한 마음을 품고 소초 막사로 돌아와보니, 내 선임 중 하나인 오 일병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는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김 이병은 그날 저녁에도 실탄 75발과 수류탄 한 발을 들고 근무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다만 평상 시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날 저녁 김 이병은 근무 초소에 들어간 뒤 얼마후 그대로 초소를 무단으로 이탈하여 뒷길로 소초 막사까지 걸어왔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무장한 그 상태로. 소초 막사에 들이닥친 김 이병은 후반야 근무를 위해 쉬고 있던 오 일병 앞에 우뚝 서서 들고 있던 소총을 곧장 겨누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야, 오XX,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김 이병은 처음부터 그를 쏠 생각까지는 없었던지, 위협을 하다가 곧 총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상황은 그렇게 일단락 되었고, 원래대로라면 김 이병은 군법에 따라 징역을 살았어도 할 말 없는 상황이었지만 영창 살이를 한 후 후방 부대로 전출되었다. 상부의 누군가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야기 둘. 상황병 근무
우리 소초에는 나 말고도 상황병이 한 명 더 있었다. 내 입대 동기 황 일병. 상황 근무는 나와 황 일병이 8시간 씩 맞교대를 하며 돌아갔다. 경계 근무를 서는 다른 소초원들과는 별로 부딪힐 일이 없기 때문에 안 그래도 입대 동기라 사이가 가까웠던 황 일병과는 더욱 관계가 친밀해졌다.
소초 막사 뒤에는 간이 탄약고가 있었다. 매일 근무에 투입되는 경계 근무자들의 실탄과 수류탄, 그리고 예비 탄약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탄약고는 늘 이중 잠금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데, 열쇠 하나는 상황병이, 나머지 하나는 소초 간부가 휴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상태를 늘 유지하기는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이 있기에 간혹 상황병이 열쇠 두 개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도 더러있었다.
어느 날 근무 교대 직후 황 일병과 나는 상황실에서 잡담을 하고 있는데 그 때 대화의 주제가 탄약고 열쇠였다. 탄약고 안에 들어있는 실탄이 10000발이 넘고 수류탄도 수십 발이나 되는데다 고폭탄에 대전차 로켓까지 있으니 둘이 혹시나 정신히 헤까닥 돌면 소초 전쟁도 일으킬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지극히 허무맹랑하고 쓸모 없는 얘기였다. 당연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비슷한 충동조차 든 적은 없었다.
이야기 셋. GP 총기 난사
GOP에 투입된지도 1년이 거의 다 되어 갈 무렵. 초여름의 그 날 새벽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까닭은 청소년 월드컵 16강에 진출한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소초 일반전화로 소초원들의 부모님들이 안부 전화가 많이 걸려왔다. 그런 전화가 다섯 통이 넘게 오자 나는 전화를 거신 분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여쭤보았고, '지금 당장 TV 좀 틀어 보라'는 대답을 들었다.
TV에 우리 사단 마크가 등장하고 있었다. 일명 '김 일병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우리가 지키고 있는 철책 안에 들어가 있는 우리 사단 GP에서 김 모 일병이 같은 부대원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것이다. 사건 직후 사단 전체에 한바탕 난리가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알고 보니 우리 소초에는 김 일병과 함께 신병 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은 입대 동기도 있었고, 김 일병의 총을 맞고 사망한 모 상병의 입대 동기도 있었다. 신교대에서 김 일병에게 연락처를 받은 후임도 있었다. 사건의 충격이 피부에 와닿았다. "이거 뭐 무서워서 밑에 애들 갈구지도 못하겠네"라는 어떤 선임병의 푸념도 기억난다.
그리고, 임 모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
다소 장황하게 내가 군대에서 겪은 세 가지 이야기를 이곳에 옮긴 이유. 예상 가능하실 게다. 어제 생포된 임 모 병장의 총기 난사 사건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 필자가 겪은 이야기이자 GOP 부대 경험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음직한 일이다. 실탄을 휴대하고 근무를 서는 최전방 부대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는, 그리고 일어날 뻔 했을 수 있는 일. 그리고 세 번째 이야기는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 된 사건이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2011년에도 있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에도 있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과 대중의 시각은 다양하다. 어디까지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지, 이런 일이 되풀이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재발을 방지할 수는 없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관심 사병 관리 문제. 그것 뿐인가?
이번 총기 난사 사건 보도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관심 사병'이다. 사건을 일으킨 임 모 병장은 원래 A급 관심 사병이었으며 B급 관심 사병으로 내려간 지 얼마되지 않아 지난해 12월, GOP 부대로 전출되었다고 한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A급 관심 사병 전력을 가지고 있는 임 병장을 굳이 일상적으로 실탄을 휴대해야 하는 GOP로 보냈어야 했느냐는 점이다.
관심 사병 제도가 지금처럼 A급(특별관심대상), B급(중점관리대상), C급(기본관리대상)으로 체계화 된 것은 지난 2005년 연천 총기 난사 사건 이후부터였다. 한 마디로 현행 관심 사병 제도의 탄생 자체가 이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 방지 대책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제도가 등장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유사 사고가 두 번이나 발생했다. 관심 사병 제도만 더 잘 운영하면 사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걸까?
개인의 일탈 가능성과 시스템의 문제 사이
필자 또한 관심 사병 제도의 실효성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GOP처럼 개인의 돌출 행동으로 인해 얼마든지 대량 인명 살상이 가능한 근무지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병사를 배치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고 예방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한 편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언젠가부터 일이 터지면 시스템보다는 개인에만 치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부는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개인의 일탈'로만 설명하려 들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자 사건 직후에는 이준석 선장이 모든 포화의 한 가운데에 세워졌으며-이준석 선장의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지금 그 자리는 유병언으로 대체되어 있다. 물론, 그들의 잘못 또한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잘못의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이와 같은 사고가 앞으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자 한다면,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을 그저 잘못 관리된 관심 사병 한 명이 일으킨 사고의 차원으로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 관심 사병이라는 '개인'을 관리하는 제도와 함께 전반적인 시스템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심 사병이란 게 뭔가? 일반 사병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병사를 말한다. 작은 스트레스로도 격한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집단을 관심 사병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어 A, B, C급으로 나누어 특별 관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의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어야 일반 사병이라는 말인가? 만약 일반 사병도 정도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총기 난사와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아니더라도 평상 시와는 다른 행동과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스트레스의 총량과 보상
군대라는 특수한 집단, 그 안에서 의무 복무를 하는 병사들은 군대 밖 사회에 있을 때보다 더욱 큰 스트레스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한다. 바깥 사회와의 단절, 집단 생활, 수직적 인간관계가 24시간 유지되어야 하는 점 등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군대에서 없앨 수도, 줄일 수도 없는 스트레스다. 다시 말해 군 생활을 하는 일반 병사들은 이 정도의 스트레스를 일상적으로 안고 생활한다는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사고 발생은 스트레스의 총량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사고 발생의 원인을 스트레스적 요인으로만 한정해 놓고 보았을 때, 이것을 줄이려면 최소한 두 가지 중 하나는 실현되어야 한다.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일반 병사들에게는 두 가지 모두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의 총량과 그에 대한 보상이 기묘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군대 다녀와야 사람된다는 말
대한민국 남성에게 군 복무는 의무 사항이다. 군 복무를 이행하는 데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반드시 다녀와야 하는 게 군대다. 그리고 우리나라 성인 남성에게 있어 군대는 '개고생', '조뺑이'의 현장이기도 하다. 힘든 군생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스트레스의 총량 또한 바깥 사회보다 크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가 워낙 그 자체로 '신성한 것'이라 그런지 제대로 된 보상은 없다.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병장의 월급은 14만 9천 원. 병장 아래로는 당연히 그보다 적다. 암만 기본 숙식이 보장된다고 해도 이 정도 급여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하면 정말 터무니 없는 수준이다. 역시나 국방의 의무가 워낙 신성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일반 사병들의 처우 개선 역시 지지부진하다. 물론 어르신들은 늘상 말씀하신다. '요즘 군대 너무 좋아졌다'. 하지만 그건 기준점을 과거의 군대로 삼아서 그런 것일뿐이다. 기준점을 현 시점의 대한민국 사회로 놓고 보면 어떨까? 오히려 50~60년대에 끼니 굶던 시절에는 그나마 군대에 있으니 삼시 세 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사병의 처우 수준은 그야말로 바닥이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수준은 고사하고 웬만큼의 보상 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는지는 몰라도 군 복무의 보상 수준이 밑바닥인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받는 스트레스의 정도도 심하지만, 보상은 기대할 수 없다.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는 말은, 어쩌면 아무런 보상 없이 개고생을 마다 않고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고안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 조차도 없으면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니까. -그 말도 아주 거짓은 아닌 것이, 필자 또한 군대 갔다오면서 정신, 육체적 인내심이 쬐끔 더 생기긴했다. 하지만 그건 군대가 아니어도 충분히 다른 일로도 얻을 수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필자가 군대에 가지 않고 2년 동안 노가다를 뛰었다면 정신, 육체적 인내심 뿐만 아니라 통장 잔고도 늘었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조뺑이를 치며 스트레스를 받으며 군 생활을 했는데 정말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그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지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보니 신성한 국방의 의무니,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느니 하는 실체도 없는 관념적 개소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에서 하는 고생은 당연한 것이 되고, 그 고생과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은 필요없는 것이 되고 만다. 원래 군대는 사람 만드는 곳이고, 그러려면 개고생과 스트레스는 응당 감수해야 하는 것이니까. 더 가열찬 조뺑이는 나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게 되지 않겠는가. 스트레스의 총량과 보상의 기묘한 관계는 이렇게 성립된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
위에서 말한 이상한 논리와, 한 번 다녀오면 다시는 가지 안아도 된다는 군대라는 곳의 특수성으로 인해 군대는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집단이 되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거나, 아니면 애초에 의무가 없는 사람들에게 군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곳이다. 적어도 내가 부모가 되어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군대에 갈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렇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군에 가장 큰 관심을 쏟는 집단은 딱 세 부류다. 아직 군 복무 전인 남자들, 군 복무 중인 군인들, 그리고 군 복무 중인 자녀를 둔 부모들. 그런데 군 복무 전인 남자들의 대부분은 미성년자다. 사회적 발언권이 제한되어 있다는 얘기다. 군복무 중인 군인들은 아예 발언권 자체가 없다고 봐야한다. 남는 건 딱 하나, 군인 자식을 둔 부모들. 사회 구성원 전체를 놓고 보면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자녀의 군복무가 끝나면 관심을 끊을 것이기에 지속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군대는 나나 내 가족이 한 번 무사히 다녀오면 그 뿐, 관심을 갖게 되는 순간은 사건 사고 뉴스가 터질 때 뿐이다.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려는 노력
다시 유사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관심 사병 제도의 운용을 통해 일탈의 가능성이 현저히 높은 개인의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시스템적으로는 우리나라 사병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현실적 보상이 지금 당장은 어렵다면, 그렇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일반인 보다 스트레스 노출의 정도가 심한 병사들의 복무 여건과 처우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노력을 군이 자체적으로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 GOP 근무만 해도 근무 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는 점은 본지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통하여 알린 바 있다. <관련기사> 비단 GOP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요즘 군대는 당나라 군대다', '군대가면 고생하는 건 당연하지',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천국이다' 같은 말로 외면할 수는 없다. 개고생을 하는 우리 병사들이 개죽음까지 당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 정신적 문제가 있는 병사 한 명의 일탈로만 이 사건을 받아들인다면 같은 사고가 주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적지 않을 뿐더러 러시안 룰렛 마냥 언제 어느 곳에서 어떤 희생자를 발생시킬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사고 발생의 확률을 0%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1%라도 줄이려는 노력은 개인적 부분과 시스템적 부분을 막론하고 충체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단순히 언젠가 내 가족이나 자식이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차원이 아니다. 이 문제는 그토록 우리 사회가 강조해 마지 않는 국가 안보의 차원에서도 시급한 사안이다. 애초에 국방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 일반 사병의 처우 개선은 결국 군 사기와 국가 안보에 직결된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 국방의 의무도 결국에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의무이다. 세상에 어떤 의무도 생명보다 신성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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