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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6. 30. 월요일

벨테브레










안녕하세요? 저는 청와대 정부학과 13학번 정홍원(가명)이라고 합니다. 한 가지 고민이 있어 딴지스 여러분께 상담을 부탁하고자 이렇게 사연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입학할 때부터 사귀던 여친이 있습니다. 바로 같은 과 동기인 박근혜 양(가명)이지요. 그녀는 입학하기 전부터 청와대의 여신이 될 거라던 퀸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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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 아버지는 군대에서 장군까지 하다가 낙하산으로 청와대 총장을 했던 분이라더군요.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는 하는데, 후임 총장이 된 대머리 아저씨가 총장실 금고에서 6억 원을 꺼내준 덕분에 근혜도 먹고 살 만은 했다고 하네요.


그러나 호방했던 대머리 총장님은 퇴임하고 재산이 29만 원 밖에 남지 않아서 골프장에서 폐지를 주우며 생활하신다고...



OT 때부터 그녀는 남학우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지요.

 

그 중에는 자기 IQ430이고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다던 허풍선이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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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과 논현동에 집이 있고 4대강 구석구석에 땅을 갖고 있던 부잣집 아들내미도 있었고 뭐 그렇습니다아버지가 BBQ인가 BBK 사장이라는 걸 보니 치킨집을 하시나 봐요.

 

어쨌든 근혜는 젊은 (Young) 학우들의 절대적인 지지 속에 과대표 선거에 나갔답니다.

 

문재인이라는 동기도 과대표를 하고 싶어 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과 커뮤니티에 이상한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재인이가 고때 우리 학교의 철천지 원쑤 북한대학교 애들한테 과외를 받았다지 뭡니까.

 

거기에 수능 보고 나서도 그쪽 사람들이랑 축구도 하고, 미팅도 하고 다니는 등 종 종북 한대학교 사람들하고 어울린다는 것이었어요.

 

하루에도 수십 편씩 그런 글들로 도배가 되니, 사람들은 보기 싫어하면서도 은연중에 '재인이 걔, 종북 아니야?'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지요.

 

결국 재인이는 선거에서 떨어졌고, 근혜가 과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글과 댓글들은 전부 국정원이라는 학우가 멀티 ID로 작성한 것이라더군요.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이미 과대표 선거는 끝난 뒤였고, 정원이는 '글을 올린 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차원의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피스텔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건 심하지 않느냐'며 재인이와 그를 지지하는 학우들을 비난했어요.

 

그런 정원이에게 싫은 소리를 하던 채동욱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강의실 앞에 동욱이를 디스하는 대자보가 붙었어요.

 

'동욱이는 애까지 있는 바람둥이'라고요.

 

동욱이는 절대 아니라고 했지만 근혜를 비롯한 여학우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견디다 못한 동욱이는 결국 학교를 관둔 뒤 잠수를 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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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를 누가 붙였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사람들은 아마 정원이가 그랬을 거라고 수군거렸지요.

 

이후에도 정원이는 북한대학교와 친한 학우들 명단을 까고 다니며 청와대의 물이 흐려지는 걸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답니다.



근혜는 입학할 때 남자친구가 없었어요. 몇몇 남학우들이 들이대 봤지만 도도한 그녀의 모습에 차이기 일쑤였고 개쪽을 당한 끝에 휴학하고 입대크리만 타게 되었지요.

 

우여곡절 끝에 근혜는 늦깎이로 우리 학교에 들어온 용준이 형과 사귀기로 했어요.

 

그런데 들려오는 소문에 용준이 형은 재산도 없고 심지어 방 한 칸 마련하지 못해 위장전입을 했다더군요.

 

화가 난 근혜가 용준이 형한테 매섭게 쏘아붙이자 용준이 형은 결국 학교를 떠나고 말았지요. 독재자장군의 딸이라더니 성깔 있더라구요. ㄷㄷㄷ

 

개강 첫날 저는 강의실을 못 찾아 헤매는 바람에 지각을 했고, 수업이 한창인 가운데 쪽팔림을 무릅쓰고 두리번거리며 빈 자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뒤쪽 구석에 빈자리가 하나 있더라구요.

 

'저런 명당이 어떻게 비어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제 엉덩이는, 빈 공간을 파고들어 볼을 꿰차는 알제리 공격수처럼 의자에 찰싹 달라붙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쎄한 느낌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바로 옆자리에 근혜가 앉아 있더군요.

 

용준이 형을 차갑게 차버렸다는 소문이 돌면서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생긴 그녀의 곁에 아무도 앉으려 하지 않았던 겁니다.

 

...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저는 수업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교재도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옆자리에 앉은 근혜의 교재를 곁눈질로 힐끔거려야 했거든요.

 

그때 근혜가 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니 내한테 관심 있나? 머스마가 와 이리 흘끔거리노."

 

당황한 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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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는 "니가 홍원이 맞쟤? 니 연락처가 우예 되더라?" 하더니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저기... 그거 거꾸로 든 것 같은데... ..."


가까스로 그녀에게 처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주눅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맞나? 마 그럴 수도 있쟤. 내 이런 거에 쪼매 서툴다 아이가."

 

그러더니 스마트폰을 도로 가방에 처넣고는 수첩을 꺼내드는 것이었어요.

 

그녀의 수첩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Y 다이어리.

 

표지에 1979가 박혀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클래식한 디자인에 달력과 전화번호부, 약간의 메모를 할 수 있는 파트가 분리되어 있는 심플한 구성이 일품이었지요.

 

, 맨 뒤에 부록으로 지하철노선도와 세계지도가 붙어 있는 것 같던데 지하철은 과연 몇 호선까지 표시되어 있을지, 세계지도에는 소련이나 동독이 나와 있는 게 아닐지 살짝 궁금해졌습니다.

 

수첩을 뒤적이던 근혜는 전화번호부를 펴더니 맨 윗칸을 가리키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하더군요.

 

별 생각 없이 '정홍원, 010-XXXX-XXXX'를 적고 수첩을 돌려주자 근혜는 제 이름 옆에 '남친'이라고 쓰더니 를 그려 넣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오늘부터 1일인 거 맞제?"

 

그렇게 우리는 썸 한 번 제대로 못 타보고 연인이 되었고, 그 뒤 1년 4개월간 지옥 같은 연애가 시작되었습니다.

 

개강 초에는 이런 저런 모임들이 많았습니다. 당근 술 마실 일도 많았지요.

 

과대표이자 퀸카인 근혜에게 술잔이 올 때면 흑기사가 되어 원샷을 하는 것도 제 몫이었고, 자리가 파한 후 뒷정리 & 계산을 하거나 만취한 근혜를 책임지는 것도 제 몫일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책임감이 강한 저를 가리켜 동기들은 '책임남친'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예쁜 옷 입고 나들이 다니는 걸 좋아하던 근혜가 수업을 땡땡이치면 대출을 해주기도 했고 과제나 리포트를 대신 해주는 일도 많았습니다.

 

전공필수였던 창조경제론은 너무 어려워서 며칠 밤을 새웠는데도 학점이 좋지 않더군요근혜처럼 리포트에 지하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내용을 썼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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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혜는 한국현대사 과목을 좋아했지만, 5.16을 구국의 혁명이라고 답하거나 10월 유신에 대해서 역사에 판단을 맡겨야 한다고 하는 바람에 나쁜 성적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현대사 교수님, 좌빨인 것 같습니다.

 

그럭저럭 한 학기가 지나고 2학기가 되었지요. 평온했던 저희 과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으니 07학번 김기춘 선배가 복학을 한 것이었습니다.

 

기춘이 형은 일찍 군대를 다녀온 후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검찰과 중앙정보부라는 심부름센터에서 알바를 뛰었는데, 어느 날 몸보신하려고 초원복집에 갔다가 복국을 잘못 먹는 바람에 영도다리에 빠져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으리 넘치는 학우들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치료비를 모아주었고, 기춘이 형의 딱한 형편을 전해들은 정수장학회에서 장학금도 받게 되어 가까스로 복학하게 된 것이지요.

 

기춘이 형이랑 동기였던 선배들 이야기로는 그 형 참 무서운 선배였다고 하더군요.

 

선배 중에 자살하신 분이 있는데, 글쎄 그 분 장례식장에서 유서가 대필되었을 거라고 울부짖다가 쫓겨났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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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국 한번 잘못 먹으면 일생이 괴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도 관심병사였다고 하던데, 우리 과에서도 대하기 어려운 관심학생일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일까요. 과대표인 근혜는 기춘이 형을 유독 신경 써서 챙겨주었습니다. 오빠라 부르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과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할 때마다 선배님 뜻을 존중하겠다며 기춘이 형에게 의지하곤 했지요.

 

처음엔 후배들을 어려워하던 기춘이 형도 선배의 특권을 어느 새누리 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질투가 나기도 했지만, 기춘이 형이 제 고향선배인데다가 수능 끝나고 검찰에서 알바 뛸 적에 저를 잘 챙겨준 인연도 있어서 마냥 미워할 수는 없었습니다. 예전 선배들이 썼던 리포트들을 얻어다가 주기도 했구요.

 

...제출일자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냈다가 F를 받긴 했지만요.



2학년이 된 우리 과 학우들은 따뜻한 봄날을 맞아 MT를 가기로 했어요.

 

작년에는 미국이라는 시골마을에 농활을 갔는데, 윤창중이라는 학우가 현지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바람에 퇴학을 당했던 흑역사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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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저희끼리 조촐히 다녀오기로 하고, 관광버스를 대절했어요. 청해진관광이라던가?

 

아쉽게도 저는 미리 예정된 해외연수 일정으로 MT를 갈 순 없었지만, 근혜 곁에 기춘이 형이나 정원이 같이 든든한 친구들이 있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저희 일행이 탄 버스가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의 관광버스와 부딪히며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운전기사가 급커브 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진행하다가 마주오던 버스와 부딪혀 넘어졌던 것이지요.

 

저희 일행의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운전기사가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바람에 빠져 나오지 못한 고등학생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저희로서도 이런 큰일은 처음이라 학우들이 많이 당황을 했던 것 같아요.


MT준비위원장을 맡았던 김장수라는 학우가 있는데, 자기는 MT의 컨트롤타워이지 교통사고의 컨트롤타워는 아니라며 뒤로 물러섰고요.

 

그 와중에도 김문수라는 녀석은 SNS에 글 올리느라 정신 없었다고 하더군요.

 

화가 난 근혜가 문수에게 구조 활동을 도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쏘아붙이자 문수 왈, "저는 경기도청 공익 출신인데, 도청 공익은 경기도 안에서는 좀 영향력이 있지만 여기는 지금 경기도가 아닙니다."라고 했다네요.

 

전남도청 공익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결국 '해경'이라는 동아리 친구들이 나서서 구조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버스 안에 갇힌 학생들이 많았는데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넋을 놓고 있거나 구조용 로프를 너무 빡세게 묶는 바람에 학생들이 숨 막혀 하며 "이 줄푸세 요"라고 하는 등 실수연발이었지요. 심지어는 출혈이 심한데도 '이건 동맥이 아니라 모세혈 관피야'라며 괜찮다고 했다지 뭡니까?

 

가까스로 앰뷸런스가 도착해 살아남은 학생들을 병원으로 후송하고 나서도 실수는 계속되었습니다.

 

문병 겸 간호를 갔던 서남수라는 친구는 병실 안에서 라면을 먹다가 다른 환자들에게 욕도 같이 먹었고요. 조문을 갔던 누군가는 영안실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고 하는 등 유족들한테 큰 실례를 범했지요.

 

학교에 이렇게 큰 일이 났으니, 저 혼자 한가롭게 해외연수를 할 때가 아니었어요. 부랴부랴 귀국해서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근혜가 저더러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무거운 마음으로 가족들을 만나러 가는 길, 가족들의 원성이 제 귀에 쟁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하고 자리를 뜨려 하는데 가족들이 물병을 집어던지더군요.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차 안에 숨었습니다. 차를 둘러싼 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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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스로 그곳을 떠나 근혜에게 "아무래도 과대표인 네가 직접 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긴급 과 총회 자리에서 그녀는 눈치만 보는 학우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화를 내기도 하고 버스운전기사의 행태는 살인과도 같다며 펄펄 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개미 같은 목소리로 '과대표로서 학우들과 피해자들에게 사과드려요'라고 말하더군요.

 

학우들은 냉정했습니다. 우리끼리 이래봐야 별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으니 피해자와 가족들 앞에서 제대로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군요.

 

결국 근혜는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1주일 뒤에 사과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지요.

 

약속된 시간이 왔어요. 피해자 가족들 앞에 선 근혜는 피해자들의 이름을 한 사람씩 부르며 눈물을 뚝뚝 흘리더군요. 그러더니 구조 활동에 실패한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했어요.

 

사과를 마친 근혜는 학교 행사가 있다며 총총히 걸음을 옮겼고, 뒤따라가던 저에게 헤어지자고 하더군요. 다만 아직 사고수습이 끝나지 않았으니 그때까진 휴학하지 말고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근혜를 볼 수 없었지요.

 

카톡에 있던 과 단체채팅방을 통해 새 남친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경찰조사나 보험처리에 대처하는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거든요.

 

근혜는 그 와중에도 몇 번 소개팅을 했다고 하더군요.

 

첫 번째 상대는 법대를 다니던 안대희라는 친구였습니다. 대희는 재학 중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샤프한 친구였는데요, 저도 검찰에서 알바 뛸 적에 몇 번 봤지만 일도 똑부러지게 하더군요. 대선이라는 기업에서 의뢰했던 자금추적은 물론, 국민은행에서 부탁한 검사도 잘해내서 국민검사라는 별명이 붙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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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희는 너무 가난했어요. 나중에 전관예우를 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학생일 뿐인데 5개월 동안 수입이 16만 원밖에 안되었다고 하니 어떻게 데이트를 할 수 있겠어요?


학우들은 그런 가난뱅이에게 근혜를 맡길 수 없다며 난리를 쳤고 자존심이 상한 대희는 결국 근혜와 만나지 않겠다고 했답니다.

 

멘붕이 온 근혜는 한참을 고심한 끝에 이번에는 언론학과 출신의 문창극이라는 친구를 만났어요.


창극이는 글을 잘 썼는데 특히 학보사에 기고했던 칼럼들이 근혜 맘에 쏙 들었나봐요.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창극이가, 근혜한테 자꾸만 이상한 설교를 하는 것이었어요. '일본 유학 갔던 선배들이 이지메를 당한 것도, 귀국 후 북한대학교 학생들한테 집단 구타를 당했던 것도 모두 게으른 우리 학생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하나님의 뜻이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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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얼마 후에 군대에 갈 예정이지만 학교는 휴학하지 않고 계속 다니겠다니, 근혜가 이 친구와 사귀게 되면 고생문이 훤해 보였지요.

 

이번에도 과 학우들이 근혜에게 걱정을 담아 충고했고 학회 세미나 때문에 외국에 나가 있던 근혜도 조금 마음이 흔들리는 듯 보였어요.

 

원래 근혜는 외국여행 중에 창극이한테 카톡을 보내 사귀자고 말하려 했는데, 창극이 얘기로는 연락이 없었다는군요. 기춘이 형 말로는 와이파이가 잘 안 터져서 그럴 거라는데, 과톡방에는 근혜가 올리는 안부 메시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

 

근혜는 귀국하고 나서도 잠수를 타버렸고, 보다 못한 친구들이 창극이한테 "암만해도 근혜는 너한테 마음이 없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어요. 견디다 못한 창극이도 근혜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연이은 소개팅 실패에 도대체 주선자가 누구냐는 의문이 과톡방에 오르기 시작했어요. 기춘이 형일 거라는 사람도 있고, 근혜 남동생인 지만이랑 그 친구들일 거라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그러던 지난 주 목요일이었어요. 모처럼 근혜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 어쩐 일이야?"

 

"내 요새 남친 만날라꼬 이 사람 저 사람 소개팅 하거든."

 

""

 

"근데 마 쓸 만한 아가 엄네. 수첩을 아무리 디비봐도 안 나온다 아이가."

 

"근혜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 그래서 말인데, 눈높이를 좀 낮추는 게 낫지 않을까?"

 

"맞다! 그래가 말인데, 내 눈높이를 팍 낮춰삘테니까 우리 다시 사귀믄 안 되겠나?"

 

"...기춘이 형이 그렇게 시키디?"

 

쏘아붙이고 난 뒤 한동안 말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눈높이를 낮춘 결과가 나란 게 괘씸해서였을 수도 있고, 어쨌든 다시 사귀자는 말이 반가웠을 수도 있고, 짜증낸 게 미안한 것도 있을 테고,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속상하기도 하고, 동기들 볼 생각을 하니 쪽팔리고 민망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 모든 게 조금씩 혼합되어 있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었겠지요.

 

전화기를 통해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제 앞에 같은 과 후배인 무성이와 수조가 나타났습니다.

 

먼저 무성이가 러브액츄얼리에 나오는 것처럼 스케치북을 꺼내들더니 한 장 한 장 넘겨가기 시작했어요.

 

'도와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시에 옆에서는 수조가 저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지요.

 

당황한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피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근혜와 친한 상현이가 나타나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는 피켓을 들이밀었어요.

 

그렇게 옮겨가는 곳마다 피켓을 든 학우들이 출몰하더니 마지막엔 후배들이 단체로 나타나 "근혜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세요"라며 울부짖는 통에 혼비백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알았다. 근혜랑 다시 사귈 테니까 니네 눈물이나 닦아라."

 

결국 저는 GG를 쳤고 우리는 잠시 끝날 뻔한 14개월간의 연애를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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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딴지스 여러분,

 

우리는 천생연분일까요? 아니면 전적으로 제가 호구 잡힌 걸까요?

 

근혜가 다시 사귀자고 말한 건 그린라이트가 맞나요?

 

이러다 남자 생길 때까지 줄기차게 어장관리만 당하는 건 아니겠지요?

 

기춘이 형이 근혜더러 남친대개조를 하라는데, 저를 바지남친으로 내세우고 자기들끼리 썸을 타면 어쩌죠?

 

연애에 밝고 밀당에 능한 딴지스 여러분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벨테브레

트위터 : @backtalkking


편집 : 꾸물,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