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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04. 금요일

산하








산하의 가전사


끔 하는 쟁 이야기 랑 이야기의 줄임말입니다. 

왜 전쟁과 사랑이냐... 둘 다 목숨 걸고 해야 뭘 얻는 거라 그런지 

인간사의 미추, 희비극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얘깃거리가 많을 거 같아서요.” 


from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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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 몽골은 고려를 공격한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진 몽골 침략의 서막이었다. 원정군 사령관은 살리타이. 8월경 의주를 공략한 몽골군은 북방의 성들을 짓밟으면서 남하했다. 고려의 중앙군이 출동했으나 오늘날의 안주에서 괴멸된다. 이후는 살리타이의 독무대였다. 살리타이는 개경을 포위하는 한편 별동대를 보내 경기도 일원과 충청도 일원까지 쑥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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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별동대 중 일부가 충주에 이른 게 1231년 12월. 부사 우종주, 판관 유홍익 등이 성을 지키고 있었다. 우종주 유홍익 등은 큰소리를 치면서 몽골군들을 맞아 싸우자고 했지만 정작 몽골군이 육박하자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양반별초, 즉 양반들로 구성된 부대와 함께였다. 성벽에 늘어선 잡류별초(雜類別抄) 즉, 노비와 하층민들의 군대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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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도망가던 우종주는 되돌아서서 한 손을 높이 들어 "이렇게 우리만 도망가게 돼 미안하다~~~~~~"라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혹여 너희가 성을 지켜 준다면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너희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리라." 눈물을 훔치며 약속도 했을 것이다. 그때만큼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성벽을 나가 봐야 갈 곳도 없고 들고 튈 재산도 없는 잡류별초와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충주성을 지켜야 했다. 엄동설한에 성 밖으로 도망갔다가는 얼어죽고 굶어죽고 재빠른 몽골 기병에게 맞아죽기 십상이었다.

 

 

"죽더라도 성 안에서 싸우다가 죽자."



지광수와 승려 우본을 중심으로 그들은 똘똘 뭉쳐 몽골군을 막아 낸다. 몽골군은 압록강을 건너 온 이래 최대의 매운 맛을 보고 한강 너머 자신들의 본진으로 귀환하게 된다. 아마 그 군대 지휘관 정도 되면 서하부터 유럽까지 원정을 줄기차게 다닌 경험이 있었을 터.

 

 

"살리타이 장군. 고려에도 군대같은 군대가 있습디다. 병력을 더 주시면 밟아놓고 오겠습니다."

 

"됐다 멍청이들아."

 

 

살리타이의 목적은 고려 전 국토를 점령하여 복속시키는 데에 있지 않았다. 고려 정부가 화친을 제안하자 이를 수용하고 다루가치들을 배치한 뒤 다시 압록강을 건넌다. 전쟁은 끝났고 계엄은 해제됐다. 당연히 충주의 지휘관들 우종주와 유홍익도 돌아왔다.

 

전투 흔적 역력한 성으로 돌아온 그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일은 관가와 각자 집들의 은그릇들을 점검하는 일이었다. 활구라고 해서 은병을 화폐로 썼던 고려였다. 은그릇은 주요한 재산이었다.

 

우종주는 아마 이랬을지도 모르겠다. "아 지난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개똥이와 장쇠, 성벽에 올라선 몽골병을 물어뜯다가 죽어간 돌쇠 등등을 조상하노라. 그들의 충절은 영원히 남으리라..... " 하며 장중한 음악을 흘리다가 1분 동안 눈 깜박이지 않고 짜낸 눈물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그런데 은그릇들은 어디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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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수 이하 잡류별초는 말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저....부... 부사 영감.... 으... 은그릇이라니오." 판관 유홍익은 이쯤에서 호령을 했을 터. "잡류별초는 들어라. 너희의 공을 내 모르는 바 아니나 엄연히 법도가 있는 나라에서 절도는 허용되지 않느니라. 지금 자수하면 내 없는 일로 할 터이니." 이쯤되면 잡류별초 쪽에서도 험한 소리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보슈. 은그릇들은 몽골군이 가지고 갔소. 아무리 측간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나으리들이 이럴 수 있소. 대체 나으리들이 우리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이 성 지키느라 300명은 죽었소. 그들이 죽어갈 때 나으리들은 어디 숨어 있었고 거 뭘 했소. 부사는 부지깽이라고 들고 싸웠소? 판관은 판때기라도 들고 몽골군을 막았소?"

 

 

그러자 저 말단에 서 있던 호장 광립이 악을 쓴다.

 

 

"부사 나으리더러 부지깽이가 뭐가 어쩌고 어째? 다 필요없어. 이 도둑놈의 새끼들 봐라. 넌 뭐야?"

 

"이번 전투에서 전사한 쇠돌이 형 되오."

 

"유족이면 입 닥치고 있어. 지금 도둑놈 잡고 있는데 니가 왜 나와서 설치나."

 

 

분통을 터뜨리던 잡류별초들이 흩어진 뒤 광립은 부사와 판관에게 속삭인다. "이것들 불순한 무리들입니다. 제 가족들 죽은 걸 빌미로 한몫 보자는 것들입지요. 논공행상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은그릇 없어진 걸로 뒤집어 씌운 다음 웃대가리들을 죽여 버립시다."

 

이들은 음모를 착착 꾸미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무기력하고 멍청하고 겁만 많은 8백년 뒤의 후손들의 스토리와 다를 것이 없다. 용감할 때는 용감한데 이상하게 윗전들 앞에서는 꼬리를 말고 자기를 버린 사람들에게 충성하고, 그를 숭배까지 하는 현대의 한국인 근성이 발휘되나 싶으며 또 내빼는 것은 귀신과 같으나 돌아와서 아랫 것들 쥐어짜고 딴소리하기는 세계에서 으뜸인 윗것들이 유구하나 싶어진다. 하지만 고려시대 사람들은 달랐다.

 

양반들의 노비 중에도 이 말을 듣고 기막혀 하는 자가 있어서 이 사실은 잡류별초들에게 전해진다. 잡류별초는 이 말을 듣고 봉기한다.

 

 

"몽고병이 오면 모두 달아나 숨고 지키지 않더니, 어찌 몽고인이 빼앗아간 것을 도리어 우리들에게 죄를 돌려 죽이려 하는가? 어찌 먼저 저놈들을 해치우지 않고 배길 것인가. 양반들을 죽여라."

 

 

그들은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장례를 치룬다고 떠들석하게 알려 사람을 모은 뒤 행동에 나서 자기들을 죽이려고 꾀한 자의 집에 가서 불지르고, 권세를 부리고 지낸 자들을 찾아내 남김없이 죽였다. 또 온 고을에 알리기를 "감히 이들을 숨기는 자는 그 집을 멸한다."고 하며 그 분노를 폭발시킨다.

 

천 년 전 충주에서 아래 사진과 같은 자들은 그 목이 온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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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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