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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08. 화요일

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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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 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1>

반백 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2, 上>

반백 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2, 下>

반백 년의 짝사랑 - 당신을 사랑합니다. 1982년 삼성그룹 <3>

반백 년의 짝사랑 - 밑장 빼도 패 바꿔도 언제나 승자!! 1982년 미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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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 물건을 써 본 기억이 없어. 선풍기 이후로 삼성도 쓰지 않았거든. 온통 럭키금성 제품으로 통일된 집안에서 자랐고, 차는 대학 때까진 현대자동차 제품을 줄줄이 탔었어. 21세기부턴 그마저 미국 브랜드로 바꾸었지. 현재 승용차는 렉서스고, 사업용 자산인 업무차는 볼보고 그래. 여기 농장에서 타는 차는 생산된 지 10년도 훌쩍넘은 도요타의 이름 모를 중고차고.


집 차의 경우 10년쯤 탄 건데,10년간 고장 없이 아직도 새차처럼 상태가 좋아. 조용함으로 유명한 렉서스의 대척점에 있는 브랜드가 탱크주의 대우지. 한 1년쯤 타면 소음이 장난인 수준으로 과격해지던 자동차들.


그리고 가전도 럭키금성에 비해 디자인이 뒤떨어져. 유명한 거라곤 봉세탁기 정도와 공기방울이려나? 세탁기 쪽에선 대우가전이 제법 한몫을 했던 기억은 확실하니깐.


봉세탁기



공기방울 세탁기



대우는 내수에선 꽤 신기한 기업이었던 기억 뿐이야. 늘 신제품도 잘 내고 광고도 열심히 하는데 일등제품이 없지. 늘 2등이거나 3등.


모든 사업부문에서 대우가 최고인 게 글쎄, 사옥의 크기? 서울역 앞의 거대한 빌딩이 기억 나네. 오늘날 인터넷과 화상장비와 보조 진료기기로 원격의료가 이슈화가 될 사실을 1995년에 미래 주택전시관의 시설물로 예언한 지나치게 먼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쯤으로 내겐 포지셔닝이 된 그룹이지.


삼성과 현대는 라이벌 의식이 있었지만 대우는 딱히 누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했던 그룹이 있었을까 생각도 잘 나지 않아. 그만큼 규모도 크고 정치적으로 이슈도 컸던 기업인데 정작 기업으로서의 강력한 무엇은 없는 신기함.


게다가 그렇게 차를 만들어내고 온갖 모델 풀라인업으로 생산하지만 정작 현대자동차의 경쟁상대라고 하긴 애매했던 상태로, 이익이 없이 투자만 지속했던 그 행태에 과히 호기심까지 생길 지경이었던 적도 1990년대 중반쯤엔 있던 거 같아.


직원들에게 강매를 한 대도 아니고 두 대씩이나 해서, 씨에로 두 대를 번갈아 타고 다니던 그 회사 연구소 부장급 한 분도 기억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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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로



그런 대우그룹의 1982의 이야기.


이후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확장 이전에 이해가 가는 이야기만 존재하던 시절이랄까. 여튼 그렇게 바라볼 수 있던 시절인 거야. 이리저리 잡기억을 떠올리는 거 스탑하고, 책으로 돌아가서 정리된 내용을 쭉 요약하자.


섹션표지부터 볼까나?



대우그룹 김우중.jpg



"70년대 신화가 낳은 수출왕"이란 게 제목이네.


대구산 야심가로서 지금의 서울대보다 더 어렵다던 경기중, 경기고를 나와 대학은 연세대. 중간에 좀 놀았나 싶기도 하지만, 등록금 좀 더 내고 자존감을 키우고 싶어서일 수 있고, 학위에 대한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 싸구려 국립대를 패스했을 수도 있으니 뭐.


한성실업이라는 섬유수출 기업에 입사해서 단기간에 수출입 업무와 은행관련 업무의 프로세스를 습득하고, 인맥구축까지 끝낸 후, 역시나 재벌의 소양인 몇몇 주요 인재를 말로 엮어 멤버구축 후 동종업계 창업~! 은행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가 깊어 돈 땡겨 빨리 크는 방법을 이해해버린, 금융쪽 지식기반이 출중한 보기 드문 재벌인 거지.


삼성은 원체 돈이 많았고, 현대는 현찰 팍팍 잘 나온다는 건설업을 선택할만큼 목돈 수금 지향의 노가다형 재벌이었다면, 대우는 금융의 힘과 약점을 잘 활용해서 재벌이 된 케이스.


이후 후발주자였던 율산그룹과 명성그룹이 금융권의 활용이 미숙해서 작살난 것과 비교할 때, 뭐 결국은 현재시점에선 다 작살났으니 다시 부활한 율산이 갑인 건가?


여튼 그런 재능이 있었다는 점. 게다가 동종업으로 창업해서 원래 다니던 기업의 업종에서 1인자로 컸다는 건 살모사새끼...라기보단 청출어람인 걸로.


회사 설립 이전에 다니던 기업의 인맥으로 알아둔 바이어들에게 선 오더를 받아둔 수월한 출발이었고, 은행원들의 강력한 친화력을 확보한 상태여서 모든 서류작업을 은행원들이 대신해 줄 정도였으며 세관, 검사기관, 상공부에도 서류대행이나 대신 일처리해 주는 하위 공무원들이 즐비했다는 것과 와이로(뇌물) 팍팍 뿌릴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세련되게 써놨어.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써 둔 걸 보면 사회생활 제대로 하는 타입이었던 거고, 무협지로 치자면 동네 사람들이 팍팍 밀어주는 기재에다, 만나면 다 형님이 되고 동생이 되며 애인이 되는 카이사르급 인화력 + 사람을 이용하는

리더십이 절절 흐르는. 손대면 톡하니 터지는 기연에,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무림최고수가 훈장출신 아버지의 제자라는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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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다깐다 마사오 씨가 김우중 씨 아버지의 제자야. 


잠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을 회사에서 보냈고 출장중에도 비행기 안에서 일했으며 쉼없이 출장도 팍팍 다니는 활동형. 전형적인 '조증'이지. 이 정도면.


첫 직장이자 노예로서 마지막 직장인 한성실업이 대준 대학등록금으로 대학을 다녔고, 그래서 박차고 밥그릇 빼앗아 나올 때 인간적인 괴로움을 느꼈단 얘기. 사장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랐다는데, 아버지 뒤통수를 까고 창업한 거니 이런 경우... 에이 일반인이었다면 "에라이 후레~"로 시작하는 장단맞춘 타령을 들려주곤 할 텐데, 나이 팍 들어 이젠 재벌도 아닌 전 재벌인 양반이니 그 정도까진 패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레퍼토리 좀 나오고 신문팔이에 남들보다 더 팔았네 뭐 하네 하는, '이녀석 원래 신동~' 그런 이야기가 짧게 지나가네.


창업 1년만에 동남아의 섬유왕이 되었다는데, 사실 대우가 그랬다니깐 믿어주긴 해도 국내에서 단 한 번 1등을 한 적 없는 권투선수가 나가서 타이틀을 먹었다면, 대개는 "그 타이틀이 정상인 거냐?" 물어보는 게 상식적인 거라 어디 동남아 뒷골목에서 팁으로 5달러쯤 뿌리고, "님 왕이심~!" 이랬을 수도 있다는... 헛된 상상 치우자.


여튼 원체 사람을 홀리는 사이비교주금 재주가 있었던지, 선배 집 담보잡아 보증을 서게 하는 재주부터 타짜기질이 있었던지, 중대기로에서 원단 싹쓸이 도박이 연이어 성공해서 재벌이 되었다는 전설따라... 카더라 따라... 가 주룩주룩 이어져.


1982년의 대우는, 쓰여진 것과 같이 섬유 수출 기반의 재벌인 거고, 은행권의 활용 방식이 좋은 탓에 부실기업으로 정리되거나 알짜 국영기업의 불하 시에 딱딱 알짜배기만 채가서 그룹이 된 거거든.


그런 시절 직전의 시드머니를 섬유를 통해 쌓은 거지. 원단의 선정과 시장흐름을 잘 파악했고, 1970년대 한국의 독보적 우위였던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섬유가공업으로 아시아와 대미 수출 쿼터를, 권력을 잘 활용해서 잘 배분 받는 종합예술인급 재벌로 성장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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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범급 재벌로



1971년에 터진 미국내 자국기업 보호를 위한 수출 쿼터 제도를 선행예측해서 필요한 실적쌓기에 주력하고, 한국 대표선수가 되어 아시아 전체 1위의 쿼터 소화 능력을 발휘해서 달러를 쓸어 담은 타이밍을 잘 잡은 거지.


쿼터가 대부분 발목잡이를 했는데, 대우의 경우는 오히려 쿼터 발동 이후 5위의 수출기업으로 순위가 올랐고, 쿼터 확정 분량의 프리미엄만으로도 국내 웬만한 기업가치와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을 했다고 하네.


그렇게 1982년 기점 총 자산 3조가 넘는 거대기업군 재벌이 된 거지. 섬유산업의 강자로 29개 기업을 계열화했다는 군. 확실히 조증을 가진 인간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어. 초긍정적인 마음 자세와 하루종일 잠 적게 자고 일만 하며, 전 세계를 돌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함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쉬지도 않는 인간형.


테드터너급이랄까. 여튼 너무 지독하게 일만 해서 40대 중반에 이미 완전백발로 변신. 아침은 '개죽'이라 부르던 김치죽. 11시 30분에 집에 가서 평균 4-5시간의 취침. 이동중에 무조건 쪽잠을 자는 버릇. 장관실에 면담가서 이야기 재미없게 한다고 졸았다가 욕 좀 먹은 사연 등. 특이하게 골프 및 신변잡기 즐기는 게 없고, 오직 일이 전부인 사람.


대우그룹의 근무 시간 자체가 다른 기업보다 1시간이 긴 10시간 30분, 평균 12시간 근무를 시켰다고 하는 군. 대신 월급은 다른 기업보다 더 줬고, 성과에 대한 포상은 확실히 했다고.


봉급마저 적으면 누가 작은 기업에 오겠냐는 창업시절의 사고방식이 이어져서 그랬다는데 아마 이 책 이후로 그런 추심이 사라졌을지. 차 강매당하고 월급은 그다지 많지 않았더라는 이야기를 대우 출신에게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


대우그룹은 애초 비난을 하든 뭘 하든 별 관심이 없던 내 삶의 이방인 같은 그룹이어서 딱히 기억나는 건 단편적인 대우 출신 사람들과의 이야기들과 약간의 걱정 뿐이야.


내가 대우그룹에 대해 확실히 좋지 않을 이야기를 했을 때 좁은 한국의 인간관계 상황상 바로 선배한테 끌려가 쥐어터질 수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 대우그룹의 마지막에 불타올랐던 과차장급 알던 형들이 해체 이후 울분을 터뜨리며 "김대중 정권 때문이다~"를 외치고, 지금 새누리당에 가 있는데. ㅡ,.ㅡ; 모 의원님 보좌관하며.


에이, 난 줄 모르겠지. 걱정 뚝.


경기고 동창들로 멤버구성이 된 초창기 대우그룹 주요 멤버 이야기도 나와. 이우복 부회장은 동창이자 친구, 윤영양 중공업 사장은 후배, 이석희 새한자동차 회장은 선배, 여튼 몽땅 경기고 라인. 경기고 재벌로 불릴만큼 동창을 기조로 중용했어. 주요 임원 수십 명 이름 다 나오는데 뭐 등등~으로 슁 넘어가는 걸로. 여튼 다 경기 동창~


1960~70년대를 수출왕 섬유왕으로 살았다면, 1970~80년대를 대표할 이름은 인수왕! 동양투자금융, 대우기계, 삼주빌딩, 동국정밀, 오성염직, 신성통상, 동양증권, 영진토건. 당시엔 제법 굵은 회사라는데, 요즘 들어본 기업이름과 비슷하지만 같은 회사가 아닐 수도 있고. 여튼 그런 기업들을 팍팍 인수해서 인수왕. 예를 들어 대우 중공업은 한국기계를 인수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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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다른 재벌이 친자식 키워 만든 창업 라인이라면 대우그룹은 잘 주워다 키운 입양아 타입이야. 그래서 요즘이야 흔했을 M&A전문 그룹이 된 건데, 그래선지 막상 하나에 집중해서 끝장보기보다는 이거저것 자꾸 사들이고, 분해 조립하고 해서 자체 자산 돌려막기를 잘 하게 돼. 금융권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던 건데, 이게 바로 자산 이상의 위험한 거품을 만들게 된 원인이 된 건지도 몰라.


은행권에 대한 이해가 좋았다는 일화로 급전이 필요해서 인수했던 빌딩을 럭키에게 되팔게 되는데 럭키에서 돈이 부족해서 곤란하다니깐, 친히 은행에서 빌리는 일까지 다 봐주고 인수를 시켰다고 해. 재벌에게 대출받는 방법을 손수 지도한 은행권 한정 멘토지.


은행에 대한 이해력하니, 율산의 얘기가 떠오르네.


율산의 경우 금융권에 약했어. 권력에 밉보인 탓과 은행에 거의 사기당한 수준의 이용을 당해 무너진 것이라는 견해가 있지. 율산그룹의 흥망을 정리한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기억이 나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 책이 집에 없더라고.


실질적인 주식을 문화재단에 전부 기부해서 월급회장이라는 대외 구라질이 이어서 나오는데, 그 재단 이사 중 하나가 조선의 방씨. 사재출연해서 문화재단 만든 시기가 1980년. 전두환 씨의 무대뽀를 짐작했을지 선수치듯 발표해서 신군부의 재계정화작업을 시작하기 전, 면피 겸 모범사례가 되어 이후 산업 선진화로 강제 통폐합을 할때 짭짤한 이익을 보기도 했거든. 그건 책에 안 나오고 그저 내 기억속에 있는 일.


재단 만들 때 고민이 많아서 15년만에 처음으로 낚시대를 드리우고 고민을 했다는 일화가 있어. 전두환이 참 대단한 우환덩이였나 봐. 재벌들 다 그때 건강 악화되고 재단 만들고 그런 거 보면.


1982년 시점에 30대의 젊은 층 중에 후계자 수업을 하는 인재군이 있고 그 인재군이 50대가 되어 안정감이 생기면 이선으로 후퇴하여 경영권을 넘기겠다는, 지키지 못한 약속 같은 걸 말미에 했어. 자식에게 물려주겠다는 말보단 멋져 보이지만 결국 그런 말만큼 멋진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대우그룹은 해체.


마지막 마무리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상품을 만드는 기업이 되어 IBM처럼 한 분야의 대표기업이 되겠다는 게 소망이라고 정리가 되어 있네.



자, 여기까지 책의 서머리.


거의 삼성그룹만큼이나 분량이 나오는 것 같아. 약간 적긴 하지만. 대우그룹의 당시 규모나 위세에 비하면 페이지가 많은 편이지. 감투 하나 방 씨에게 씌워주고 친하게 지낸 듯.


김우중은 1982년까지만 잘라 봤을 때 보기 드문 월급쟁이 출신의 재벌이고, 열정적으로 일중독자에 가깝게 일한 사람으로서 시대의 열정 아이콘쯤 되겠지. 1990년대 들어 노회한 상태로 정치권도 기웃.


기업 경영 상태는 애매한데 무리한 세계경영을 시도하다 평생 좋던 도박운이 소멸한 관계로 망했지만, 여튼 1980년대까지의 대우는 막강한 성장동력이었고, 개인의 실력과 재능과 열정에 인맥까지 좋은 자수성가형 재벌로서 꽤 빛나는 존재였지.


아버지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연도 강렬한 소스이긴 해서 산세 험하고 지세 척박한 대구 출신 남자 한 명은 역적이 되는 도박으로 대통령이 되고, 나머지 어린 한 명은 아버지라 부르던 이의 뒤통수를 깠더래도 청출어람형 성공을 이뤄 재벌이 된 거니깐.


뭐든 돈 많이 벌고 성공하면 장땡인 대한민국에선 절대적 선인 사람들인 거지. 대부분 다국적기업의 벤치마크 대상이 된 성공이자 실패인 세계경영 이전의 1982년 대우.


내겐 딱히 잔여감정이 없고, 호감도 없는 기업이며 이후에도 그다지 연관이 없고 제품 하나 제대로 써 본 일이 없는 기업.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묘한 거부감이 드는 기업.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친한 선배들도 여기 출신이고 처 회사의 이사도 대우그룹 연구실 출신이라 맨 씨에로 한 대 팔아버려야 한다며 짜증부리던 그런 기억들 때문인지 좋게 보이진 않지.


일단 주변에 대우차를 타던 녀석들은 딱 한 번 타고 다른 회사로 갈아탄 것도 있고, 세계경영 탓인지 중앙아시아에 갔을 땐 택시가 다 티코여서 이 큰 덩치로 거기 구겨 탄, 유쾌하지 못했던 기억도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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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시작이 기아였다면 마무리는 대우지.


조증에 걸린 대단한 일중독자 김우중 회장의 행동들 중 내가 기억하며 저건 따라하고 싶다고 느낀 건, 힐튼호텔 팔면서 가장 좋은 로얄스위트를 자신의 소유로 남긴 거? 물론 소송에서 깨지고 방을 빼긴 했지만, 그런 행위들. 돈이 잔뜩 벌린다면 한번쯤 따라하고 싶었던 거거든. 호텔에 산다는 거, 꽤 멋질 것 같아서.


정치적인 요소까지 꼬여서 이리저리 도피하다 나중에 들어와 유야무야되며 지금도 가끔 잔뜩 밀린 추징금 따위 땜에 신문에 오르내리는 사람.


그래도 동시대 샐러리맨의 우상으로서, 평민출신의 재벌로서, 마무리가 좋았으면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떠올리면 우울한 사람의 이름인 거지.


세계적으로 몇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고,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재산이 얼마나 많이 감춰졌을지 짐작이 가질 않지. 세계경영을 표방했지만, 경영은 실패했어. 하지만 세계적으로 재산 도피를 잘 했던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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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현재의 씁쓸함은 더 쓰지 않기로 하고 다른 재벌 이야기랑 공평하게 1982년까지의 모습만 두고 본다면, 잘한 건 머리좋은 동창들을 모아 용기있게 한국을 넘어서 아시아 전체의 판세를 잘 읽으며 수출로 외화 획득에 노력했다는 점이야. 정경유착과 금융권의 부정적인 활용 측면에서는 야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권력을 지나치게 이용하고 의지하는 나약함까지. 그 정도 볼륨이면 좀 더 세련되고 대차게 나갔어도 좋았을 텐데. 어차피 고향도 비슷한 동네 애들한테 처맞기야 했겠냐고.


그리고 1982년 시점까지 떡하니 머리에 남을 제품 하나 없던, 가치있는 브랜드 하나를 키우지 못한 상태의, 규모가 크지만 실질적은 정체가 없는 기업의 이름인 대우는 그다지 매력 없음.


무협지로 보면 태생은 좋으나 개방에 밑바닥 걸뱅이로 갖은 고생을 하고, 좋은 무관에 재능으로 들어가 동문 사형제들을 잘 인화단결시켜 무림맹쯤의 단체를 조직해서 수장이 되었으나, 직속 제자는 키우질 모하고 매번 다른 문파의 제자들을 빼돌리고 꼬셔서 데려오며, 직전 무공을 사사한 사부의 무관 앞에 떡하니 더 크게 차려둔 셈이랄까. 약간의 어긋난 보은심리도 보이지만 하루종일 무공만을 닦는 광적인 수련광. 쎄고 강하고 막강하지만 딱히 전적이나 비무로 보여주는 모습이 없는 안개 속의 오리무중 절정고수의 느낌인 거지.


그래도 전장의 투자와 자금조달에 능해서 자꾸 무관의 크기와 시설의 고급화는 진행중인, 유수의 도시와 요처에 지점을 내며 멀리 서역과 오랑캐들의 땅까지 다녀온 전설적인 역마살 고수.


이런 정도로 정리.


1982년 대우그룹. 아직까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았던 시절 이야기. 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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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비 


편집 : 보리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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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비.


유쾌하게, 즐겁게, 흐뭇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