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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09. 수요일

벨테브레








1. 지못미, 허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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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나 농구 등 팀 대항으로 치러지는 대부분의 구기 종목에는, 많은 득점을 올리며 주목을 받는 공격수뿐 아니라 잘 안 보이는 곳에서 몸빵을 뛰며 팀의 승리에 이바지하는 선수들도 필요하게 마련이다.


보이는 스탯은 변변치 않지만 꼭 필요한 존재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기 위해 '팀 기여도'라는 개념도 자리 잡아가는 추세. 그리하여 팀 기여도가 높은 선수들은 연봉 협상 등에서 유리한 대우를 받게 마련이다. 이는 공정한 평가와 적절한 보상이라는 조직 운영의 대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당연한 귀결.


새누리당의 조원진, 이완영. 이번 세월호 국정조사를 통해 핫하게 떠오른 의원들이다. 범국민적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욕을 먹고 있지만 글쎄, 그들은(애초에 세월호 국정조사에 별 관심이 없었던)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X맨이 아니라 오히려 팀 기여도가 높은 선수들일지 모르겠다. 세월호 사고 이후 수많은 삽질에도 불구하고 물러나지 않은 총리를 둔 나라에서, 맥락상 별로 틀린 것 같지도 않은 말실수를 이유로 특위 위원을 교체하라는 주장이 말이 되는 건 아니잖아. 결국 그 사람들은 무슨 핑계든 트집이든 잡아서 국조를 나가리 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거지. 조원진과 이완영은 그러한 감독의 전술에 충실히 부응하고 있는 팀 기여도 높은 선수들인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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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지역구를 둔 두 사람은 아마 다음번 공천도 무난할 듯 보이고 당선도 떼놓은 당상이리라. 내가 알고 있는 새누리당은 욕을 먹을지언정 팀 기여도 높은 사람을 좀처럼 버리지 않더라. 공천이 안 되면 정부나 공기업에라도 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보상이 철저한 곳이다. 정치적 견해를 논외로 하고 구성원의 입장에서만 보면 괜찮은 조직이라 할 수 있겠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떨까개인적으로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들은 이름이지만 허동준이라는 사람은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선 팀 기여도가 높은 사람일 것으로 보인다총선 때면 전략공천으로 나타나는 명망가들이 뼈만 파묻고 스쳐 지나갔던 곳. 몇 번의 분당과 통합 과정을 거치며 황폐해졌을 지역 조직을 건사하며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러낸 것은 지역위원장의 노력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당은 야당이고총선에서 맞붙을 상대당의 현역 의원은 정몽준이다객관적으로 금배지를 달기 힘든 상황 속에서, 심지어 후보 출마조차 한번 못한 채 16년을 버텨온 것이다.


그런 그이기에 이번 재보선에 임하는 마음이 어땠을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라 여기고 죽기 살기로 뛰었을 것이다. 그런다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 사람의 당내 공헌도를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경선기회 만큼은 부여했어야 되는 게 아니었을까? 아니, 전략공천을 한다 해도 납득할 만한 과정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밀실에서 쑥덕거린 결과가 생뚱맞게도 광주 광산을에서 뛰고 있던 기동민이라니. 이건 과정도 결과도 실패. 객관적으로 기동민과 허동준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기동민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했던 것밖에는 없다. 그 또한 당을 위해 또 사회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한 일이겠으나, 적어도 지역 당 조직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작을 지역위원장을 했던 허동준에 비할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울러 기동민이 총학을 했던 성균관대는 종로구에 위치한 반면, 허동준이 총학을 했던 중앙대는 동작구에 있다. 인지도?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필자조차 기동민이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 들었을 정도니, 일반적인 동작구민들 입장에서 허동준보다 기동민이 유명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전략공천은 아무나 공천해도 이길 수 있다는 근자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더더욱 허동준 같은 사람을 공천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지역에서 고생한 사람에게 반드시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믿음. 단언컨대 당원들의 충성도를 제고하는데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아울러 맨날 인재가 없다고 탓하며 외부에서 수혈할 생각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젊은 인재를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것 또한 정당의 중요한 덕목인데, 인재를 키우는 데 있어 능력을 키우고 인지도를 제고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만큼 중요한 투자도 없다고 본다.(혹시 기동민 전략공천의 명분이 그런 것이었다면, 그 기회가 허동준에게 오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전략공천을 수용한 기동민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 또한 많은 인간적 번뇌가 있었을 테지만, 안 나온다고 선언할 경우 좋게 돼 버릴 당 지도부와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고 지도부의 눈 밖에 나서 다시는 공천을 받지 못할 스스로의 미래 등을 생각하며 독이 든 성배를 받아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만든 당 지도부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안철수에게 쓴소리를 좀 하고 싶다. 바로 금태섭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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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안철수, 당신의 정치력을 보여주세요!

 

필자는 지방선거 직후에 '새정치민주연합, 정신 차려라'는 글에서 광주시장 공천 문제에 대한 안철수의 태도를 비판한 적이 있다. 사실 그건 도덕적인 관점의 비판은 아니고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의 예상은 이번 재보선 과정에서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다. 윤장현을 무리하게 전략공천한 후유증으로 인해 재보선 공천 과정에서 스텝이 꼬여버린 것순리대로 하자면 명색이 당 공동대표인 안철수가 15자리 중 자기 사람 2~3명을 심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금태섭이나 김상곤 정도는 (경선을 통해서라도) 공천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광주시장 공천과 이후의 후폭풍으로 당 사람들의 마음을 잃어버린 안철수가 두 사람의 공천을 밀어붙일 힘이 있을지? 금태섭에 대해서는 뒤늦게 수원 공천이 거론되고 있는데 어차피 몇 안 되는 당 최고위원들끼리 결정할 거라면 미리 조율해서 금태섭이 동작에서 헛심 쓰고 스타일 구기는 꼴 막았어야 했고, 그마저 안 될 거라면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출마를 막았어야 한다. 안철수나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 광주시장보다는 국회의원 한 명이 더 필요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측근 중의 측근으로 인지도 높은 금태섭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다.

 

어쩌면 안철수는 스스로 두 번이나 양보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측근들 역시 새정치를 바라는 일념에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흔쾌히 양보하리라 믿으며 그것이 새정치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제1야당의 공동대표로 들어온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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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믄 안 돼



그라믄 안 돼~! 정략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몇 안 되는 자기 사람도 챙겨주지 못하면 누가 안철수를 따르고 새정치민주연합에 충성을 다하겠는가? 당이 잘 되려면, 그리고 본인이 큰 지도자로 성장하려면 궂은일도 마다않고 뛰는 선수들이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적절한 보직을 주어 전략적으로 운용하는 것 또한 리더의 덕목이다.(그런 점에서 세월호 국정조사 파행을 김광진 탓으로 돌리는 모습도 유감스럽다.) 양보만 하는 게 새정치는 아니란 말이지. 그나마 광주시장 공천을 밀어붙임으로써 퇴색된 것도 부인할 수 없고.


이젠 결국 결과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정치력을 발휘해서 이 난국을 수습하고 온 힘을 다해 지원해서 최대한 많은 곳에서 이기도록 해야하는 처지이다. 근데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으로는 잘 될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 대립을 조정하는 모습을 통해 막연하기만 했던 새정치의 실체가 구체화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실 허당이었더라'가 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조금 더 크다. 

 

이미 순리대로 가긴 어려워졌고 어떻게든 수습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허동준/천정배 두 사람에게 물러날 수 있는 퇴로를 열어주는 게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면 대외적인 명분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진로에 대한 비전을 모두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 보여준 모습을 보자면 두 사람은 의원직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1보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2보 전진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준다면 그럭저럭 난국을 수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안철수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3. 천정배, 2의 정동영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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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천정배. 참 아까운 인물이다. 스스로도 자신의 정치적 역량에 비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그 조급함이 지금의 어려움을 만든 걸 부인할 수 없다. 2011826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던 바로 그날,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서울로 주소지를 옮겼던 성급한 모습은 천사인 볼트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돌아왔고, 당내 경선조차 뚫지 못한 채 지역구만 날려버리는 등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결말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그릇을 담기에 안산 단원갑이라는 지역구는 너무 작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결국 서울에도 자리 잡지 못하고 호남 정치의 맹주가 되겠다며 광주로 내려갔는데, 글쎄, 누가 보더라도 김부겸이 대구 내려간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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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르지~"



하나 마나 한 가정이지만 천정배가 안산에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힘들어했던 안산시민들에게 거물급 야당 정치인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희망이 되었을 것이다. 천정배의 능력이라면 정부의 지리멸렬했던 대응에도 강력한 펀치를 날려 응징해 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단번에 대권주자급의 존재감을 갖게 되었을 것 같은데.

 

듣기로는 안산이란 도시는 세월호 참사 말고도 현안이 적지 않은 곳이었다 한다. 인구 많지, 면적 넓지, 공단에 농촌에 섬에 시화호까지 있지, 외국인 많지, 강력범죄도 심심찮게 일어나지, 전국적으로 주목받긴 어려울지 몰라도 정치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소소한 일들이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그렇게 지역의 현안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더 큰 일을 해보겠다며 황망히 다른 지역으로 떠나려는 모습은, 책임감보다는 정치적 성공만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더욱이 안산은 천정배를 여당일 때나 야당일 때나 단 한 번도 박대하지 않고 내리 4선을 하게 해준 고마운 곳 아닌가. 노무현과 김부겸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자면 지역구 이동은 자기 지역구에서 활로를 찾기 힘든 사람의 도박인 경우가 많은데 천정배가 굳이 그런 카드를 썼어야 했는지, 내가 안산 시민이었다면 굉장히 서운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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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 번 선택은 꼬였다 치고, 기왕 이렇게 된 것 다시 안산에 나올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도 맞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나고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단원고 학부형 중에 안산 단원구에서 4선을 한 천정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진도 내려가서 가족들 위로도 좀 해 주고, 정치적 역량이 필요한 부분에 힘도 좀 보태주고, 안 보이는 데서 허드렛일도 도와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직이 아니라는 한계도 있겠지만, 현직이 아니라서 자유로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어차피 안산단원갑 당협위원장도 지금 수원 재보선 나가려고 준비 중이니 특별히 미안할 이유도 없고) 정치적 오해가 걱정될지 모르겠지만 쇼라고 해도 계속 하다보면 없던 진정성도 생기고 진실처럼 되는 경우가 많다. 가루가 되도록 까였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어떻게 부활했는지를 보며 느끼는 바가 있기를.

 

미디어와 국민들의 무관심이 걱정된다고? 천정배쯤 되는 사람이 100일쯤 거기 내려가 있는데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정 조급하다면, 책을 한 권 써내면 될 일이다. 그런 활동을 통해 느끼는 점이 있을 테니까. 정책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도 보일 거고. 꼭 국회의원을 해야만 정치를 할 수 있는 건 아닌 거다. 그가 좋아했던 노무현이 어떤 마음으로 정치를 했는지, 또 국민들이 노무현의 어떤 점을 보고 대통령으로 뽑아주었는지를 떠올리며 정치를 시작할 때의 초심을 되찾았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정치 시작하고 20년 가까이 수도권 지역구에 있었으면서 갑자기 디호강정이니 이상한 말을 해가며 광주에 나타나는 게 모양새가 좋아보이진 않는다. 5년 전 벼랑 끝에 몰려 원래 지역구(전주 덕진)로 돌아가려던 정동영이 당내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정 광주에 나서고 싶었다면 김한길이나 안철수랑 사전에 조율을 해서 최소한 당내 경선이나 여론조사만이라도 할 수 있게끔 설득했어야 할 거고지역구를 천리 밖으로 옮기는 건데 그 정도 준비작업도 없이 출마선언과 전입신고만으로 들이댄다는 건 4선의 중진급 정치인치고는 졸렬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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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렬은 내꺼. 천정배 씨는 넘보지 말아요."



무엇보다도 호남의 맹주는 호남 지역구나 호남 출신 정치인이 되는 게 아니라, 호남의 정서를 이해하면서 전국적으로 새누리당을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거더라. 호남에서 호남 사람들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거다.(내가 광주시장 선거와 관련 안철수를 비판하는 지점이 이것임. 광주가 안철수를 선택했다고 희희낙락해 하지만 애초에 그런 벼랑끝 선택을 하게 만들 필요가 없는 일이었음. 만일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 경기, 인천 싹쓸이 하고 이번 재보선에서도 두 자릿수 의석을 석권하는 등 새누리당을 압도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호남 사람들의 마음은 안철수에게 향하게 될 것임.)

 

물론 천정배는 빼고 전략공천을 해보겠다는 당 지도부의 태도도 보기 좋진 않다. 근데 그렇다고 무소속 출마를 하겠다면 어떻게 하나. 안철수는 또 한 번 광주에게 벼랑 끝 선택을 강요할 거고, 안철수 vs 천정배 구도로 가면 전국적 확장성을 지니지 못한 천정배는 이기기 힘들지 모른다. 솔직히 천정배는 광주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DJ니 호남이니 하는 것도 다 묻어가 보려는 거 아니냐고 공격하면 방법이 없게 된다. 


이용섭과 강운태가 독자 노선 걷다 망한 지 두 달 밖에 안 되었다. 물론 천정배 자신은 그보다는 스케일이 크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정동영이 출동하면 어떨까. 한때의 대권주자에서 순살동영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으로 몰락한 정동영. 어떻게든 살아보려던 조바심이 악수를 거듭하게 만들었고 그 정점에 전주 덕진 재보선 출마와 민주당 탈당이 있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고향 사람들의 동정심에 힘입어 당선은 되었고 복당도 했지만, 이후 지난날과 현격히 다른 실천왕의 행보를 보이면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같은 '천신정'의 일원이었다고 그 실수까지 따라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벨테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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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보리삼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