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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16. 수요일

범우









얼마 전 22사단에서 총격 사고가 일어났고 집사람은 또 안부전화를 받았다. 사내아이가 철책근무를 내려오고 난 직후에 발생한 일이라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불안해한다. 딸아이도 사내아이도 시스템이 망가져가며 일어나는 사고에서 직격탄은 맞지 않았다. 시스템은 망가진 게 아니라 아직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비슷한 사고가 터진다. 어쩌면 잊을 만해서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수립되지 않고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되풀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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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쏜 임병장이, 총을 맞은 소대원들이 어떠한 상황이었는지는 언론에 보도 되는 내용 외에는 알지 못한다. 보도된 내용을 가지고 부족한 대로 인과 관계를 추론한다. 못 사는 집이나 편모, 편부 슬하의 자식들은 그냥 자동으로 B급 관심 병사였구나. 자살 위험이 있으면 A급 관심병사가 되고, 없는 집 아이들은 최전방으로 가서, 거기서도 등급이 매겨져 관리되고 있었다.


붙잡힌 임병장이, 진술에서 특정간부에 대한 분노를 터트리는 걸 보고 임병장 개인에 대한 동정은 사그러든다. 제 인생도 말아먹을 걸 알면서도 방아쇠를 당겼던 억울함이야 있겠지만 죽은 아이들 부모가 더 안타까워진다. 그래도 임병장 개인의 자질 부족과 잘못으로만 돌리기엔 잊혀진 비슷한 사고들이 많았다. 비슷한 사고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하는 게 옳지 싶다.


있는 집에서 자라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 그리고 더 많은 재주와 능력을 교육을 통해 갖게 된 사내 아이들은 어째서 가장 중요한 자리인 그곳을 가지 않고, 총부리를 뒤로 돌릴까봐 실탄을 지급하기가 꺼려지는 관심사병들을 등급을 조절해 가면서 철책을 지키게 하는가 하는 생각이 흘러간다. 이 땅에 지킬 만한, 가진 게 별로 없는 아이들이라서 관심사병일 텐데 기득권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소모품으로만 간주된다. 물론 반대쪽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사정은 더 나쁘겠지만 그것이 대한민국 병사들이 소모품으로 취급 받을 이유는 아니다.


국가와 사회를 수호하는 소중한 자원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연히 거쳐야 할 과정보다는 쉽게 보충할 수 있는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면이 커 보인다. 소말리아나 토고에 비해 이 정도로 발전한 국가사회의 틀을 다지기 위해 희생했던 선열들에 대한 예의, 공동체 구성원으로의 당연한 의무, 길러준 부모와 가족에 대한 보은의 의미를 담고 의무 복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배고픔에 똥내 나는 화장실에서 고참들 몰래 건빵이나 쵸코파이를 먹던 세대들이나 짬통에 버려진 음식물 찌꺼기를 주워 먹다 삽자루로 맞던 더 윗세대 분들의 눈에야 요즘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지만 공평하게 못 살던 시대보다 불공평하게 풍요로운 시대에 덜 풍요롭게 태어난 아이들의 병역 불평등의 억울함은 개인의 성향만큼 무게가 다르다.


전쟁 위험으로 불안한 나라에 인천공항만으로는 유사시에 효과적인 대피를 할 수 없어 남동 국제공항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자제분들은 군대를 잘 가지 않고 가더라도 전방지역에 잘 근무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 살면서도 무슨 방법인지 외국국적을 취득해서 병역을 면피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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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기득권에서 다문화 정책을 지원하는 이유가 노동력 확보라는 현실적인 이유나 외국 노종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아니라 외국 국적을 딴 자신들의 자녀들 밀어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무리 내에서 약하고 별난 종자를 집단으로 따돌리고 괴롭히는 건,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것 만큼의 결속력을 집단 구성원에게 주는 것 같다. 서열이 엄격해 우두머리가 아니면 번식을 할 수 없는 늑대무리에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객체가 존재하는 걸 보면 서열 억압을 풀어내는 자연스러운 행동일지도 모른다.


새끼 늑대에게까지 물리고 괴롭힘 당하는 구박덩어리에게도 늑대 무리는 먹이를 공평하게 배분한다. 상위서열은 유동적인 서열을 유지하기 위해 사냥을 할 때나 적과 싸울 때 앞장서서 능력을 보인다. 그럼에도 하극상이 일어나서 우두머리가 변경이 되고 구박덩어리가 교체되는 걸 보면 서열 상승에 대한 욕망은 무리 짓는 짐승의 본능일지 모른다.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에 왕따와 이지메 문제가 심하다는 건 내부서열화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반증인 것 같다. 학교끼리의 서열과 학교 내에서 내신등급으로 나뉘는 서열, 부모 자산으로 평가받는 서열 등, 어린 개인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서열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못한다는 확신이 드는 만만한 상대에게 풀어낸다. 보고 배운 대로 약자에게 엄격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어른들의 흉내를 낸다.


고만고만한 등급으로 채점되지 않는 지배자로 자랄 아이들은 온갖 방법으로 군역을 면피하고 행여 가더라도 꽃보직을 받는다. 성별에 따라 가진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별이 뚜렷한 의무복무를 해야 하는 아이들은 그곳에서 하던 대로 서열을 만들고 사회생활을 한다. 입대 순서대로 순차적으로 윗 서열로 상승하는 병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는 다른 병사들에게 짐이 되고, 짐의 무게만큼의 증오를 받는다. 참고 지나 무사히 사회인이 되기도 하지만 종종 사고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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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분들 자제분들은 다 빠져나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는 듣기만 좋은 말로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를 붙잡아두기엔 부족하다. 권리에 의무가 수반된다면 마땅히 의무에도 권리가 수반되어야 옳다.


아무리 의무복무 기간이더라도 이등병에게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고 초과 근무에 대한 근무수당을 지급하고 우수부대와 사병에 대한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싶다. 그나마 병사들 월급이 올라서 14만 9000원이다. 일당 5000원이 안 된다. 초과 근무와 휴일근무 1.5배를 지급해야하는 심야수당을 제하고 계산하면 그나마도 절반이하로 줄어든다. 대한민국 경제규모와 물가로 보면 공노비와 다름없다.


적정임금을 지급받는 청년들은 소비로 내수 경제 활성에 이바지하기도 하겠지만 사회 진출시의 종자돈을 마련할 수도 있다. 적어도 사대강 사업보다는 지속가능한 채산성이 있다. 도저히 병역이 적성에 맞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대체복무자에게도 적정 임금을 지급하되 세율을 50%이상으로 해서, 병역 복무자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겠다.


적정한 보수가 지급되지 않고 적절한 대접이 수반되지 않는 업무에 투입되면 정상적인 관리 감독이 불가능해지고, 업무태만과 직무유기를 스스로 용인하거나 묵인하게 된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그리했었고 참사가 일어났다. 집지키는 개 취급을 받고 나라를 지키는 일당 몇 천 원짜리 병사들에게 유사시에 목숨을 걸고 맡겨진 임무를 잘 수행하길 바라기만 하는 건 도둑놈 심보다.


당연히 도둑놈 심보로 요행을 바라는 일들은 언젠간 어그러진다. 일본이 전쟁국가가 되고 중국이 국가주의로 사회불안을 녹여내려 한다. 러시아는 무력 팽창을 하고 있고 북한은 핵을 갖고 있다. 전시 작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영토분쟁에 자국의 이익을 쫒아 선택할 확률이 높다.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지만 콩고 강 한쪽 구석에 살고 있는 평화를 사랑하는 보노보 침팬지는 기후변화로 강이 마르거나 흐름이 바뀌면, 강 건너편 숲에 살고 있는 전쟁과 동족 살해로 단련된 제인구달의 침팬지들에게 멸종을 당할 수도 있다. 우리는 침팬지보다 좀 더 많은 것을 대비할 능력과 지혜가 있다.


세월호 특별법 청원 서명용지에 삼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희생 학생의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가 죽어가는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전 국민이 그 광경을 함께 지켜보았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인을 찾기 위해 목격자들의 서명과 진술이 필요하단다. 지속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단서가 붙긴 하지만 원인을 찾아야 동일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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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보리삼촌